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나의 나된 것은 은혜로라 (고전 15;9-1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1. 25. 09:27

나의 나된 것은 은혜로라 (고전 15;9-10)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0)

 

 

우리 교회 창립 29주년입니다.

지나 놓고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울의 첫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가장 큰 자라라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사울을 바울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가장 작은 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지나 놓고 보니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 교회도 지난 29년을 되돌이켜 보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고백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주님이 주시는 대로 정리하였습니다.

 

1. 100;1의 은혜

1984년 문정도 상가 25평에서 9명으로 시작된 우리 교회가 오늘 이렇게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당시 상가는 밤만 되면 문을 잠가서 들어 갈 수도 나갈 수도 없어서 새벽기도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둘이 옆에 산에 올라가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때는 상가 문이 잠기기 전에 들어가서 숨을 죽이고 있으며 교회에서 자기도 하였습니다.

 

1. 신문 돌리는 사람 따라다니며 전도지 넣기

2. 구약 쓰나요? 신약 쓰나요?

3. 여호와의 밤 철야 기도 유명.

 

개척 교회 성공 비율은 100;1이라고 합니다. 100교회가 개척하면 1 교회가 성공적으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미개국에서 100명 아이를 낳으면 한 명만 건강하게 자란다는 통계입니다.

인간의 성공률도 100;1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65세된 동창들을 조사하였습니다.

이미 죽은 사람 36명

도움을 받으며 사는 사람 54명

근근히 사는 사람 5명

풍족하게 사는 사람 4명

남을 도와주며 사는 성공적인 사람 1명이었습니다.

 

미장원, 음식점도 세우면 100개중에 하나가 성공합니다.

지금 해외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유학의 성공률도 100;1입니다. 우리 교회는 100;1의 성공률속에 들어간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성막 은혜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주신 두 번째 은혜는 성막 은혜입니다. 사실은 우리 교회에 주신 은혜라기보다 우리 교회에만 주신 은혜입니다.

란카스타에서 성막을 보면서 성막을 공부하던 저에게 하나님의 세미한 소원이 강렬하게 치밀어 올랐습니다.

"한국이 성막의 유치원 단계다. 네가 성막 진리를 찾아 전하라.“

성막을 만든 후 우리 교회는 한국에 성막 교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성막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책이 94권 출판되었습니다. 38권 번역되었습니다.


지금까지 253기를 지나 오면서 37,197명이 성막을 수료하였습니다. 수많은 나라 말로 번역되었습니다.

 

쏘련 성막 쎄미나

가장 인상깊었던 성막 쎄미나는 쏘련 성막 쎄미나였습니다. 가라간다에서 열렸는 데 5천명이 모였었습니다.

3박 4일로 열렸습니다.

내 책이 쏘련어로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렇게 내 책이 국경을 넘어 출판될 때마다 나는 아들을 하나씩 낳는 것같은 기쁨이었습니다. 쏘련어로도 완역되었으니 성막 쎄미나를 카자크스탄 가라간다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초청이 왔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갔습니다. 2005년 7월 5일부터 8일까지 가라간다에서 열렸습니다.

수도 알마타에 내려서 가라간다까지 가는 비행기는 화물 비행기를 개조한 것이었습니다. 에어컨이 없었습니다. 사우나탕같은 찜통이었습니다. 온 몸이 땀을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고물같은 비행기를 타고 복음을 전하러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비행기도 타보지 않으셨는 데.............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라간다 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놀랐습니다.

일생 처음 그런 환영을 받았습니다. 프랭카드에 <환영 강 문오 목사>라고 크게 써놓았습니다. 내 이름이 틀렸습니다. 그러나 좋았습니다. 그리고 쏘련 여인들이 치마 저고리를 입었습니다. 색동 저고리를 입은 여자도 있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공항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대단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나를 환영하는 데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흥분스러웠습니다.

가서 보니 놀라웠습니다. 주일 낮에배 5천명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쏘련 목사님들이 1,000명 정도 모였습니다. 내 책 전 권을 모두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2박 3일 쎄미나지만 통역을 두어야 하기에 3박 4일이었습니다. 모두 진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얼굴 표정이 너무 어두웠습니다. 평양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이북 사람들의 표정도 그랬습니다. 공산권 사람들은 어두운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나와서 시간마다 유모어를 하라고 시켰습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재미있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나와서 이런 유모어를 하였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독주를 많이 마시는 나라가 쏘련입니다. 추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동창회에 가서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취하였습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남편 보기가 미안하였습니다.

