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구원의 소나기(수필)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9. 18. 07:37

초여름의 일이다. 김 교수는 차를 빌려서 캐나다의 동북부에 있는 연해(沿海) 삼주를 여행하기로 했다. 대서양에 접해 있는 세 개의 주인 뉴브런즈윅,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그리고 노바스코샤는 김 교수가 평소에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특히 프린스에드워드 섬은 캐나다의 열개 주 중에 제일 작은 주지만 한국에서는 ‘빨강머리 앤’으로 잘 알려진 소녀가 활동하던 배경이 되는 곳으로 그 소설의 작가 몽고메리 여사의 고향이기도 해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보스턴에 있는 아들이 이 세주를 돌려면 5,000킬로미터 이상을 운전해야 하는데 칠순의 중반에 있는 나이로 무리가 될 것 같으니 자기가 휴가를 낼 수 있을 때 같이 가는 것이 어떠냐고 만류했지만 또 아들이 한가해 지기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뭐 별일 있겠느냐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났다. 자기가 예상한 대로 김 교수는 아무 탈 없이 미국의 보스턴에서 출발하여 캐나다의 뉴브런즈윅, 프린스에드워드 섬, 그리고 노바스코샤의 북단에 있는 케이프브레턴 공원을 완주했다. 날씨도 좋았고 운전도 순조로워서 만세를 큰 소리로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프린스에드워드 섬의 북단에 있는 캐번디시 촌에는 앤의 집 모형이 만들어져서 방문객들이 각 방들을 돌아볼 수 있게 하고 있었다. 김 교수는 부인과 함께 몽고메리 여사가 걷던 산책길을 걸으며 작품을 구상하며 걸었을 작가의 모습을 생각하며 감개가 무량했었다. 자기와 아내의 친구들 중에는 벌써 세상을 하직한 사람이 많다. 또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고혈압이나 당뇨로 고생하는 아내를 간호하고 살고 있는 친구도 있다. 그런데 건강하게 또 낯선 외국 땅을 운전하며 다닐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감사하고 미안한 일이었다.

인간은 한치 앞을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오년 뒤에는, 또 내일을 무슨 일을 하리라고 담대하게 계획을 세우며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어쩌면 무모하고 아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에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며 살고 있다.

공항 근처의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노바스코샤의 주도인 핼리팩스를 관광한 뒤 돌아오는 길이었다. 일반 도로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로터리에서 우회전을 할까 말까 주저하다가 오른 쪽으로 급선회를 했는데 램프의 좀 높은 턱에 걸려 바퀴가 펑크 났다. 차를 세우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그 때 생각난 것이 911(한국의 119)이었다. 전화를 걸었더니 서투른 영어를 알아듣고 위치를 물었다. 김 교수는 그곳이 어디인지 정신이 멍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핼리팩스 도심에서 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 상이라고 했더니 다시 이 전화번호로 연락하겠다고 상대방은 전화를 끊었다. 어쩌면 이 신고는 911에 해당되지 않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사고가 나니까 자기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연락할 친구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는 외딴 곳에 덩그마니 서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들에게 알린다하더라도 그가 회사에서 얼마나 바쁠지 알 수 없는 일이었고 또 전화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가 그 먼 곳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우선 차 트렁크를 열고 깜박이를 켠 후 교통정리를 했다. 그러자 지나가던 한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도 그런 광경을 보면 ‘또 사고가 났구나. 곧 경찰차가 오겠지.’하고 지나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고속도로 상에서 멈추어 어찌되었느냐고 물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위로가 되었는지 너무 고마워서 인사를 하고 구급차에 연락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기다리면 된다고 안심시키고 지나갔다. 이런 것이 사람 사는 정이 아니겠는가? 캐나다는 인구가 적어선지 고속도로를 빼고는 차도 별로 없고 길이 한산했다. 얼마가 지나자 이제는 경찰이 연락을 해 왔다.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망연자실 하고 있는데 한 여성이 차를 세우고 또 도움이 필요 하느냐고 말했다. 꼭 필요할 때 웬 도움인가 하고 고마워서 그녀에게 전화를 돌려주며 위치를 좀 일러 주라고 말했다. 그녀는 어느 회사에서 차를 빌렸는지 또 어느 회사 보험인지 묻고 경찰에게 연락한 뒤 떠나갔다. 하나님께서 항상 동행하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경찰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제는 한 청년이 차로 다가왔다.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고 펑크 난 것을 보자 거침없이 트렁크에서 도구를 끌어내더니 차를 들어 올리고 바퀴를 갈기 시작했다. 수호천사나 되는 것 같았다. 이 때 경찰이 왔다. 그들은 젊은이가 차를 고치고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사고 난 경위를 묻고 회사가 가입한 보험회사를 묻더니 여기저기 전화를 해본 뒤 우선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보험 청구를 하라고 말한 뒤 떠나 갔다. 접촉사고도 아니요 인명 피해도 없기 때문에 경찰은 별 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 젊은이와 이야기 하는 가운데 김 교수는 자기는 한국 사람이라고 말했더니 어쩐지 그런 것 같았다고 말하며 그 젊은이는 즐거운 표정으로 잘 도와주었다.

젊은이의 도움으로 스페어타이어를 갈아 끼웠지만 이날이 주말이 되어 어디로 가서 정식 타이어를 갈아 끼울지 막연하였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말하며 정비소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주말이어서 그 정비소는 그 시간에는 더 이상 손님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다시 막막해 졌다. 그 젊은이가 자기는 바쁘니 이제 가보라고 하면 어쩔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괜찮다면서 다른 곳을 수소문해서 찾아갔다. 드디어 주말에도 일하는 한 정비소를 찾아 타이어를 갈아 끼울 수 있었다.

도대체 이 젊은이는 누구인가? 또 소나기처럼 계속 쏟아지는 구원(도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김 교수는 너무 고마워 젊은이의 손을 잡았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천사입니다.” 그 때 김 교수는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 91:11)”는 시편 말씀을 갑자기 생각해 냈기 때문이었다. 이 시편은 911에 1자가 더 붙은 91:11로 외우기 쉬운 장절이었다. 그러자 그는 자기 아내가 한국의 광주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니 자기의 친절을 너무 의외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광주?’ 광주라면 자기가 퇴직하던 대학이 있는 곳이었다. ‘이런 우연이.’ 그렇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기에게 꼭 필요한 그런 청년을 보내주실 수 있었는지 너무 감사할 뿐이었다. 이렇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구원의 손길은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후에 아내는 김 교수가 그렇게 당황하는 동안 차 안에서 계속 기도하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김 교수는 시편 121편을 생각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

시편 기자는 웅장한 산을 보고 있으면 구원의 손길이 거기서 오는 것처럼 처음에는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산이 제아무리 웅장하고 장엄하고 신비한 자태를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생명이 없는 산에서 무슨 도움이 오겠는가? 이 도움이 자연을 넘어 저 먼 곳에서 자기를 지키시는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것을 깨닫고 찬양하는 시를 썼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환난 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구원을 다시 감사했다.

 

반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한국의 고속도로 상에서 자동차의 앞덮개를 열고 서 있는 차를 발견했다.

“우리 가까이 가서 왜 그러는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혼잣말을 하자 아내가 대답했다.

“당신이 힘이 있어요, 기술이 있어요? 아무 것도 없으면서.”

“그래도 무슨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지 않을까?”

“빨리 가기나 해요. 교통 체증만 일으키지 말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 차는 멀리 멀어져 가고 있었다.

김 교수는 바쁘고 바쁜 세상에 한국에서는 사람 사는 냄새가 없어져 간다고 생각했다.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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