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전염병이 있는 사람 (행 24;1-9)

성령충만땅에천국 2012. 10. 6. 06:45

전염병이 있는 사람

 

                                                                         행 24;1-9.

 

전염병이 있는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더러운 병을 옮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격리시켰습니다. 그래서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항상 고독하게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옛날에 가장 무서운 병은 문둥병이었습니다. 성경에서도 문둥병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문둥병을 고치는 약이 나와서 아무 염려없습니다. 의학을 발달시킨 이들에게 참으로 감사하여야 합니다.

하와이 호노루루에 있는 아이에아(Aiea) 감리교회 부흥성회 초청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정도 가면 카라우파파(Kalaupapa)라는 곳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문둥병자가 생기면 이 섬으로 보냈습니다. 우리 나라 문둥병자들은 소록도로 보냈던 것과 같습니다.

하와이는 태평양 가운데 있는 섬으로 공해가 전혀 없고, 뱀이 전혀 없는 낙원이었습니다.

그런데 1830년 중국 상선이 다녀간 후에 문둥병자가 생겼습니다. 그 병균은 <사람만 살기 좋으냐? 나도 살기 좋다>라는 식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급속도로 퍼진 문둥병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1832년 하와이 인구는 124,049명이었습니다. 그러나 30년 후 1860년에는 66,894명으로 줄었습니다. 반 정도가 문둥병으로 죽은 것입니다. 이런 중에 카메하메하(Kamehameha)가 하와이 근처 132개 섬을 모두 통일하고 첫 왕이 되었습니다. 카메하메하는 문둥병자때문에 고민에 빠졌습니다. 정부 예산의 10%를 문둥병자 치료와 돌봄에 사용하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문둥병자들을 포기하기로작정하고 격리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도저히 도망쳐 나올 수 없는 섬 카라우파파에 가두기로 하였습니다.

뒤에는 600 M 절벽이라 오를 수 없고, 앞에는 상어 떼가 득실거리는 바다라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문둥병으로 조금만 의심이 되어도 배에 태웁니다. 그리고 해변가로 와서 내려놓으려고 하면 죽음의 땅인 것을 알고 내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대나무로 만든 죽창으로 몸을 찔러 바다로 던져졌습니다. 피냄새를 맡고 상어떼들이 덤벼들었습니다. 굶주린 상어들은 삽시간에 이들을 잡아 먹었습니다. 항구 시설이 되어 있지 않기에 배를 육지까지 바짝 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에서 문둥병자들을 바다로 떨어뜨리면 헤엄쳐 가야합니다. 육지까지 가는 도중에 상어 밥이 된 이들이 많았습니다. 설사 육지까지 다행스럽게 헤엄을 쳐나온다 하더라도 살았다고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온 문둥병자들이 10일분의 양식을 빼앗으려고 죽이는 일이 허다하였기 때문입니다.

다미엔이 이 곳에 와서 같이 하나님의 위로를 나누며 복음을 전하다가 문둥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전염병 무서운 것입니다. 격리되어야 하는 병입니다.

 

유럽이 페스트로 3분의 1 인구가 죽은 때가 있었습니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깊은 산속에 집을 대궐처럼 지었습니다. 그리고 담을 높게 성처럼 쌓았습니다. 수 십년 먹을 것을 날라다 창고에 쌓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자기 가족들은 아무도 못 나가게 하였습니다. 이제 제일 안전하게 되었습니다. 페스트 병균이 들어 올 리가 없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분개하였습니다. 페스트 전염병에 걸려 죽은 사람 시신을 담안으로 던져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자 가족들도 모두 전염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전염병은 무서운 병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전염병과 같은 사람 바울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바울이 예수를 믿고 예수를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다고 외치며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이었던 율법자가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만이 구원이라고 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 때문에 예수를 영접하는 사람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과 더둘로 변호사가 로마에서 파견된 벨렉스 총독에게 바울을 고발하였습니다.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이라는 죄목이었습니다. 바울을 앞에 두고 총독 앞에서 이렇게 고발을 시작하였습니다.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옵나이다.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의 반응을 성경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대제사장은 로마 총독에게 이렇게 시작합니다.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옵나이다.

 

정치 잘 해 주어서 우리 민족이 태평을 누리고, 당신의 선견으로 여러 가지 제도가 개량되어 잘 가고 있다고 아부하였습니다.

세 가지 중요한 아침이 있습니다.

1. 태평

2. 선견

3. 개량

태평을 누리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세프스가 쓴 역사책을 보면 벨릭스는 악정을 행한 나쁜 총독입니다.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다른 총독입니다. 그래서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 조차 그를 안 좋은 정치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중입니다. 태평이 아닙니다.

