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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참 믿음위를 당당히 걸어가는 능력자 되라 (11,24일 주일 설교)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1. 24. 09:12

참 믿음 위를 걸어는 능력자가 되라 마14:22-33

주신 말씀 마14:22-33절을 중심으로 [참 믿음 위를 걸어가라]는 제목으로 선포되는 멧세지를 통해 큰 은혜의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앞 단락 14:1-12절에서 세례 요한이 헤롯 안디바에 의해 순교당한 사건 이후 13-21절에서 예수께서 메시야 왕으로 행하신 오병이어의 이적 사건에 이어 본문은 물위를 걸으신 사건입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물결로 인해 고난을 당할 때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합니다. 베드로가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하자 주님이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물위로 걸어서 예수님께 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지는 기사입니다.

예수님은 100% 신이시며 100% 인간이시니 물위를 걸어오신다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지만 인간 중에 오직 한 사람 물위를 걸은 사람 베드로가 처음은 좋았는데 마지막에 물에 빠진 생쥐 신세가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걸은 것은 무엇이며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보고 물에 빠진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사람은 물위를 걸을 수 없습니다. 도마뱀이면 몰라도...그런데 베드로는 걸었습니다. 물위를 걸은 것이 아니라 믿음 위를 걸었습니다.

사람은 바람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데 볼 수 없는 바람을 보고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보니 물속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아갈 때 물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바람이 일으킨 파도를 보고 겁을 먹고 두려워하자 물에 빠진 것입니다.

물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은 믿음 위를 걸을 때만 가능한 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믿음 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자가 될 것인가?

첫째로 건너편으로 가라(22-23)

제자들이 가고자 했던 건너편은 어디였을까요?

막6:45절에는 이 때의 행선지를 건너편 뱃새다로 요6:17절에는 가버나움으로 가는 도중이라고 말하며 본장 34절에서는 게네사렛 땅이라 하니 서로 모숨되는 것처럼 보이죠.

여기서 뱃새다 외곽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한 후 뱃새다에서 만나 가버나움으로 가려고 하다가 풍랑을 만나 게네사렛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건너편(πέραν)이란 말은 저기, 다음 역사를 가르치는 지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천국을 말합니다.

성도가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하고 배불리 먹은 군중은 예수님을 추대하여 왕으로 삼게되면 예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광야에서의 삶을 재현시켜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들게 된 것입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 서둘러 이들을 해산시키시고 제자들과 격리시킨 후 예수님은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군중들을 서둘러 해산시키고 제자들을 먼저 보낸 후 혼자 남아 기도하신 것은 예수님이 성주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과의 비밀한 시간을 갖기를 그리도 원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의 달콤한 데이트처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단 둘만의 비밀한 시간을 즐겁고 가치있는 삶으로 여기고 진심으로 갈망한다면,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제의 시간을 떼어놓고 지키는 성도되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비밀한 시간을 갖기 위해 더 욱 힘쓰고 즐거워하는 자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건너편 즉 구별된 성도,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곳, 천국을 사모하는 성도는 기도하기 위한 것이지만 또 하나 자신의 내면세계를 정리하는 타임이라는 것입니다.

내면세계가 정리되어 있어야 질서가 잡히고 외유내강이라고 내적인 질서와 정리가 곧 외적인 부드러운 사랑을 그리고 사단의 강력한 도전과 유혹에 동요함이 없이 우리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고요하게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정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건너편 즉 구별된 삶, 다음의 역사와 능력을 준비하고 천국을 예비하기원한다면 기도와 자기 성찰의 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역사는 해가 진후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하루는 해가 진후부터 하루가 시작됩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환경이라는 일상적인 삶에서 떠나 조용히 자신을 성찰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목표점과 현재의 위치를 보다 명확하게 보고 우리의 그릇된 삶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루의 시작을 하나님께 기도하여 긴밀한 교제로 시작하고 하루의 결산을 자기를 점검하므로 마치는 성도는 오늘도 천국을 향한 천국의 계단을 한 걸음 한 계단씩 오르고 있는 성숙한 성도로 자라게 될 줄 믿습니다.

어떻게 믿음 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자가 될 것인가?

둘째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27)

예수님의 하나님되심 즉 메시야 되심을 선포하는 유명한 양팔 멧세지입니다.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고 왼편에 안심하라는 한 팔이 오른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한 팔이 있는 십자가 형상의 양팔 멧세지입니다.

θαρσείτε , έγώ είμι μη φοβείστε다르세이테 에고 에이미 메 포베이스데

안심하라(θαρσείτε 다르세이테)는 용기를 갖다, 담대하다, 위로하다는 뜻을 가진 θαρσέω 다르세오의 2인칭 복수 현재 명령형으로 현재명령형은 계속되는 동작을 명령하는 경우에 사용되므로 너희들은 지금부터 시작하여 계속하여 겁먹지 말고 용기를 갖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연약한 죄인인 성도로써는 할 수 없지만 내안에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면 예수님이 해 주시기에 예수님의 능력은 전능하신 분이기에 아무리 험란한 고난의 길일지라도 힘들 일일지라도 담대하게 나아가 용기를 갖고 즐거워하며 안심하여 개척하고 헤쳐 나가라는 말씀인줄 믿습니다.

