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로마서·마태복음강해설교

[스크랩] (제39강)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마 7:24-29)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17. 16:54

(제39강)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마 7:24-29)

 

  본문은 우리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황금률과 같은 교훈을 마5-7장에 주신 다음 모든 교훈의 결론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교훈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이요, 주님의 교훈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다'는 결론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들은 모두가 건축가입니다. 직업이 건축가가 아니더라도 영적인 의미에서 다 건축가입니다. 우리가 모두 집을 짓는데 어떤 사람은 반석 위에 짓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모래 위에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누구나 자기의 생애를 통하여 집을 짓고 있는 '집 짓는 인생'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보면 음악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음악가라고 합니다. 여기서 가자를 한문으로 집 가(家)로 씁니다. 미술을 하는 사람들을 미술가라고 부릅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은 문학가라고 합니다. 그밖에도 교육가, 철학가, 종교가, 사업가, 정치가, 건축가 등으로 호칭합니다.
  그리고 그 방면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을 일컫는 때에는 큰 대자를 덧붙여서 음악의 대가, 미술의 대가, 혹은 대 정치가, 대 철학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집을 짓고 있습니다. 집을 짓되 우리의 인생을 통하여 각자의 인격과 성품을 지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누구에게든지 각각 다른 성품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자기의 성품을 가지고 인생을 지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집을 짓는 데는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상식입니다.
  물론 기초가 없이, 또는 기초가 약한데 집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집은 오래 전에 무너졌던 와우 APT처럼, 삼풍백화점처럼, 성수대교처럼, 금이 가고 기울어지다가 종래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기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소홀히 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하면 큰일납니다. 기초 공사는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공사입니다. 시간과 경비를 들여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기초공사는 땅 속으로 내려가는 공사입니다. 지상에 세워진 건물들을 투자하고 노력한 만큼 화려하게 보입니다.
  대게 사람들은 보기에 화려하고 명예스럽게 나타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신앙은 보이지 않는 일에 노력을 경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삭빠른 세상 사람들 편에서 보면 어리석은 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을 뜨고 바라보면 오히려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복 받는 일에 투자한 것이 됩니다. 기초 공사의 진가가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평상시가 아니라 위에서는 비가 내리고 아래에서는 창수가 나고 옆에서는 바람에 부딪칠 때 그 건물의 기초를 측량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래 위에 짓는 집이 쉬울까요? 반석 위에 짓는 집이 쉬울까요? 문자적으로 보면 모래 위에 짓는 집이 더 어렵습니다. 여러분, 건축은 기초가 든든해야 되는데 모래 바닥에 어떻게 기초를 든든히 세울 수 있겠습니까? 반석 위에 짓는 집이 더 쉽습니다. 반석 위에 지는 집은 기초가 반석입니다.
  이스라엘은 사막과 바위만으로 된 나라입니다. 비가 오면 바위가 패여 모래를 만듭니다. 비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만 한번 왔다 하면 엄청난 양이 옵니다. 보통 때에는 평지와 다를 바 없는 마른 골짜기에 갑자기 홍수와 같은 유수가 생깁니다. 이런 지역을 '와디'(wadi)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좋은 집들은 모두 바위산 위에 있습니다. 예루살렘도 바위산입니다. 해발 600m, 바위 위에 예루살렘이 있어서 비가 오더라도 안전한 곳입니다.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은 세울 때는 어렵습니다만 거기에 집을 세워야 든든하기 때문에 그렇게 집을 짓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시초가 흔들리는 사람은 환란, 역경, 풍파가 오면 쉽게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건축도, 신앙도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아무리 비바람이 불고 지진이 나도 끄떡이 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 깊이 뿌리를 둔 신앙은 어떤 환경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또한 구원관이 확신한 신앙, 이런 사람들은 누가 뭐래도 요동함이 없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할/ ◀제목 소개!▶

 