“술 깬 다음에 들어가자.” 그리고 집앞 공원을 돌며 술으 깨우고 있었습니다. 이 때 뒤에서 남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서!”

“들켰구나!”

그리고 섰습니다.

“안자!”

앉았습니다.

“엎드려! 굴러!”

계속 반복되는 것이었습니다.

“일어나! 엎드려! 굴러!”

정신없이 하라는 대로 하다 보니 술이 깼습니다. 왜 그런 것인가하고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남편이 개 훈련 시키는 중이었습니다.

 

이런 유모어로 시간 시간 시작하였습니다. 즐거운 쏘련 성막 쎄미나였습니다. 공산권이었던 쏘련에 그렇게 복음의 열기가 숨어 있었음에 놀랐습니다.

 

육군 사관학교 성막 쎄미나

육군 사관 학교 신우회 성막 세미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잊을 수 없는 쎄미나입니다. 입학하면 6개월 훈련을 받습니다. 고되고 지루한 훈련을 받고 나면 모두 집으로 빨리 가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이들은 집으로 가지 않고 우리 성막 수양관으로 왔습니다. 3일간 성막 공부를 하고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보고싶은 온 가족들이 오히려 우리 수양관으로 모였습니다. 그래서 수양관이 면회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공부 자세는 일생 처음 보는 자세였습니다. 모두가 부동자세였습니다. 공부하다가 졸리면 눈치 보지 않고 벌떡 일어나 뒤에 가서 섰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잠을 쌔웁니다. 스스로 판단하여 졸림이 사라졌다 판단하면 자리로 돌아 와 앉았습니다. 전혀 수업에 방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관이 와서 말했습니다.

“귀관들은 부자집에서 기르고 있는 돼지같은 신분이다. 부자가 돼지를 기르는 목적은 잔칫날 잡아 잔치상에 올리려는 것이다. 귀관들을 4년 동안 기드는 데 한 사람에게 2억이 들어 간다. 국가가 귀관들에게 이렇게 투자하는 목적은 꼭 하나다.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귀관들의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수억을 들여서 이 몸을 기른 것은 하나님이 쓰시기 위함이다.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드려야 한다.”

사명을 더 다지게 되었습니다.

월요일 밤, 화요일 밤 10시경에 공부를 마치면 통성기도에 들어 갔습니다. 밤 2시까지 기도하는 이들으 많았습니다. 한국의 장교들이 다 이렇게 된다면 군복음화는 쉽게 이루어지고, 군복음화가 이루어지면 민족 복음화는 곧 될 것같다는 기쁨이 강물처럼 밀려 들어 왔습니다.

3일간 공부를 마쳤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시간을 청소시간으로 배정하였습니다. 냇가까지 청소를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한번도 청소하지 않았던 구석구석까지 청소를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바위틈에 들어 있는 담배 꽁초까지 파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장교들의 수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한 명 성막 쎄미나

그 동안 230여회 성막 쎄미나를 하였습니다. 650명 오실 때가 가장 많은 때입니다. 보통 150명 내외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적은 세미나는 한 명을 놓고 한 쎄미나였습니다. 성막 쎄미나를 계획하고 신문광고를 통하여 200여명 목사님들을 확정해 놓았습니다. 그라나 교회에 불가피한 일이 생겼습니다.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로 포기하는 데 600여통 전화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목사님 한 분이 포기된 것도 모르고 왔습니다. 나는 그 분의 성의에 고마워서 3일간 머믈게 하였습니다. 물론 숙식비를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 한 분을 놓고 쎄미나를 하였습니다. 요약으로 잘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그 분과 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인상깊은 쎄미나입니다.

 

24년 동안 있었던 하나님의 자취를 <집착>이라는 책을 출판하며 모아 보았습니다.

생각나는 특별한 사람이 있습니다.

 

남 회우 목사

성막 쎄미나에 참석하셨던 목사님들 중에 잊을 수 없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남 회우 목사입니다.

성막 쎄미나 3일 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휴식시간이었습니다. 점심 시간은 일반적으로 약 1시간 반 정도됩니다. 남 목사님이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는 데 깜짝 놀랐습니다.

머리를 모두 깍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손에는 종이가 들려져 있었습니다.

<강목사님!

