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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창골산 칼럼 제1786호 / 하나님께서 금하신 세 가지 선악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3. 29. 10:55

창골산 칼럼 제1786호 /  하나님께서 금하신 세 가지 선악과

                 

 

  제17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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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금하신 세 가지 선악과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하나의 법을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6~17)”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이 세상에 죽음을 불러왔고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었다.

 

    어느 날 목회자 부부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강사 목사님께서 오늘날 우리가 따먹으면 안 되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세 가지 선악과가 있다고 하였다. 그것은 주일, 십일조, 주의 종이라는 것이었다.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인지라 마음속에 새기고 주변에서 잘 살펴보게 되었다. 선악과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잘 기억하며 살라고 우리에게 금령을 주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삶 속에서 깨달은 세 가지 선악과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모든 날들은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날을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드셨다. 물론 모든 날들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모든 날에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야 한다. 특히 칠일 가운데 하루 주일은 사사로운 일을 금하고 오락을 금하고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는 날로 정하여 주셨다. 주일은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날로 구별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성도에게는 때때로 주일을 성수하지 못할 일이 생긴다. 친척의 결혼식, 이러 저러한 기념식 때문에 부득이하게 주일 예배를 빠지게 된다. 그럴 때 그들은 며칠 전부터 고민하고 기도하고 몸부림을 친다. 결국에는 하루쯤 빠진다고 하나님께서 이해 못하시지는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기쁘게 하고야 만다. 또한 물질에 자유롭지 못한 성도들은 농번기에 주일날 일을 하러 가느라 예배를 빠지곤 한다. 그러나 주일 성수를 하지 못한 후유증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나서는 크게 후회를 한다.

 

     어느 교회 임 집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30여 년 전에 시골에서 서울로 이사를 갔다. 아무 기술도 없고 자본도 없어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그러나 신앙은 좋아서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다. 어느 날 담임 목사님에게 개업 예배를 드려달라고 하더란다. 예배 준비를 하여 가보니 남의 집 계단 아래를 얻어 책상과 의자 하나씩 놓고 ‘◯◯부동산’이라는 간판을 걸고 사업을 시작했더란다. 주일 성수하고 열심히 봉사하며 일도 열심히 한 덕에 1년쯤 지나서는 버젓한 사무실을 내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의 부동산업이 잘 될 때였다. 게다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몇 년이 못 되어 부자가 되었다.

 

      이제는 자가용도 사고 아파트도 사고 건물도 샀다. 교회도 성장하여 4부 예배까지 드리게 되었다. 1부 예배는 주일학교 교사들을 위한 예배 시간이었다. 7시에서 8시까지 일찍 예배를 마치고 9시의 주일학교 예배를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어느 주일에 임 집사가 7시, 1부 예배를 참석하였다. 목사님은 “아하, 임 집사가 이제는 주일학교 봉사를 할 모양이구나” 하고 기뻐하였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1부 예배를 마치고 친구들과 등산을 갔던 것이었다.

 

  

 

     그러기를 세 번째 하던 날, 목사님이 그에게 경고를 하였다. “임 집사, 주일은 주님의 날이야.” 임 집사 왈, “헤헤헤, 목사님, 그래도 예배 안 드리고 가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하더란다. 그 날 오후 목사님은 입 집사의 울먹이는 전화를 받았다. 가족과 함께 1부 예배를 마치고 신나게 놀러가다가 자동차가 4m 정도의 언덕 아래로 굴렀다고 했다. 다행히도 아무도 크게 다치진 않았고 자동차는 폐차를 시킬 정도였다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연히 그랬지, 뭘.”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하심이라고 믿는다.

 

     둘째,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생명도, 물질도 하나님의 것이다. 그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 가운데 십의 일조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츰차츰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어렵다고 여기며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은 잘 아시고 계시므로 말라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온전한 십일조를 한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상당히 무거운 시험거리가 된다. 그리하여 신앙이 정착되지 않은 성도들은 그것에 걸려 넘어지곤 한다. 그러나 온전한 십일조를 할 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복은 그것을 맛본 자만이 알 수 있다. 맛보기 전에는 잘 알 수 없는 비밀이니까.

