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세숫대야에서 나온 저주! (마 27:23-2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5. 24. 18:31

세숫대야에서 나온 저주

 

                                                                                   마 27:23-26,

 

 

큰 지도자의 결단은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박 정희 대통령이 우리 국군을 월남에 파병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할 때 담배

공초가 수북히 쌓여 있는 사진이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파병하면 아까운 젊은이들이 남의 나라에 가서 피를 많이 흘리게 됩니다. 파병하게 되면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 집니다. 그리고 엄청난 달러가 한국으로 흘러 들어 와서 경제개발에 큰 도움이 됩니다.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서 수많은 사람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실제로 1만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수 십만명이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부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그 후 경제가 살아났습니다.

큰 지도자의 결단은 엄청난 영향력이 있습니다.

 

나포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때 수 만명이 따랐습니다.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말했습니다.

“이 산이 아닌 가봐!” 잘못 이끌었습니다. 수백명의 군사들이 죽었습니다. 다른 산으로 갔습니다. 산위에서 나포레옹이 말했습니다.

“그 산인가봐.”

수 백명이 죽었습니다. 유모어입니다. 한 지도자의 결단은 엄청난 영향력이 있습니다.

 

이제 성경으로 들어 가려고 합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에 이야기입니다. 로마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총독을 임명하였습니다. 그가 빌라도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하는 교리가 분명한 유대인들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외침에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한 엄청난 죄라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한 마디로 신성모독죄입니다. 피지배 민족인 이스라엘은 스스로 사형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을 십자가 못박아 죽에 판결하여 달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정치가들은 여론에 약합니다. 더구나 식민지 총독은 자기가 지배하는 군중들의 아우성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군중들은 외쳤습니다.

“예수를 죽이지 않으면 당신은 가이사 황제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정치가에게 결정적이었습니다. 판결을 내려야 하는 아침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재판석에 앉았습니다. 예수님은 죄수 신분으로 그 앞에 섰습니다. 군중들은 마지막 기회를 놓지지 않으려고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이 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빌라도 아내가 사람을 보냈습니다. 재판석에 앉아 있는 빌라도에게 가서 귓속말로 말했습니다.

“총독님! 아내가 전하는 말씀입니다. 간밤에 꿈에 시달렸답니다. 저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상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라고 하여 긴급히 왔습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사형을 시키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 분위기였습니다. 그렇다고 사형을 스스로 언도하자니 아내 말이 걸렸습니다. 자기가 보아도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정쩡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세수대야에 물을 떠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군중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24)

 

군중들이 말했습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십시오.”

 

드디어 예수님은 사형장으로 끌려 갔습니다.

이 때 빌라도 결정이 어떤 결과가 되었는 지 분석하여 보려고 합니다. 큰 사람의 결정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오는 지를 알아 보려고 합니다. 빌라도가 세수대야에서 손을 씻으며 내린 결정은 지구의 비극을 가지고 온 결정이었습니다. 빌라도의 세수대야는 비극의 세수대야였습니다.

 


1. 하나님을 죽이는 비극

빌라도는 예수님을 사형시키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지구상에서 하나님을 죽인 오직 하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죽인 사람은?” 이렇게 퀴즈를 내면 오직 한 명 빌라도입니다. 그래서 그 후 수 십억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빌라도 이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 못박혀 죽으시고...”

이렇게 고백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가장 치욕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한번 잘못 결정을 내린 것이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형언도 내리면 죽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앞에 서 있는 분은 영원히 죽지 않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황금을 쓰레기 더미 속에 묻었다고 썩나요? 보석에 흙을 묻혔다고 보석이 아닌가요? 걸레를 빨았다고 걸레가 아닌가요? 빛을 어둠 속에 매장한다고 숨겨 지나요? 영원한 생명을 십자가에서 죽인다고 죽었나요?

빌라도는 오판을 하였습니다.

세수대야에서 손을 닦으면 자기는 책임이 없어지고 깨끗하여지는 줄로 착각을 하였습니다.

빌라도는 하나님을 죽이는 오판을 하였습니다. 빌라도의 세수대야는 하나님을 죽인 세수대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죽이는 비극이 빌라도의 세수대야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2. 역사상 최악 비극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결정하면서 세수대야에 손을 닦으며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24)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했습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십시오.”

 

이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지는 당시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 후 히틀러가 600만을 학살하였습니다. 유럽 곳곳에서 유대인 학살 바람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총을 만들어 놓고 총 성능 시험을 유대인들을 놓고 하였습니다. 일열로 세워놓고 한 방을 쏘면 몇 명이 죽는 지 실험을 유대인들로 하였습니다. 멀리 유대인들을 세워 놓고 얼마나 멀리에 있는 사람까지 죽는 지 총실험도 유대인들을 놓고 하였습니다.

