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조한우목사/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요 10:22-3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5. 18. 14:24

조한우목사/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 (요 10:22-30)

 

어떤 목사님께서 장로님과 함께 병원 심방을 가시게 되었답니다.

성도 한 분이 중환자실에 누워있는데 병원에 입원한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도 깨어날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거예요.

의식 불명상태로 오래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거의 손을 놓고 있었나 봐요.

목사님께서 말씀으로 권면하시기 전에 장로님께 기도를 부탁하셨는데, 장로님께서 한참 기도를 하시다가 갑자기 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셨는지 한참을 머뭇거리고 계시더래요.

같이 심방을 갔던 교인들도 기도하다가 말고 쩔쩔매시는 장로님 때문에 어쩔 줄 모르고 있었고 목사님께서는 그저 ‘주여, 주여!’만 부르고 계셨는데, 진땀을 뻘뻘 흘리시던 장로님께서는 ‘식물인간’이라는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그러고 계셨던 거거든요.

한참 만에 드디어 장로님의 기도가 계속되었는데 글쎄 이렇게 기도를 하시더래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무개 집사님께서 지금 ‘야채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빨리 살려 주세요!”

 

옛날에 어떤 선교사님께서는 축도를 해야 되는데, 보통 축도할 때에 ‘지금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러든지 아니면,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첫 머리가 생각이 안 나시더래요.

두 손을 눈을 감고 한참을 끙끙 거리시다가, 비슷한 단어가 하나가 떠오르시더래요.

그래서 과감하게 그랫다는 거 아닙니까?

“요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라고 하셨다나요?

 

그런 일이 실제로 있겠습니까마는 그러나 갑자기 무슨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을 때에는 참 곤란하겠죠?

우리가 예수님을 설명하고자 할 때,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설명을 해야 좋을지 참 난감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예수님은 선한 목자다.’라고 자신있게 소개를 하고 설명을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불렀던 찬송이 바로 그 찬송이었던 것 같아요.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 항상 인도하시고 푸른 풀밭 좋은 곳에서 우리 먹여주소서!”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무엇 무엇이다.’라고 하는 예수님의 자기 선포가 많이 나옵니다.

헬라어로는 ‘Ego eimi’라고 하는데,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소개하실 때 뭐라고 하셨어요?“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3:14)고 하셨거든요.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8장 마지막 부분에서 보면 유대인들에 예수님께 그러잖아요?

‘네가 아직 오십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이 말씀이 바로 ‘Ego eimi’입니다.

 

여기에다가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소개하신 단어를 갖다가 넣으면 되는 거예요.

나는 나인데, 내가 누구냐?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그런 예수님의 자기 선포를 기억하시면서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 이해가 빨리 될 거예요.

 

오늘 본문 22절 말씀을 보니까,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고 했습니다.

수전절이라는 절기는 성경 전체에서 여기 한 군데밖에 안 나오는 절기입니다.

구약 시대가 끝나고 신약 시대가 시작하기 전 신구약 중간사가 약 400년 정도 있는데 B.C.175년에서 163년경에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라는 사람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도 우리나라처럼 외적의 침략을 참 많이 받아왔거든요.

그런데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정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었어요.

자기 민족을 다 포로로 끌어가도 좋고, 자기 민족들을 다 잡아 죽여도 좋은데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성전,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우리 교회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신구약 중간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마카비 전투입니다.

B.C. 164년쯤에 유다 마카비(Judas Maccabee)가 반란을 일으켜서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더럽혀졌던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청결케 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해서 유대인들은 해마다 12월 25일부터 8일간을 축제일로 지키기 시작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수전절(修殿節)입니다.

 

그 당시에는 언제나 뉴스의 초점이 예수님이셨거든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마다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항상 눈엣 가시와도 같은 존재이셨던 거예요.

그러니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미어터질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이날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솔로몬 행각 주위를 거닐고 계셨는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모여들기 시작했던 거예요.