  ▶2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여기 '그러므로'라는 접속사가 나옵니다. 크게 보면 산상설교 전체를 의미합니다. 짧게는 13절 이하의 '좁은 문으로 갈 것인가? 큰문으로 들어갈 것인가? 거짓 선지자를 따를 것인가? 참 선지자를 따를 것인가?'를 지적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러므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 참 선지자를 따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말합니다.
  먼저 '나의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바로 들으려면 듣는 귀가 열려져야 합니다. 듣는 귀가 열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고 목사의 말로, 사람의 말로 받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나갈 때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계시록 곳곳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듣는 귀가 복된 귀입니다. 다음 '듣고, 행하는 자'가 귀한 신앙입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고기는 떠내려가고 맙니다. 죽은 신앙은 세속에 밀려 떠내려갑니다. 향락에 밀려 내려갑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고기는 거센 물결을 헤치고 전진합니다. 산 신앙만이 창조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산 신앙만이 기적을 이르길 수 있습니다. /믿/ 우리 모두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반석은 '페트라'라는 말로, 보통은 '바위, 암반' 등을 의미하지만 여기서 반석은 흔들림이 없는 '바위'를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반석은 영적으로 무엇입니까? 마16:18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여기서 반석 위에 교회를 짓겠다고 하셨는데 이 반석은 그 앞 절인 15절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의미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 위에 즉 말씀과 진리의 터 위에 교회를 짓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고전10:4절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또 고전3:11절에서도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 되는데 그 반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13:8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 없는 반석'입니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반석입니다. /아멘!/
  다윗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시18:1-2절에서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할/
  시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기초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를 믿고 의지하여 그 위에 우리 인격의 집과 인생의 집을 건축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539장은 반석 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바울은 골2:7절에서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멘!/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
  ⑴절대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을 전제로 하여 축복과 생명을 주십니다. 불순종하면 축복도 생명도 없습니다.
  군인은 군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종은 상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환자는 의사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본문에서 말하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건축자가 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은 불순종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다에 던져짐을 받았습니다. 요나 한 사람 때문에 그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풍랑을 만나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혼비백산했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는 것도 축복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과 사귀십시오, '순종, 헌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고 능력 주시고 축복 주십니다. 그러나 요나처럼 불순종하는 자는 때리십니다. 치십니다. 그리고 깨닫게 해서 다시 하나님이 쓰십니다. 맞기 전에 알아서 순종하는 것, 이게 더 큰 축복입니다. /믿/
  모세는 알아서 순종한 스타일입니다. 모세의 순종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한 순종'입니다. 순종한 결과 마른 막대기 하나로 10가지의 기적을 바로 왕 앞에서 행하였고, 홍해를 갈랐고, 반석에서 생수를 터뜨렸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순종하는 자를 통하여 만선의 축복을 주시고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는 역사가 일으킵니다. /믿으시면 아멘!/
  ⑵반석 위에 지은 건축은 기초의 중요성을 의미합니다. 기독교는 피의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누구나 피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피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피가 바로 생명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기초로 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기초로 하여 세워진 종교입니다. 벧전1: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리고 마26:28절에서는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피 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믿/
