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스크랩] 간증/고바울 목사(공주국제금식기도원장)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7. 11:59

나는 1942년 충남 공주 옥룡동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 기억은 해맑지 못하다.어머니는 4세 때에, 아버지는 8세 때 돌아가시자 형과 누나들은 자기 앞길을 개척하느라 나를 돌봐 줄 겨를이 없었다. 나는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고, 주일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됐지만 집안 사정으로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주일학교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육과정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고, 권사님과 집사님들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목욕도 시켜주고 머리도 깎아 주셨다.옷과 신발 등은 교회에서 얻어 해결했다.


세상적 삶은 고난의 연속


14세 때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가축을 기르기로 결심한 나는 남의 집 농사일을 해주고 받은 품삯으로 닭과 토끼, 돼지, 염소 등을 한 마리씩 사서 길렀다. 3년 만에 닭 100마리, 돼지 10마리가 됐으나 전염병으로 몰살하고 말았다.

동네 선배가 양복기술을 배우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일러줬다. 귀가 솔깃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는구나’ 나는 부푼 꿈을 안고 상경했다. 동대문 양복점에서 열심히 기술을 배웠고,  명동에서도 알아주는 기술자가 됐다.

24세 때는 고향에 내려와 읍내에 ‘미조사’양복점을 차렸다. 교회도 열심히 나갔다. 사장이 된 뒤 지역에서 유지대접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을 사귀게 됐고,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웠다. 어느 날 심방 오신 목사님께 담배 피우다 들키고 말았다. 목사님은 교회에 나와 기도하면서 차츰 끊으라고 권유했지만 나는 곧바로 40일 새벽기도에 들어갔다. 27일째가 되자 담배가 몹시 피우고 싶었으나 40일 기도를 마치자 담배냄새가 역겨울 정도로 싫어졌다.

새벽기도를 하면서 물질의 복을 주시면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데 사용하겠다고 서원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3년 만에 부자가 됐다. 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려 사냥하러 다니며 술을 마셨다. 결국 양복점에 도둑이 들어 돈과 옷감을 몽땅 가져갔고, 손님이 계속 줄고 수금도 되지 않아 부도나고 말았다.

큰 충격을 받아 목이 붓더니 계란만한 덩어리가 잡히고 귀에서는 고름이 쏟아졌다. 시력도 떨어지고 두통도 심했다. 몸은 점점 굳어져갔다. 우울증까지 찾아왔다.서울대병원을 찾아가 정밀진단 결과 종양이 온몸에 퍼져 있고 뇌로 번지면 목숨이 위태롭다고 했다.

공주로 돌아온 나는 한 달 하숙비와 병원비를 준비해 서울 공덕동에서 하숙을 하며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정신과 의사는 아픈 기억을 잊어버리고, 환경을 변화시키라고 조언했다. 여행도 다녀봤지만 집에 돌아오면 죽고 싶은 생각이 엄습했다.

최자실금식기도원을 찾아갔다. 목사님은 ‘금식해 병을 물리칠 사람만 여기 남으라’고 했다. 나는 거부감이 생겨 집으로 돌아온 뒤 병원에 다시 다녔다. 하지만 치료비가 바닥났다. 이제 해볼 것은 금식기도밖에 없었다.


먼저 죄를 회개해야


다시 기도원을 찾았다. 지난번과는 달리 입구에 씌어 있는 성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야 58:6)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기도의 끈을 놓으면 난 죽는다.여기서 병을 고쳐 돌아가든지 토굴에서 죽든지 해야 한다.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병을 고침 받아야 한다’

금식기도 사흘째, 하나님께서는 일곱 마디로 된 밧줄에 꽁꽁 묶인 나를 보여주셨다. 나의 죄패에는 온갖 죄가 쓰여 있었다. 하나님보다 돈을 좋아한 죄, 쾌락을 좇아 산 죄…. 그 죄패를 보면서 울며 회개했다.