마침 또 그때가 유대인의 명절 가운데 하나인 수전절이었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몰려왔겠어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도 좋지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몰려왔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예수님께 대해서 존경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모였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지금 그런 마음으로 모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뭔가를 따져보기 위해서 모인 거예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만나자 마자 다짜고짜 따지고 드는 것이 뭐예요?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들의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면 밝히 말씀하소서.’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들이 지금 많이 혼란해 하고 있습니다. 제발 헷깔리지 않게 분명하게 말씀해 보시오! 당신이 정말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가 맞단 말이오?’

바로 그 소리예요.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여러 번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을 해 주셨었거든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한복음 5장 19절 말씀에서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거든요.

 

세상에 제일 힘든 것이 아무리 말을 해줘도 믿지 못하는 겁니다.

사람을 얼마나 피곤하게 만드는지 몰라요.

예수님도 마찬가지셨을 거예요.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의 마음을 의혹하게 하나이까 그리스도면 밝히 말씀하소서!’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요한복음 10장 7절 이하에서는 예수님께서 양의 문이 되시고 양 무리들에게 선한 목자가 되신다는 것을 말씀하셨거든요.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들은 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신 거거든요.

그러면 그 하시는 일을 보고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어야 하는데 이들이 믿지 못했단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스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그런 걸 방송 한 적이 있었다면서요?

동물원의 조련사였습니까?

나도 잠깐 지나가다가 보았는데, 그 사람이 무슨 꿩도 아니고 무슨 이상한 새들을 수백 마리, 수천 마리를 기르던데요.

그 조련사가 새들에게 ‘이리 와라!’고 하니까 새떼들이 어리서 있다가 모여든는지 새까맣게 모여들더라고요.

그리고 그 사람이 가는대로 따라다니는 걸 봤어요.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하더라고요.

그 사람의 목소리를 녹음을 해서 틀어 보기도 하고, 그 사람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새들을 불러보기도 하고 말이죠.

그런데 그 새들이 요앟게도 주인을 알아보더라고요.

 

이스라엘에 가 보면 양을 몰고 다니는 목자들을 종종 볼 수 있거든요.

양을 키우면서 양들을 일일이 다 목에 줄을 매서 끌고 다니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목자가 앞서 가면 양들은 줄줄이 따라가더라고요.

그 나라는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풀이 흔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양이 목자를 따라다니지 않으면 정말 굶어죽겠더라고요.

양은 목자를 무조건 믿고 따라가는 거예요.

목자는 양들을 먹이기 위해서 그의 특유한 기술과 노하우로 양들을 인도합니다.

목자는 양들을 한 마리 한 마리 다 안대요.

목자가 양의 이름을 불러 줄 때에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달려오는 겁니다.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뭘 하던 사람이었죠?

들판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잖아요?

하루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크게 패했습니다.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라고 하는 어마 어마하게 큰 거인 장수가 있었거든요.

모든 군대가 다 벌벌 떨고 있는데 누구 하나 나서서 싸우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때 소년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러 갔다가 이런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이 고함을 치는데, 땅이 갈라질 정도로 목소리가 쩌렁쩌렁해요.

‘야, 이 개 뼉다구 같은 놈들아! 너희 중에 아무도 나와서 나와 싸워볼 만한 자가 없단 말이냐? 하하하 만군의 여호와를 섬긴다는 너희 놈들도 별 볼일 없구나! 너희 하나님이 죽었나 보구나. 하하하’

 

다윗이 그 소리를 들으니까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겁니다.

‘저 놈이 감히 누구관데 살아계신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모욕한단 말인가?’

다윗이 당장 사울 왕에게로 가지 않았어요?

“임금님, 제가 나가서 싸우겠습니다. 저렇게 버릇이 없고 살아계신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모욕하는 자를 가만 두어서는 안 됩니다.”

“얘야, 얘야! 아서라! 저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은 거인인데다가 힘이 장사여서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단다. 다친다. 애들은 가라!”

 

그때 다윗이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같이 되리이다.”

그 말 한 마디 남기고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서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을 물리쳤잖아요?