바울처럼 머리를 깍고 왔습니다. 나 5가지를 결심하였습니다. 이 종이는 혈서입니다. 손가락을 조금 잘라 피를 냈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몇 가지는 프라이버시라 공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30명 모이는 데 100명 모일 때까지 강대상에서 잔다. 그리고 100명이 모이면 목사님 모시고 부흥회를 연다.>

그리고 그 혈서를 나를 주었습니다. 기도하여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 혈서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1년 후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오셔서 부흥회를 열어 주십시오.” 나는 이렇게 답장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축하합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런데 부흥회만은 갈 수가 없습니다. 부흥회 요청을 일년에 700 교회에서 받고 있습니다. 다 가려면 하루에 두 교회씩 가야 합니다. 미안해요.” 그리고 축하만 하여 주었습니다. 인상깊은 목사입니다.

 

김 갑용 목사

성막 공부를 하신 목사님 가운데 또 잊을 수 없는 분이 김 갑용 목사님입니다. 안양 양의 문 교회에서 목회하고 계십니다.

성막 공부를 하면서 나는 브라질에 있는 데오르 디 아모르 교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교회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미린다 목사님 서재에 붙은 글을 소개하였습니다.

“목사가 불이 있어야 성도가 불구경온다.”

“성도가 불이 있어야 불신자가 불구경온다.”

“사도행전 1장부터 8장까지는 베드로가 썼고, 사도행전 9장부터는 바울이 썼는 데 사도생전 28장부터는 내가 쓴다.” 그래서 그 교회가 그렇게 기사와 이적을 일으키는 교회가 된 것은 미린다 목사님의 이런 목회 철학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목사님은 집으로 돌아가 사무실에 대문짝만하게 써놓았습니다.

“목사가 불이 있어야 성도가 불구경온다.”

그리고 6개월 동안 사무실에서 잤습니다. 그리고 특별 새벽기도를 40일 동안하였습니다. 새벽기도에서 나온 헌금 800만원을 모두 나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강 목사님! 은혜받고 첫 집회 헌금을 모두 가지고 왔습니다. 선교비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나는 그 헌금을 우리 교회 선교지 파나이 섬에 보냈습니다. 가난하여 교회도 짓지 못 하고 망고 나무 그늘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마을에 보내어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지금은 100여명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김 상수 목사

간암 혹이 9cm가 들어 있어서 이제 죽음만을 기다리던 목사입니다. 성막 쎄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짐승 피와 예수님 피를 비교하면서 공부할 때 보혈의 능력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짐승의 죽음이 예수님의 죽음의 예표임을 확인할 때 보혈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김 목사님은 쎄미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 결심을 하였습니다.

<죽기까지 보혈 설교만 하자.>

나는 내가 피곤하거나 교인들이 영적으로 피곤을 느끼면 보혈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 동안 피 설교한 것을 모아서 <피흘림이 없은 즉>이라는 피 설교집을 출판하였습니다.

김 목사는 그 책을 사 가지고 가서 한 편 한 편 설교를 모두 소화시켜서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3개월이 지났습니다.

몸이 가벼워 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병원으로 가서 재검진을 하였습니다. 며칠 후 결과를 보러 갔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암 세포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나오자 말자 내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형님이 내 병을 고쳐 주셨어요.” 내가 말했습니다.

“김 목사는 목사가 되어서도 누가 병 고쳐 주었는 지 몰라? 모든 영광을 하나님게 돌려요.”

그가 말했습니다.

“죄송해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요.” 그는 성도들과 함께 성막을 25분의 크기로 만들었습니다.

“성막 공부를 하다가 간암을 고쳤으니 성막을 만들어 기념하고 싶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막을 내게 기증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종종 쎄미나에 와서 찬송인도하고 간증도 하여 주었습니다.

지금은 미국으로 가서 성막 쎄미나 강사로 크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 정렬 장로 이야기

파나이 섬 선교 사역은 점점 확대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에 돈을 맞출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돈에 일을 맞추어 나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벅차게 일감을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극동방송 설교를 할 때마다 간간히 파나이 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제주 중앙 병원 원장님 어머니 김 정렬 권사님은 이제 인생의 말년이었습니다. 게다가 관절염까지 겹쳐서 누워 있었습니다. 하루가 그렇게 길 수 없었습니다. 밤낮으로 누워 지내는 이들에게는 하루가 48시간처럼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극동방송 다니얼을 돌렸습니다. 불과 수 백만원이면 교회가 하나 완성되고 수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김 권사는 누워서 가만히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앞에 가면 70년을 이 세상에서 살면서 무엇을 하고 왔다고 떳떳히 보고드릴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하여도 부끄러웠습니다. 누워 있지만 하나님께 보고거리를 만들어서 하나님 앞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저녁 퇴근한 아들을 붙들고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얘야! 네 병원에 매점을 날 다오!”

