고린도후서 5:1-10 “영원한 집이 있는가?”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1. 눈에 보이지만 곧 사라지는 것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것을 기준으로 삼을 때 신앙은 몸을 다르게 바라봅니다.
2. 그러나 몸이 부활한다는 생각은 헬라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은 영혼불멸설을 믿었지만 육신에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3. 때문에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이 십자가의 죽음과 몸의 부활에 있다는 것이 못내 믿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항상 걸림돌이었습니다.
4. 바울은 몸을 벗어버리고 영혼이 자유로워진다는 헬라인들의 생각을 바로잡아주기 위해 사후에 ‘몸을 덧입는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5. 그는 우선 이 땅에서 죽음을 맞는 것을 장막 집이 무너지는 것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집이 있어 슬퍼할 이유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6. 그가 두 가지 집을 비유한 까닭은 두 가지 몸이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자 하는 때문입니다. 장막집은 마치 애벌레가 벗는 허물 같습니다.
7. 허물은 죽음이 아니라 주검입니다. 그러나 그 주검은 새로운 몸을 덧입는 출발점입니다. 애벌레의 주검은 나비가 되는 갈망의 실현입니다.
8. 바울은 장막집이 무너지고 영원한 집으로 옮겨가는 것이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를 덧입는 것’이어서 간절히 사모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9. 이렇게 몸을 벗는 것이 아니라 몸을 덧입는 것은 사망이 생명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생명이 사망을 삼킨다고 말합니다.
10. 세상에서는 죽음이 우위에 있습니다. 언제나 죽음이 생명을 삼켜버립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피하려고 버둥대는 것입니다.
11. 그러나 신앙인은 정반대입니다. 부활의 새 생명이 언제나 죽음을 삼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 보증이 믿어지게 하십니다.
12. 장막집이 무너지는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영생의 시작입니다. 정말로 영원한 집이 있습니까? 부활의 몸은 예수님 언약의 본질입니다.
예수님.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이 유익인 것은 아버지께 가서 너희 집을 마련해놓고 데리러 올 것이기 때문이라 하셨으니 뭘 더 바라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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