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류영모목사/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딤후 4:9-2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1. 11. 07:15

류영모목사/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딤후 4:9-22)


I.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시간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21세기 첫해 2001년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 예배에 승리하므로 한해 예배의 성공을 이루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이 한해의 마지막이 아니라 여러분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칭찬을 들을까요 아니면 책망을 들을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 처녀 항해 중 침몰되어 무려 1천5백여 명의 운명을 앗아갔던 비운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유품이 언젠가 인양돼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바가 있습니다. 910여 점의 각종 유품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모은 것은 손잡이에 영어로 RLB 라고 이니셜이 새겨진 여행용 가죽 가방이었습니다. 이 속에는 다이아몬드, 샤파이어, 토파즈, 황금반지, 은으로 만든 만년필, 금화가 가득 담긴 지갑 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컴퓨터 조회 결과 문제의 가방 주인은 로버트 L. 백우스 부부로 밝혀졌는데 이들 부부는 사고 직후 구명 보트로 탈출한 사람임을 알고 당국은 그 후손들을 찾아 문제의 가방을 전해 주었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여객선이 왜 침몰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유인즉 이 여객선의 호화스런 분위기에 흥분된 승객들은 쌍쌍이 어울려 먹고 마시고 춤을 추다가 이 기쁨을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무전실로 몰려 들어갔습니다. 한밤중까지 무전은 계속되었고 무전실은 마침내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때 다른 배들로부터 지금 타이타닉 항로에 거대한 빙산이 떠 있다는 무전이 계속 보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전실에서는 이 긴급 무전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이 배는 빙산과 충돌! 캐나다 남쪽 70km 깊이 4천m 해저에 가라앉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 이 방안에는 수없는 전파들이 가득차 있습니다. 어디에 사이클을 맞추느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고 영상이 달라집니다. 무전실에서 어떤 소리를 먼저 들어야 하고 또 어떤 소리는 나중에 들어야 하는지를 분간했더라면 이처럼 엄청난 사고는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내 뜻을 하나님께 전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경청의 시간입니다. 한해 마지막 주일, 돌이켜 보면 아쉬움도 많고 후회되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야단스럽게 뭔가 요구하기보다는 조용히 고개를 숙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시간입니다.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40년 동안 한 교회를 섬긴 매카트니 목사님은 매년 초겨울 같은 본문을 가지고 꼭 같은 설교를 했는데 이 설교를 하는 날이면 입추의 여지없이 시민들이 몰려들어 그 설교를 들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본문, 그 제목 -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으로 저도 이 시간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II. 왜 겨울 전에?

오늘 본문 9절을 통해서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21절에 "특별히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는 사도 바울의 애절한 전파가 울려오고 있습니다.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는 간절한 전보를 보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① 그것은 사도 바울이 여기 기록한 대로 "자기의 최후가 임박한 것을 예감한 까닭입니다.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워진 것을" 그는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즉 순교를 하기 전에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보고 싶었고 또 최후로 친히 만나서 부탁할 말씀도 있었을 것입니다.

② 거듭해서 오라고 하며 특별히 겨울 전에 오라고 재촉했습니다. 그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그때는 지중해를 겨울엔 항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을에 배가 떠나지 않으면 겨울을 지나서 적어도 넉 달 후에야 다시 배가 지중해를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일 디모데가 가을에 오지 못하면 4-5개월 후에야 로마에 오게 될텐데 그 동안에 자기 신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겨울 전에 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옛날엔 겨울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김장외엔 별로 준비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겨울도 준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관리의 지혜를 잃어 버렸습니다.

여기 겨울 전에 오라는 말은 기회가 지나기 전에 오라고 하는 말입니다. 기회가 지나기 전에 할 일이 있습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인생은 곧 기회입니다.

전도서 3장을 읽어보면 만사에 기한이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항해할 수 있는 때가 있고 항해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여행할 수 있는 때가 있고 여행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일할 수 없는 때도 옵니다. 공부할 수 있는 때가 있는가 하면 공부할 수 없는 때도 옵니다. 씨를 뿌릴 때가있고 추수할 때가 있고 추수할 수 없는 때도 있습니다. 인간생활의 성공과 실패는 이 기회를 바로 포착하여 할 일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봄은 씨를 뿌릴 때입니다. 씨를 잘 뿌리면 그 해에 많은 수확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씨뿌릴 때에 기회를 잃고 뿌리지 못하면 그해 농사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학생시절은 공부할 때입니다. 그때에 공부를 잘하고 학문과 기술을 닦으면 인생에 유익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보이는데 부지런히 공부하세요. 21세기는 실력이 없으면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습니다. 재산을 물려받아도 지켜나갈 지혜가 없어집니다. 실력을 키우세요.

