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의 결실을 맺으라 롬1:13-17
주신 말씀 롬1:13-17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의 결실을 맺으라]는 제목으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큰 은혜의 시간되기 원합니다.
사실 본문 말씀은 로마서의 대주제인 이신칭의를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즉 이신칭의가 끝이 되어 기독교가 끝없는 이단의 유혹과 비난을 받게 된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지요.
오늘 제목은 믿음을 소유함으로 시작하여 믿음의 결실을 맺는 성도가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을 소유함으로써 의롭다 함을 받은 아브라함이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 나그네의 삶을 살며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며 평생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므로써 믿음의 조상이 된 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의 결실인 성화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막힘은 더 좋은 길로 안내하는 청신호임을 믿으라(13-14).
사도 바울은 여러번 로마로 가려고 AD57년부터 노력했으나 그때 마다 길이 막히고 AD62년경에야 가게되었습니다.
앞서 선발대로 60여명을 로마로 보내고 여러 가지 방법들을 강구했지만 수포로 돌아가고 안타까워 한번도 가보지 못한 로마교회 성도들을 위해 기독교 신앙의 진수인 16편의 설교를 AD60년경 작성하여 보낸 서신이 최고의 알곡이 된 로마서입니다.
인간 바울은 로마에 하루빨리 가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본문 말씀대로 “길이 막혔도다” 즉 하나님께서 신적 간섭으로 가는 길을 막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지 못한 이유가 인간적인 착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막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는 그 만한 이유가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길이 막혔다(έκωλύθην;엑콜루텐)은 κωλύω(콜뤼오; 막다,방해하다)의 부정과거수동태로써 만류되었다 막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바울이 로마로 가는 길을 막으신 성령님의 뜻은 롬15:22절-28에서 밝히듯이 고린도 지역과 헬라지역에서 하는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며 특히 이곳에서 구제헌금을 이스라엘 교회로 보내는 일을 직접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심히 원했습니다.(11절)
‘세계는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제국의 심방부인 로마에 복음을 전파해야 로마제국을 복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로마행은 바울이 그렇게 열심히 간구했고 소원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취는 죄인의 몸으로 압송당하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로마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유대종교법 위반으로 투옥되었기에 무죄이지만 바울이 상고함으로 가이샤 앞에 서기 위해 로마로 가되 죄인으로 가게된 것입니다.
가이샤 앞에서 재판 받아야 할 죄인이므로 철저한 경계는 물론 가이샤 앞에서 설 때 즉 70명의 원로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자신은 로마의 시민으로써 로마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 진술하고 , 예수그리스도가 진정한 신이고 하나님이며 구원자임을 아그립바왕에게 제시한 것처럼 다시 증거하며 살아계신 예수님에 대하여 영광을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로마까지 로마의 병정들이 압송한다는 명목으로 최고의 경호를 제공하기 위해 복음전도의 장대한 행진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바울의 로마행이 지체된 이유가 로마서를 기록하고, 죄수 상태로 압송되어야 가이샤의 법정에서 직접 가이샤 황제를 만나 복음을 전할 수 있고 기독교에 대해 변증할 수 있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잘 알고 있듯이 로마서는 바울이 설교하고 더디오가 대필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이 하실 때 일이 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기적과 표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주장하십니다. 그렇다고 시간적 개념에서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좋은 일이 생기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장소적 개념에서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 막히고 허락하실 때 터짐이 이루어져야 더 좋은 일이 생기고 부흥의 역사가 밀물처럼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바울이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주님의 복음을 세계 만방에 전하고자 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로마행이 좌절된 것은 더 좋은 복음변증서인 로마서를 완성하고 더 완벽한 호위 가운데가게 하려고 유라굴로 광풍을 보내신줄 믿으시는지요?
유라굴로는 성경에 나와 있는 유일한 헬라어와 라틴어의 결합어입니다.
즉행27:14에서 유라굴로(Σύρακύλων)은 동풍이란 뜻을 가진 헬라어 εϋρος +북풍을 의미하는 라틴어Αquilo의 합성어로써 바람이 북동풍이 불고 있는 게센회오리 바람을 동반한 돌풍이라는 것으로 이때만 사용된 이름입니다.
바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뵈닉스에서 과동할 것을 주장한 선장 및 선주의 말대로 처음엔 순풍을 맞아 환호했으나 멀리가지 못해 유라굴로 돌풍이 불어 배에 타고 있던 죄수 100명 군인 백명 그리고 선원과 선주 96명의 생명을 제외한 모든 재물을 바다에 쏟아 넣고 이때부터 바울이 실질적인 리더가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수천 명의 멜리데 섬의 주민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는 역사가 바울의 손을 문 독사와 추장 보불리오의 부친의 병을 고침으로 말미암아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복음을 전파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니 죄수인 바울이 리더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안전과 양식 그리고 심리적 안정을 주고 무사히 로마까지 가게 된 줄 믿습니다.
