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심현보씨 성령체험 신앙간증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3. 5. 22:27

작성자 심현보

 

 

 

2010-09-13

 

 

제 목

 

[성령체험] 나의 간증 1- 하나님의 부르심

 

내 용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그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 중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함으로 간증을 하고자 합니다. 한 말씀 한 말씀과 한 글자 한 글자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계셔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믿음으로써 한 마음으로 합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길에 실족함은 없게 하시고 저와 모든 성도님들께 주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가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아직 어려서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 같을진대 이 간증을 하게 됨은 저와 같이 어린아이와 같은 분들에게는 함께 장성한 사람이 되어가기를 소망함이며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 어린아이의 일을 버린 분들에게는 저의 간증이 혹여나 복음 전도에 사랑의 마음을 조금 더 품음으로 풍성한 쓰임이 있을까 소망함입니다(참조 말씀- 고전13;11)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일 것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 >> 말씀에 있듯이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먼저 찾아와 부르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첫사람인 아담 때부터(3:9) 아브라함도(12:1) 모세도(3:4) 그리고 이후의 모든 구약의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모든 사람에게도 먼저 찾아와 부르신 것입니다. 신약에서도 베드로와 안드레에게도 먼저 주님이 택하심으로 찾아가 부르셨습니다( 4:18,19)

나머지 제자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1:15)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3:14) 말씀과 같이 사도 바울도 주님의 부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일은 바로 이 부르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 바로 우리들에게도 이 하나님의 부르심은 똑같이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한복음 6:37절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이 부르심은 바로 창세 전부터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큰 축복의 은혜인지를 저와 모든 성도님들이 영의 체험으로 마음에 오롯이 새겨지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더욱 깨닫기 위해 부르심 직전까지의 우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1:2)>> 여기서 땅은 바로 흙으로 지음 받은 바로 우리 모든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2:7) 하나님의 부름이 있기 전의 우리는 모두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마음의 영육들인 것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5:12) 말씀이 그 까닭을 분명히 드러내어주고 있으며 로마서 6:23절에도 분명히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마음은 분명히 사망의 마음일 것이고 그것은 죄의 삯일 것입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3-24) 말씀에서 위대한 사도였던 사도 바울도 그 곤고한 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 곤고한 마음은 바로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위대한 사도 바울도 그러할진대 우리 성도들은 어찌할찌며 더더군다나 아직까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영접하지 못한 세상의 수많은 불신자들의 마음은 어떠 할런지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 죄를 짓고 정녕 죽으리라 한 하나님의 말씀(2:17))에 따라서 죄의 삯으로 사망이 들어온 마음의 첫 행위는 바로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피해 동산나무에 숨은 것입니다.(3:10) 하나님의 낯을 피해 두려움으로 가득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는 그 마음은 바로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마음입니다. 죄의 삯으로 찾아 온 사망에 두려움으로 달달달 떨고 있는 바로 그 때 하나님은 친히 먼저 부르심으로 사람의 첫사람인 아담에게 찾아와 부르십니다.(3:9) 첫사람인 아담 이후로 오랜 시간 뒤의 사람인 이 시대 오늘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아담에게 그렇게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 먼저 부르신 것 같이 똑같이 동일하게 주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계신 것입니다.

 다니엘 12:4절 말씀에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하였고 전도서 1:18절 말씀에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하였습니다.

바로 현재의 지금 이 시대를 예언한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방송에 본 적이 있는데 현대인의 70%가 우울증 환자요 그  40%가 병원 치료가 필요한 중증의 우울증이라고 하였고 또한 현대는 스트레스의 시대라고 합니다.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거의 없는 현대의 시대입니다. 스트레스도 결국 그 뿌리를 찾아보면 바로 근본 마음은 두려움입니다. 일이든 사람이든 공부이든 물질이든 어떤 것이든 스트레스의 대상에 대하여 두려움이 있는 것이고 이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 마음에 억압이 되고 그것이 스트레스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더 진행하여 우울증으로 더 나아가 조울증 정신분열로까지 진행시켜 나가게 됩니다.