「개미와 베짱이」 동화를 아시지요. 개미는 여름철 열심히 일해서 겨울 양식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베짱이란 녀석은 여름내내 시원한 그늘에서 게으름만 피우다가 추운 겨울이 닥치자 먹을 것이 없어 이곳 저곳 다니며 먹을 것을 동냥합니다. 만사에 기회가 있더란 말입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기회가 있을 때에 기름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신랑이 더디 올지라도 넉넉히 기름을 준비한 까닭에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은 준비했지만 기회 있을 때에 기름을 충분히 준비 못했다가 신랑이 더디오니까 불은 꺼졌습니다. 그때에야 기름을 구하러 나갔습니다. 그 사이에 신랑은 왔고 문은 닫혔습니다. 손님은 다 들어갔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문을 열어 달라고 아무리 두드려 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기름을 준비할 기회에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신랑을 맞지 못했습니다.

기름 떨어진 줄 알았더라면 부지런히 채웠을 것을!
여러분은 기름 떨어진 줄이나 알고 사십니까?
여러분의 기름 등은 충만하십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전하만사에 다 기회가 있습니다. 영적 준비나 사역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는 지나갑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일에만 분주하신 분들! 늘 자신의 기름 등을 점검하십시요. 은혜 받을 때 은혜를 받고 믿음이 자랄 때 성장을 해야 합니다.


III. 기회는 지나간다

주물 공장에 가보면 쇳물을 일정한 틀에 쏟아부어 물건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어느 시간이 지나면 쇳물이 굳어 버려서 제틀대로 만들어지지가 않습니다. 때를 맞춰 쇳물은 부어야 제 작품이 나옵니다. 회개에도 기회가 있고, 성공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붙들 그릇이 되지 못하면 그 기회는 내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바닷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고기 통을 옆에 놓고 낚시대를 드리우고 고기 낚는 것을 가만히 보니까 고기를 낚아서는 30cm짜리 자로 재서 그 자막대 보다 큰 것은 바다에 도로 놓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저씨, 왜 작은 것은 담고 큰 것은 살려 줍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분 대답이 "우리집 후라이팬 크기가 30cm이기 때문에 그것보다 큰 놈은 필요가 없어서 도로 놓아줍니다.”그러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수없이 많은 성공의 아이디어, 축복의 기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무전이 지나가고 있으나 그것이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기가 너무 크다고 해서 내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에게는 하루 24시간 동안에 10만 가지 이상의 기회가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엄청난 기회가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지만 그것을 붙잡지 못해서 별 볼일 없이 인생을 허비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해엔 아이디어를 붙잡고 꿈을 붙잡아도 좀 큰 걸 붙잡으십시요. 내 후라이팬 크기에 맞추어 받지 말고 하나님이 안 도와주시면 이룰 수 없을만큼 큼직한 꿈 말입니다.

초대교회 전설에 의하면, 디모데는 겨울이 오기 전에 오라는 스승 사도 바울의 편지를 받고 즉시 떠나지 못하고 교회에 쌓여진 잡다한 일을 처리하고 지중해로 나갔더니 이미 겨울 바람에 항해가 중단되었습니다. 하여, 그 이듬해 이른 봄에 스승을 찾아 갔으나 바울은 이미 옥중에서 순교하였고 디모데는 스승의 무덤을 끌어안고 울고 또 울었지만 후회와 한을 풀 수 없었다고 합니다.

속히 오되 겨울 전에 오라는 바울의 부름에 디모데가 응답했더라면 디모데는 스승 바울의 영력을 전수받고 아니 갑절의 성령을 받아 디모데의 영향력으로 인해 초대 기독교의 모습은 아주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이 후대 사가들의 말입니다.

언제나 기회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기회의 신은 앞머리는 풍성한데 뒷머리는 대머리라고 합니다. 내 앞에 있을 때 붙잡아야지 지나고 나면 붙잡을 수 없습니다.

