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설교+전도교육자료

[스크랩] 나에게 해를 입히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비결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 8. 08:25

   "원수 맺는 것"이란 상대에게 원한을 품고 상대가 파멸되기를 원하며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상대에 대해 악한 감정을 품다 보면, 상대를
멀리하게 되고 나아가 미워하게 됩니다. 정도가 지나치면 감정이 폭발하게 되고 해를 입히려고까지 하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은 원수 맺는 것에 대해 상대가 악을 행했으면, 자신도 악으로 갚아 주는 것이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셨습니다. 상대가 나에게 아무리 큰 잘못을 했다 해도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는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지요.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는 손양원 목사님은 우리에게 참된 희생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분은 한센병(문둥병)환자들을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고 정성 다해 보살폈지요. 그러다가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헌신에도 불구하고 기막힌 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1948년 10월 어느 날, 여순사건 와중에 사랑하는 두 아들이 반란군에 의해 총살당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라며 목 놓아 원망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오히려 두 아들이 순교함으로 주님 품에 안겨 천국에 갈 수 있음에 감사했지요. 게다가 두 아들을 총살한 반란군 청년을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습니다. 아들들의 장례식장에서 목사님이 하나님께 올려 드린 아홉 가지 감사의 기도문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울렸습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이 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둘째, 이 허다한 많은 성도 중에서 이런 보배를 주셨으니 감사드립니다.
  셋째, 삼남 삼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맏아들과 둘째 아들을 바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했으니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고서 와석종신(자기 명을 다 살고 편안히 죽음)해도 복이라 했는데
  전도 하다 총살 순교했으니 더욱 감사드립니다.


  여섯째, 미국 가려고 준비하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덟째,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서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을 믿으면서 감사드립니다.
  아홉째,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당시 한 달에 80원을 목회비로 받던 상황에서 일만 원의 감사 헌금을 드렸다는 것이지요.


  손양원 목사님은 6.25 전쟁 때에도 환자들을 지키기 위해 피난을 가지 않았고, 결국 공산군에 의해 순교함으로 여생을 마쳤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환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아들을 죽인 원수조차 선대하는 등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영혼에 대한 참된 사랑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 말씀합니다. 우리가 천사같이 아름답게 말하고 예언하는 능과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고 구제하며 희생한다 해도 그 모든 행함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되려면 참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그 사랑에 담긴 뜻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차원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


사랑장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내가 사랑을 베푸는 데 있어서 내게 돌을 던지는 사람, 또는 내게 오는 시련들과 내게 닥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오래 참음과 내 개인에 대한 오래 참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개인적인 입장에서 누가 나를 미워해도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의 항목 중 “오래 참음”이 부족하면 종종 상대를 절망케 합니다. 만일 일을 맡겼다가 성과가 더디면 참지 못하고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는 잘못을 만회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항복 중 첫째로 오래 참음을 강조하시는 것은 사랑을 이루는 데에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참는 것이 지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면 그 사랑을 주변 사람과 나누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상대를 사랑하려고 애쓰는데 오히려 내 마음에 상처로 돌아오거나 막대한 손실과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가 사랑스럽기는커녕  ‘어떻게 저런 사람을 사랑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하려면 이런 사람까지도 참고 사랑해야 합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헐뜯고 미워하며 애매히 곤경에 빠뜨린다 해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서 참고 사랑해야 하지요.


  주일 아침, 하루는 한 남 성도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내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사연을 들어 보니 자신이 술만 먹으면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가족을 괴롭히며 매우 힘들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한 결 같이 참고 자신의 허물을 사랑으로 감싸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고 알코올중독 증세까지 보이니 아내는 그만 삶의 의욕을 잃고 우울증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분이 술 때문에 가족을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러 나온 것이지요. 사연을 들은 뒤 그분에게 “정말 아내를 사랑한다면 술과 담배를 끊는 것이 뭐 어렵겠습니까?”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없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오래 참는 것은 영적인 사랑의 시작


  영적인 사랑을 이루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오래 참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참긴 참는데 마음에 불편함이 찾아오지는 않습니까? 이 여 성도와 같이 오래 참았는데도 환경이 달라지지 않으니 그만 낙심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환경이나 상대를 탓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진리로 온전히 이루었다면 참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즉 참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 안에 비진리의 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래 참는다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데 있어 만나는 여러 시련들과 나 자신에 대해 끝까지 참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하고자 노력할 때 오는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이 바로 오래 참음의 사랑이지요.
  이러한 오래 참음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22)중의 오래 참음과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요? 성령의 열매에서 오래 참음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범사에 오래 참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장의 오래 참음은 보다 작은 범주로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참는 것을 뜻합니다. 결국,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인 오래 참음의 범주 안에 포함되지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중의 오래 참음
  1.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로 개조해 나가기까지의 오래 참음
  2.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대를 이해해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주며 화평함을 이루기 위한 오래 참음
  3.하나님과의 사이에서 기도의 응답, 구원 등 주실 약속을 받기 위한 오래 참음


