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창세기·사도행전강해설교

[스크랩] (제13강) 제자들의 합심 기도! (행 4:23-3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25. 12:20

(제13강)       제자들의 합심 기도! (행 4:23-35)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는 40세입니다. 이 사람은 40평생 한 번도 자기 힘으로 일어서서 걸어보지 못한 아주 불쌍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40년 세월을 앉은뱅이로 있던 사람을 고쳐준 이 착한 일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위협하며 재판을 했으나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들의 대답하는 말이 질서가 정연하고 정확했기 때문에 말로서는 도저히 당할 수 없음을 알고 위협을 하고는 석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위협의 말은 '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와 요한은 분명히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해 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사람 말을, 그러니까 너희 말을 들어야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겠느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는데 너희들은 전하지 말라고 하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것이며, 너희 말은 들을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이 정도가 되자 산헤드린 공회도 어찌할 수가 없어서 공갈 협박만 하고 그들을 석방시켰습니다. 히11:38절을 보면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한다.'고 했는데 그 때 정말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도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말을 해도 보통 말이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부터 이상한 말을 하게 됩니다. 분명히 그것은 내 말이 아닙니다, 말은 내가 했는데 내 생각 이상의 것, 내 경험 이상의 것을 말합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기도를 해도 달라집니다. 전에는 분명히 내가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 안에서 누군가가 기도하는 것을 느끼고 경험합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이 완전히 변화되고 성숙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뭔가 변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통 말은 하는데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나서 그 말씀을 붙잡고 말하게 됩니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회 앞에서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담대하게 말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외쳤습니다. /할/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느 때를 막론하고 옥에 갇히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죄수가 무죄가 되어 풀려나게 되면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초대교회는 그 당시 역사도 짧고 어린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최고의 지도자 베드로와 요한이 붙잡혀 갔을 때, 겁을 내어 도망가거나 벌벌 떨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한 줄을 믿습니다. 오늘 본문 23절은 '사도들이 놓이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첫 번 위기는 지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연속적인 박해의 서곡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이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에 불어닥칠 박해를 이기기 위해 더 새롭게 영적으로 무장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사도들은 감옥에서 나오기가 무섭게 그 동류들이 모인 교회로 갔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눈물과 사랑으로 기도하고 있는 성도들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도들을 찾아가서는 '피곤하니까 좀 쉬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한 고비 넘어갔으니 한숨 돌렸다고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더 깊은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24절을 보면 '저희가 듣고 열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그들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이 ◀제자들의 합심기도!▶입니다.

 