미국 나이아가라 상류에서 죽은 칠면조 한 마리가 떠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상공을 날던 독수리가 그것을 보고 잽싸게 내려와 고기를 뜯어 먹으며 함께 떠내려갔습니다. 계속 뜯어먹으며 내려가는데 폭포에 가까이 오자 물살이 점점 빠르게 흐르는 것이었습니다. 독수리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하늘의 왕이야. 이 폭포는 전에도 수 차례 왕래했던 곳이 아닌가? 설사 폭포에 떨어지더라도 그 순간 날아도 늦을게 없지.” 계속 고기를 뜯어먹었습니다. 마침내 폭포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날아오르려고 날개를 폈습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발톱이 칠면조 뼈에 박혀 쉽게 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결국 독수리는 날지 못하고 깊은 폭포 속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유비무환이란 말을 많이 듣습니다. 소방서나 일선을 시찰해보면 산꼭대기 여기저기 유비무환이라고 크게 써 붙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날을 위해 준비하면 환난을 막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몹시 바쁘게 살아가던 어느 젊은 사업가에게 어떤 낯선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당신 사업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주일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이제는 주신 사업으로 이웃이나 하나님을 위한 일도 계획을 좀 하시지요?”하더랍니다. "그렇잖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그러나 아직은 젊으니 좀 나이가 든 후에, 지금 잘 벌릴 때 돈을 좀 더 벌어놓고 할 생각입니다.” 몇 번이고 이 사람은 찾아와 똑같은 말을 했고 젊은 사업가는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어느 날 한참 결재서류에 도장을 찍어 내려가는데 이 낯선 사람이 또 찾아왔습니다. "이번이 내가 당신을 찾아오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십시요. 그리고 하늘을 위해 준비를 하십시요.”이번엔 짜증마져 부리며 괴롭히지 말라고 이 사람을 쫓아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이제는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 "이제 당신의 때가 되었습니다. 머물 시간이 없습니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지금 바쁩니다. 곧 중요한 바이어들을 만나야 합니다. 다음에 오시지요.” 그 순간 갑자기 얼음장같이 찬 손이 목덜미를 거머쥐는 서늘함을 느꼈습니다. 죽음의 사자였습니다. 이제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해도 발버둥쳐도 유언이나 하게 해 달라고 매달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 전에 너는 어서 오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활동하기에 불편한 겨울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인생의 겨울이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겨울이 오지 말 것을 기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오히려 겨울에 대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IV. 용서의 기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 앞서 딤4:6-8에서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으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당시 그의 나이는 약 70세로 추측됩니다. 그는 이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것입니다.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고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고... 부음이 되었다는 것은 피를 쏟아서 준비된 제단에 부었다는 뜻입니다. 피를 쏟아 붓는 제사가 이미 드려지고 나의 생은이것으로 끝난다는 이 말은 이미 순교 - 즉 생의 마지막 순간을 내다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두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 점점 추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이런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옷을 가져오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나 그는 육신적인 의미에서만의 겨울을 맞이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고독한 겨울을 맞이했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떠났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으니 이제는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주위에 있는 이들이 모두 가버린 뒤 혼자 겪는 외로움이 그를 더욱 춥게 만든 것입니다. 모두 가버렸습니다. 쓸쓸합니다. 혼자 겪는 외로움이 그를 더욱 더 춥게 만들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자기의 생을 반성하며 마가를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예수를 믿었고 사도 바울이 제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에 따라 갔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병에 걸려 보름정도 꼼짝 못하고 고생하였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마가를 간호하느라고 애를 썼을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주야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병이 겨우 완쾌되자 무슨 까닭인지 사도 바울과 동행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때 바울은 몹시 섭섭했었습니다.

그후 2차 전도여행을 다시 떠나려 할 때 마가는 바울을 찾아와서 동행할 것을 간곡히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마가가 이번에는 도중하차 하지 않고 끝까지 동행할 것을 아무리 맹세를 하여도 사도 바울은 끝내 허락하지 않고 거절하였습니다. 이 일로 이번엔 마가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최후의 날이 가까워 오자 바울은 마가와의 일을 괴로워하며 매우 마음아파 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이 시간 그를 만나 화해를 하고 또 그를 격려해 주고도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마가를 데려오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겨울이 다가올 때 꼭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찾아가서 화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서로의 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꼭 만나서 화해하고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은 없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것이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아프리카의 바벰바 부족사회에서는 반사회적인 범죄행위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혹여 그런 행위가 일어날 경우,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상당히 흥미로운 의식으로 죄를 저지른 사람을 계도합니다. 규범에 어긋한 행위를 저지른 부족원을 마을 한가운데에 세웁니다. 그러면 모든 부족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 부족원 주변으로 모여듭니다. 어린아이도 빠지지 않습니다. 모여든 모든 부족원들은 그 부족원을 둥그렇게 에워쌉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차례로 돌아가면서 가운데 세워진 부족원이 그동안 베풀었던 선행을 한가지씩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의 건설적인 속성과 능력, 선행, 친절한 행위 등 모든 것이 빠짐없이 열거됩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과장하거나 우스갯소리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 의식은 며칠을 두고 이루어집니다. 부족원 모두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어 칭찬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불만이나 무책임하고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족원 전체가 잘못을 저지른 그 부족원의 칭찬거리를 다 찾아내면 의식이 끝나고 즐거운 축제가 벌어집니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부족원은 다시 부족의 일원으로 환영받으며 되돌아오게 됩니다. 이처럼 부족원 모두가 참여하는 긍정적 형태의 심판은 잘못을 저지른 부족원의 자존심을 최대로 살려 주면서 그로 하여금 부족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살도록 만드는 효과를 갖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색다른 심판 때문에 이 사회에선 범죄행위가 없습니다. (브라이언 카바노르, {아주 특별한 우표 한장})