“왜요? 어머니?”

“내가 이렇게 죽을 수 없다. 장사하여 그 이익금로 선교하다가 죽고 싶다. 그래야 하나님께 가서 할 말이 있을 것같다.”

“어머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아도 제주도에서는 돈을 우리 병원이 다 쓸어 가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는 데 어머니까지 매점에 앉아 있어 보세요.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겠어요?.”

“그래도 내가 돈좀 벌어서 하나님의 일 좀 하여야 겠다.”

“어머니! 제가 필요한 돈은 드릴테니 가만히 계세요.”

“네가 돈을 주어서 교회를 지으면 네가 지은 교회지 내가 지은 교회냐?”

“안 되요.”

이런 대화가 3개월을 오고 갔습니다. 그러나 집요하게 매달리는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서 할 수 없이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아요.어머니! 어머니에게 매점을 드릴 게요. 그러나 조건이 있어요. 어머니가 매점에 나타나시면 안 됩니다. 점원을 두세요.”

김 권사님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매점 판매권을 맡았습니다. 점원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익금으로 11번을 하나님께 드랴서 파나이 선교를 하시고 계십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그리고 관절염을 고침받았습니다. 지금은 건강하십니다.

 

이 후규 집사 이야기

파나이에서는 교회 지을 곳에 많이 물색되었으니 교회 지을 돈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습니다. 성막 쎄미나를 통하여 계속 돈을 보냈지만 수입보다 요구가 많았습니다.

그런 중에 우리 교회에서는 성막 쎄미나를 위하여 성막 강의실을 산속에 건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계속 밀려드는 목사님들을 재울 곳에 없서서 할 수 없이 필요에 의하여 건축을 하여야만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있는 돈으로 땅을 계약하고 설계도 값을 주고 나니 그것이 자금의 전부였습니다. 그 후부터는 하나님의 영역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개척한지 2년만에 교회를 건축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건축한 지 2년만에 건축을 하게 하셔서 교회 건물이 부실하였습니다.

숙소를 갖춘 성막 강의실을 4층으로 곤지암에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파나이섬에 건축비를 보낼 수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요청은 집요하였습니다. 할 수 없이 내 방송시간에 방송을 하였습니다.

“파나이 섬에는 200만원이면 건축이 가능합니다. 교회 지을 곳이 1,513 곳이나 됩니다. 더구나 전도도 잘 되는 지역입니다. 산아제한이 없어서 아이들이 15명 내외인 집이 많습니다. 몇 가정만 전도하여도 100명 교인입니다. 이 방송을 듣는 분들 중에 교회를 지어 주시는 헌신자가 있기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런 방송을 하는 중에 일어난 이 후규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그는 태어난 지 3달 되었을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 가셨습니다. 어머니가 결단하여야 했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일평생 혼자 살 것인가 아니면 아들을 고아원에 맡기고 재혼할 것인가 하다가 결국은 여자의 길을 걷기로 하였습니다. 재혼을 결정하였습니다. 3달된 아들을 고아원에 맡겼습니다. 그는 고아원에서 17년을 살았습니다. 고아원을 떠날 때 그는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 평생 50 개 교회를 지어서 바치고 하나님에게 가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30개 교회를 혼자 건축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니 50대가 되었습니다. 자녀도 둘인 데 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는 살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옛날에는 교회 짓는 데 조그만 돈으로 가능하였지만 지금은 엄청난 돈이 들어갔습니다. 이래저래 벽에 부딪쳤습니다. 하나님께 공연히 50 교회를 약속하였다고 후회하기도 하였습니다. 늘 고민이었습니다. 늘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런데 대전으로 내려가다가 차에서 이 방송을 들었습니다. 그가 내게 전화를 주었습니다.

“지금 방송하신 강 문호 목사님이시지요?”

“네.”

“목사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기다려 주시겠어요. 나 꼭 목사님을 만나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꼭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대전으로 내려가다가 고속도로 적당한 곳에서 거냥 유턴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속도로는 그리 붐비지 않았고 중간에 난간있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단한 용기였습니다.