자기들이 한 말 그대로 받았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였는 데 정말 그렇게 되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대 비극을 초래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빌라도의 세수대야에서 나온 비극은 인류역사상 최대의 비극이었습니다.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말 마디 잘못 한 것이 600만명에게 피가 돌아갔습니다.

유대인 어머니가 아이를 낳으려고 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다급하여 옆에 있는 기독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산모실에서 진통이 계속 되는 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그림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산모가 간호원에게 말했습니다.

“간호원! 나는 에수님이 싫어요. 지금 태어나는 내 아이가 저 그림을 보는 것도 싫어요. 잠간 떼어 주세요.” 간호원이 말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이 병원에 고용원입니다. 내 마음대로 그림을 붙이고 떼고 할 수 없습니다. 원장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간호원! 지금 아이가 나오려고 하는 데 언제 허락을 받아요? 잠간 떼었다가 붙여요. 나는 내 아이가 태어나자 말자 저 그림을 보는 것이 싫어요.”

그 순간 아이가 태어 났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평생 눈먼 상태로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말 한 마디가 자식의 생애를 불행하게 하였습니다.

함부로 말하면 안 됩니다.

빌라도의 세숫대야에서 엄청난 비극이 흘렀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 빌라도의 세숫대야에서 흘렀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6.25 전쟁당시 이북에서 사람들이 넘어 올 때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살아보자.” 이렇게 말하며 이를 악물고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내려가다가 죽더라도 내려가자.” 이런 사람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빌라도의 세수대야 앞에서 유대인들은 방정을 떨었습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24)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십시오.”

정말 그 피가 그들에게 돌아 갔습니다. 빌라도의 세수대야에서 인류 역사상 최대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3. 자신이 지옥가는 비극

예수님을 처형하던 이들이 속속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면서 예수님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인 것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간 구레네 시몬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구레네 섬을 복음화시키는 데 앞장 섰습니다.

예수님 옆에서 같이 죽던 강도는 죽어가며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던 로마 백부장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죽이면서 그 분이 그리스도임을 알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

예수님을 지키던 사람들도 모두 예수님을 진정을 알고 같은 고백을 하였습니다.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

심지어 빌라도 아내까지도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빌라도 아내는 참으로 영성이 있고, 판단력이 있고, 지혜로운 여자였습니다. 빌라도는 좋은 아내를 옆에 두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예수님은 죄없는 분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사람을 급히 보낸 것을 보면 빌라도가 아침에 출근할 때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러 떠나고 났을 때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급히 사람을 보냈습니다. 옆에 바르게 말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바른 생을 살아가는 네비게이션이 됩니다.


몇 년전에 독일 비텐베르그 교회에 다녀왔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유명한 교회입니다. 루터가 묻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루터와 필립 멜랑흐톤이 같이 한 무덤속에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부도 아닌 데 같이 묻혀 있다는 것은 신기하였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카토릭과 싸울 때 너무 힘들어서 지쳐서 쓰러지려고 할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옆에서 네비게이션 역할을 하여 주었던 사람이 멜랑흐톤입니다. 루터가 행동주의자였다면 멜랑흐톤은 이론주의자였습니다.

멜랑흐톤은 루테에게 15살 어린 후배였습니다. 루터가 절망하여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멜랑흐톤은 옆에서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선배님이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를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 진리는 반드시 이길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루터에게 말할 때에나, 편지 쓸 때에나 언제나 성경에서 한 말씀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루터는 멜랑흐톤를 통하여 언제나 용기를 얻고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곁에 이렇게 바르게 인도하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축복입니다.


빌라도에게는 이런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듣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남에게 죽이도록 방치하였습니다. 더 야비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믿지 못 하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지옥 백성이 되었습니다. 지금 빌라도는 지옥 뜨거운 불속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지옥 땅을 치면서 후회하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을 절호의 기회를 잃었다.”

그리고 울며 통곡할 것입니다.

 

빌라도는 세수대야에 손을 씻으면 자기는 책임이 없고 깨끗하여 지는 줄 알았는 데 가장 실수한 총독이 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오판을 한 재판장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예수님을 자기가 직접 심문하였습니다. 아무리 뒤져 보아도 죄가 없었습니다. 죄가 그렇게 없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도 사형당하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 귀하신 생명의 하나님을 죽이면서 자기 생명도 죽였습니다.

순간의 부귀 영화를 위하여 영원을 잃어버렸습니다.

옥을 얻으려고 황금을 버렸습니다.

참새 알을 얻기 위해서 타조 알을 버렸습니다.

5년 잘 살려고 수만년을 잃어버렸습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할가요?