  구약의 제사는 양의 피의 제사입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상징한 피입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세워진 교회는 2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생명을 가지고 50억의 인구 속에 오늘도 전파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 있는 종교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주님의 피 값으로 허락한 신앙임을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⑶반석 위에 지은 집은 바로 금 같은 믿음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고전3:12-13절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여기서 여섯 가지의 재료가 나타납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표현인데 어떤 사람은 금으로, 어떤 사람은 은으로 보석으로 집을 짓고, 또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꽃으로 집을 짓습니다.
  어떤 것으로 짓는 집이 가장 쉬울까요? 풀이나 짚으로 짓는 사람이 제일 쉽습니다. 그 다음 나무로 집을 짓는 것이 그 다음으로 쉽습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금, 은, 보석으로 짓는 집입니다. 왜냐하면 우선 값이 비싸서 구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주님오실 때 불의 심판이 임할 때 타는 것은 가짜이고, 안타는 것은 진짜입니다. 여기 나오는 금은보석은 불에 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무, 풀, 짚으로, 집을 지으면 불로 공력을 심판할 때 다 타버립니다. 여기 금은보석은 우리의 믿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값싸게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많은 값을 지불하면 지불한 만큼 축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갈6:7절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큰 믿음 위에 인생을 설계하십시다. 큰 믿음 반석 같은 흔들림이 없는 믿음 위에 사업을 설계하십시다. 이런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믿/
  금 같은 믿음은 부활의 새 힘이 솟아납니다. 요11: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할/
  ▶옛날 황해도 재령에 있는 동부 교회에 정찬유라는 존경받는 훌륭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학교 앞에서 작은 문방구점을 경영하면서 어렵게 살다 보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를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 내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십일조를 떼먹고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내 형편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래도 배가 고프고, 저래도 배가 고프다면 차라리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고 배가 고픈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때부터 그는 아예 굶을 각오를 하고서 십일조 생활을 철저하게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차츰차츰 그의 형편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에게 물질의 복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느 정도 자금이 모였을 때, 그동안 하던 문방구점을 접고 그 대신 건축자재 상회를 열었습니다.
  때마침 건축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앞을 다투어 자기가 살던 집을 신식으로 고치기 시작하는 바람에 그는 떼돈을 벌었습니다. 건축자재가 없어서 못 팔정도입니다. 그 결과 그는 황해도에서 몇째 가는 큰 갑부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가 사는 허름한 집도 현대식으로 고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집 마당에 건축자재들을 잔뜩 쌓아놓았습니다. 그는 흐뭇한 심정으로 건축자재를 바라보던 순간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던가?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은 허름한 채로 내버려두고서 내가 내 집만 새롭게 고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새로 짓기 전에는 자기의 집을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는 즉시 그동안에 모아놓았던 모든 돈을 교회 건축헌금으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교회는 그 돈으로 새로운 교회부지 3만평을 산기슭에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현대식 건물로 예배당을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교인들은 그의 귀한 뜻을 기르기 위해서 예배당의 머릿돌에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정찬유 장로 기념 예배당> 그런데 웬일인지 갑자기 정 장로님의 모습이 교회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그 교회에 다니지 않고, 멀리 떨어진 다른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과 교인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부랴부랴 목사님과 교인들은 그의 집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아니 장로님, 왜 본 교회를 두시고 일부러 다른 교회에 출석하십니까? 무슨 섭섭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때 정 장로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동부 교회에 출석한 것은 그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교회의 주인이 바뀌어서 정찬유 장로가 지은 개인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더 이상 사람이 주인으로 앉아있는 교회에는 다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저 조용히 돌아가 주십시오.' 그제야 목사님과 교인들은 그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예배당의 머릿돌에 있는 '정찬유 장로 기념 예배당'이라는 글씨를 깨끗이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예전처럼 본 교회 출석을 하면서 더욱 충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할/

