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스크랩] 유럽과 인도의 비교/김승옥 소설가의 신앙간증 6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7. 11:15

이 여행은 나에게 참으로 뜻깊은 여행이었다. 하기 어려운 외국여행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감개 깊은 여행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스도교가 만든 유럽과 힌두교가 만든 인도를 비교·평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했고, 이 여행 후 그리스도께서 한국어 음성으로 내 필생의 사명을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중요한 여행이었다는 뜻이다.
 여행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나름대로 목표를 가지고 떠난다.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이룩한 유럽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프랑스와 그리스를 여행하는 동안 그 전원과 정원, 그 교회나 성채, 그 그림과 음악 그리고 사람들에게 스며있는 친절한 표정과 겸손한 풍속 등등에서 역사 깊은 그리스도교의 체취를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 체취란 세계를 단정하고 상냥하게 잘 손질하는 그런 체취였다. 도로변의 잡초들까지도 사람의 손으로 아름답게 가꾸고 사람들이 사용해야하는 시설들은 사람이 쓰기 좋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세상을 잘 관리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유럽이 만들어진 것이다. 세상 만물을 관리할 수 있는 주인의식, 사자나 호랑이까지도 길들여서 서커스를 시킬 수 있는 관리자 의식, 내가 이 세상 만물을 우리 집 살림처럼 가꿀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긍심은 성경을 배움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하나님 없는 종교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자연을 숭배하고 자연과 일치하라는 자연의 노예로 가르친다. 그런 종교 속에서는 사람은 큰 느티나무를 신격화하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하고 코끼리나 소를 신성시하여 인간 이상으로 경외한다. 그러나 유럽은 예수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고 그 분만이 가지고 계신  능력 즉 하나님과 나 사이의 막혀있던 관계를 뚫어주어 하나님과 부자(父子)관계를 맺어주는 그 능력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이 만든 세계,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으로 만들어온 세계였다. 물론 하나님과 반대되는 마귀의 세계 역시 유럽 속에도 있다. 현세가치 지향적인 로마(Rome)의 전통도 유럽의 어두운 면을 이루고 있다. 그리스도교가 창조를 그리고 로마가 파괴를 일삼으며 유럽의 역사를 만들어온 셈이다.
 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로 유럽에 갔더라면 그 모든 역사와 현실들이 기독교의 성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백인들의 우수한 유전적 성향에서 나온 것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종교를 무시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민족주의에 매달린다. 유럽인조차도 예를 들어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실천적 행동인인 히틀러 같은 유럽인도 아리안 민족의 유전적 우수성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선진문명을 만든다고 민족주의를 내세웠을 정도이니 문화를 만들어내는 종교의 힘을 무시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민족주의적 시각을 갖게 되는 것 같다. 백인종의 우수함이 이 선진된 문명을 만들었다고 보게 되면 다른 민족인 나는 주눅이 크게 들었을 것이다. 아시아 사람들 대부분이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에 매달려 유럽문화를 백인종의 문화라고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기네 비기독교적 전통문화를 굳이 고집하며 '동(東)은 동, 서(西)는 서'라고 우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종교가 유럽을 만들었다고 보게 되니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십자가 달린 교회 밑을 걸어가는 유럽인들이 마치 오래 사귄 대등한 친구들처럼 낯익게 느껴지고 거리풍경이나 생활하는 모습 등이 마치 그 속에서 내가 오래 살아온 것처럼 친밀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동시에 우리 한국이 하루 빨리 그리스도의 문화로 성숙하게 되면 유럽과 함께 지상에 세워진 그리스도 나라로서 정체성(正體性)을 가지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민족을 초월하는 종교적 정체성, 예를 들어 동쪽의 말레이시아와 서쪽의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으로 정체성을 같이 하고 있듯이 그리스도교 자체가 형성하는 사회의 모습이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사회로 존재하는 것이다. 
 유럽이 먼저 그리스도화 하였고 우리나라도 이제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화하고 있고 다른 종교의 나라도 앞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변화해갈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다시한번 말하지만 인간이 살기 좋도록 자연과 풍속을 계발(啓發)하는 진정한 과학적 나라이다. 그것이 앞으로 이 세계의 역사이다. 전통 종교와 갈등으로 전쟁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한 나로서는 미래의 세계, 인간이 가야할 역사는 불을 보듯 훤히 보이는 것이다. 성경 속에 '원수가 네 발등상이 될 때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는 그리스도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세계역사의 진행방향 곧 그리스도 나라의 완성으로 가고 있는 인류의 역사를 분명히 선언하고 계시는 것이다. 세계인들은 먼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 유럽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고찰하면 후배가 본받아야할 요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이 명치유신(明治維新) 이후 서구화(西歐化)를 지향했던 것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 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서구의 기독교는 빼놓고 오히려 유럽 속에 잔재하고 있는 부정적인 로마적 요소 즉 폭력에 의한 제국주의만 배워온 게 일본의 큰 잘못이었다.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일본은 원자탄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다시한번 그리스도의 나라인 미국에게 맡겨진 바 되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일본에는 또다시 천황신국적(天皇神國的)인 극우파의 음성이 드높다. 
