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골산☆칼럼; 설교원고모음

[스크랩]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3. 29. 15:48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지난 3월 11일 일본 혼슈 센다이 동쪽 179km 해역에서 상상을 초월한 초대형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은 지진의 규모를 8.4로 발표하였다가 다시 규모 8.8로 수정하였고 또 다시 지진파형 전체자료를 바탕으로 정밀 분석해 규모 9.0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1900년 이후 세계 4번째의 대지진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지진으로 인해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 해안 지역들을 순식간에 덮쳐 일본을 초토화시켰고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까지 잇따르면서 방사능 공포까지 증폭되면서 일본은 공황 상태에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14일 현재 지진이 강타한 미야기현에서는 약 4천여구의 시신이 한꺼번에 발견됐습니다. 오나카와초 해변, 미나미산리쿠초, 야마모토초 등에서 각각 100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미나리산리쿠에서만 현재 만 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져 인명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공식 확인된 사망자를 제외한 행방불명된 숫자도 아직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아 희생자는 4만 명 이상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진 피해가 가장 심한 미야기현의 게센누마 한 도시는 아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진이 발생한지 몇 시간 후인 오후 5시께 항구에 정박해 있던 어선용 연료 탱크가 지진해일로 전복되면서 그때 도시로 쓸려 들어간 기름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불길이 도시 전체로 번진 것입니다. 도시 하나가 지진으로, 쓰나미로, 화마로 3중고를 겪으며 유령의 도시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번 대지진으로 일본 열도가 동쪽으로 약 2.4m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구를 뒤흔든 충격은 자전축에도 영향을 줘 10cm 정도 축이 변화를 일으켰고 또 하루의 길이도 1,000만분의 16초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집 지붕위로 피해 있다가 헬기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생중계로 보이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애간장을 타게 했습니다. 죽다 살아난 사람에게 리포터가 집도 일터도 모두 잃고 처참한 상황에 직면한 지금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쓰리냐고 질문을 하자 이 사람은 그래도 자기는 죽지 않고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지 않냐고 했습니다. 죽으면 집도 재산도 아무 소용없지만 살아라도 있으니 감사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지 않았냐고 했습니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죽음에 대한 감사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가족들은 어떻게 됐는지 아느냐고 물어봐 보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일본 전역에서 피해 지역으로 구호물자를 보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종교를 떠나 세계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일본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이재민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온 구호물자를 나누어 주며 봉사하고 있던 자원봉사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된 것인 줄 몰랐습니다. 나도 여기에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리고 처참한 상황에 직면한 이재민들처럼 집도 재산도 다 잃고 고통 가운데 있을 뻔 했는데 이렇게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것인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이 말은 얼마나 이 사람에게는 피부에 와 닿은 말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은 이천년 전 사도 바울이 근 2년 반이나 심혈을 기울여 목회했던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했던 고별 설교의 마지막 부분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나는 이 말씀을 초등학교 때뿐 아니라 중학교 때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이 신학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워서 이해를 못한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나 자신이 이 세상을 얼마 살아 보지 못한 것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 머리로는 어떻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는 것인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복되다는 것이 세상의 당연한 이치로 생각되어졌으니까.

 

   그리고 이 말씀은 고등학교 들어가서야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넘치도록 채워 주실 것이다. 내가 줌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더 많은 것으로 넘치도록 채워주시기 때문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글자 그대로의 해석이지 나의 심령을 울리는 해석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이 호주 땅에 와 살면서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그 의미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얼마나 복이 있는 것인지. 주고 싶어도 줄 것이 없고 도리어 남에게 빌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있을 때 그 말씀이 나의 말씀으로 피부에 와 닿게 되었으며 정말 그 의미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타인에게 나눠주면 우리의 사랑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랑도 성숙해 가며 또한 나누어 준 사람에게도 사랑이 성숙해집니다.

 

      우리의 소망을 타인에게 나눠주면 우리의 소망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망도 커가며 또한 나누어 준 사람에게도 소망이 자라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을 타인에게 나눠주면 우리의 믿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도 성장하며 또한 나누어 준 사람에게도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의 은혜를 타인에게 나눠주면 우리의 은혜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은혜도 충만하게 되며 또한 나누어 준 사람에게도 은혜가 충만해집니다.

 

   우리의 기쁨을 타인에게 나눠주면 우리의 기쁨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쁨도 배가 되며 또한 나누어 준 사람에게도 기쁨이 배가 됩니다.

 

    우리의 평안을 타인에게 나눠주면 우리의 평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안도 넘치게 되며 또한 나누어 준 사람에게도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내게 줄 것이 있을 때 줍시다. 내게 줄 것이 있는 이때가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줌으로 남이 행복한 것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나의 행복도 배가 됩니다.

 

    지금 고통과 아픔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칩시다.“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행20:35)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김해찬 / 시드니하나교회목사-

출처 : 마라나타
글쓴이 : 엘리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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