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목사/나그네 인생의 나그네 철학! (벧전 1:1-2)
추석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고 있습니다.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이란 두지 말라.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가....>
마치 성경 진리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유행가이면서도 찬송가 같은 유행가입니다. 인생은 나그네라고 베드로도 오늘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1-2)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히 나그네 의식이 강하였습니다. 70년 로마에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은 이 나라 저 나라, 이 곳 저 곳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했습니다. 1948년 독립할 때가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그네 생활을 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 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남아 살고 있는 이들도 유목민이었습니다. 유목민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항상 떠돌아다니면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인생은 모두 나그네입니다.
인생은 나그네이기에 나그네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추석입니다. 온 민족이 고향을 찾아 민족 대이동이 되고 있습니다. 나그네 인생은 나그네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나그네 철학은 무엇일가요?
1. 고향 철학
나그네는 어느 곳을 떠돌아다니든지 궁극의 목적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그네는 어느 곳으로 가든지 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이런 노래를 부르거나 들으면 가슴이 뭉클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자리인 동네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본능을 귀소본능이라고 합니다. 여우는 죽을 때 꼬리를 자기 굴로 향하게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연어는 알에서 깨어 강에 놓으면 바다로 가서 살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습니다. 미국에 가면 폭포 위에서 연어를 부화시켜 놓으니까 폭포 아래로 떨어져 바다로 가서 살다가 돌아옵니다. 수 천 마리 연어가 폭포 물을 타고 올라가는 장면이 관광 자원입니다. 장관입니다. 자기 고향으로 가려는 피눈물나는 노력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국을 떠날 때에는 목에 조그만 흙 자루를 걸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흙을 간직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고향으로 돌아 갈 것을 꿈꾸며 살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살기에 고향을 늘 생각하며 사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삽니다.
그래서 수 천만명이 명절이면 고생을 무릅쓰고 이동합니다.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인천 공항이 생기고 나서 그 주변 영종도 풍속도가 바뀌었습니다. 몇 년 전만 하여도 한 평에 몇 천원 하던 땅들이 지금은 100만대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1,000 평만 가지고 있어도 10억원입니다. 모두 땅부자들입니다. 전에는 섬을 떠난 자녀들이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부모를 찾던 자녀들이 지금은 주말이면 경쟁적으로 먹을 것 마실 것, 선물을 사들고 부모님들에게 잘 보이려고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하늘 나라입니다. 부산은 일부 사람들의 고향입니다. 나는 고향이 이북입니다. 이북은 몇 명의 고향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돌아 갈 마지막 고향은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 하늘나라로 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나라에 갈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0-21)
나그네는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늘 하늘나라를 그리워하면서 그 날 하나님과 함께 살 것을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 나그네 된 우리의 철학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5-16)
2. 사용 철학
나그네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 있는 곳은 영원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떠날 곳, 떠날 날이 있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지금 이 곳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은 내 소유가 아니라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다리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리는 지나갈 때 잠시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교도소에서 사형 당할 사형수가 교도소에 땅을 사두고 죽지 않습니다. 교도소는 잠시 머무는 것이고 교도소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빌려쓰는 것이지 내 것이 아닙니다. 여기 저기 여행을 하면서 땅을 사두는 이는 없습니다. 나그네는 지나가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지나가는 곳에 애착을 갖지 않습니다. 다 사용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야곱은 흉년을 피하여 애굽으로 70명 식구들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살면서도 고향 가나안 땅을 늘 그리워하였습니다.
평생 나그네로 애굽에서 살면서 자기 시체를 고향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고 죽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죽은 후 시신을 날랐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묻었습니다. 야곱이 죽으면서 이렇게 유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창 49;29-33)
야곱은 애급에서 살 때에 아들이 국무총리이기에 극진한 대접을 받고 살았습니다.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나그네 땅이라고 늘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가나안 땅 고향 땅에 가서 살고 싶어하였습니다.