 

  ▶25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이스라엘은 이른 비가 있고, 늦은 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따금씩 큰비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큰비가 내릴 때는 단시간에 집중적인 비가 쏟아집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비가 내리다 보니까 그때는 땅이 그 많은 비를 흡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급류가 되어 반석과 반석 사이를 누비면서 흘러내립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창수가 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비가 내릴 때는 지중해 쪽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닥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에서는 비가 엄청난 양으로 쏟아지고, 땅에서는 창수가 나고, 옆에서는 바람이 세차게 분다 할지라도 끄떡하지 않는 집이 있습니다.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집입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인생의 생활에도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닥칠 때가 있습니다. 바는 지붕 위에 쏟아지고, 바람은 옆으로부터 백에 부딪치고 창수는 아래서부터 기초를 침범합니다.
  인생 길에도 천재지변이 올 수도 있습니다. 작년 여름에 온 비는 경기 북쪽이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또 외부에서 오는 환난풍파도 있습니다. 또한 안에서 오는 외우내환이 있습니다. 위에서 옆에서 아래서 사정없니 문제가 터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그 어떠한 환경이나 조건이라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 안에서 바로 서기만 하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누구의 말입니까? 우리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본문에서 '무너지지' 앉는다고 했습니다. 사업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가정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인격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신앙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을 지켰네'라는 찬송도 있습니다. 신앙이 튼튼한 사람은 동남풍이 불고, 서북풍이 몰아쳐도 가시밭의 백합화같이 향기를 날리게 됩니다. /믿/아멘!/
  ▶일본은 지진이 심한 나라입니다. 몇 년 전에 동경 대지진 때 모든 집이 다 무너지고 말았는데 그중 유난히 아무 흔들림 없이 굳게 선 빌딩하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을 조사해 보니 미국 '라이트 브라운'씨가 지은 집입니다.
  처음 건물을 지을 때 기초에 너무 돈이 많이 들었다는 비난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브라운 씨는 특수 기초를 했다는 것입니다. 대 지진 후 '라이트 브라운' 씨는 가장 훌륭한 건축가로 유명해졌습니다.
  건물도 기초가 귀합니다. 신앙도 그 기초가 귀합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그 기초에 달렸습니다. 여러분 학문을 하려고 해도 기초실력이 필요합니다. 한 폭의 그림을 그리려 해도 그 기초실력이 필요합니다. 신용도 초반에 잘 닦아야 합니다.
  25절 끝 부분에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여고요' 여기 '놓은'이라는 말은 원래는 '거멀못'이란 뜻으로 옛날 목수들이 집을 지을 때에 이쪽나무와 저쪽나무를 연결하기 위해 ㄷ자 모양의 큰못으로 박으면 나무가 서로 꽉 맞물려서 붙어버립니다.
  여기에 영적인 의미는 주님 말씀에 접붙임 되어 절대 순종함으로 그를 매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다시 일어나 정상으로 우뚝 서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26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똑같이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차이가 무엇입니까? 지혜로운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할/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들고는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말씀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그런 그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그의 삶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여기서 어리석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①하나님의 말씀은 듣고도 행치 아니한 자입니다. 주님의 교훈이 너무나 고상함으로 한탄만 하고 아예 실천을 단념해 버린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내 것으로 받지 않고 '저 말씀을 김 집사님 들으라고, 이 말씀은 이 집사님 들으라고' 자기는 아무 관계가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잡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내 자신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먼저 설교하는 목사는 설교자인 자기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또 권사님, 집사님, 모든 성도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말씀입니다. /믿/아멘!/
  ②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입니다. 기초 없이 쉽게 집을 지으려는 사람을 말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믿음 없이 신앙 생활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그 속에 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위에 바로 신앙을 쌓아야 합니다. 순종을 전제로 희생과 헌신을 전제로 충성과 열심을 전제로 예수 위에 신앙을 쌓아야 합니다. /아멘!/ 그렇지 않으면 모래 위에 기초 없이 지어진 집이 됩니다.
  ▶옛날에 큰 부자가 두 사위를 불러서 돈을 주면서 집을 한 채씩 지으라고 했습니다. 집을 짓되 정성을 다하여 튼튼하고 아름답게 지으라고 했습니다. 큰사위는 기초를 튼튼히 하고 가장 좋은 재료로 해서 정성을 다하여 지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사위는 겉모양만 좋게 속임수를 써서 지었고 돈을 탕진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집을 다 지었다는 보고를 들은 부자는 두 사위를 불러서 수고했다고 치하간 뒤 자기들이 지은 집을 그들에게 거저 주었습니다.
  큰사위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에서 살게 되었지만, 둘째 사위는 후회막급이었으나 소용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자기가 행한 대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③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⑴육신의 힘을 의지하고 권력의 힘을 의지한 자들입니다. 벧전1:24절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또한 렘17:5-6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할/
  ⑵모래 위에, 인간의 지혜와 지식을 의지하는 자입니다. 전1:18절에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고 했습니다.
  ⑶마13:21절에서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세상의 염려와 물질의 유혹 때문에 신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⑷하나님 없이 인생은 계획하고 설계한 자들입니다. 시127: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⑸하나님 없이 인생을 계획하고 설계한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눅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구제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도 했습니다. 또 열심히 금식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기초,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정립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 곧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데만 있었습니다.

