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목사 창세기·사도행전강해설교

[스크랩] (제23강) 시몬의 악행! (행 8:14-25)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10. 25. 12:24

(제23강)         시몬의 악행! (행 8:14-25)

 

  마음이 착하고 부지런한 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수박을 밭에다 심어 정성껏 길렀습니다. 수박은 그 농부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무럭무럭 자라나 아주 크고 맛이 좋은 수박이 되었습니다.
  이 농부는 잘 익은 수박을 바라본 순간 고을 원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제일 크고 잘 익은 수박 몇 덩어리를 골라 원님에게 가져갔습니다.
  "원님! 오랫동안 제가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만은 이렇게 크고 맛좋은 수박은 처음입니다. 이 모두가 원님께서 덕을 베풀어 잘 다스려 주신 덕분입니다. 비록 보 잘 것 없지만 감사하는 마음에서 수박 몇 덩이를 가지고 왔으니 밭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원님은 너무도 흐뭇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보답해 주고 싶었습니다. 원님은 창고를 관리하는 관리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여봐라! 창고에 요즘 들어온 것 중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관원은 "황소 한 마리가 있사옵니다." 원님은 '그걸 끌어다 이 농부에게 주라'고 일렀습니다.
  한편 이 농부의 횡재에 대한 소문이 곧 마을에 쭉 퍼졌습니다. 그 마을에는 욕심이 많기로 소문난 한 농부가 있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귀가 퍼뜩 열렸습니다.
  "수박 몇 덩이를 바치고 황소 한 마리를 얻었다면 자기는 황소 한 마리를 바치면 기름진 땅 몇 마지기는 주겠구나!" 생각하고 농부는 몇 년간 공들여 키운 황소를 끌고 원님에게로 갔습니다.
  "저는 수십 년 간 황소를 길러 왔지만 이렇게 크고 힘이 센 황소는 처음입니다. 원님께서 선정을 베풀어주신 덕택인 줄 알고 이 황소를 바치고자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원님은 기뻐하면서 "요즘 들어온 것 중에 귀중한 것이 있으면 이 농부에게 갖다 주어라"고 일렀습니다.
  관원은 나가더니 큰 수박 몇 덩이를 들고 왔습니다. 수박을 본 농부는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농부는 이 수박을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욕심이 나를 망치게 했다'고 했습니다. 

  본문은 초대교회가 큰 핍박이 와서 흩어지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데반과 함께 안수 받은 빌립집사는 큰 핍박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는데 그가 간 곳은 사마리아 땅이었습니다.
  그 곳에서는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었는데 마술과 요술로 그 성 사람들에게 신으로 섬김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빌립집사가 기도해서 귀신이 떠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가 말을 하는 놀라운 역사를 보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자신의 마술은 너무나 보 잘 것 없는 것으로 느낀 나머지 빌립에게 가서 자신도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몬의 마음속에는 인간적인 욕심이 있었습니다.
  ⑴빌립의 역사로 인하여 시몬의 마술이 가짜인 것이 드러나고 사마리아에서 받던 최상의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자신도 빌립이 행하는 표적을 배워 자기 권위를 만회해 보려는데 있었습니다.
  ⑵빌립과 같은 일을 자기가 행함으로서 좀 더 큰 명예와 영광을 얻어 보려고 했습니다.
  ⑶빌립에게 배워서 그것을 자기도 행함으로 돈을 많이 벌려는 탐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욕심을 가지고 빌립을 열심히 따라다니던 어느 날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성에 와서 사람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시몬이 그 모습을 보고 돈을 주면서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해 달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돈 받고 성령 장사하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화가 나서 말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하고 저주했습니다. 이런 본문의 배경 삼아  오늘 설교의 제목이 ◀시몬의 악행!▶이라고 붙였습니다. /할/

 