  요즘에는 상대가 자신의 신변이나 재산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면 쉽게 고소합니다. 법대로 하자는 것입니다. 그 상대가 아내 혹은 남편, 혈육을 나눈 부모, 자녀인 경우도 많지요. 참고 가만히 있으면 도리어 “바보처럼 산다.”고 조롱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 5:39)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 5:40)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똑같이 악으로 갚지 말고 참아 주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선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믿음과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믿는다면 아무리 큰 해를 끼친 사람이라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독생자 아들을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ㄴ을 사랑한다면, 생명을 아낌없이 주신 주님을 사랑한다면 참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무한대의 오래 참음


  어떤 사람들은 미움, 혈기 등의 감정을 억지로 꾹꾹 눌러 참았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폭발해 버리는 것을 봅니다. 내성적이어서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다가 소위 ‘화병’이라는 스트레스성 질환을 앓기도 하지요. 이런 참음은 스프링을 눌러 놓았다가 손을 떼면 다시 본래의 모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오래 참음은 변함없이 끝까지 참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는 참음이지요. 미움, 서운함 등을 마음에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기게 하는 근본악을 빼내 버리고 자비와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영적인 의미의 오래 참음 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고 영적인 사랑만 가득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애당초 원수 맺을 일이 없지요.
  마음 안에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등이 가득하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검은색 안경을 쓰면 온통 어둡게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마음 안에 사랑이 가득하면 아무리 이해 못할 사람이라도 사랑스러워 보입니다. 어떤 허물이나 단점이 있어도 싫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를 미워하고 악하게 행동한다 해도 미운 마음이 들지 않지요.


  오래 참음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복음을 저하다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고 중보 기도를 올린 스데반 집사와 같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사랑하는 것이 어려우셨을까요? 결코 어렵지 않았습니다. 마음 자체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마 18:21)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70*7, 즉 490번만 용서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7은 영적으로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것은 완전한 용서를 뜻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가 무한하심을 느낄 수 있지요.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오래 참음


  물론 우리가 하루아침에 미운 마음을 사랑으로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끊임없이 오래 참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화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믿음이 작음을 나타냅니다.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혹 화를 냈다 하더라도 해가 지도록, 즉 오랫동안 분을 품지 말고 털어 버리라는 말입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 안에서 감정이나 혈기가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참고 노력하면 마음이 점점 진리로 바뀌고 영적인 사랑이 자라가지요.
  마음 깊이 뿌리내린 죄성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불같이 기도할 때 버릴 수 있습니다. 더불어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선을 베풀고자 하는 자신의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행해 나가면 어느새 마음에서 미움이 사라지고 상대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누구와도 걸림이 없고 미운 사람이 없으니 마치 천국에 있는 것처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1)


  사람들은 행복을 느낄 때 ‘천국 같다’ 고 표현합니다. 마음에 천국이 있다는 것은 모든 비진리를 버리고 선과 사랑만 가득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오래 참을 일이 없고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에 항상 기쁘고 행복하지요. 마음에 악이 없고 선한 사람일수록 오래 참을 일도 없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이룬 만큼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평안함 가운데 상대가 변화되기를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과연 ‘오래 참음’이 있을까요? 그곳에는 눈물, 슬픔, 고통, 악이 없고 오직 선과 사랑만 있습니다. 상대를 미워할 일도 없고 화를 내거나 짜증 낼 일도 없지요. 어떤 감정을 억누르고 다스리는 일 자체가 없습니다.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도 당연히 오래 참을 일이 없으시지요. 그런데도 굳이 ‘사랑은 오래 참는 것’ 이라 하신 것은 사람들 편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신 것입니다.


    오래 참음으로 원수를 친구로 만든 링컨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은 변호사 시절 스탠톤이라는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스탠톤은 학벌과 가문이 뛰어난 반면에 링컨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스탠톤은 링컨을 얕잡아 보고 곧잘 심한 말로 조롱했습니다. 링컨은 비방과 조롱을 받으면서도 분노하거나 악한 말로 갚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통령에 당선된 링컨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가 요직인 국방부 장관으로 스탠톤을 지명합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가 적격자였기 때문입니다. 훗날 링컨이 포드 극장에서 저격을 당해 쓰러졌을 때 동석했던 사람들이 모두 도망치는 가운데도 스탠톤은 링컨에게 달려갔습니다. 링컨을 안고 눈물 흘리며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기,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다. 링컨 그는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다.”
  사랑의 오래 참음은 원수도 친구로 만드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사람이라도 변화되기를 바라고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에게 악으로 대하면 똑같은 사람이 되지만, 상 주실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오래 참고 사랑하면 장차 천국에서 아름다운 처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시 37:8~9).

(퍼온글)

출처 : 주님이 곧 오십니다.여호와를 경외하라.
글쓴이 : 예수님닮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