20분에 한번 정도 전화가 왔습니다. 조금 후 드디어 내 방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내 손을 잡자 말자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나를 살렸습니다.” “언제 죽었었나요?”

그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면서 국내만 바라 보았지 해외를 왜 바라보지 못 하였지 후회스럽다고 말했습니다. 50 교회 건축이 그렇게 쉬워졌습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내가 돈을 계속 보내 드릴 테니까 떼어 먹지 마세요.” 나는 이 말에 기분이 상하였습니다. 그래서 불들었던 손을 놓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집사님! 미안해요. 나 당신과 일하기 싫어요. 목사에게 돈을 보내면서 떼어먹지 말라는 사람과 처음부터 일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같아요.” 그리고 내 자리로 와서 앉아 컴퓨터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돌아가 주세요.”

이 집사님은 내 옆에 와서 서서 침묵을 흘렸습니다. 조금 후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내가 너무 말을 실례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은 30 교회를 짓는 중에 3 교회가 참으로 나를 괴롭혔습니다. 서울에서 돈이 온다고 소문이 나서 자꾸만 돈을 떼어 먹었습니다. 교회가 떼어먹은 것이 아닙니다. 건축업자가 그렇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말이지 목사님에게 한 말은 아닙니다. 용서하세요.” 나는 그 말을 받아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그 후 이 집사님은 파나이 섬에 교회를 게속 지어 나가는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김 수연 집사 이야기

파나이 선교를 하는 중에 잊을 수 없는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김 수연 집사님은 위암 말기 환자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3개월 시한부 인생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누워서 방송을 들었습니다. 방송이 끝나자 옆에 있는 어머니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엄마! 나 치료비 얼마 남았어?”

“240만원 남았다.”

“그 돈을 강 문호 목사에게 보내줘!”

“왜 그러니?”

“내가 3개월 있으면 죽을 텐데 하나님앞에 가면 부끄러워.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할 말이 없어. 그 돈을 교회 하나 짓고 그 교회 사진을 품에 안고 죽고 싶어. 그리고 하나님께 치료비로 교회 짓고 왔다고 보고하고 싶어.” “그래라.”

방송후 김 수연 집사는 퇴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목사님! 나 욕심이 하나 있어요. 그 교회 다 지을 때까지만 살아 있게 기도하여 주세요.”

나는 그 돈을 만리부라는 곳에서 맹고나무 밑에서 예배드리고 있는 이들에게 보내어 교회를 짓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아침마다 모여 교회를 짓기 시작할 때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한국의 암 환자가 치료를 포기하고 우리에게 교회를 지어주고 있습니다. 고쳐 주세요.” 나는 가끔가끔 전화로 김수연 집사에게 기도를 하여 주었습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가 지어져 올라가면서 김 수연 집사의 암덩어리가 핏덩어리가 되어 흘러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교회를 완성하였습니다.

6개월 가량 걸렸습니다. 봉헌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교회 앞에 왔을 때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간판이었습니다.

“만리브 교회”

이런 간판이 아니었습니다.

“수연 교회”

교회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수연이란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봉헌예배를 마쳤습니다. 교인들이 봉헌예배에 꽂았던 꽃 5 송이를 내게 싸서 주면서 말했습니다.

“김 수연 집사님에게 갖다 주세요. 고맙다고 전하세요.”

나는 공항에 도착한 후 김 수연 집사에게 전화를 하였습니다.

“김 집사. 나 봉헌 예배드리고 오는 길이야. 기쁜 소식을 전할 것이 있어. 봉헌예배에 꽂았던 꽃을 선물로 가지고 왔어. 더 좋은 선물이 있어. 그 교회에서 집사님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한다고 교회 이름을 수연 교회로 바꾸었어. 나 집사님 집으로 갈게.” 김 수연 집사가 말했습니다.

“오지 마세요.”

“왜?”

“나 그 교회 지으면서 병이 나았어요. 들 것에 들려 퇴원하였지만 지금은 걸을 수 있어요. 다음 주일 목사님 교회에 가서 예배 드릴 거예요.” 다음 주일 그는 우리 교인들의 열열한 환영을 받으며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후 김 수연 집사는 교회를 두 개 더 지었습니다. 파나이 선교에 정성을 다 하였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3년 더 살다가 하나님앞에 갔습니다. 그는 3개 교회 사진을 품에 안고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그가 마지막 한 말입니다.