바울이 안전하게 백부장의 경호를 받고 로마의 경비로 로마까지 갈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동승했던 사업가들과의 목숨을 함께 나눈 동지가 되어 평생 복음경비를 후원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의 로마행이 막힌 것은 영원히 막힌 것이 아니라 일시 보류된 것 뿐이었습니다.
하나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세운 선한 계획은 결코 좌절되지 않은 줄 믿으셔야 합니다.
바울이 소아시아 전도를 원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유럽으로 건너가라 하십니다. 빌립보교회를 세우고 유럽선교의 전진기지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3차 전도여행시 소아시아에서 3년간이나 복음전도를 하게하십니다.
우리의 계획이 하나님 안에서 세워진 선한 계획이라면 기도하고 오래 참을오 기다리시면 하나님의 보다 크고 원대한 계획이 반드시 더 좋고 더 많고 선한 가운데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이루어짐이 언젠가 반드시 실행될 줄 믿고 그 때와 장소는 모르지만 선하신 하나님의 이루어주실 줄 믿고 감사하며 기다리는 성도 여러분과 제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처럼 하나님께 받은 구원의 은혜를 받은자로써 복음전파의 사명을 부여 받은 복음에 빚진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택하여 다른 사람에게 전할 복음을 맡기시고 그 일을 성실히 감당하라 복음의 빚을 주신 것입니다. 빚을 진자가 빚을 갚지 않으면 채권자에게 소송을 당합니다. 전두환 대통령 추징금을 내지 못하니 자식친인척 친구까지 다 조사당하는 불명예뿐만 아니라 강제추징을 당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를 미칠 것이라고 하듯 울우리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 빚진자로써 상급이 아니라 의무로써 사명으로써 복음을 전해야 될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의 결실인 성화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째로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인줄 믿으라.(15-16)
15절에서 바울은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복음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로마에는 이미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복음을 들은 자들에게 새로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들은 복음인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외에 다른 복음이 아니라 바로 사도들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바르고 참된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의 신앙을 견고히 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도들로부터 직접 복음을 듣지 못한 로마교회에 복음을 진리를 바로 가르침으로 그들을 신앙가운데 견고히 세우고 나아가서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복음을 전파함으로 로마 제국 전역 복음화에 교두보를 확보하고자 한 것입니다.
16절에서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구원 즉 나는 구원 받았다,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 구원의 확신이 있나요? 이렇게 말하는 구원은 무엇을 말하나요?
먼저 구원이란 죄의 권세자로부터 구원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이 악한 영의 지배하에 있고 구원이란 이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구원이란 죄책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합니다.
빚진 사람을 빚을 갚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모든 아담의 후손은 반드시 죽어야 하지만 죄와 아무 상관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묻지 않으시고 대신 갚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이란 죄의 오염으로부터 구원을 말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삶속에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은 우리 몸이 여전히 죄에 오염되어 있어 죄의 유혹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터에서 돌아와 손을 씻는 것처럼 회개와 성결의 씻음으로 성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끝으로 구원이란 죽을 몸이 구원 받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영의 구원이기에 우리의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썩을 몸이 불가분 썩지 않을 몸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은 이미 이루어진 것도 있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있고 장차 이루어질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영혼구원 받은 것에 감사하고, 구별된 삶을 통해 구원을 이루어가야하며, 장차 이루어질 육체적인 구원에 대하여 확신하은 신앙을 갖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는 말씀은 로마서의 주제일뿐 아니라 우리 믿음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의 주제이기도 하며 믿음의 전부이기도 합니다.
능력있는 남편, 능력있는 신부 그리고 능력있는 성도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능력 중에서 최고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이며 죽은 자도 살리실 능력이며 심판주로 다시 오실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한 때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능력을 잃거나 권좌에서 물러나면 초라한 모습을 봅니다. 그러므로 방백이나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은 소멸하지 않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시27:1“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라고 다윗이 노래하듯 일생동안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당당하게 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금식기도, 철야기도, 산기도에서 능력이 오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나오는 줄 믿으시기 원합니다.
복음 안에 인생의 답이 있고, 복음 안에 해결의 길이 마련되어 있다합니다.