 

    어느 교회 박 장로의 이야기이다. 30여 년 전 서울의 노량진 판자촌에서 개척한 김 목사님은 상당히 보수적인 분이셨다. 판자촌 주민들은 하루 세 끼 밥도 제대로 먹고 사는 집이 드문지라 십일조 얘기는 꺼내기도 두려웠다. 그러나 말라기 3장 10절 말씀을 믿은 그는 자기 교회의 성도들 가정을 조사하였다. 일곱 가정이 월급을 타더란다. 월급이라고 해야 겨우 하루 세 끼 밥도 못 먹을 지경의 월급이었다.

 

    그래도 한 번 실험해보고 싶었단다. 그래서 각 가정의 월급날을 알아서 그 다음날이면 가정을 심방하여 십일조를 빼앗다시피 하였다. 남편은 겨우 학습 교인으로 경비원을 하는데 한 달 월급 4만원인 박성도네 집에서 십일조 4천원을 빼앗아 올 때마다 뒤 꼭지가 부끄러웠단다. 그러나 몇 년이 못 되어 그는 신앙도 자랐으며 사업을 하게 되었고 점점 창성해져 지금은 파키스탄에 가죽공장, 중국에 옷 공장을 가지고 있는 재벌 장로님이 되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주의 종을 함부로 대적하는 것을 금하셨음을 민수기 12장에서 잘 알 수 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는데 이 일로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였다. 아마도 그 일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같은 형제들인데 하나님께서 유독 모세를 특별 취급하심을 질투했으리라. 특히 모세는 육신적으로는 자기들의 동생인데 형과 누나로서 동생의 명을 받들어야 하는 것에 불만이 쌓였을 법도 하다. 예수님도 생전에는 동생들이 그를 인정하지 못했듯이,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거나 너무 친밀한 혈육관계에서는 육정이 먼저 작용을 하는 법이다. 아론과 미리암의 모세를 향한 불만과 불평을 들은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미리암에게 대노하시고 그들 앞에서 모세를 옹호하셨다.

 

    특히 주동자였던 미리암에게 진노하사 문둥병이 발하게 하셨다.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민12:8하)”라고 하셨다. 교회 내에서 종종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주의 종을 대적하다가 망한 자가 많다. 물론 주의 종도 사람이니 어찌 실수가 없으랴. 그도 실수도 있고 결점도 있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 주의 종을 대적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것을 많이 보았다. 주의 종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요, 그가 잘못할 때 하나님이 친히 알아서 처분하시는 경우에 해당한다.

 

 

 

    나도 며칠 전에 주의 종을 비방하는 것을 금하시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경험했다.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으므로 우린 설날에 딱히 갈 곳이 없어 나는 늦잠을 자고 나서 지나간 드라마 '추노'에 빠져있었고, 남편인 목사님은 교회 내부 리모델링하던 일을 마무리한다고 교회에서 또닥또닥하고 있었다. 나는 왜 설날에 일을 하느냐고 오늘은 좀 쉬라고 했었다. 점심때가 지나도 밥을 먹으러 오질 않아서 나가보니 일하느라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설날"에 말이다. 나는 된통 화가 나서 성질을 부렸다. “아니, 일이 그렇게 좋으면 목수 하지 왜 목사는 되어가지고 맨날 일만 하느냐구?” 라고 바가지를 긁었다.

 

    오후에 서울에서 딸이 기차로 온다고 연락이 왔다. 정읍역에 나가 딸을 맞이하여 하나로 마트에서 장을 봐가지고 집에 왔다. 저녁을 먹으려는데 속이 안 좋았다. 밤중에 식은땀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팠다. 급체를 한 모양이었다. 설날이고 밤중이라 약을 구할 수 없어서 한숨도 못 자고 끙끙 앓았다. 급체에는 손톱 밑을 따면 내려간다고 했으나 나는 원래 바늘 공포증이 있어서 도저히 손톱 밑을 딸 수가 없었다.