나니 (έγώ είμ 에고 에이미)라는 말씀은 나는 나이다는 뜻으로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 같은 유령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스승인 예수라고 명백히 밝힘으로 제자들을 안심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 나니 (έγώ είμ는 출3:14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אהיה אשראהיה]라며 최초로 하나님의 이름을 말씀하신 그 신명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으로 메시야 되심을 직접 선언했듯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동일한 말로 자신을 소개하심으로 제자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는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μή φοβείστε 매 포베이스데)는 말씀에서 μή는 금지명령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부정어이고 φοβείστε포베이스데는 2인칭 복수 현재명령형입니다.

헬라어에서 부정어와 현재명령형이 함께 사용되면 지금 즉시 그 행위를 금지하라는 즉각 순종을 명령하므로 조건반사적으로 복종해야 할 때 사용하는 말로써 군대에서 “동작그만!”이란 말과 같은 것입니다.

본문에서 비록 풍랑이 일고 있지만 풍랑을 바라보며 두려워하는 마음을 즉각 멈추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자 되시며 천지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우리 마음중심 삶의 중심 믿음의 중심에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이 풍랑을 즉각적으로 멈추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잠잠하라는 한 말씀이면 아무리 흉흉하고 금방 모든 것을 집어 삼킬 것 같은 풍랑도 즉각 즉 최정점에서 스르르 풀어헤쳐져 힘과 위력을 상실하고 잠잠하게 될 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자는 내 삶에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므로 예수님을 닮기 원하며 우리 대장되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성도들에게 풍랑 이는 세상 바라보지 말고 오직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고 바라보며 두려움에서 즉각 벗어나 용기를 내라 합니다.

의심은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과거에도 살아계시고 현재에도 살아 우리와 함께 하시며 일거수 일투족을 간섭하고 인도하실 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새하늘 새땅 새예루살렘에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나의 중심에서 스스로 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세상이 아닌 예수님 중심의 삶을 통해 두려워하지 않고 안심함으로 순종할 때 놀라운 역사 즉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두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확실히 믿고 그 믿음을 통해 나아갈 때 물위를 걷는 놀라운 이적과 기적을 경험하는 능력자가 될 줄 믿습니다.

어떻게 믿음 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자가 될 것인가?

셋째로 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즉각 순종하라 (25-33)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능력의 사람이 되고 불순종하여 의심하면 물에 빠져 구원을 구걸하는 자가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오시니, 걸어오심, 오라하소서. 오라하시니라는 말씀이 무려 네 번이나 나옵니다.

여기서 25절 ήλθεν오시니 28절έλθείν오라하소서, 29절Έλθε오라, ήλθεν가되라는 말은 έρχομαι에르코마이 오다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먼저25절에서 예수님이 물위를 육지를 걷듯 자연스럽게 걷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는 제자들에게 오심으로 주님의 신적능력을 보여주십니다.

고난당한 제자들을 돕고 구원하시려고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먼저 놀라고 그 다음은 유령이라 하며 그 후에 무서워 소리 지릅니다.

27절에서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28절에서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님께 걸어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의 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오라하신 29절 말씀은 유독 대문자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신적명령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믿음 때문에 물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믿음으로 물위를 걷는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위로 튼튼한 다리를 가설하여 바다 위를 걷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보이지 않는 다리를 놓아 주셔서 베드로가 그 물위를

땅위를 걷는 것처럼 걸어서 주님께 나아간 줄 믿습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의 영적 임재위를 믿음으로 걸어가는 성도 되기 원합니다.

30절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물위를 걷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뻐하던 베드로는 채 몇 초도 안 되어서 보이지도 않는 바람을 본 것처럼 바람이 일으키는 파도를 보자마자 두려운 마음이 사로잡혔고 의심하는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하자 즉시 물에 빠져 들어 주님께 절박하게 구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아신 세상을 바라볼 때 두려운 마음과 함께 위험과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인생인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매 바람이 그친지라 제자들 중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깨달은 자는 본문 말씀처럼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지만 어떤 이들은 이를 보고도 단지 막6:52절처러 마음이 둔하여 다만 놀래고만 있는 제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밤새 고난을 받은 것은높은 파도가 배를 뒤흔들어서가 아니라 주님이 배 안에 안계셨기 때문임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배에 예수님께서 오르실 때 우리 인생의 항로는 순탄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도의 문제는 외면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란 배에 예수님을 모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오직 예수님과 함께 할 때 주께서 우리 인생에 개입하셔서 인도해 주실 때만 비로소 순탄한 삶,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될 줄 믿어야 합니다.

성도는 인생이란 배의 선장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인도와 지도하심에 따라서 살아갈 때 그 인생항로가 순탄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고, 주님의 백성인 형제를 사랑하고 , 하나님이 세워주신 주의 종을 사랑하는 것인 줄 확실히 믿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어떻게 믿음 위를 걸을 수 있는 능력자가 될 것인가?

첫째로 건너편으로 가라(22-23)

둘째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27)

셋째로 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에게 즉각 순종하라 (25-33)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명령에 즉각 순종하므로 세상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향해 담대히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주께 나아갈 때 믿음으로 세상 풍랑의 바다위를 걸어가는 능력 있는 성도가 될 줄 믿습니다. 아멘 cka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서대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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