그 마음에는 오직 자유로움은 없고 억압만이 억누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세상(동산 나무- 사탄 권세) 속에 숨어서 술취함의 쾌락과 유흥과 성을 쉬이 생각하여 그 문란함으로 음란 속에 파묻혀 이런 것들을 통하여 마음의 억압에서 벗어나 평안한 자유로움을 얻어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살아가고들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마음에서 해방되어 두려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살아온 삶의 간증을 통하여 저와 여러 성도님들께서 주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외롬과 사색을 즐겼던 거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저녁이면 동네 뒷동산에 앉아서 서산으로 넘어가는 붉은 해와 붉은 노을을 한참을 쳐다보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자라던 저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의 돈을 훔쳐서 우리 삼형제가 군것질을 한 것이 발각되어서 어머님께서 빗자루를 들었답니다. 형과 동생은 바로 잘못 했다고 용서를 빌었는데 저만은 어머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한마디도 안 하기에 결국 어머님이 빗자루를 내려놓으시고는 그 후로 저는 터치를 별로 안 하셨나 봅니다. 어머님이 자주 말씀 하신 것인데 제 위로 형이 한분 더 계셨는데 7,8개월 만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그 후로 바로 저를 임신하고 제가 태어났는데 죽은 형을 빼어닮은 것 같고 한이 되어서 다시 태어났나 보다 생각하셨답니다. 그래서 나이 들어 자주 저는 세상적 지식으로 형의 영혼이 내게 빙의가 되어 제 마음을 사로잡고 있나 하고 생각을 많이 하였었습니다왜냐하면 내 본마음이 아닌 또 다른 이중적 속사람이 내 속에 내재되어있음을 자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는 국민학교5학년 때 한 3개월간 악몽에 시달리며 귀신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었음이 또한 생각납니다. 그후로 중학교 때 아버님께서 두 눈을 완전히 실명을 하시게 되어 서울병원에서 치료를 하였지만 그대로 맹인이 되어 내려오셨고 무당굿에 의지하며 많은 무당이 집으로 찾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왠지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혀 무당 굿이 두려워 많이 피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앞집 집사분의 전도로 아버지의 눈 치료를 위하여 순복음 개척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1년간 주일학교 선생님까지 하며 교회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를 답답함의 두려움이 제 안에 도사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소심한 성격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약대를 들어가게 되었고 그 때부터 저는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님은 실명된 눈으로 아들 셋 대학 다 졸업시키시겠다고 막노동 현장을 다니시며 수없이 죽음의 피투성이가 되어 귀가하셨고 어머님은 청주대 옆에서 하숙생을 치르며 정말 힘겹게 우리 학비를 조달하셨습니다. 그런 아버님 어머님의 힘겨운 세상살이가 소심한 저에게는 돈에 대하여 원망하며 세상 저 편으로 물러서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업도 빠지고 학교생활도 전폐하다시피 하며 변두리 도심의 다방에 하루 해 전 쭈그리고 앉아서 감정을 쏟아내는 글을 쓰기만 하였습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던 어느 날부터 제 마음에 엄청난 두려움과 공포가 찾아오기 시작하였고 가슴의 통증이 엄청나게 찾아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음의 억눌림과 그 정신분열의 고통은 가일층 심해져 가기만 하였습니다. 그 시절에 얼마나 그 힘겨움이 고통스러웠던지 자살 시도도 몇 번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라는 대학생 선교 서클에 인도되게 되었고 성경 연구와 기도의 철저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아마 저는 젊은 혈기와 지식으로 내가 해보겠다고 복음을 전도하고 말씀을 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때에도 제 마음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늘 꽉 채워진 채 저를 놓아주지는 않았습니다. 1년 반이 지난 후에 사탄 부분을 공부하던 중에 무엇인가 제 가슴을 꽉 움켜쥐고 있던 세력이 저를 뒤흔들기 시작했고 총 목자님의 안수기도 중에 저는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전신이 마비되는 듯 하기를 한 시간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만 총 목자님의 사탄아! 떠나가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결국 저는 마음에 더 큰 공포와 불안 두려움만 더 껴안은 채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군대 가서 해결해보자 하고 3학년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가게 되었지만 군대에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군대 입소하던 날 제가 얼마나 마음이 강퍅했던지 바래 주러 나오셔서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어머님께 군대 가서 사람 세 명은 때려죽일 겁니다 하고 군대를 입소하였던 저였습니다. 실제로 군대에서 한 사람을 죽일 뻔 하기는 하였었습니다만 제 눈에 비친 살기를 보고 상대 고참병이 스스로 물러갔기에 면하였습니다. 그렇게 제대하고 약사고시에 합격하고 졸업하기 이틀 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저의 억압된 마음을 수년 전에 시로 지은 것입니다

