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스크랩] 김승옥 소설가의 신앙간증 8 -40일 금식기도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7. 11:21

김승옥 소설가의 신앙간증 8 -40일 금식기도

2007.01.11 11:53 | ▣간증/칼럼.. | 3477k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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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0월, 나는 워커힐 쉐라톤 호텔에서 장기간 투숙하고 있었다. 나에게 영화각본을 쓰라고 영화사에서 그 호텔에 투숙시킨 것이다. 집중해서 빨리 끝내달라고 으레 영화사에서 시나리오 작가에게 호텔투숙을 원하는 것이다. 영화감독 배창호씨가 감독할 영화였다. 호텔 방안에는 트윈 베드가 놓여 있었다. 한 사람 정도 설 수 있는 공간을 두고 일인용(一人用)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다. 유리창쪽 침대는 내가, 입구쪽 침대는 배감독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동안 어느 날 미얀마 아웅산 폭파사건이 생겼다. 전두환 대통령이 미얀마 방문중에 북한측 테러를 당한 사건이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예정보다 몇 분 늦게 목적지에 도착한 덕분에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시한폭탄의 폭발로 대기하고 있던 한국측 정부요인들이 많이 사망했던 사건이다. 이 사건과 관계하여 간증하고 싶은 얘기가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그 사건이 생긴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오전 10시경, 아침식사를 함께 했던 배감독은 시내외출하고 나는 내 침대에 발을 뻗고 베개에 등을 대고 비스듬히 누워 성경을 읽고 있었다. 참 재미나게 성경을 읽고 있는데 문득 내 바로 옆, 침대와 침대 사이의 공간에 하얀 옷자락이 보이는 것이었다. 흰옷을 입은 사람이 내 옆에 바싹 서 있는 것이다. 고개를 쳐들어 올려다 보니 대리석으로 빚은 듯 하얀 머리털, 하얀 얼굴, 하얀 수염을 기르신 분이 나를 지긋이 내려다 보고 서계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이구나! 시선이 마주치자 나는 참으로 난감한 마음이 들었다. 그 눈빛은 참으로 여러 가지 표정을 담고 있었다. 책망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격려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할아버지가 말썽꾸러기 사랑스러운 손자를 내려다 보시듯이 그런 지긋한 눈빛으로 조용히 내려다 보고 서계시는 것이었다. 오전 햇볕이 환히 들어오고 있는 호텔 방안에서 영안(靈眼)이 아니라 내 육안(肉眼)으로 예수님을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위엄 때문에 마치 무거운 바위가 나를 내리누르고 있는 듯한 조심스러운 느낌이 나에게 밀려들었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저는 죄인입니다.'고 고백했던 마음이 실감되었다. 그 사랑과 위엄, 그 결백함 앞에서는 나는 숨어야할 죄인일 뿐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기 황송해서 상반신을 세우고 반듯이 바로앉아 마치 꾸중맞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무슨 말씀이 계시겠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 말씀도 없이 조용했다. 잠시 후에 슬그머니 돌아보니 사라지고 안계셨다.
 왜 나에게 당신 모습을 보여주셨을까? 아마도 인도전도의 사명에 확신과 자신감을 나에게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함께 한다, 용기를 내라, 그런 뜻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 날 이후 인도전도에 대한 불안감은 없어졌다. 거꾸로 한국에 남아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순종의 죄책감이 더 깊어질 뿐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 옆에 서 계시니 빛깔만 하얀색일 뿐 보통 사람과 똑같은 모습이오 옷이었다. 1미터 80센티 정도의 키에 보통 사람과 같은 얼굴이었다. 만지면 말랑말랑하게 느껴질 사람의 모습이었다. 하늘세계에서 물질세계로 당신 몸을 자유롭게 나타내시는 분. 부르면 응답하시는 분. 나는 국민학생 시절부터 기독교에서 가장 의심스럽고 궁금했던 것이 처녀 마리아의 임신과 예수님의 부활이었다. 81년도 4월에 하나님의 손이 내 명치를 쓰다듬어주신 이후 하나님이라면 처녀가 임신할 수 있게 하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부활에 대하여는 부활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궁금해했다. 내가 본 하나님의 손은 첫째, 영안으로 본 것이오, 둘째, 그야말로 손만 본 것이다. 이 경험으로써 부활이란 영안으로 볼 수 있는 하얀 영적인 몸이라고 나는 상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까지 찾아오시고 음식도 드셨다고 쓰여 있는 것이다. 40일 동안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셨다고 하시는데 도대체 어떤 상태의 몸일까? 그런데  이제보니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분이 서계시니까 그 몸에 가리워져 그 뒤에 있는 물건은 보이지 않는 아주 인간과 같은 체질의 몸이었다. 다만 그 하얀 빛깔로 보아 지상의 물질이 아닌 영적인 물질이라는 것으로 짐작될 뿐.
 요컨대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 주시기도 하고 모습을 보여주시기도 하는 영원히 살아계신 우리의 구원자이신 것이다. 마치 자녀를 항상 염려하시는 집에 계신 아버지처럼 항상 당신을 주님으로 모신 인간들을 보살피시고 계시는 분이시다. 이 사실을 또한번 야무지게 체험한 것은 그 다음 해, 1984년 6월이었다. 