야곱은 죽을 때까지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악착같이 돈을 벌다가 부자가 된 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도 그렇게 애쓰고 힘써서 번 돈이 아까웠습니다. 그는 죽을 때 유언을 하였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가 사놓은 땅을 모두 팔아라. 그리고 내가 은행에 넣어둔 돈도 다 찾아라. 그리고 내 무덤에 나와 함께 묻어다오> 유언이니 할 수 없었습니다. 수 십억 원을 무덤에 넣고 매장하려 할 때였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친구가 오더니 매장할 때 당좌 수표 한 장에 수 십억 상당의 수표를 써서 무덤에 넣으면서 말했습니다. <돈은 내게 주시요> 그는 현찰을 다 갖고 수표 한 장을 시체와 함께 파묻었습니다.
나그네 인생은 이 땅은 다 사라질 것임을 알고 저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 6;19-20)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8)
독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시골길을 한 나그네가 가다가 길이 어두워져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정처 없이 헤매던 중에 숲 속에 불빛이 보여서 찾아 가 보았더니 고래등같이 큰집이었습니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문틈으로 주인이 살짝 얼굴만 보이며 물었습니다.
<누구십니까?> <지나가는 나그네인데 길이 어두워져서 갈 수가 없으니 하룻밤만 묵어 가게 허락하여 주십시요> <우리 집은 여관이 아닙니다. 여관을 찾아 보시지요>
그 때 나그네가 말했습니다. <당신도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언젠가는 이 집도 다른 사람이 차지 할 것입니다. 당신은 이 집을 사용할 동안만 소유주이지 당신도 지나가면 이 집은 다른 사람이 사용할 것입니다. 당신도 이 집에 나그네입니다>
이 말을 듣고 주인은 고개를 끄떡이면서 그 나그네를 집안으로 모셔 하룻밤 자고 가게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그네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소유주가 아니라 사용주입니다. 이런 철학을 나그네 인생은 가져야 합니다.
3. 사랑 철학
나그네는 언제 떠날지 모릅니다. 나그네는 외롭습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나그네 인 것을 알고 나그네끼리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과부심정 과부가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그네 심정 나그네가 서로 알아주어야 합니다.
어느 날 도둑이 어느 집에 들어가서 칼을 들이대며 <손들어>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주인남자가 손을 엉거주춤하며 말했습니다. <신경통 때문에 손을 들 수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도둑은 칼을 놓고 옆으로 앉더니 <나도 신경통이에요>라고 말하며 신경통 이야기만 하다가 돌아가. 나그네인 우리는 나그네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모두를 사랑하는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신명기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신10:1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나그네로 살았었으니 너희 땅에 들어오는 나그네들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그네들을 사랑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추수할 때 꼭 귀퉁이 10분의 1 정도는 추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나그네들이 거두어 먹게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민족입니다.
과수원을 하더라도 10분의 1은 추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가난한 이, 고아, 과부 그리고 나그네들에 아무나 먹게 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는 나그네이기에 나그네 된 모두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욥은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나그네로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아니하고 내가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었노라>(욥31:32) 욥은 나그네를 사랑하였습니다. 내가 나그네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그네를 사랑하게 됩니다.
4. 두려움 철학
나그네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베드로는 우리에게 권면하여 주고 있습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 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나그네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이기에 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쓰러지기 쉽고 넘어지기 쉬운 것이 나그네입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처럼 조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이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
나그네는 항상 유혹이 많습니다. 시험도 많습니다. 싸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이 쪽 저 쪽으로 치우치지도 말고 육체의 정욕에 빠지지 않게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면서 넘어지지 않게 두려움으로 살아야 한다고 베드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그네는 있는 곳에서 짧게 사는 것이기에 항상 두려움으로 살며 조심하며 살다 떠나야 합니다.
역대상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29:15)
그림자같이 짧은 인생을 사는 나그네는 항상 조심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그네입니다. 그래서 때만 되면 고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나그네 된 우리는 나그네이기에 나그네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나그네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할 가요? 1. 고향 철학 2. 사용 철학 3. 사랑 철학 4. 두려움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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