 

고 명균 목사님은 우리 감리교가 다 존경하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를 좋아 하여 여러번 모셔다 부흥회를 하였습니다. 그의 친척이 강원도 평창군에 살고 계십니다. 권사이십니다.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아들이 강에 나가 수영을 하다가 빠져 죽었습니다. 주일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있는 데 아들이 죽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권사님은 차분히 예배를 다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죽었다고 한 강가로 갔습니다. 아들 시신에 거적을 덮어 놓았습니다. 권사님은 거적을 들추고 아들을 보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놈아. 잘 죽었다. 주일 날 예배드리지 않고 수영하다가 죽었다. 죽어도 싸다 싸.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놈이 더 속 썩이지 않게 일찍 데려가시니 감사합니다.”

그렇게 소리지르고는 아들을 붙들고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평창 연합 집회에 갔습니다. 권사의 모범적인 신앙은 평창군에 널리 감동적으로 많이 이야기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큰 지도자의 결단은 주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김 대중 대통령이 전라도 광양에 제철소를 만들었습니다. 포항 제철소가 차고 넘치니까 한 곳을 더 만든다고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간만의 차가 서해안은 커서 큰 배가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일부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 대통령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 전라도에게 큰 사업체 하나를 만들어야 한다고 극구 주장하였습니다. 김 대중 대통령도 전라도에 큰 기업체 하나를 선물하고 싶어서 결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광양 제철소를 만들도록 김 대중 대통령이 지시하였습니다. 우려한 대로 큰 배들이 드나 들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수 조원이 낭비되었습니다.

큰 사람의 결단은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됩니다.

빌라도의 세수대야 판결은 역사상 큰 불상사를 초래하였습니다. 세수대야에서 흐른 저주는 지금도 역사를 면면히 흐르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세수대야

그러나 반대되는 세수대야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세수대야가 제일 먼저 나오는 곳이 어디인가 찾아 보았습니다. 창세기 19장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세수대야입니다.

아브라함이 상수리 나무 아래 앉아서 쉬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다가 가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집안으로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수대야에 물을 떠다가 세 나그네의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대접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무심코 읽어서 그렇지 가만히 묵상하면서 읽으면 놀라운 사건입니다.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초대하여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나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초대하여 송아지를 잡고 발을 닦아 드렸다는 말을 성경 여기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그 때 나그네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알고보니 천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망시킬 것이라는 하나님의 비밀을 아브라함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송아지 한 마리 잡고 롯의 가정을 구원하였습니다. 한 가정 생명을 살리는 축복이 아브라함의 세수대야로부터 흘렀습니다.

빌라도의 세수대야부터는 죽음이 흘렀지만 아브라함의 세수대야부터는 생명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의 세수대야

예수님의 세수대야도 역사를 바꾸어 놓은 세수대야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예식을 하시다가 세수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

그 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의 발을 닦아주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세수대야부터 남을 섬기고 사랑하는 영이 흐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세수대야는 섬김의 세수대야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세수대야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흐르는 것이 다릅니다. 빌라도가 세수대야를 사용하니까 엄청난 저주가 흘렀습니다. 아브라함이 세수대야를 사용하니까 생명이 흘렀습니다. 예수님이 사용하니까 섬김이 흘렀습니다.

나는 우리 성도님들이 사용하는 물건마다 사용할 때마다 좋은 영이 흐르는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는 세수대야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동을 주는 사람입니다. 다윗 케이프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최근에 나에게 충격을 준 책 <예수를 위한 바보>의 저자입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람들의 발을 닦아 주어라.”

이 음성을 듣고 그는 사람들의 발을 닦아 주는 작정하고 기도에 들어 갔습니다.

“하나님! 세수대야를 메고 걸으며 사람들 발을 닦아 주려면 세수대야를 주셔야지 내가 사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렇게 기도하였는 데 세수 대야가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확신하였습니다. 출발하였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남쪽 케이프 타운을 출발하여 북쪽으로 3,000 km를 걷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세수대야, 십자가 그리고 접의자를 등에 짊어졌습니다. 20kg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출발하였습니다.

출발한지 1분 만에 네 명을 만났습니다. 거드럭 거리는 깡패들이었습니다. 발을 닦아 줄 마음이 없는 데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가가서 발을 닦아 주어라.”

길거리에 접의자를 놓고 네 명을 한 명 한 명 발을 닦아 주면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4명 발을 닦아 주고 났을 때 큰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을 따라가지 않는다. 저 분을 따라 가고 싶다.”

그리고 따라왔습니다. 첫 날 모두 16명을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13명을 주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그 날 밤이었습니다. 주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몇 명 발을 닦아 주었는 지 세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여주는 대로만 맡기고 행하였으면 좋겠다.”

다윗 목사님은 그렇게 하였습니다.

1년 4개월을 걸으면서 세수대야로 수 만명을 발을 닦아 주면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빌라도의 세수대야에서는 저주가 나왔지만 다윗 목사님의 세수대야에서는 생명이 나왔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서 언제나 축복과 생명만 흐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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