"너희가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용서의 첫 단계는 상대방의 실수와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상대방의 허물과 잘못한 것을 알고도 상대방을 덮어주려 할 때에 상대방은 비로소 고백을 하게 된다고요."

창세기 9장에서 노아가 술에 취한 적이 있습니다. 옷을 다 벗어 던지고 잠을 자는데 함이라는 아들이 그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떠들며 아버지를 힐난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함을 저주해 버렸습니다. 그 다음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기 위하여 등을 지고 뒷걸음질쳐 들어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줍니다. 그때 성경은 "하나님께서 셈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이 겨울이 오기 전에 김장독을 덮듯이, 노아의 하체를 덮듯이 덮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겨울이 오기 전에 덮어 줍시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 받았듯이 나도 이웃에게 용서를 선언하십시다.


V. 말씀 앞에 서야 할 시간

또한 바울은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 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가죽 종이란 헬라어로는 "비블리아" 곧 바이블, 성경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인쇄술이 발달하여 성경책을 갖고 다니기가 편하지만 그 당시의 성경은 가죽 두루마리로서 너무 무거워서 갖고 다니기 불편하였기 때문에 안면 있는 집에 부탁해 놓고 다녔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짐을 느낀 바울은 이제 맡겨 놓은 그의 성경책을 가져 오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임종이 가까워 오니 이 성경을 다시 한번 더 보아야 겠다는 것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 이 시간은 지난 일년간 우리의 삶을 말씀 앞에 세워 보아야 할 시간입니다.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남겨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까지 가지고 갈만한 뭐가 좀 남아 있습니까? 허무한 것들 뿐입니까? 성경을 가지고 오너라. 성경의 거울 앞에 서 보고 싶었던 게지요.

겨울이 가까워졌을 때에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시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을 소리질러 해보고 싶습니까? 오히려 귀를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겨울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하겠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오면 이것 저것 해야 할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사도 바울처럼 멀리 둔 성경책을 찾아다가 좀더 진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 해의 마지막 시간들 속에서 조용히 말씀 앞에 무릎을 꿇어 보십시다. 성경책을 가까이 하십시다. 거기에 겨울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다. 겨울을 아는 사람은 영적인 일에 힘을 씁니다. 영원한 세계, 하늘 나라를 준비할 줄 압니다. 말씀이 능력입니다. 그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되었고 그 말씀 앞에 귀신은 놀라 도망가고 그 말씀 안에서 새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본문 14절은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라고 말씀합니다. 구리 장색이란 옛날에 구리로 우상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이 우상을 만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이 사도 바울로 인하여 장사에 막대한 손해를 보았기 때문에 바울을 심히 괴롭혔습니다. 바울에게는 그의 목회사역을 방해하던 아주 원수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괴롭히던 사람들에 대하여 "주께서 그 행한대로 저희에게 갚으시리니" 하며 하나님께 맡겨 버렸습니다. 내가 더 이상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께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는 "너희도 저희를 주의 하라"고 얘기할 뿐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의 고담이나 역사에 보면 우리는 자기 자식들에게 자기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유언을 하고 죽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은 원수를 갚느니라고 일생을 모두 허비해 버리고 마는 이야기들... 이 얼마나 허망한 인생들입니까?