  오늘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우리는 귀한 진리 하나를 붙잡을 수 있습니다. 뭐냐 하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그냥 끝나버린 것이 아니고 더 더욱 기도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사실 성경 전체 어디를 보아도 위대한 신앙 인은 언제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사를 보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도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기도의 참된 모형은 예수님의 감람산에서의 마지막 기도입니다. 마26:39절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바로 기도의 정신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세 가지로 응답하십니다.
  ⑴'그래 네 기도를 들어 주마'라고 응답하십니다. 사람들이 이 첫 번째 응답에 기대를 겁니다. 그러나 이것만을 기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⑵'안 된다. 그것은 내 뜻과 다를 뿐 아니라 너에게도 해롭다.'라고 응답하십니다. 기도의 근본정신은 하나님의 뜻의 성취에 있습니다.
  ⑶'기다리라! 지금 너에게는 그것이 필요치 않다. 필요할 때 내가 주마' 사실 세상의 만사가 하나님의 결재 없이는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16:1절 "말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23 절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사도들이 놓이매" 재판을 받고 무죄로 석방된 것입니다. 이 장면이 초대교회가 첫 번째 박해에서 승리의 일면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도들이 석방되어 어디로 갔습니까? '그 동류에게' 갔습니다. 여기 '동류'란 '예수의 피로 맺어진 형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무리, 또는 회중'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다른 사도들과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했던 성도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감옥에서 석방되어 자신의 집으로 가지 아니하고 또 잡힐까봐 도망치지도 않고 그 동류들이 모인 교회로 갔습니다.
  왜 그곳으로 갔는가? 서로 신앙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므로 일차적으로는 사도들과 성도들의 염려를 덜어주려고 간 것이지만, 더 큰 원인은 '주님께서 어떠한 역사로 자신들을 건져주신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할/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당시 심문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심문하는데 주님께서 우리를 강하게 붙잡아 주심으로 성령이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부활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죄인'임을 가르쳐주고, '너희가 십자가에 죽인 그 예수를 하나님이 3일 만에 다시 살리시어 부활하심을 증거'했습니다. '이 앉은뱅이도 우리가 고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이 고친 것이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산다'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르치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라'는 경고를 하며 우리를 석방해 주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에 기도하러 갔다가 일어난 사건부터 감옥에서 나온 사건까지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24절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저희가 듣고" 저희는 동류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누구의 말을 들었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듣고'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와 요한의 간증을 듣고 그들은 크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 높여 가로되" 베드로와 요한의 간증을 듣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 기도에서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 그들은 합심해서 기도했고, 둘째,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합심하여 통성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도 큽니다. 그러나 온 가족이 기도하고, 온 교회가 기도하면, 더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마18:19-20절에서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성경은 "한 사람이 천을 쫓고, 두 사람이 만을 쫓는다."고 했습니다. 여기 두 사람은 두 사람 이상을 의미합니다. 정말 두 사람 이상이 마음이 하나가 되어 기도하면 그만큼 힘이 있습니다. /믿/ 또 마18: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다는 말도 되지만 예수님이 그 기도에 동참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뜻도 됩니다. /아멘!/
  또 그들은 소리 높여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통성으로 기도했다는 것이고 울부짖으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합심으로 기도하다 보면 소리 높여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은 머리의 기도가 아니라 가슴의 기도, 성령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소리 높여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언제 우리가 소리를 높입니까? 너무 감당할 수 없는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될 때 환호를 하게 됩니다. 너무 좋으면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뛰고 춤을 추게 됩니다. 또 슬픔이 극에 달해도 소리를 지릅니다. 가족의 교통사고를 보고 통곡합니다. 어떤 사고사건을 보고도 우리는 소리를 지르고 통곡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통곡하며 소리 높여 기도하면 하늘의 비밀이 들여집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할/
  이런 기도의 형태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집단기도 합심기도, 통성기도'가 시작되었으며 여기서부터 '중보기도'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합심 기도가 참 능력이 나타납니다. 합심 기도 속에 중보기도가 터지고, 합심 기도 속에 치유가 일어나고 병 고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믿/  
  본문을 보면 당시 초대교회는 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있었습니다. 두 사도가 감옥에 갇혔을 때, 다른 성도들은 전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갇힌 것처럼 생각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다가 갇혔던 사도들이 나옴으로 자신들이 감옥에서 나오게 된 것처럼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찬송하며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히13:3절 "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관은 분명했습니다. 그들의 기도의 내용을 보십시오,
  "대주제요,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이시요" '대 주제'는 '우주 만물을 주관하는 주장자'라는 뜻입니다. 즉 만물의 주인이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를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여기 '대 주제'는 '통치하시는 하나님, 지배하시는 하나님,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신앙은 고백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고백한데로 믿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한 가지, 한 가지를 보면 모두가 저절로 생겨지는 것 같고, 제 마음대로 터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역사라고 하는 거대한 물결을 이루며 한 목적지, 즉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를 향하여 신속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인류의 역사만 다스립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 떨어지는 것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보살피시는 분이십니다. /믿/
  마10:30절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그분이 천지를 창조하고 나서는  없어서 우리들의 머리카락이나 세고 계신다는 말입니까? 도대체 우리들의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아시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머리털이 몇 개인지 모릅니다. 하루에 몇 개나 떨어지는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말하자면 내가 관심도 없고, 생각도 하지 않는 그러한 일까지도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우리를 지키시고, 보살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가 염려하고 걱정하는 일에 대해서는 얼마나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이시겠느냐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믿으십시오, 우주와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하나 떨어지고 나는 것까지 다 세실 정도로 자세한 관심과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초대교회 성도들은 먼저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아무리 큰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입니다. 아주 큰 신앙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통찰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는데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높은 하나님은 없습니다. 창조의 문제는 본질과 기본의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세상 우주 만물과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은 천지 만물과 인간의 본질이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믿어집니까?/ 이런 하나님을 찬양하는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믿/

 