40일 금식명령
 1984년 6월, 나는 '건강시대'라는 월간잡지 주간(主幹) 일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여성문제로 인하여 유혹을 느끼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눈 한번 딱 감으면 바람을 필 수 있는 그런 유혹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후, 방안에 누워 있는데 아주 가느다랗지만 아주 또렷한 발음으로, 마치 먼 곳에서 내려보내는 말씀이 또렷이 들려오는 것이었다. "광야에 나가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철저히 회개하라. 여호와의 명령이다." 
 아아, 내 마음을 항상 보고 계셨구나! 두려움과 기쁨이 함께 밀려왔다. 음성이 들리지 않고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보고 듣고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의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처럼 보고 믿은 자는 하나님이 안보이면 의심이 들며 다시 죄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하나님을 보지 않고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게된 사람들의 믿음이 더욱 올바르게 굳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한달 치 잡지 편집을 미리 해놓고 휴직을 하고 금식을 시작했다. 서울 서초동 신동아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플라스틱 물통에 생수를 받고 비닐 돗자리를 들고 성경 찬송가 들고 버스로 몇 정거장만 가면 나오는 우면산 솔 숲 속으로 간다. 지금 예술의 전당이 지어진 그 솔숲이다. 나무가 우거지고 행인도 드물어서 하루 종일 성경 보고 명상하고 기도하기에 좋은 산 속이었다. 일주일 정도 금식은 기도하기 위해서 몇 차례 해본 적이 있어서 금식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40일 금식도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다. 죽이실 거라면 그런 명령 내리지도 않으셨을 테니까. 물만 마시며 15일이 지나자 걷기가 힘들 만큼 무릎이 약해지고 머리뼈와 뇌가 따로 노는 듯해졌다.
 금식 20일이 되자 새로운 걱정이 밀려 들었다. 월간잡지란 주간이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식품회사를 하고 있는 내 고등학교 후배가 내 능력을 믿고 돈을 대며 발행하고 있는 잡지였다. 창간한지 얼마 안되어 한 호 한 호를 정성스럽게 만들지 않으면 경쟁이 심한 잡지 시장에서 낙오하기 좋은 것이다. 다음 호 준비 때문에 도저히 회사 일을 몰라라 하고 지낼 수가 없었다. 나는 금식을 중단하고 미음을 먹기 시작하며 잡지사 일로 돌아갔다. 
 잡지 일은 잘 되어 나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심한 죄책감에 빠졌다.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한 것이다. 단 하루도 금식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불순종이다.  10월이 되자 나는 더 참을 수 없어 회사에 사표를 내고 다시 금식으로 들어갔다. 20일 금식을 마치고 솔 숲 속에서 나는 큰 목소리로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세 번 외치고 기도했다. 지난번 20일과 이번 20일, 합해서 40일 금식으로 인정해 주십시오, 그런 기도였다. 산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황홀한 기쁨이 나를 감쌌다. 81년도 4월, 하나님 손 만난 직후, 파주 오산리 기도원에서 회개기도할 때 성령 받으며 황홀해지던 그 황홀감이었다. 미음을 머기 시작하며 일주일쯤 되던 어느 날 새벽, 깊이 잠들어있었는데 손이 내 오른 팔 어깨쪽을 꼬옥 붙잡고 흔들며 나를 깨우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보았지만 아무 형태는 보이지 않는데 손은 나를 붙잡고 일으켜 앉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아버지의 사랑 같은 느낌이 나에게 밀려들며 음성이 아닌 말씀이 한 마디 한 마디 또박 또박 또박 내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내가 입으로 받아서 발음할 수 있는 그런 오묘한 말씀이었다. 이런 음성을 성경에서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라고 표현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시험이 다가 오니 깨어 일어나 기도하라"
'시험 당할 즈음 시험을 피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란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주님은 당신에게 의지하는 자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철저히 보살피시는구나. 나에게는 진실로 나를 보호해 주시며 영생으로 이끌어 주시는 아버지가 계신 것이다.

 간증을 여기서 일단 맺는다. 날마다 삶이 간증거리인데 한이 없이 쓸 수 있을 것이다. 믿는 이마다 간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간증이 더욱 믿음을 돋구워 주기를 바랄 뿐이다.                                                                                 <끝>

출처 :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소망하자
글쓴이 : 쟌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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