 

☞♡  방의 사랑  ♡☜

이십 대 초반
내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헤아릴 수 없는 방을 만들었던 때

보이는 내 방에 문을 처음 걸어 닫았을 때
아무도 몰랐다
나도 몰랐다, 문을 닫았음을
나는 보이는 방안에서
서서히 보이지 않는 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방 안에 방을 만들고 문을 걸어 닫았다
그 방안에 또다시 방을 만들고 그 문도 걸어 닫았다
방문을 닫아가면서 몇 개의 방을 더 만들자
가족이 전혀 들어오질 못했다
서너 개의 방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자
친구들조차 아무도 들어오질 못했다
몇 개의 방안으로 더 찾아 들어가자
정신과 의사도 감당하지를 못했다.
몇 개의 방을 더 걸어 잠갔는지
세상이 아무 것도 보이질 않았다
또 몇 개의 방 속으로 들어갔는지 모를 때
신조차도 내 방을 열 수가 없었다.
셀 수 없는 방을 만들고 또 만들고
그 끝없는 방 속에서 나도 없어지고
절대 고독과 이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혼돈으로 인한 두려움과 공포만이
혼령처럼 떠돌고 있었다.

그 때부터 태동하기 시작한 내 시를 붙들고 있는 지금
나는 그 방을 청춘의 방황이었다고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주 오랜 동안 그 두려움과 공포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 그 때의 방에서
몇 개의 문을 열고 나왔는 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방의 문을 열어가고 있는 나의 때이다.
그 방의 시절에 몇 개의 방이 만들어졌었는지
나 자신도 모르기에
내 일생을, 모든 문을 열기에, 바쳐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삶에는, 삶에는
방문을 닫을 때도 있고
방문을 열 때도 있는 것이다.

상처는 아물어 들고
고통은 활짝 열릴 때를 이제는
나는 알고 있다.

   玄山      

 이 시를 지을 당시 이 시의 결론을 이렇게 내린 저는 아마도 아직 진정한 구원을 몰랐던 거 같습니다. 신혼 초에 잠시 신혼의 기쁨에 평안했던 마음은 큰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다시 더 큰 고통으로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심장을 파고드는 무시무시한 통증은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이후에 몇 번의 종합검진상 아무 이상 없음으로 나왔습니다) 그 정신적 혼란과 고통은 아마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짐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음은 공허함과 고독 그리고 외로움이 늘 나를 허허롭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물욕에 대한 탐심은 끝이 없어 늘 근심과 염려는 내 마음을 억누르고 억눌렀습니다. 그 고통에 하나의 탈출구로써 내가 아마도 잡았던 것이 글이었을 것 입니다. 이런 나를 만든 것은 결국 나의 세상을 향한 불신의 죄값이었음이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이런 고통의 세월을 지내다가 한참 후에 신경정신과 병원에 찾아 들어 진단받은 것은 조울증이었고 지금 현재는 공황장애와 정신분열증까지 겹쳐져있습니다. 심장의 통증은 더욱 심해져 가고 있었습니다(전에 몇 번의 종합검진상으로는 이상무였습니다).
다시 검진 받아본 지는 한참이나 되었으므로 현재의 상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나는 결국 결혼생활도 피폐해져 더 이상 감당치 못하고 결혼 20년 만에 종결 지울 수밖에 없었고 아이들은 제대로 아빠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느껴보지도 못하고 상처만 가득 안은 채 그 상처로 자라서

서울에서 지금 대학교 유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 엄마(전처)는 대전에서 힘겹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고...
결국 내 죄값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것을 나는 늘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어머님과 형 동생 등 모든 가족들이 이런 나를 통해 늘 마음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이런 나를 구원해보고자 전처는 무당 굿에 단학과 대처승 절로 온갖 것을 동원해 보았지만 나를 구원해 놓지는 못하고 힘겨운 상처만 안은 채 눈물로 나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 와중에 세상 속에서 타락함과 술에 수없이 헤매었지만 그러나 남는 것은 하룻밤의 쾌락이었고 두 배 세 배로 더해지는 허망함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나를 약국에서 벗어나게 해보려는 차원에서 전처는 사업에 손을 댔다가 우리의 가정경제조차 아주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결과만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빚만 수억 원만 남겨놓았습니다.