  ▶25-26절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본문은 시2:1-2절을 인용한 말씀으로써 하나님은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미리 말씀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바로 그 하나님이십니다. '대 주제이실 뿐만 아니라 천지와 바다와 만유를 지으신 일뿐만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계획하셔서 역사 속에 개입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을 통해 미리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믿/
  사도들은 24절에서는 창조적 관계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고 있고, 25-26절에서는 역사적인 관계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경대로 이루어주심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핍박받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누가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대적합니까? 모든 열방이 날뛰며 분노한다고 했고 모든 백성이 헛된 일을 계획한다고 했고, 세상 임금들이 모두 들고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이 함께 모여서 주님과 메시야를 대적할 것이라고 이미 오래 전에 다윗의 입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사건이 지금 여기에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를 대적했던 일들이 지금 여기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열방'은 이방나라들을 지칭하고 '족속'은 택함 받은 유대민족을 의미하고 또 '군왕'은 헤롯임금을 말합니다. 그리고 '관원'은 로마의 총독 빌라도를 가리킵니다.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유대민족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였고 헤롯과 빌라도가 합세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그 모든 것이 허사였습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은 3일 만에 부활하였고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고 계십니다. 40년 된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은 예수의 영인 성령의 능력입니다. /할/ 
  "허사를 경영하는고" 그들이 똘똘 뭉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모든 계획과 도모가 수포로 돌아갔고 허사가 된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번에는 예수의 제자들과 그 교회를 없애버리겠다고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제아무리 예수를 대적하여도 허사인 것처럼 제자들과 교회를 대적해도 허사인 것을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7절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헤롯은 로마의 황제이고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땅에 분봉왕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원래 헤롯과 빌라도는 사이가 좋지 못한 관계였습니다. 그들은 서로가 미워하고 적대하던 사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로 그들은 서로 가까워졌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방인의 대표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못 박게 한 주역들입니다. 그러니까 시2편에서 다윗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은 것을 예언했는데 그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 졌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처형한 예수는 누구인가?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인성과 신성으로 오셨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거룩한 종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종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한 분이십니다.
  그들은 성경을 보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우연히 아니라 성경에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8절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군왕들이 거스리고 열방들이 일어나서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성경에서 예언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더니 또,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이루시려고 성에 모였다는 말입니다.  
  눅21:12-13절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성경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6-7백 년 전부터 예수님 오심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오신다고 예언하셨고, 또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다고도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핍박을 받을 것이다. 감옥에도 가고, 매도 맞고 교를 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그 예언이 이루어짐을 제자들이 고백했습니다. 자신들을 통하여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짐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이 모여서 예수님을 거스리고 대적하고 있으나 하나님이 예정을 이루는 것뿐입니다.
  그들이 대적한다고 해서 기독교가 없어지거나 하나님의 예정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대로 예정을 이루려고 종교지도자들을 통하여 그러한 일을 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동네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심판을 당합니다.
  눅22:22절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가롯유다가 예수를 잡아 주었고, 대제사장들과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으나 하나님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죽으신 것입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악한 자들을 통해서 예정하신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잠16:4절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악한 자는 하나님의 예정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악한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29절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사도들의 기도의 내용을 보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본문의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저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렇게 많으시니 이런 시험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원수들을 한방에 때려 부숴 달라고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며 위협과 박해를 면제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기도야말로 이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기도이며 시험을 맞는 적극적인 그리스도인의 용기입니다. 이 세상 살 동안 역경과 시련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살이의 어려움은 땅 속에 묻힐 때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살 동안 풍랑과 시련은 없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시험 없는 삶이 아니라 그 역경을 슬기롭게 이기는 지혜입니다.
  벧전1: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사도들은 대적하는 무리들의 위협을 하나님께서 살펴 보아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원수에 대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 맡겨버린 기도였습니다.
  그 다음 기도는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전하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침없이 아주 당당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공회 앞에서 기탄 없이, 막힘 없이 전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야 담대히 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의 제목도 이것입니다.
  엡6:19절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성도들이 주의 종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건강도 기도해야 합니다. 능력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큰 기도는 '선포에 능력, 가르치는 은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저의 기도는 '말씀을 말씀대로 전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30절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이번에는 무슨 기도입니까? ⑴'병을 낫게 하옵소서' 신유의 은사를 구했습니다. 은사는 구할 때 얻어지는 능력입니다.
  ⑵'표적과 기사가 예수의 이름으로 나타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여기 '표적'은 '확실히 없어지지 않는 이적 혹은 사인'과 같은 것이고, '기사'는 '깜짝 놀랄만한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손을 내밀어" '당신의 손을 펴사'란 뜻으로 주님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유의 역사도 기사와 이적도 주님이 개입하실 때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왜 이들이 이 같은 은사를 구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데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종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베드로와 이름으로! 요한의 이름으로! 바울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만 높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받아 역사가 일어나면 딴 길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이 한 것처럼 대접받고 심지어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안됩니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만 높여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모든 능력의 출처이기 때문입니다. /믿/
  사실 우리 모두는 예수의 이름의 능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막16: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우리는 본문에서 고난과 핍박을 이기는 두 가지 비밀을 발견하게 되는데 하나는 '말씀에 대한 담대함'이고, 또 하나는 '영적인 능력'입니다. 우리 모두 이 능력을 받으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이제 그들이 합심하여 소리 높여 기도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가? 31절입니다.