 

    새벽기도 시간에 머리가 빠개질듯이 아파서 나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남편이 강단 뒤에 앉아 방언으로 기도하다가 "하나님께서 어제 일 회개하랍니다"라고 방언 통역을 하였다. 하도 웃겨서 속으로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나보고 회개하라고?’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모세가 구스여인과 재혼했다고 그일 저일 싸잡아서 모세를 비방하다가 하나님께 된통 혼난 미리암이 생각나 "앗 뜨거라" 하고 회개를 했더니 두통이 조금 가라앉았다.

 

    우리 교회의 이전(以前) 목사님께서는 1988년도에 오셨는데 그 때 당시 교회 회계를 담당하신 장로님이 축산업을 하셨다. 그는 이전(以前) 교회 부지를 판 돈 300만원을 잠시 빌려 쓰겠다고 하였다.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교회 재정을 사적으로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그 돈 300만원 때문에 14년 동안 우리 교회는 목사님과 장로님의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다. 장로님이 그 돈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이 은퇴할 때쯤에는 예배 때마다 두 분의 싸움이 일어났다. 장로님은 힘이 세고 목사님은 연로하여 힘이 부족하므로 장로님이 목사님을 강단에서 밀쳐 내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오비이락’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희한하게도 그 후로부터 장로님의 모든 사업은 부도가 났다. 온 식구가 지금도 그 빚을 갚느라 고생을 하고 있다. 지금 장로님은 악신이 들어서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한다. 또한 아무에게라도 괜한 시비를 걸어 말썽을 일으키곤 한다. 그 장로님을 보고 있노라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떠오른다. 사울이 처음에 사무엘의 기름 부음을 받아 왕으로 선정되었을 때에는 겸손하고 수줍은 시골 청년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서는 그 승리에 도취되어 마치 자기의 능력인양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지 않아야 할 일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이 떠나고 악신이 그를 지배하여 그의 삶의 목적이 왕위를 지키는 일로 바뀌었다. 그리하여 다음 왕으로 선택된 다윗을 죽이려고 평생을 다윗을 쫓아다니다가 시간을 다 버리고 결국 전쟁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직분자들이 물질에 삶의 목적을 두면 하나님께서는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울왕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살찌고 좋은 것들을 숨겨두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15:11)”고 하셨다. 그 장로님도 교회 돈 300만원 때문에 교회를 어지럽게 하고 주의 종을 대적하여 예배를 방해하였다.

 

    지금은 마음속에 온통 돈 생각만 갖고 있으니 꿈에도 맨날 돈 버는 꿈만 꾸는가 보다. 가끔 광고한다고 일어나서는 어젯밤에 하나님께서 10억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 중에 9억을 교회에 바치겠다고 한다. 그러나 교인들 중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저런 사람이 어떻게 장로가 되었을까 하고 의아히 여긴다. 그러나 누가 알랴. 그가 장로로 당선될 때만 해도 그럴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사람이 변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실수하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도 사울을 왕으로 선정하셨을 때에 사울은 효자요, 겸손한 자요, 자기를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던 수줍은 청년이었다.

 

     왕이 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요, 장로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인데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15:10)”임을 생각할 때 자기의 직분은 하나님이 쓰시려고 잠간 맡기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 즉 시간과 물질과 직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라고 맡겨 주신 것임을 기억하여 모든 시간에 하나님과 동행하며, 모든 물질을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해 사용하며, 우리의 영혼의 부모로 허락하신 주의 종을 도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살기를 소망한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필      자

양애옥 사모

정읍시 옹동면 비봉리 산성교회  (창골산 칼럼니스트)

 ao-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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