 요컨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았기에 나는 유럽의 역사와 현실이 그토록 생생하게 살아서 나에게 친밀감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빠리의 몽마르트르 산 위에 서있는 싸크르 꾀르 성당은 프랑스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도한 분의 순교를 기념하여 지은 대성당이다. 우상숭배의 종교를 가진 프랑스땅에 맨처음 기독교를 전도하던 분이 체포되어 도끼로 목이 잘린 장소가 바로 몽마르트르(순교자의 산)이다. 목이 잘린 시체가 자기 두 손으로 떨어져나간 자기 목을 들고 걸어가는 기적을 보고서야 그를 죽인 원주민들이 드디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프랑스에 기독교가 전파된 것도 우리나라의 천주교인 학살사건과 마찬가지로 쉽지 않게 전파된 것이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입구, 사도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에게 당신들이 평소에 신이라고 부르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토론하며 설교하던 그 대리석 바위 위에 서자  나는 감동 때문에 엎드려 기도했다. 함께 여행하는 일행들이 광신자 보듯 나를 보든 말든 나는 2천년 전 사도행전시대가 바로 어제 일처럼 현실감으로써 나에게 밀착하는 것을 느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유럽에서도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증거를 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 전도인 것 같다.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러 가던 유태교의 광신자 사울(바울의 옛이름)에게 예수께서 친히 모습을 보여주고 그리하여 범신론과 인본주의적 철학의 그리스를 기독교로 변화시킨 바울 사도가 태어난 것이다. 기독교를 전파하신 분은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님 당신이신 것이다. 세상 사람 중에서 심부름할 일꾼을 택하실 뿐이다. 
 
 유럽을 보고 인도에 도착하니까 마치 천국에서 지옥으로 온 듯 전연 다른 사람과 전연 다른 나라를 보게 되었다. 대도시를 가득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빈민들이었다. 적선하라고 손을 내밀며 에워싸는 아이들 때문에 거리로 나서기가 두려웠다. 노동하는 사람들을 보기가 어려웠다. 주민 모두가 실업자와 거지들 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1982년 당시 인구 6억 이상이라고 하는데 60퍼센트의 인구가 절대빈곤자라고 했다. 약간의 식량으로 목숨만 유지하고 있는 인구가 4억 5천만 이상이라는 것이다. 20세기 이 문명시대에 왜 이처럼 가난과 질병 등으로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자연조건, 정치적 조건, 전통문화적 조건, 인종조건 등등 인도인을 속박하고 있는 조건은 많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도인을 해방시키기에 가장 나쁜 조건은 잘못된 종교라고 생각되었다.
 인도국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힌두교라는 범신론적 종교이다. 세상 만물이 신(神)의 형상이라고 믿으며 인간이 각기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사물을 신으로 여기며 예배하고 기도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우상숭배 종교이다. 그리고 윤회설(輪回說)을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죽은 후 그 영혼은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는 설이다. 그 영혼의 업(業)에 따라서 세상의 신분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지금 가난하고 병든 원인은 전생의 죄업 때문이고 지금 부유하고 건강한 것은 전생에서 선한 공(功)을 쌓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노동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전생에 죄가 많았다는 증거를 내세우는 꼴이기 때문이다. 좋은 옷 입고 다른 사람을 노예로 부리기 좋아한다. 전생에 공이 많은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노동에 대한 멸시 풍조가 뿌리 깊이 자리잡게 되고  이 윤회설은 불교에 묻어서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마치 우리 고유의 문화처럼 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팔자(八字)를 믿고 노동을 업신여기는 풍조가 이 윤회설 때문에 형성된 것이다.