“내가 50년 동안 한 일보다 위암에 걸려 3년 동안 한 일이 더 많았습니다.”

 

부도 교회 이야기

1994. 8월 20일에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울산의 모 집사님 이야기입니다. 부산 감림산 기도원에서 집회할 때였습니다. 부도로 모든 재산을 다 날렸습니다. 그리고 완전 거지가 되었습니다. 돈을 주어야 할 분들을 모두 모았습니다. 그리고 200만원만 보는 데서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골고루 조금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200만원 가지고 생활을 당분간 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원에 와서 정리중에 나와 만났습니다. 그 200만원을 내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강 목사님! 이 돈 가지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나 빈 손으로 시작하나 문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야 됩니다.

이 돈으로 파나이에 교회를 짓고 하나님께 축복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맹고나무 밑에서 예배드리는 곳에 보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감격하며 그 교회 이름을 <부도 교회>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부도난 집사님을 위하여 예배시간마다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부도난 집사님이 우리 교회를 지었습니다. 축복하여 주옵소서.> 그 분은 이제 한 달 십일조가 500만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됩니다.

 

서울 랜드 성막

성막이 이상한 곳으로 흘러 갈 줄은 나도 예상하지 못 하였습니다.

2008년 5월이었습니다.

과천에 있는 서울 랜드 운영 팀들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우리 서울 랜드는 한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원입니다. 일년에 보통 330만 정도가 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경제적인 불황이 계속되어 사람들이 찾아 오지 못 하고 있습니다. 생활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동물 먹이 값만도 엄청납니다. 동물들을 먹이지 못 하면 죽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없는 값진 희귀 동물들입니다.

성막을 주제로 성막관을 만들어 놓고 전도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성막관 구상을 하여 주십시오.“

이 분들의 방문과 이 분들의 말은 내 마음으로 너무나 기쁘게 하였습니다. 성막을 주제로 하였다는 것도 좋았지만 성막으로 전도한다는 말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나는 즉각 승낙하였습니다. 나는 너무도 좋아서 성막은 무료로 빌려 주기로 하였습니다. 대신에 성막 전도실을 만들고 서울 랜드에서 만들어 놓은 것들은 우리 교회로 옮기기로 하였습니다.

입구부터 출구까지 내가 기획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아내와 서울 랜드를 답사하러 갔습니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서울 랜드에 들어가 본 것입니다. 부장님이 물었습니다.

“아이들을 안 기르셨나요?”

나와 아내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웃었습니다. 우리는 두 자녀를 길렀습니다. 그러나 데리고 여기 저기 다닐 여유가 없었습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에는 가난하여 돈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돈의 여유가 생겼을 때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일년이면 우리 교회에 4천명 정도 목사님이 오셔서 주무시는 것같습니다. 그렇기에 나에게 일년에 부흥회 요청은 700 여 곳이나 됩니다. 눈이 오면 겨울인 줄 알았습니다. 꽃이 피면 봄인 줄 알았습니다. 일년 12 달 아내와 휴가를 즐긴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곳에 가족끼리 단 한번도 와 보지 못 한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상무님이 나를 성막으로 전도할 곳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약 60평 정도 되는 건물이었습니다. 아내가 내 옆구리를 찌르면서 말했습니다.

“이 정도는 작다고 그러세요.”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도 이왕 하는 것이니까 잘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내가 구상하는 것을 하려면 60명으로는 부족합니다.”

“얼마나 되어야 하나요?”

“100 평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상무님은 즉석에서 계획을 수정하였습니다. 성막 전도실로 지은 60평은 아이들 컴퓨터 오락실로 사용하기로 하고 100 평 건물을 다시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입구에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약도>라고 크게 써뿥이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막으로 전도할 사람을 6명 훈련시켰습니다. 1짐승 피로 시작하여 예수 피로 마치게 하였습니다. 짐승 죽음으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죽음으로 십자가를 보여 주게 하였습니다.

양에게 안수하는 장면 조각을 3천만원 가량 들여서 조각하게 하였습니다. 창조부터 심판까지 조각을 간단하게 만들게 하였습니다.

나중에 모두 우리 교회에 진열할 것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모두를 마쳤습니다. 성막 설립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 교인들 100여명이 참석하여 축하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입장로가 15000원인 데 주보를 가지고 오면 4천원만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4천원 내고 들어오면 평균 10,000원 이상 쓰고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서울 랜드가 우리 성막 때문에 정상적인 운영을 넘어 축복을 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서울랜드를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막을 보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7개월 동안 전시하였습니다.