몇 년 전에는 이런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서 자살하려고 정신과 약 40봉지를 한꺼번에 털어 넣은 적도 있었습니다. 현재의 내 경제 조건은 가히 좋다고 말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닙니다. 현재 나는 신경정신과에서 십 수 년째 약물을 처방 받아 복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작용이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것만 같아 몇 번 약물을 끊으려고 시도해보았지만 그 금단증상 때문인지 병의 근본적 뿌리 때문인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나이가 더해갈수록 심장의 통증은 더욱 심해져 가고 육신적 정신적 영적인 병의 깊이가 더 해져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심장의 통증은 나를 엄청나게 억누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신신경과 약물이 나를 근본 치유해주는 것은 아니고 혈압당뇨병약물처럼 단지 내 육신 정신 영혼의 고통을 순간순간 모면해가게 유지할 뿐입니다. 누구나 다 그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혹자는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상적인 마음의 영으로 세상과의 어울림이 힘겨운 상황이었습니다. 정상적으로 건강한 현실생활을 유지해가는 것이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계절적인 것은 있어 특히나 여름철에 더욱 힘겹습니다. 현재의 내 형편은 가정적으로는 해체요 약국은 힘겨움이요 사회적 대인관계는 나약함이고 육신과 영혼은 삼십여 년째 사망의 병 중이니 결핍 중에 결핍이며 풍요로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마음에는 삶에 대한 아주 심각한 부정적인 의식이 깊숙이 뿌리내려져 있었습니다. 이런 내 형국을 돌아보면은 그저 패배의 절망 뿐이라, 어디에서도 감사함을 엿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등진 그 죄값임에도 그저 원망과 불평만이 내 입술에 가득함이었습니다. 내 정신의 담대함이 없어 영혼이 혼란 중에 혼란으로 끄들리고 끄들림이나이다. 조그만 믿음의 씨앗이라도 세상에 뿌리내리려 해도 숱한 불신의 새들이 날아와 즉시로 나의 믿음의 씨앗을 냉큼 파먹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혼돈과 혼란이 멈출 줄 모르고 이 종의 영혼의 강으로 사망(사탄)의 권세만이 범람하옵니다.

바로 이렇게 살아온 저는 롬1:29-31절 말씀에서처럼 그런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바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내가 죄인 중에 괴수였습니다.(딤전1:15)

특히나 사랑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아주 무정한 자였습니다. 이것이 저에겐 가장 큰 죄였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은 사망의 세력에 이렇게 짓눌리고 억압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짓눌리고 짓눌린 죄인의 괴수인 저인데도 주님은 친한 한의사 친구 부부가 재혼 상대로 소개하여준 신실한 기독교인인 한 자매 성도님을 통하여 성경을 사주시고 수원의 한 장로 교회로 인도하셨다가 기독교 방송을 통하여 성령세례를 주시고 거의 30년간의 사망의 죄값에 대한 회개를 철철 흐르는 눈물로 하게 하시고 감사의 눈물도 또한 펑펑 쏟게 하시고 주님의 품으로 안아주시고 서원경 교회로 보내 주셨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개인적인 차이는 조금 있을지라도 모두 다 그 마음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세상 속에서 지금 세상이 너무도 성이 문란함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너무도 공허하다는 것입니다. 영혼들이 의지처를 잃고 성()을 헌신짝 같이 버리면서라도 따스하게 자신을 내려놓을 안식처를 찾아서 모두들 헤매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인간 세상에 그런 사랑은 없습니다. 상처만 더 받고 죄의 삯으로 사망만이 더해질 뿐입니다. 어둠(사탄 권세)만이 더욱 깊어갈 뿐입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을 접하고 이렇게 절망과 고통 슬픔의 눈물 가정파탄 죽음에 이르기까지 나를 분열시켜놓은 것은 바로 사탄의 권세였으며 이 사탄의 사망권세와 영적 전쟁을 해야함과 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기도함만을 멈추지 않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런 깊은 어둠 속에 처해진 그런 우리이기에 먼저 부르시러 주님은 친히 오시는 것입니다그리고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순간의 안식처가 아닌 영원한 안식처가 되는 분도 오직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1:3,4)>>

