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
김 정 남 (언론인) |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로버트 프로스트(1894~1963), 피천득 역 ‘두 갈래 길’로 알려진 이 시는 내가 좋아하는 시 가운데 하나이다. 정서가 달라서인지 마음에 와 닿는 외국시는 많지 않은데, 어쩐지 이 시는 인생에 대한 묘한 울림을 내게 주고 있다. 프로스트가 죽던 바로 그 해, 그를 기려 건립된 도서관의 헌정식에서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가 행한 연설에서도 이 시는 맨 처음에 인용되고 있다. 이날 케네디는 「시와 권력(의 상호관계)」이라는 제목의 유명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케네디는 시와 권력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권력이 인간을 교만으로 이끌 때 시는 그의 한계를 일깨워 줍니다. 권력이 인간의 관심영역을 좁힐 때 시는 인간존재의 풍부함과 다양함을 일깨워 줍니다. 권력이 부패하면 시가 정화(淨化)합니다. … 권력을 창조하는 사람들은 그 나라의 위대함에 불가결한 공헌을 합니다. 그러나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 역시 이와 똑같이 불가결한 공헌을 하며 특히 그 의문이 공정할 것일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얼마 전 도종환이 국회의원이 된 뒤 그의 시가 실린 중학교 교과서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다. 나 역시 도종환의 시, ‘접시꽃 당신’을 읽고서는 그의 진하고 따뜻한 감성에 함께하지 않을 수 없었고, ‘흔들리며 피는 꽃’이나 담쟁이와 단풍을 노래한 시를 통해서는 시인의 통찰력과 인생의 예지에 깊은 감명을 받은 바 있었다. 나는 그가 국회의원이 되었다고 해서 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야한다는 주장에는 결코 동조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국회의원이 된 뒤, 시인으로서의 그를 보는 눈이나 그의 시를 읽을 때의 느낌은 예전같지 않다는 것만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비단 나 홀로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
인생의 표준이 달라지고 있다 |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놓고 정작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데 있다. 내가 생각키로는 프로스트는 이 시를 통해 인생이란 그 시작에서 끝으로 이어진 오직 그 한 길 밖에 갈 수 없다는 숙명과 한계, 그리고 가보지 않은 나머지 한 길에 대한 미련과 연민을 노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과연 우리네 인생은 이러저러한 환경과 제약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최초의 길에서 길로 이어진 그 한 길 밖에는 갈 수가 없게 마련인 것이다. 프로스트의 시에서는 그나마 자신이 가야 할 그 한 길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한국인에게는 이제까지 제 뜻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여지마저 없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오직 크고 넓은 한 길만이 있었을 뿐이다. 처음부터 그 길에 들지 못하거나, 그 길을 가다가 낙오하면 인생의 패배자가 되기 마련이었다. 다른 길은 있지도 않았고, 보이지도 않았으며, 설사 간다고 해도 그 길은 나락의 길이었다. 한국인들의 표준형 인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좋은 대학을 나와 정규직에 취직함으로써 주류사회에 편입, 신분상승을 이루고, 그에 걸맞는 상대를 맞아 1~2명 자녀를 두고 이 사회의 중견으로 활동하다가 65세 무렵 은퇴한 뒤에는 쌓아온 부와 명예를 누리며 자녀와 함께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표준이 달라지고 있다. 대학 정원이 고교졸업생 수보다 많아지고, 평균수명도 몰라보게 늘어났으며, 표준가족도 4인가족에서 1~2인가족으로 바뀌었다. 1인가족(25.3%)과 2인가족(25.2%)의 비중이 계속 늘고 있다. 대학졸업 후 취업이라는 외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은 내가 좋아하는 일하다가 공부는 나중에 해도 아무 문제가 없게 되었다. 길은 외줄기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은 외줄기 한번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은퇴 후 제2의 인생이 있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이제 ‘가지 않은 길’도 가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이 선구자가 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러면 가지 않았던 길이 새 길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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