사도 바울은 "전에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있으니 너도 그들을 주의하라. 그러나 주께서 그들이 행한대로 갚아 주실 것이다. 그러니 너는 모든 것을 주께 맡겨 버려라." 우리들에게 당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에게도 한해의 겨울, 인생의 겨울, 역사의 겨울이 다가와 오고 있는데 아직도 남을 비판하고 내 모든 운명의 잘못이 남에게 있다고 원망을 해야 합니까? 결코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환경을 탓하지 맙시다. 허물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지도 맙시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을 찾아보고 감사하는 기회를 가져 봅시다. 불평하는 사람들과 입장을 한번만 바꿔 생각해 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사장에게 불평했습니까? 내가 사장이라면 나 같은 사람 쓰고 싶을까? 감사하자!
내가 남편이라면 나 같은 아내로 만족할까? 감사하자!
내가 부모라면 나 같은 자식 두고 행복해 하실까? 부모님께 감사하자!
내가 담임목사라면 나 같은 부교역자, 나 같은 권사, 나 같은 교인 두고 목회를 잘 하실까? 감사하자!
내가 며느리라면 나 같은 시어머니를 좋아할까? 그래 감사하자!
현재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뿐입니다.
살아온 인생 후회하지 마십시오. 그 아픔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내 영이 깨끗해졌습니다.
원한을 품고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 버리십시오.
모두 - 겨울이 오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입니다.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아이들은 자라고 있고 나도 나이가 들어갑니다. 이제는 남의 허물 속에서 나를 보십시다. 시비 걸려고 하지말고 허물을 남에게 묻지 마십시오. 자식이나 남편에게 잘못이 있어도 내 탓이라고 하십시오. 실수는 그가 했지만 원인은 내게 있는 것을.

지난 한해동안 내가 겪은 일, 내가 만난 사람, 내 경험한 사건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셨습니까? 언제나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요 반응입니다.

역사상 위대했던 인물들은 모두 부정적 환경을 긍정적으로 대응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프랭클린 D. 루스밸트, 윈스턴 처칠 경, 클라라 바턴 (미국 간호사, 1882년 미국 적십자사 창립), 헬렌 켈러, 마하트마 간디, 테레사 수녀,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위대한 지도자 3백 명을 분석해 본 결과 그들 중 25%는 심각한 심리적 장애를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 중 50%는 유년 시절에 학대를 받았거나 빈곤한 가정에서 성장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그 세계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부정적인 반응보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VI. 겨울은 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랑하고 겨울이 오기 전에 일을 하십시다.

가정생활에도 겨울이 옵니다. 또 부부가 20년 30년 함께 살다보면 서로가 서로를 귀한 줄을 모릅니다. 남편은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오히려 아내가 맛있는 밥을 지어놓고 기다리지요. 아내도 으레 저녁이 되면 남편이 돌아오는 것이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날엔가 저녁에 돌아와야 할 남편이 없어 쓸쓸한 벽이 당신을 반기는 날이 옵니다. 서로 귀한 줄 알고 서로 아끼고 서로 속썩이지 말고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랑하십시다.

교회에서 주일 봉사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심방을 하고 찬양대에서 찬양하던 그 일에도 겨울이 옵니다. 찬양대도 보면 나이드신 권사님, 장로님들이 옛날 생각하고 찬양대에 앉아 보는데 자꾸 음이 플렛이 되고 샵이 됩니다. 바이브레이션이 심해집니다. 더 늙기 전에 열심히 하세요.

우리 인생은 일방통행입니다.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합니다. 겨울이 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21절을 유심히 살펴보면 겨울 전에 오되 "너는 어서 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 몰라도 너만은 어서 오라는 간곡한 부탁입니다. 너만은, 너라도 겨울 전에 와야 합니다. 디모데만이라도 겨울이 오기 전에 바울을 만나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먼길 뛰어가지 못했어도 방향만큼은 제 방향을 잡아야지요. 데마처럼 데살로니가로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바울의 부름이 있는 로마로 가고 있습니까?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까?

로마에서 데살로니가로 가고 싶은 유혹 속에서 어쩔줄 모르고 인생의 황혼 속에 갈등하던 제자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그분은 베드로였습니다. 이미 한번 실패했지만 그는 또 한번의 실패의 위기 앞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점차로 격렬해지자 그는 로마의 언덕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로마의 도시를 빠져나갈 생각 속에 골몰합니다. "내가 늙어서 이 고통을 당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의 발걸음이 로마의 언덕을 넘어가려는 그 순간, 한 영롱한 환상이 그분 앞에 나타납니다. "쿠오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대답합니다. "나는 네가 등지고 떠나가는 로마로 다시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해서 간다.” 이 환상이 베드로의 발걸음을 돌이켰습니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후 그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피를 뿌리며 마지막 죽음을 통해서 주 앞에 영광을 돌렸으며, 자기 생의 마지막을 장엄한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 베드로는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묻습니다. 당신은 로마로 가십니까? 데살로니가로 가십니까?

겨울 전에 돌아오십시오. 새해엔 제 길로 바른 길로 가십시다. 계절은 언제나 인생의 스승입니다. 마지막 주일이 있듯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인생은 고향가는 순례자의 길인 것을 목적지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출발한 인생 바른 길 걸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겨울 전에 너는 오라!"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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