 

  ▶31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기도를 마친 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⑴진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말은 행16:36절 이하에 나오는 말로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서 찬송하고 기도할 때, 옥토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려진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 말이요, 기도의 응답의 결과를 보여 준 사건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께 합심하여 기도하면 성령으로 충만하여 영적인 진동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진동이 일어나 깨닫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공식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믿/ 체험해 본 사람은 오늘 제 말씀에 이해가 갈 것입니다.
  ⑵'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것 역시 기도의 응답입니다.

 

  ▶32절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성령이 임하면 무슨 일이 생깁니까? 우리의 인생관, 세계관이 변할 뿐만 아니라 물질 관도 변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기의 재물을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닙니다. 이상하게 돈에 대하여 물질에 대하여 자유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업을 위해 그 큰 물질을 아낌없이 드리고 감사하면서 드립니다. /할/ 
  본 절은 초대교회 '유무상통'의 현장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한마음, 한 뜻되게 합니다. 그러나 마귀는 두 마음, 두 뜻되게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너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라'고 했고 '품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온유와 겸손의 마음이요, 순종의 마음이요, 헌신의 마음입니다.
  ▶초대교회 물질관은 ⑴개인뿐만 아니라 '믿는 무리' 모두가 구제 사업에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⑵'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구제 사업에 동참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사건입니다. 사실 물질에 대하여는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릅니다. 부부라도 돈 쓰는 것이 다르고 부모자식사이도 다릅니다.
  더구나 교회에서는 더더구나 마음이 하나 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한 마을 한 뜻으로 동참했습니다. 우리 성림의 공동체도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가 됩시다.
  기도할 때도 전도할 때도 구제하고 선교할 때도 봉사할 때도 하나가 될 때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아멘!/   
  ⑶'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다고 합니다. 너무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기쁨으로 물건을 바치고 그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줌으로 그 중에 궁핍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유무상통으로 초대교회에 있었던 일시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그들은 천하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놓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았습니다.

 

 ▶33절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해야 합니다. 여기에 구원이 있고 거듭남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고, 봉사와 충성의 정신도 여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본문에 사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님의 부활을 증거 하니 모든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은 말씀을 듣고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이것은 소의 젖을 억지로 짜면 안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젖을 많이 나오게 하는 방법은 풀과 사료를 잘 먹이면 자연히 손에게서 젖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 말씀에 꼴을 제대로 먹여야 합니다. 그래야 은혜 받고 기쁨과 감격이 넘쳐 나서 구제도, 선교도, 봉사도, 헌신도 자연스럽게 넘쳐나게 됩니다. 
  기독교의 복음의 핵심은 죽음에 대한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장차 있을 우리의 부활과 영생의 증거입니다. 사도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건을 있는 그대로 증거 했습니다.

 

  ▶34-35절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물질을 어떻게 썼습니까? '생명의 수단, 복음전파의 수단, 형제애의 수단으로 선용'했습니다.
  "그 값을 가져다가" 자발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모든 구제의 봉사는 교회의 이름으로 행한 것입니다.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생활의 궁핍을 당하는 자가 한 명도 없음을 의미합니다. 왜 그러게 되었습니까? 은혜 받은 성도들이 자신의 재산을 기쁜 마음으로 가지고 나와 사도들에게 맡겼습니다. 사도들은 가져온 물건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으므로 성도 중에 한 사람도 궁핍을 당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에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모든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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