이것 때문에 사도 바울은 모든 자에게 빚진 자라고 하면서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해 안간 힘을 쓴 것입니다.
이곳 저곳 기웃거리지 말고 오직 참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더욱 깊이 있고 의뢰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와 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사람의 믿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이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를 함축하는 말로 저런 죄인이 과연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사람까지 다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구원하지 못할 자는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께서는 다 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창기도 세리도 살인강도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구원의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전능하시고 무소불위하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대상은 오직 믿는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서 제외되는 자들이 있는데 바로 불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이 내 문제 가운데 역사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그러한 체험을 얻지 못한 과거의 모든 일들 중에 능력으로 구원을 체험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가 아니라 내 믿음이 온전하지 못했기 때문인 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원하면서도 믿음의 성숙이 없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믿음이 돈독하게 성숙한 성도가 되기 원합니다.
문명, 과학, 지성이 발달할 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만이 인류 구원의 유일한 해답인줄 믿습니다.
에수 그리스도만이 인간의 죄와 죽음 영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모든 민족 국가 나라에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의 결실인 성화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셋째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라(17)
17절에서 말하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하는 이 말씀 즉 이신칭의 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촉발시킨 말씀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의 유전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의로움에 참예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없지요.
나는 태어나서 죄지은 것이 없기에 의롭다 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거듭해서 악에서 떠나고 순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인정하신 당대의 의인임에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9:2“...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서 의로우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욥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면 우리는 구원의 소망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루터도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차단되었다고 번민하다가, 전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께 이르기 위해 인간이 만족시켜야 할 인간의 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의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에 적합하고 받아들여질 만한 의를 믿는 자들에게 가져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에 계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감격이며, 눈물이며, 감사이며, 통곡이며,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놀라운 일을 체험하기 원하시는지요?
고전1:30 “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라는 말씀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하박국 말씀을 통해 창15:6에서 하신 말씀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즉 믿음으로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이때 믿음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εκ πιστεως 믿음의 소유격입니다. 믿음을 소유하게 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여겨주시고 칭의를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겨우 믿음을 가지게 된 것, 의롭다 해주신 것으로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신칭의는 이제 겨우 믿음을 가지게 된 출발선에 선 것입니다.
이제부터입니다. 이제 믿음을 가진 자로써 어떻게 살 것이냐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유월절을 통해 민족적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며 세례를 받았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소금언약이라고 하는 나는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시고 그 말씀대로 살라고 했듯이 이제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면 이제부터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중생의 삶, 거듭난 성도의 거룩한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εις πιστιν 믿음의 목적격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는 이제 믿는 성도답게 예수님의 자녀답게 예수님을 닮은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소유하게 됨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 즉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항상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ing 현재 진행형입니다. 성화는 한 번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평생을 통해 이루어가야 하며 마지막 영화에 들어갈 때까지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견인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인이라 할 수 없고 회개할 것 없다 할 수 없는 죄 속에 보쌈되어진 죄 많은 인간입니다. 죄를 유전받은 죄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믿음을 소유하고 그 믿음을 갖게 되면 의롭다 합니다.
다시 말해 사관생도 시험에 합격하고 믿음을 갖게 하는 기초군사훈련을 잘 마치면 가입교 기간을 지나서 이제 비로소 정식 입교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사관생도의 삶을 통해 국제신사로써 자질을 갖추기 위해 교양과 군사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훈련과정을 잘 마치게 되면 사관으로 임관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믿음으로 이제 사관학교에 의롭다 입합할 자격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금주금연금혼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피 땀 흘리며 성숙한 사관으로 성장해 가듯 우리 모두 하나님보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화를 이루어가는 성도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임관한 사관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듯 언제든지 순교할 마음으로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바울의 고백에 동참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도하고 말씀연구하고 일상의 삶속에서 언행이 구별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 원 합니다. 율법이 아니라 도덕접 사회법 윤리 양심에 저촉되거나 부주의하거나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항상 조심하고 유의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되게 해야 합니다. 나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한 구별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의 결실인 성화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막힘은 더 좋은 길로 안내하는 청신호임을 믿으라(13-14).
둘째로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인줄 믿으라.(15-16)
셋째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라(17)
오늘 우리의 삶이 팍팍하고 어렵고 힘들지요.
그럴지라도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로 더 많이 풍성하게 부어주실 줄 믿고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원합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인줄 믿고 복음 안에서 복음을 전파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도에게 이적과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으면 이제 사관생도로 입학시켜 주셨으니 이제 성화의 과정을 성령님께서 견인해 주심에 순종하며 오래참고 구별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 되기 원 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므로 성화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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