  ▶14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듣게 되었습니다. 빌립집사가 행한 기적을 들은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사마리아 땅은 일찍이 북 이스라엘의 수도로써 앗수르를 비롯한 이방 민족들이 혼합하여 살고 있는 우상의 도성이라 하여 유대인들은 그곳을 버려진 저주의 성이라고 생각해서 그곳으로 여행하는 것은 물론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일절 상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마리아 성에 빌립이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니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행1:8절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역사란 바로 사도행전 1:8절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의 한 다락방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이 성령의 불을 받고 뛰어나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1-7장까지는 예루살렘의 복음사역이고, 8-12장까지는 '온 유대와 사마리아'가 복음이 증거 되고, 13-23장까지는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성령의 역사! 그것은 공간과 시간과 제약을 받지 않으며 빈부, 귀천 가리지 않고 모든 믿음의 사람에게 교통하는 것입니다. /믿/
  빌립의 사역을 인하여 성령의 넘치는 표적과 이적이 있다는 소식은 예루살렘의 교회가 듣게 되자 한편으로는 놀라운 일이고, 또 한편으로는 기쁜 일이었으나 그래도 그 실상을 온전히 파악하고 더욱 성령의 역사를 불 일듯 하게 하기 위해서 베드로와 요한 두 수석 사도를 파송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는 예수님 당시에도 수석제자로써 항상 예수님을 섬겼고, 초대교회의 큰 기둥들이 되어 기독교를 이끌어 가는 기둥 사도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둥 같은 사도들을 사마리아로 보내졌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며" 여기서 학자들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총회장은 베드로가 아니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도들 중에 수석사도는  교회의 총감독은 야고보장로님이 한다는 것입니다.
  행15:13절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회의를 할 때, 그가 의장이었음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야고보가 모든 회의를 주제 하는 의장이었습니다. 다른 곳으로 사람을 파송할 때, 제일 높은 사람이 파송 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른 사람을 파송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때 의장이 되는 야고보가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서 "빌립집사님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니 그 성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왔다고 하니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가서 그들의 영적 상태를 한번 체크해 보고 보시오!" 이런 당부를 받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야고보가 베드로를 그곳으로 파송된 것은 몇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①빌립의 선교활동에 대한 확인입니다. 즉 빌립의 선교활동이 정당한 것이고 사마리아인들이 크리스천으로 인정됨을 확인하는데 있습니다.
  ②복음에는 어떠한 벽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증명해 주기 위해서 갔습니다.
  ③두 사도들이 빌립에게 용기를 주고 그를 돕고 또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갔습니다.
  ④빌립이 시작한 선한 복음사업을 도와 함께 기도하며 하늘의 은사를 가지고 사마리아인들에게 영적인 선물을 주기 위해 갔습니다.

 

  ▶15절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지방으로 내려간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무엇을 말합니까? 빌립의 선교활동으로 나타난 성과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내려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빌립의 사역을 더욱 온전케 하고자 그곳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들이 내려와서 보니 사마리아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믿는 신앙은 확실한데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지는 않았습니다.
  빌립집사는 성령의 충만한 집사였는데 사마리아성도는 중생은 했으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중생 함과 성령 충만함은 다릅니다. 중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할 때, 이제 주님의 새 생명으로 태어난 것을 말하는 것이고, 성령 충만함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주장하심에 따라 주님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므로 구원을 받아 새 사람이 되지만 하나님의 일을 능력 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일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에 바로 능력 그 자체입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헌신을 할 수 있고, 순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은 그들에게 가장 먼저 무슨 기도를 했는가 하면 '성령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에게 기도처럼 소중한 생활은 더 없습니다. 신학자 '벵켈'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 기도는 선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두 합심하여 성령의 임재를 위한 기도의 열정이 끊어 넘쳐야 합니다. /믿/
  성령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응답으로 주어집니다(눅11:13). "내가 내 신을 너희에게 두리라"(겔36:27). 그러나 "내가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구하는 자에게 할지라"(37절)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 할 용기를 얻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되 '그들이 성령 받기를' 간절히 기도한 것처럼 '우리들도 성령 받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는 것은 모든 축복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사마리아 성도들을 모아 놓고 합심하여 통성으로 기도를 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들에게 성령의 불을 주시옵소서! 성령이여 저들 위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저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큰 일꾼 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하지 않았겠는가?'하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할/