 

  ▶27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폭풍우를 견딜 수 없고, 흘러가는 급류에 다 떠내려가고 맙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는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바벨탑처럼 결국은 다 무너지고 맙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모래는 궁극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는 전연 상관없는 삶, 인간의 의만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한 삶은 아무리 멋지고 훌륭하게 보이더라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젊은이가 속세를 떠나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 수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세상에 대한 미련이 그를 사로잡고서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그 문제로 고심하던 그는 어느 날 수도원 원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원장님, 제가 속세를 떠나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떨쳐버리려고 해도 세상에 대한 미련이 저를 붙들고서 놓아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수도원 원장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를 데리고 수도원 뒤뜰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었습니다. 원장은 그 가운데 한 나무 앞으로 가서 그 나무를 자기의 양팔로 꽉 끌어안고 하는 말이 '여보게, 젊은이! 이 나무가 갑자기 나를 붙들고서는 놓아주지를 않네. 나를 좀 도와주게. 이 나무에서 나를 좀 떼게'
  그 젊은이는 영문을 몰라 가만히 서 있는데 원장은 더 다급한 소리로 '아니, 젊은이! 무엇을 하고 있나? 이 나무가 나를 붙들고서 놓아주지 않는다니까 왜 그냥 그대로 서 있나?'
  그는 마지못해 원장을 그 나무에서 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무에서 원장을 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원장은 더 안간힘을 쓰면서 나무를 놓치지 않으려고 꽉 끌어안았습니다. 급기야 그는 원장에게 '원장님, 그 손을 놓으세요! 나무가 지금 원장님을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원장님이 나무를 붙들고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제야 원장은 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기를 '젊은이. 자네의 문제가 무엇인지 이제 깨닫겠는가? 세상이 자네를 붙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실상은 자네가 세상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이야!' /할/
  본문은 25절과는 대조적입니다.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이루어진 것 같았는데 성공한 것 같았는데 돌아보니 말짱 헛것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기초를 놓은 집은 견고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견디는 힘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예수 없는 삶은 예수 없는 신앙은 형식뿐인 죽은 신앙입니다.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지는 신앙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28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 말씀을 마치시며' 마5장에서부터 시작된 산상설교가 본문에서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산상보훈 설교 시작은 마5:1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예수님이 높은 봉우리에 앉으시고 그 밑으로 무리들과 제자들이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소수에 제자들이 따라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많은 무리들이 그 자리에 모였습니다. 제자들과 무리들은 개벽이래 처음으로 하늘의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열매로 그 사람을 알 것이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모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무리들이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자가 복된 것이 아니라 듣고 행하는 자가 복된 자입니다.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 말씀에 제자들이 심각하고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그곳에 모인 무리들이 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것은 단순한 놀람이 아닙니다. 굉장한 충격을 내포하는 놀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충격이 있고, 우리의 신앙은 그 충격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충격이 없으면 변화가 없습니다. /믿/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충격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가슴이 설레는 충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래! 나도 주님의 뜻대로 행하여 살자'고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세상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쉽게 충격은 받으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에는 감각이 둔해서 총격을 받지 못합니다.
  변화란 충격을 통해서 옵니다. 말씀이 불이 되어 우리 속에 있는 죄를 태우고, 말씀이 칼이 되어 우리 영혼을 찌르고, 말씀이 몽둥이가 되어 우리의 정욕과 육신을 후려치는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우리의 인격이 바뀌면 그 사람이 바꿔집니다. 신앙의 태도를 바꾸면 축복은 자동으로 오게 됩니다. /할/

 

  ▶29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권세 있는 분이십니다. 이 권세는 능력과 비슷한 것 같지만 한 차원 더 높은 것입니다.
  우리는 교통순경의 권세를 잘 압니다. 아무리 큰 16톤 트럭이라 해도 교통순경의 권세를 가지고 세우면 꼼짝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권세는 대통령의 권세보다 더 크십니다. 마28:18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렇습니다.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믿/ 그뿐만이 아닙니다.
  빌2:10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대통령에게는 그에 맞는 권세가 있습니다. 교수에게는 교수다운 권세가 있습니다. 부모에게는 부모다운 권세가 있습니다. 목사에게는 목사의 권세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권세는 누가 주신 지 아십니까? 우리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롬13: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아멘!/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그 권세를 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그 권세를 써야 할 줄 믿습니다. /할/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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