그러나 말할 수 없이 극찬을 하며 높이고 있는 언어가 있습니다.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데 선견이라는 하는 말은 프로노이아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예언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하나님같은 예언의 능력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처럼 높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제도가 개량되었다고 차첨하고 있습니다. 개량되었다는 말은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잘 흘러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정 반대였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쓸 수 있는 최대 언어로 아부하였습니다. 아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벨릭스의 마음을 사서 바울을 죽이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이렇게 구역질나는 아부를 한 후에 계속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같은 자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바울을 전염병같은 사람이요 이단의 괴수요, 성전을 더럽히는 자니 처리하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다른 이야기하지 않고 바울을 전염병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한 말을 깊이 상고하여 보고 싶습니다. 전염병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과 접근하면 전염병에 걸립니다. 무엇인가 전염이 됩니다.

 

한국에서는 저를 성막 전염병자로 보고 있습니다.

저와 접하면 성막이 전염됩니다. 내가 감독회장 후보로 나간다고 할 때에 많은 이들이 아인슈타인을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당에서 아인슈타인에게 제안하였습니다.

“우리 당 대통령 후보를 수락하여 주십시오.”

그가 말했습니다.

“상대성 원리를 강의할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고, 대통령 되려고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나는 상대성 원리를 강의하려고 대통령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인용하면서 나에게도 그렇게 말해 달라는 것입니다.

“성막 강의를 목사님처럼 할 수 있는 분은 한국에 목사님밖에 없고, 감독회장 되려고 하는 분은 많으니 그 분들에게 맡기고 목사님은 성막 강의만 하여 주십시오.”

나는 성막 전염병자같습니다.

 

그 사람만 만나면 돈 버는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돈 전염병자가 있습니다.

워렌 버펫입니다. 그와 식사 한 끼하면서 대화를 나누며 그 분이 하라는 대로 하면 그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분과 식사 한 끼하려면 260만을 지불합니다. 그래도 줄을 서서 제비뽑기를 하여야 합니다.

<워렌 버펫과 함께 식탁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비결을 저는 찾아 보았습니다. 탁월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전염병에 걸려 있는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평가하였습니다. 바울과 만나기만 하면 예수병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바울을 만나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병으로만 전염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만 세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도 전염병이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전염병이란 병은 어떤 병일가요?

1. 전염성이 있어야 전염병입니다.

전염되지 아니하는 병은 전염병이 아닙니다. 전염되어야 전염병입니다.

2. 똑같아져야 전염병입니다.

문둥병은 전염병이기에 문둥병자와 같이 살면 전염병가 됩니다. 똑같은 증상이 나타납니다. 똑같은 모습으로 죽습니다. 이것이 전염병입니다.

3. 강력합니다.

몇 명 같은 병으로 죽는 것은 전염병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한번 돌면 구제역과 같이 수 천만 마리가 동시에 같은 병으로 죽습니다. 강력합니다.

작년에 우리 나라는 구제역으로 홍역을 치루었습니다.

 

그러면 영적 전염병은 무엇일가요? 바울을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복음 전염병

복음이 전염병입니다. 복음만큼 무서운 전염병은 없습니다. 지금 현재 세계 70억 인구중에 복음 전염병에 감염되어 있는 사람이 22억명입니다. 3분의 1이 복음 전염병에 걸려 있습니다.

확실히 복음은 전염병입니다.

복음을 접하면 다 이 병에 걸리게 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영원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병에 걸리는 것보다 더 좋은 병은 없습니다. 복음 전염병에 걸리면 두 가지 선물이 주어집니다.

 

1. 영원한 생명

2. 거룩한 삶

 

이 두가지는 사람에게 가장 고귀한 선물입니다. 영원한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가장 후회없는 삶이 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 하리라>(히 12;14)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5-16)

 

세상 어디를 보나 상식에서 벗어나 거룩을 잃어버린 세상이 되었습니다. 술집에는 거룩이라는 말 자체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예 거룩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청교도들의 생활 철학의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거룩함.>

이것이 청교도들의 삶이었습니다.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은 감리교를 창설하면서 말했습니다.

“성경에 의한 하나님의 거룩함을 전 세계 알리기 위하여 감리교를 창설한다.”


피비 팔머, 핸드리 모울, 앤드류 머레이, 재시 펜 루이스, F.B 마이어, 오스왈드 챔버스, 호레이시우스 보나르, 에이미 카마이클, L.B 맥스웰 이런 분들은 19세기 영의 거성들입니다. 이들의 핵심은 거룩이었습니다. 이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를 지나면서 거룩으로 성결 운동을 일으킨 영계의 거성들입니다.

종교 개혁 전 영적인 거성은 성 테레사,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마담 기용, 뻬루 그루입니다. 이들도 거룩을 제일로 삼았던 이들이었습니다.