 

  ▶16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당시 사마리아 교회의 영적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았지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님이 내려온 일이 없었습니다.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다'는 말은 그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 충만함을 받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세례는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있습니다. 물세례는 내가 이제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내 자아가 죽고, 내 고집이 죽고, 내 교만이 죽고 이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리라는 것이 세례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다릅니다. 행1:5절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먼저 전한 말씀입니다. 눅3:16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성령은 보이지 않는 영이시기 때문에 오해될 수 있는 소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마치 성령 의 출처가 능력 있는 종들의 소유물처럼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아라'고 외치며 자기의 웃옷을 던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옷을 잡으려고 난리법석을 합니다.
  자기에게는 엘리야의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격적인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성령은 누구의 부속물도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시며 그 존재성을 믿는 자들에게 오늘도 선물로 임하여 함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믿/

  ▶어떤 신학자는 성령세례를 몇 가지로 말했습니다.
  ⑴사람이 거듭난 다음에 받는 제 2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⑵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죄의 근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데 절대적인 능력을 얻게 됩니다.
  ⑶성령세례는 은사를 나타냅니다. 고전12:8-10절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성령의 은사는 9가지입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을 행하는 은사,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통변의 은사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은사는 다 같을 수가 없습니다. 고전12:11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 /할/
  '토레이' 목사님은 성령 받으려면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주리고 목마른 사슴같이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했습니다.
  ⑷주실 줄 믿고 구하라고 했습니다. 눅11: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성령의 은사'를 구하여 다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그런데 성령이 충만이 임하다가도 바람처럼 떠나가 버립니다. 어떤 경우에 그렇습니까?
  ⑴죄 속에 빠질 때 성령은 떠나가십니다. 성령은 '지, 정, 의'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울이 그랬고, 삼손이 그랬습니다.
  ⑵기도를 소홀히 할 때 성령은 떠나가십니다. 능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기도할 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성령은 기도로 말미암아 내리는 것이고, 안수는 외부적 표시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17절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주의 종이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모든 성령은 꼭 안수만으로 내려오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다가 성령이 임했습니다.
  또 말씀을 듣다가 성령이 임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 말씀을 들려줄 때, 성령의 역사로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했습니다.
  행10:44절을 보면 고넬료 가족이 베드로를 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행5:32절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여기서 안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안수란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데, 이것은 어떤 능력이나 축복이나 영적 자격을 인정하는 외적 표시로써의 의미가 있습니다.
  안수의 기원은 구약 족장 가운데 한 사람인 야곱에게서부터 기인합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이삭에게서 축복 안수를 받았고, 창48장에서는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안수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때부터 공인된 형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구약 때는 '왕, 제사장, 선지자'에게 기름 부어 안수했습니다. 신34:9절에 보면, 모세가 임종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후임자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직분을 위임할 때 안수를 했습니다. 또 구약 때는 제사에 쓰인 짐승에게 안수해서 인간의 죄를 전가시키는 안수를 했습니다.
  막10:16절에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축복하실 때 안수 기도를 드렸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직분 자들에게 안수했습니다. 어째든 사마리아 교회에 베드로와 요한 두 사도가 내려와 안수 기도할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제 18-25까지는 시몬의 악행에 대해서 나옵니다.