결과는 성막 때문에 서울랜드를 방문한 입장객이 96,000명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하루에 400-500명이 성막을 보기 위하여 서울랜드를 방문하였습니다.

약 4천만원의 입장 수입과 기타 수입 10억원정도 수입을 올렸습니다.

서울랜드를 정상화하는 데 큰 공헌을 성막이 한 셈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서울랜드는 성막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습니다.있던 모든 전시물들은 우리 교회 소유가 되어 우리 교회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이 진아 교수님의 지휘아래 내 구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진아 교수님이 자기 작품이기에 진열후 간직하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양보하여 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성막은 우리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3. 선교 은혜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 특별한 선교 은혜를 주셨습니다. 파나이 섬에 237개 교회를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신학교까지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한 교회가 이렇게 많은 교회를 건축하였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자랑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께는 큰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4. 자양동 은혜

지금 우리 교회는 광진구에서 교회 건물로는 최고로 큰 교회라고 합니다. 지상 9층입니다. 총 연건평 2300평입니다. 서울에서 한강 옆에 붙어 있는 교회는 우리 교회 하나뿐입니다. 더구나 뚝섬 수 십만평을 정원으로 삼고 있어서 경치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래서 일년에 100 쌍 이상이 화촉을 밝히는 교회입니다.

머릿돌 교회가 지어 놓고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공매에 넘겨지는 불운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때 조그만 교회가 인수를 하였습니다. 그 교회가 유지를 못 하고 있었습니다. 사용하려고 인수한 것이 아니라 사업으로 인수하는 이가 끼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매 전문업자의 불순한 의도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달려 들었습니다. 당시 싯가는 약 300억 정도였습니다.

그런 중에 재정적으로 가장 열악한 우리 교회가 그 교회를 사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교회는 강남에 있었습니다. 강남에서 강북으로 교회를 이전한다는 것은 오직 우리 교회만 체험한 사실입니다. 교회 이전을 마치고 났을 때 수많은 이들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해냈습니까?”

내 대답은 간단하였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지요.”

“낮에는 웃었고, 밤에는 울었지요.”

“사람들과 있을 때는 그들과 같이 하였고, 사람들과 헤어지면 늘 하나님만 불렀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종합평가하여 주었습니다.

“파나이에 교회를 많이 지어준 보상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같았습니다. 우리는 그 보상을 이 곳에서 다 받았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앞으로 은혜

이제 내년이면 창립 30주년입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이런 은혜를 하나님이 주실 것입니다. 꿈이 있습니다. 꿈은 욕심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1. 1만 성도

조금 있으면 무리하게 인수하느라고 지은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교회의 모습으로 일만 성도의 꿈을 이룰 것입니다.

 

2. 500 교회 건축

파나이 선교 시작은 500교회 건축의 꿈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이 꿈을 이룰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의 끝날까지 이루려 할 줄 알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3. 소아시아 7 교회

성경중에 끝 성경은 요한 계시록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는 초대 교회중에 가장 왕성하게 부흥되었던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20년 동안 모임을 가져 온 두남 목장회 중심으로 소아시아 7 교회를 돌아 보다가 모두 충격을 받았습니다. 7 교회가 모두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 곳에서 소아시아 교회를 복원하기로 하였습니다. 모두가 동참하여 한 달에 3만원, 5만원 그리고 10만원씩 회비를 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서머나 교회를 복원하였습니다. 이제 버가모 교회를 복원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회원도 그 동안 80명 정도로 늘어 났습니다. 지난 목요일 우리 교회에서 단합 대회를 가졌습니다. 전 회장 임 종삼 목사가 기도하면서 외쳤습니다.

“하나님! 1000명 회원을 주옵소서.”

잘 진행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4. 수도원

선거를 치루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많은 데 교인이 적고, 교인은 많은 데 성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많은 데 진정한 목자를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신조가 아니라 경건이라는 독일 진젠돌프의 헤른후트 공동체 신조를 실천할 수 있는 수도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프랑스의 떼제 공동체 같은 복음으로 살고 복음으로 죽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수도원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질의 목사와 복음의 성도를 길러내는 수도원을 만들어야 겠다는 영감을 하나님이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이 일을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창립 29주년을 맞아 그 동안 주신 은혜 감사하며 앞으로 주실 은혜를 감사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을 그려나가는 미래가 열릴 것을 믿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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