복음은 전염병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거룩을 주는 전염병입니다. 복음병에 걸리는 영생에 걸리게 되고 거룩에 걸리게 됩니다.


지난 주간 김 용의 선교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낮예배 설교하셨습니다. 주일 낮 예배에 1시간 10분 설교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책을 한권 주고 가셨습니다.

<십자가의 완전한 복음>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두 아들을 낳은 부모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부모가 함께 세상을 떠났습니다. 10살 된 형과 어린 동생은 졸지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형은 동생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배고프다고 울면 먹을 것을 얻어 먹여 품에 안고 재웠습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우는 동생을 품에 안고 끌어 안고 같이 울며 재운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부모없이 10살 된 형이 동생을 기르며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가혹하였습니다. 그렇게 어려움 속에서 형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폭력배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형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밤이었습니다. 동생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 왔습니다. 술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형! 나 어떻게 하면 좋지? 사람을 죽였어. ”

나중에 알았는 데 술취한 상태에서 죽인 것이라 아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세상이 떠들썩할 정도로 잔인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짐승이라고 말했습니다.

형은 피묻은 옷을 벗기고 목욕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눕혔습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형은 무슨 일이 생기고 있는 지 알아차렸습니다. 형은 재빨리 동생이 벗어 놓은 피묻은 옷을 입었습니다. 그 때 경찰 몇 분이 들어오자 말자 피묻은 옷을 입은 형을 보더니 벼락같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패기 시작하였습니다.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네가 살인하였나?”

“피묻은 옷을 입고 있는 증거보다 더 분명한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네가 죽였지?”

“네.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드디어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며 온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저 사람은 살인할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그렇게 잔인하게 죽일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자기가 죽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형 집행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소원이니 소장님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교도소 소장은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소장님! 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소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에게 편지 한 장 남기게 하여 주십시오.”

소장은 간단한 요구이기에 들어 주었습니다. 편지를 다 쓰고 나서 밀봉하여 소장님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부탁입니다. 제가 죽고 나면 이 편지를 보내 주십시오.”

드디어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집행관들은 다른 때 사형시킨 죄수와 달리 이상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죽이지 말아야 할 사람을 죽이는 것같다.”

그 날 밤 사형집행관들은 잠을 이루지 못 하였습니다. 교도소장은 직원을 시켜 그 편지를 전달하라고 하였습니다. 편지를 들고 주소대로 찾아간 집은 집이라기 보다 차리라 판자 움막이었습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그 편지를 안으로 던져 버리고 돌아 왔습니다. 동생은 자기를 잡으러 온 경찰인 줄 알고 숨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먹지도 못하고 숨어 있었습니다. 몰골이 귀신같았습니다. 편지를 뜯어 보았습니다. 형의 편지였습니다.

“네 죄의 옷을 입고 너 대신 죽는다.” 동생은 미친듯이 편지를 움켜쥐고 교도소로 달렸습니다. 달리며 내내 비명이었습니다.

“형! 안 돼. 안 돼. 나 대신 형이 죽으면 안 돼. 그럴 수 없어. 내가 죽어야 해.”

동생은 교도소에 와서 형이 사형당하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미친 듯이 소리질렀습니다.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어.”

난동을 피니까 교도소장에게 인도되었습니다. 자초 지종 이야기를 듣고 난 교도소장은 난감하였습니다. 소장이 말했습니다.

“이 사건은 끝난 사건이요. 더 이상 떠들지 말아요.” 한 사건 가지고 형제를 둘 다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강제로 내보냈습니다. 동생은 형이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흉악범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형이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형은 천국에 갔는 데 자기는 지옥갈 수가 없었습니다. 천국에 가서 형을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편지를 다시 읽었습니다. 너무 급하여 내용을 다 읽지 못 하였는 데 한 줄이 더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너는 내 옷을 입고 나처럼 살아다오.”

동생은 형의 옷을 찾아 보았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희생하느라고 옷을 사입지 않아서 헌 누더기 옷 한 벌이 남아 있었습니다. 동생은 형의 그 옷을 입고 교회로 갔습니다. 형이 앉아 예배드리던 자리를 물었습니다. 그 자리에 평생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기와 함께 지내던 폭력배들이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너 명이 참 길다. 재수 참 좋다. 사람을 죽이고도 사형당하지 않았다. 우리와 같이 가자.” 동생은 단칼로 자르며 말했습니다.

“이 옷의 주인은 그런 짓을 한 적이 없어. 이 옷의 주인은 그렇게 말한 적이 없어. 나는 이 옷 주인처럼 살 거야.” 그는 평생을 한없이 울기만 하였습니다.

 

복음은 전염병균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염병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들고 외치고 다녔기에 전염병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복음 전염병 균을 가지고 다니면서 영생과 거룩을 전염시키는 바울과같은 전염병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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