 

  ▶18-19절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여기서 우리는 시몬이 다시 옛 본성으로 되돌아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이 안수함으로 성도들이 성령 받는 것을 보고 시몬이 돈을 많이 주면서 그 권능을 자기에게도 주어 누구든지 자기가 안수하는 사람도 성령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도 청탁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몬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을 영접했으나 깊은 영혼의 거듭남이 없었고, 자기의 포기와 더불어 주님의 뜻만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시몬의 인생관은 돈이면 무엇이나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돈을 위해서 살았던 인생입니다. 그러니까 시몬은 돈에 목적을 두고 산 자였습니다.
  지금 그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 돈 받고 팔아먹으려는 청탁을 하는 것입니다. 시몬은 사도들의 그러한 권능이 자신에게도 있다면 자신의 명예가 높아지고 좋은 대접을 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착각한 인생이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한 영혼입니까?
  오늘날도 시몬과 같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동기와 이유는 영혼 구원으로 인한 영생에 두지 아니하고 오직 이 땅에서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사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비록 그 형태는 다르다 할지라도 시몬과 같은 행위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시몬의 행위는 옛 죄악을 여전히 가진 채 이기적인 목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비 신앙적인 행위를 일으키는 주된 원인은 위선과 탐욕과 명예욕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이 자리 잡지 않도록 경성하여 자신을 살피고 깨어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아멘!/
  ▶시몬의 잘못은?
  ⑴그는 사도들에게 대단한 모욕을 주었습니다. 마치 사도들이 상인들처럼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되고 또 자기처럼 돈을 사랑하는 것으로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위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다 버린 사람들입니다.
  ⑵그는 기독교를 대단히 모욕했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나타난 기적을 마치 마술에 의하여 행해지는 것으로 여기고, 자신이 가지고 잇는 기술보다 더 우월하다고 착각을 했습니다.
  ⑶그것을 돈버는 미끼로 착각했습니다.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쓰여진 성령의 은사를 한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는 돈버는 수단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그 사람의 한계입니다.

 

  ▶20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베드로가 말한 성령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선물은 그냥 공짜로 받은 것입니다. 내가 돈을 주고 산 것은 선물이 아닙니다. 선물은 그저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은혜로 그저 공짜로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도, 구원도 은혜로 값없이 받은 것입니다. 성령도 하나님의 선물로 거저 받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은 돈을 주고 거래할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닙니다. 베드로사도는 시몬의 믿음과 행동이 완전 가짜였다는 것을 즉각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시몬의 잘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흥정한 것은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고, 성령을 돈으로 거래하려는 발상 자체가 곧 '신성모독 죄'입니다. /믿/
  "네 은과 함께 망할지어다." 성령을 돈으로 얻겠다는 신성 모독적인 발상에 대해 베드로는 가차없이 저주를 선언합니다. 여기 베드로의 저주는 '종교는 돈이 개입된 흥정 물이 아님'을 보여 준 것입니다. 또한 돈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신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도 이해해야 합니다.
  행5장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임한 멸망의 저주를 연상케 하는 대목입니다. 왜 그들이 저주를 받았습니까? '두 부부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속이고, 인간적인 명예와 칭찬을 얻을까 하고 악을 도모하다가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지금 시몬도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여기 '하나님의 선물'은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어 피 흘려주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구속하신 선물입니다.
  구원사역은 하나님의 고유사역으로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선물을 돈을 주고 매매하려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요, 또 하나님과 돈을 동등으로 여기는 무례한 죄입니다. 이런 사람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21절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것도 없느니라"
  두 번째 베드로의 선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하나님은 인생의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시몬 같이 욕심이 있고, 탐욕이 있는 자는 거부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마음먹기에 따라 신앙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 '도'는 '영생의 도, 기독교'입니다.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다" 하나님과 관계도 없고, 분 깃은 유업인데 천국의 유업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시몬을 보고 아주 죽으라고 저주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깨닫고 회개하라고 한 것입니다.
  ⑴시몬을 책망하여 올바른 기독교인이 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⑵시몬과 같이 불순한 의도와 잘못된 신앙을 갖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써 용납될 수 없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22절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회개를 촉구하는 베드로의 말은 20절의 저주와 21절의 책망이 단순한 공격적 발언이 아니라 시몬으로 하여금 참된 기독교인이 되도록 하기 위한 말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 '악하다'는 말은 '부패된 심적 상태 뿐 아니라 도덕적인 악행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다 용서하십니다.
  요일1: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할/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한한 용서를 말씀하셨습니다.
  마18:21-35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와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주여, 형제가 제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7번까지 하면 됩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7번이 아니라, 70번을 7번까지 용서할 것이니라." /할/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주님께 회개하면 우리 주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사55:7절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 오라 그리하면 그가 불쌍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 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아멘!/
  지금 사도 베드로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할/
 