주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며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정말 나를 사랑하느냐” 거듭 물으셨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인간의 잣대로 섬기며 오만불손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자 주님은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래 내가 안다. 그러기에 너의 질병을 내가 대신 짊어지고 간다. 너에게 건강을 다시 주었느니라” 그 순간 그 무서운 질병에서 풀려났다.

그때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그런 신유의 은총을 입고 난 후 계속해서 성령의 깊은 은혜를 체험했다. 예수님은 마귀와 귀신을 쫓아내신 후 나를 폭포수로 씻기시고 기름을 부어주시는 은사도 주셨다.

기도원에서 나온 후 이번에는 의상실에 취직해 다시 기술을 배워 대전에 의상실을 차렸다. 신앙생활도 착실히 하면서 돈도 제법 벌었다. 그런데 불황이 닥쳐 다시 부도가 나고 말았다.

다시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했다. “주여,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저의 눈을 뜨게 해 주시옵소서” 마침내 사업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1981년 39세 때 대전 한성신학대에 입학했다. 신학교에 들어가니 너무나 기뻤다. 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재정문제도 하나하나 풀렸다. 수업료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 나를 괴롭히던 채권자가 찾아와서 생활비를 주고 갔다. 한 채권자는 장사밑천을 대 줄 테니 장사하라고 인도하기도 했다. 평생 갚지 못할 것 같던 빚을 신학교에 다니면서 장사를 해서 모두 청산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대전 갈마동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지하성전이어서 철야기도를 하고 나면 몸이 개운치 않았다. 여기에다 신학교에서 배운 대로 신비주의를 완전히 배격하고 목회를 하니 성과가 없었다. 건물세도 못 낼 지경에 이르렀다. 심한 좌절에 빠졌다.

목회의 힘을 얻기 위해 오산리 최자실금식기도원으로 갔다. 40일 금식기도를 작정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종으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금식한지 23일째 되던 날 우리 주님은 나를 만나 주셨다. “내가 일할 수 있는 목회를 해라. 인간의 생각대로 하지 마라. 네 계획대로 하면 성령의 할 일이 없지 않겠는가. 너는 꼭두각시가 돼라” 주님의 말씀대로 기도하면서 목회를 하자 교회는 부흥돼 갔다. 나는 예배드리는 시간과 심방 시간을 빼놓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했다.


인간의 계획대로 하면…


그즈음 엄청난 시련이 닥쳤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둘째 딸이 학교 건널목에서 택시에 치여 숨진 것이다. 보상금으로 1250만 원을 받았다. 그 ‘피값’을 들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기도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기도원 부지를 물색했다. 충남 공주까지 땅을 보러갔다. 23평 되는 성전과 방 3개를 갖춘 폐쇄 직전의 기도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순간 마음이 뜨거워졌다. 교회와 숙소 건축을 시작하자 동네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하나님께 외쳤다. ‘주여! 이곳의 나쁜 마귀를 물리쳐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노하지 말고 참으며 주민들을 더욱 더 사랑으로 대하라’는 응답을 주셨고, 마침내 동네 사람들도 기도원 건축에 협조해주었다.

기도원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는 영육간의 문제를 가진 이들이 많다. 대부분 건강이 좋지 않거나 사업이 잘 안 되는 등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갖고 있다. 치유에는 기본적인 게 있다.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복을 받고 속상하게 하면 벌을 받는 것은 자명하다.

나는 최자실 목사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았다. 소천하시기 바로 전 우리 기도원에 오셔서 부흥집회를 두 번 인도해주셨는데 무척 은혜로웠다. 최 목사님은 “제자의 금식기도원을 축복해주러 왔다”고 하시면서 3시간 30분 동안 찬양하고 춤추시면서 800여 명을 일일이 상담하시고 안수하셨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에서 모여든 성도들이 기도원 골짜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며 영육간의 건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오산리 최자실기념국제금식기도원에서 생사를 걸고 기도하던 옛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병과 가난, 외로움으로 죽어가는 나를 살려주시고 아들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곤 한다. ‘세상에서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출처 : 파란하늘 이야기
글쓴이 : 파란하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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