하나님이 제일 처음으로 창조의 말씀을 하신 것이 바로 빛이었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1:2-4)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그 빛은 바로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 빛이신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도 좋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절대로 어둠을 창조하지 않으셨고 바로 그 빛에서 어둠을 분리하여 나누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둠은 절대로 빛을 이길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이 계시면 반드시 어둠은 물러가고 주님의 생명의 빛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빛의 본체이신 주님은 자신의 빛으로 부르신 자의 모든 어둠에 빛을 비추셔서 꽁꽁 얽매였던 사망 속에서 우리를 생명으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행전 4:12절 말씀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세상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저에게도 찾아오셔서 부르신 주님은 제 엄청난 어둠에 빛을 비추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친히 간구하심과(8:26) 하늘 우편에 계신 주님의 간구하심과(8:34) 서원경 교회의 장석연 담임 목사님과 많은 성도님들의 기도 덕택으로 저는 지금 두려움과 공포심 그리고 엄청난 현실의 근심 염려 또한 정신분열 등에서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물질적 탐심에서도 많이 자유로워졌기에 나와 같이 죄의 억압에 고통 당하고 있는 영혼들을 생각하며 정성스런 마음으로 복음 사역에 귀히 쓰이기를 기도하며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고 있습니다이렇게 한걸음씩 변화의 길로 인도해주심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세례식 때 장석연 담임 목사님의 음성을 통하여 " 다윗과 같이 충성스러운 종이 되라"는 말씀을 따라서 지금 나에게 가장 존귀한 성령의 은사는 바로 섬김임을 깨닫고 주님의 섬김에 관한 여러 말씀에 의지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성심껏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섬김을 행하고자 합니다. 여기까지 이렇게 내가 오게 됨은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임을 다시 한번 고백하오며 감사 찬양을 올립니다.

성령세례 때 땅바닥에 엎드려 기게까지 하시어 거기까지 나를 낮추어 겸손함으로 섬김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주님의 음성에 나의 평생 동안 최대한 순종해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사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주님의 사랑과 겸손의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2:5-8)

그 주님을 내 생애 동안 연합함으로 닮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육신의 일은 모두 벗어버리고 영의 일만을 생각하는 자가 되어 이생에서 온전함으로 성령을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또한 간절히 기도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우리는 주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는 순간 새로운 창조의 형상으로써 새로운 우리의 영으로 창조되는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8:14-16)  이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창조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슴에 새기고 새기는 제 마음 판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서 믿음으로 영접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아담이 죄를 짓고 사망에 처해지기 이전의 바로 그 하나님의 창조의 형상으로 내가 하나님의 의로써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라는 것을 믿으며 확신합니다.
"
하나님이 자기의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7) 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창조의 형상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이며 나에게 허락한 하나님의 영광인지를 측량할 길이 없을 것 같습니다. 또한 그런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후로 영원히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으며 살아가기를 또한 간절히 기도합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2:20,21)

아직은 부르심을 받고 갈 길을 모르고 길을 떠났던 아브라함 같이 저도 아직은 갈 길을 모르고 지금 길을 가고 있지만 분명 성령님께서 제 길을 주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리하여 위 말씀과 같이 저를 깨끗하고 깨끗하게 하기에 힘써 경주하고 경주하여 주님의 때에 주님 쓰시기에 합당함으로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되기를 또한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여기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의 저의 간증을 마칠까 합니다.

이 간증의 글도 저의 섬김의 성령의 은사의 글이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간증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충만한 은혜가 되었기를 간절히 소망하오며 모든 성도님들께 믿음이 아직 어린 자가 이런 간증 글을 올림이 교회에 유익함이 아니 될까 심려가 됩니다. 주님께 교회와 성도님들께 유익함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오며 저의 첫 간증 글을 마칩니다.

저와 주 안에서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주님의 택하심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명을 잘 인식하여 장성한 믿음으로 성장하고 장성한 믿음에서 모두 주님께 귀히 쓰임 받는 그릇들이 되시길 간절히 또한 기도합니다. 서원경교회와 장석연 담임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 부목사님들 모든 성도님들께 성령의 은혜 은사 충만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우리 서원경 교회가 이 시대 이 민족 가운데에서 주님의 빛으로 더욱 험난한 수고의 세상을 비추어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이 영광을 모두 주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출처] http://swkch.com  

     대한예수교 장로회 서원경교회 (충북 청주시 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