  ▶23절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시몬이 돈을 주고 하나님의 선물을 사겠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이용하여 자신의 명예를 높이고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기 위함입니다. 또 그것을 이용하여 돈을 벌려는 악한 마음과 불의한 마음에 매인 바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13절을 다시 한번 보자!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얼마나 열정적인 신앙의 모습입니까?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녔다고 합니다. 마음을 다해서 따라 다녔다고 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좇았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을 끌고 다녔던 그가 이제는 오히려 빌립이라는 사람을 좇아 다닙니다. 그것도 '전심'으로 좇아 다닙니다.
  사실 '전심'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대하 16:9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왕상 14:8절 "내 종 다윗이 나의 명령을 지켜 전심으로 나를 좇으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만 행하였으므로"
  마술사였던 시몬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후 전도자 빌립을 따랐던 것이 바로 그러한 '전심'으로 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시몬은 참 좋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시몬을 보라! 그가 가졌던 부와 명예와 지위도 다 버리고 저렇게 전도자 빌립을 따라 다니며 복음을 전하지 않느냐?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따르게 하며, 수많은 부와 명예를 안겨주던 그 마술도 다 버리고, 다 포기하고 오직 '전심'으로 빌립 만을 좇지 않느냐? 저것이 바로 믿음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냐? 우리도 저렇게 되어야 한다. 시몬처럼 '전심'으로 주님만을 따라야 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겉으로 보면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왔을 때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할 때마다 성령께서 큰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본 시몬이 돈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사려고 한 것입니다. 그의 많은 재물로 하나님의 그 권능을 돈으로 사겠으니 팔라는 것입니다. 그때 놀란 베드로가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찌어다"
  그러면서 사도 베드로는 시몬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속에 있는 악독과 불의함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시몬을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고 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마디로 속 사람이 변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나'라는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나'라는 인격과 성격, '나'라는 내가 가지고 있는 욕망, 소원, 가치, 습관, 삶 등의 그 '나'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엡4:22-24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요3:3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 묻히고, 이제는 새로운 생명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감의 사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술사였던 시몬은 그의 영혼이 거듭나지를 못했습니다. 그의 옛 사람이 죽지를 못했습니다.
  그의 옛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그 모습 그대로 살아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고, 전도자 빌립을 전심을 다해 좇았으나 그의 속에는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인바 된 것입니다.
  속 사람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겉 사람이 날마다 죽어야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능력이 많은 사도 바울도 고전15:51절에서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외쳤습니다. /할/

 

  ▶24절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시몬은 심판 받아 망한다는 무서운 책망을 받고 공포와 두려움에 떨면서도 자기가 엎드려 회개하지 않고 베드로에게 기도하여 자기에게 벌이 임하지 않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시몬이 너무 악독과 불의에 있기 때문에 회개가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회개도 믿음이 있는 자가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는 이미 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회개도 때가 있고 기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때를 놓쳤고 가룟유다가 때를 놓쳤습니다. 시몬은 회개한 자인지 아닌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25절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하니라"
  이제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의 여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해 주고 예루살렘으로 가면서 여러 촌에서 안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올라갔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사도들의 이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딤후4:2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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