 

다윗이 무슨 힘이 있어서 그 큰 골리앗을 이길 수가 있었겠어요?

다윗은 오로지 양을 지키는 목동으로서 언제나 자기 양들에 대한 책임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언제든지 곰이나 사자가 나타나기만 하면 자기 목숨을 걸고 싸워서 양들을 보호하고 양들을 지켜냈던 거예요.

싸우다 싸우다 안 되면 사자 수염을 붙들고 늘어져서라도 사자를 잡아 죽여야 양들을 살릴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게 목자의 사명이에요.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자기 목숨을 버리셨던 것처럼 목자는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단 말입니다.

그렇게 지켜낸 양들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목자가 자기 생명을 바쳐서라도 양들에게 생명을 주었기 때문에 아무도 양들에게서 그 생명을 빼앗아 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도 본문 28절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신 거예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양들의 생명은 누구의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양들의 생명은 목자의 것입니다.

왜 그래요? 목자가 생명을 주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므로 양들은 절대적으로 목자를 의지하고 따라야 되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 어떤 분에게서 문자를 받았어요.

우리 산청군에 군의원으로 계시는 분이신데, 덕산 교회집사님이시거든요.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를 하려고 했는데 한나라당 공천에서 떨어졌다는 거예요.

우리 동네에서는 아무라도 한나라당 공천만 받으면 100% 당선이잖아요?

참 이상한 동네죠?

그러니까 공천 받으려고 돈을 싸들고 막 갖다 주는 거예요.

그러다가 걸리면 그만이고 안 걸리면 다행이고 그런 거죠, 뭐.ㅜㅜ

 

이번엔 우리 지역구에서 군 의원 수가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경쟁이 더욱 치열했었나 봐요.

그래, 그 분이 이번 공천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못 받게 되었기 때문에 공천 결과에 승복할 수가 없어서 무소속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다시 문자를 보내드렸습니다.

잘 됐습니다.

오죽 못났으면 한나라당 공천을 받으려고 하겠습니까?

한나라당 공천 받지 말고 하나님 공천 받으시라고, 하나님만 의지해서 당선되면 그게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잘 했죠?

정말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일꾼이 되어야지 한나라당이 아니라 뭔나라당의 공천을 받았다고 다 찍어 줄 것 같으면 선거는 뭐하러 하겠어요?

유권자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9절 말씀입니다.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할렐루야!)

♪만유의 주재 존귀하신 예수 사람이 되신 하나님

나 사모하여 영원히 섬길 내 영광되신 주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제 아내가 장에 나가서 고추 모종이랑 가지 모종이랑 토마토 모종이랑 오이 모종이랑 이것 저것 골고루 사오셨더라고요.

나는 농사짓기 귀찮아서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했는데, 사왔으니 어쩌겠어요?

그런데 토마토도 그렇고 고추도 그렇고 가지고 그렇고 오이도 그렇고 토마토도 그렇고 그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몰라요.

일일이 다 막대를 세워줘야 하는데, 그걸 어디서 다 갖다가 하냐고요?

말짱을 세워서 일일이 다 묶어 주지 않으면 다 쓰러지고 말텐데 말예요.

그래서 나는 안 심겠다고 그랬죠.

그랬더니 제 아내가 뭐라고 그랬는지 아세요?

자기가 다 붙잡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말고 심으라는 거예요.

그러니 아무 소리 못하고 심었죠, 뭐.

사람이 한마디 호언장담을 해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법인데, 우리 주님께서 “너희는 내 양들이다. 그리고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생명을 버린다.”라고 하시는데 얼마나 감사해요?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의 선한 목자가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제일 중요한 말씀이30절 말씀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인간들은 3일을 산다고 그럽니다.

첫째 날은 자연인으로 태어나서 사는 날입니다.

그리고 둘째 날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서 사는 날이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셋째 날은 우리가 모두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날이랍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예수님의 영원하신 생명이 사랑하는 우리 칠정교회의 모든 성도님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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