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설교+전도교육자료

하나님의 의(義)[Righteousness]를 구해야 한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 7. 17:56

 

하나님의 의(義)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의 의(義)를 반드시 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여 순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뜻을 따르셨으니,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 하셨다(요14:28).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의(義)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의(義)는 하나님의 뜻보다 크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의(義)보다 더 큰 것은 없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려 하시다가 요한이 머뭇거리자 ‘어서 행하라.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마 3:15).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복종하심도 하나님의 의를 위함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의 말이 다른 까닭도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만, 세상 말에는 하나님의 의가 없기 때문이다.

 

 

 

율법도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롬 7:12) 복음에도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만(롬 1:17), 율법은 정죄하는 의요 복음은 구원하는 의다. 정죄(심판)하는 일에는 율법의 의가 옳으며, 구원하는 일에는 복음의 의가 옳다. 우리는 정죄하는 율법의 의에 속하지 않고, 율법의 의에서 해방되어 복음을 받아들여 복음의 의에 속하였다.

 

 

 

믿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데 율법으로 말미암아 정죄의 의가 나타났고, 또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의, 즉 죄에서 자유를 얻은 은혜가 나타났다. 지금은 율법의 의보다 큰, 복음에 나타난 의에 속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의(義)란, 하나님의 자존심을 뜻한다.

 

 

 

하나님은 아쉬울 것이 없는 유일하신 이시오, 홀로 계신이시다. 그가 아들을 위하여 하늘을 지으셨으니(히 1:2), ‘위하여’란 아들에게 아쉬울 것이 없게 하심이란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겸손하여, 자신이 아쉬울 것이 없는 자로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오히려 아버지 앞에서 항상 아쉬움이 있는 자로 복종하실 것을 택하셨으므로, 천사보다 조금 못한 인자, 즉 여인의 아들로 세상에 나타나신 것이다(빌 2:6~8). 이리하여 자신이 인자되심을 인하여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자신이 십자가에서 순종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자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죄가 된다. 죄는 불의(不義)다. 곧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 것을 죄라한다. 하나님께 큰 것을 기대하고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의를 모르거나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의다. 불의는 곧 의가 없는 일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심판은, 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무익하여 소멸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는 의와 공의다(시 89:14).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의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그 어떤 행위도 하나님에게 무익하므로 하나님은 이를 소멸하시고 불의를 벌하신다.

 

 

 

사람이 병들면 돈을 많이 들여서라도 치료하여 병을 퇴치하려는 것같이, 하나님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익한 불의를 멸하신다. 병을 제거하므로 병균이 살지 못하게 몸 밖으로 내버렸다 하여 그것을 '사랑이 없다', '무자비하다'고 비판할 자는 하나도 없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무익한 불의를 벌하시고 소멸하시는 것에 대해 그가 사랑이 없다, 무자비하다고 할 수 없다. 만의 하나 그런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곧 불의요, 그 불의를 하나님은 소멸하실 것이다.

 

 

 

의인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사람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도 재물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자가 자기의 재물로 가난한 자들을 돕거나, 하나님 앞에 헌신함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면, 그 사람은 영생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막 10:17~31).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로 구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육신의 일이 급하다 하더라도 그 구하는 목적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일은 적극적으로 지원하시고 그것이 성취되도록 역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많으면, 하나님께서는 불의로 여기시고 오히려 귀를 막으실 것이요, 눈을 감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구할 것을 생각하여 그것에 하나님의 의가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육신을 위해 좋은 것이라도 결단코 간구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런 기도는 응답을 받을 수도 없지만, 그런 기도를 하는 것 자체가 불의한 기도다. 불의한 기도를 들어줄 이가 어디 잇는가? 하나님은 이미 관심을 갖지 않으시니 그는 무익한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날 목표가 있는 기도라면, 하나님께서 이를 판단하시고 역사하실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일이며, 또 무엇이 하나님의 자존심을 영화롭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하지만 자기의 의, 곧 자기의 자존심만을 찾고 높이려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존심을 훼손함으로써 불의한 자가 되어 무익한 기도를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자기의 자존심이 마치 하나님의 자존심인 것처럼 오해하여 하나님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어떤 이는 하나님께 호통을 치듯 공갈하는 이도 있다. 그래서 ‘나를 돕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손해 보십니다’ 한다거나, “하나님, 어디 가셨습니까? 나를 도와야 하나님의 영광을 보실 수 있고, 나를 돕지 않으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하는 식의 협박으로 기도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자존심과 하나님의 자존심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게 하려면 자기의 자존심 따위는 일찌감치 멀리 내다 버렸어야 한다. 진정으로 상달되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포기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내 기도는 포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그의 이름을 위해 하는 기도여야 한다.

 

 

 

혹자는 목사에게 특별한 기도를 부탁하면서 자신이 누구와 동업을 하는데 그 일이 잘 성사되게 기도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사람 본인은 하나님의 의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 동업을 하려는 사람은 다른 일을 하다가 몇 번의 부도를 내고는 자기 이름으로는 사실상 아무것도할 수 없는 이였다.

 

 

 

나는 그를 위해 무어라고 하나님 앞에 진실을 아뢸 수 있을까? 이런 기도는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처음부터 회개로 시작했어야한다. 회개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지만, 놀라운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회개가 없다면 하나님의 의와는 상관도 없는 불의한 계획 일 뿐이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개념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 비록 그가 과거에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일에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것을 회개하지 않고 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그것 역시 더 큰 도적질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지는, 나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실 것이다.

 

 

 

수입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이 너를 도우셨고, 너에게 더 큰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음을 그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십일조를 도둑질함으로써 하나님의 자존심을 무참히 훼손했다. 그가 하나님께 또 무슨 거짓말 기도를 하고 있는지 하나님은 잘 아신다.

 

 

 

오늘날 성도들의 생활 가운데 거짓말 기도가 얼마나 많은가? 밤새워 기도를 할지라도, 그 거짓말 기도를 들어줄 자는 하늘에도 없고, 땅에도 없다. 하나님의 자존심을 짓밟고 또 짓밟으려 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시험하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시험하지 말고,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보라"(말3:10) 하신다.

 

 

 

하나님께서 불의를 참으실 수 없어 이미 저주하신 일을 다시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들어주시겠는가? 수입이 많든 적든 십분의 일을 ‘나의 창고’에 넣어 달라고 하셨건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다. 저주를 시험하고 있다. 기도하여 물질을 구하려 한다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기가 물질로써 하나님의 자존심을 훼손한 일이 없었는지를 더듬어 자복해야 한다.

 

 

 

삭개오는 주님을 뵙는 순간 자신의 모든 불의가 떠올랐다. 그리하여 자신의 모든 소유를 자기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고백했다. 남의 것을 토색한 것 또한 율법대로 네 배를 갚겠다고 말했다. 이때 주께서도 그를 환영하셨으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하셨다.

 

 

 

어떤 자가 취직을 하려고 기도한다면, 과거에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자존심을 존중했는지를 은밀히 생각해야 한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회개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수 있도록 정직한 고백을 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는 일을 할 것을 기도하면서 자신을 확인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새로 만나려고 기도한다면 먼저 사람과의 이혼이 하나님의 의를 위해 합당했는지를 은밀히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말 2:16)”

 

 

 

거짓은 하나님의 의가 없는 불의다. 욕심도 하나님의 의가 없는 불의다. 불신앙과 불순종도 하나님의 의가 없는 불의다. 기도하는 자, 자신이 과연 하나님의 의를 존중하고 있는가 생각하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해 무엇을 입을까 하며 그런 것을 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신다(마6:31~33). 나는 기도의 법칙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 법칙을 따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