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1)2013-5-14
나는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 4사람을 특히 존경한다. 첫째는 신라 불교의 기틀을 놓은 원효 큰스님이요 둘째는 목민사상의 구현자 정약용 선생이다. 셋째는 성웅 이순신 장군이요, 넷째는 일제시대 겨레의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이순신 장군의 고달팠지만 지조 있었던 삶에 대하여 다음 같은 글이 있다. 젊은이들에게 큰 도전이 될듯하여 옮겨 쓴다.
집안이 나쁘다 탓하지 마라.
나는 역적으로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탓에 외갓집에서 자랐다.
머리가 나쁘다 탓하지 마라.
나는 과거에 거듭 낙방하고 서른둘 늦은 나이에야
무과시험에 겨우 급제하였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 불평하지 마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오지에서
말단 수비 장교로 세월을 허송하였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마라.
나는 불의한 직속상관과의 불화로
수차례나 파면과 좌천을 거듭하였다.
몸이 약하다 고민하지 마라.
나는 평생토록 고질병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병앓이를 하였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불평하지 마라.
나는 왜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야 겨우 지휘관이 될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2)2013-5-15
우리 역사에 이순신(1545~1598)장군 같은 인물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후손인 우리들에게는 축복이다. 그런 위대한 인물이 없었더라면 우리 역사가 얼마나 초라하고 부끄러웠겠는가. 이순신 장군의 일생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가 간신배들의 모함을 받아 겨우 목숨만을 건지고 의병장 권율 휘하에서 백의종군하고 있었을 때였다.
이순신 장군을 모함하여 장군의 자리를 차지하였던 원균이 왜군에 패전을 거듭하자 조정에서 그를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조선수군이 거덜이 난 상태라 겨우 12척의 전함이 남아 있었고, 장병들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런 때에 이순신은 12척의 전함을 추슬러서 명량 앞바다에서 왜적 전함 133척을 맞아 격파하여 제해권을 다시 장악할 수 있었다. 그 유명한 명량해전의 승리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조정에 올린 상소문이 있다. 후손인 우리들에게 영원히 본보기가 되는 정신이요 기상이다.
"신에게는 아직 전함 12척이 있나이다. 내가 주지 않은 한 적이 감히 우리의 수군을 허수히 보지 못할 것이외다!"
이런 정황에서 사람들은 말한다.
"남은 전함이 12척 밖에 없나이다. 이 적은 숫자로 어찌 전쟁을 치를 수 있겠나이까?"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달랐다. 그 다른 점이 그를 위대한 지도자, 위대한 인물로 만든 핵심이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
이런 긍정적이고도 창조적인 사고와 관점이 그로 하여금 불가능한 전장에서 승리를 얻게 한 바탕이었다. 오늘 같이 세계경제가 어려운 때에 우리나라에는 자원이 없다. 경제난국을 헤쳐 나갈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때에 이순신 장군이 지녔던 사고방식과 지도력을 지닌 일꾼들이 등장하여야 할 때가 아니겠는가!
이순신 장군(3)2013-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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