노동을 신성시(神聖視)하는 기독교와 반대인 종교는 사람들에게서 현실극복의지를 감퇴시킨다. 현실의 나쁜 조건을 개선하려는 힘이 없다. 더러워도 그냥 견디지 청소하려고 하지 않는다. 해마다 홍수가 나도 강에 댐을 쌓으려고 하지 않는다. 땅을 파서 농작물을 심기 보다 남에게 손을 내밀고 '적선(積善)하라'고 외치는데 더 익숙해진다. 윤회설을 믿는 사람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고치려고 하지 않고 숙명이라고 받아들이며 견딘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면 이보다는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뉴델리에 있는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분은 집에서 여자 파출부를 세 사람 쓰고 있다. 인건비가 워낙 싸기도 하지만 그 보다도 그 여자들의 종교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한 여자는 유리창 닦는 일만 한다. 전생(前生)의 업 때문에 자기는 유리창 닦는 일만 하게 돼있는 사람이라며 다른 청소는 하지 않고 유리창 닦는 일만 하는 것이다. 한 여자는 책상 등 가구 닦는 일만 한다. 한 여자는 빗자루질과 걸레 일만 한다. 하루 종일 일하는 체 하다가 가곤 한다. 대사관 직원 부인은 "당신들이 그렇게 게으름 피우니까 가난할 수 밖에 없다. 부지런해야 잘 살 수 있다."고 본을 보여주기 위해 손수 청소도구를 들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파출부들은 일을 그만두고 가겠다고 하며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전생에서 잘한 일이 없어서 청소부로 태어났고 당신은 전생에서 좋은 일을 하여 우리를 부릴 수 있는 신분으로 태어났다. 우리가 당신을 섬기고 일하다가 죽으면 다시 태어날 때엔 당신과 같은 신분이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당신 집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청소도구를 들고 일하는 것을 보니 내세에 대한 기대를 할 수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더 이상 당신 집에서 일하지 않겠다."  그래서 대사관 직원 부인은 청소도구를 놓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윤회설 때문에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힌두교 인도사람들에게 "사람이 죽은 다음엔 그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혼은 심판을 받아 영생(永生)의 운명이 결정되고,  부활(復活)이 하늘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이 개인의 운명은 일회적(一回的)인 일이다."라는 것을 설명하여 믿게 하고, 적극적인 노동이 기쁨의 원천이고 생활을 개선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믿고 따르게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영혼에 관한 그런 지식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 인도인들은 숙명(宿命)을 견딜 뿐이지 현실을 개조(改造)하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적으로 그들은 네 계급으로 나뉘어 부자유스럽게 묶여있고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계급만이 종교권과 공권력을 독점하고 하층민을 지배하고 있다. 힌두교가 싫은 사람은 이슬람이 되어 있지만 이슬람 인도인들은 파키스탄이라는 나라로 분리되어 인도와 적대국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인도에 살고 있는 이슬람인들은 소수계층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기독교는 남(南) 인도쪽에 영국이 남겨놓고 간 성공회(聖公會)를 인도 기독교로 개조한 교회들이 소수 있다고 했다. 가톨릭이 수는 적지만 교육사업 등을 알뜰히 경영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독교인들을 포위하고 있는 생활조건은 힌두교적일 뿐이다.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성지(聖地)라고 하는 도시이다. 간지스강변에 수많은 힌두교 사원들이 세워져 있었다. 조그마한 코끼리 우상을 길가에 세워놓고 그 앞에서 손을 비비며 기도하는 노파의 모습, 돌로 만든 남근상(男根像)을 쓰다듬으며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 등등 자기네 우상(偶像)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성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사람들의 우상숭배이다. 살아계시며 인간과 대화하시고자 원하는 하나님을 모른 체하고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며 복받기를 바라는 사람을 하나님은 정말 싫어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언자를 택해서 우상숭배하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치신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우상숭배하는 자에게는 저주만 있을 뿐이다. 힌두교 속에서 태어난 석가모니도 득도(得道) 후 첫 번째 설법(說法)이 우상을 버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혼의 법칙을 가르치는 불교의 진리는 다시 우상숭배의 종교에 오염돼 버렸고 인도는 도로 힌두교 국가가 돼버렸다. 한국 불교는 석가모니가 깨부수려고 했던 힌두교를 마치 불교의 원형처럼 착각하고 힌두교의 사고방식과 풍속을 많이 도입했었다. 우리 일행의 인도여행을 안내해주던 불교학자인 000교수는 "한국불교가 쇠퇴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석가모니의 원시불교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역사 속에서 온갖 잡것들이 불교를 오염했던 것이죠. 대표적인 예로 알렉산더의 세계정복 과정 때문에 불교는 그리스의 아폴로 신상(神像)을 섬기는 우상종교와 타협하여 불상(佛像)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 절하며 경배하게 되었습니다. 간다라의 불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국에 불교가 들어올 때엔 이미 잘못 오염된 불교가 들어왔던 것입니다." 0박사의 설명대로라면 절에서 불상부터 없애야만 석가모니의 뜻에 맞는 옳은 불교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절에서는 큰 부처만들기 시합이라도 하는 것 같다. 시주(施主) 받는 도구로 부처를 사용한다. 아니 돈을 바치면 부처가 복을 내려주리라고 믿으며 신자는 수백 번 절을 한다. "기독교가 종교개혁을 통하여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그런 부활을 했듯이 그런 부활이 불교에는 없었던 것이지요." 
 불교만 가지고 얘기하면 0박사의 말씀이 옳겠지만 그러나 나로서는 메시아 없는 종교는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오염될 수 밖에 없고 어쩌다가 소수의 구원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종교는 오히려 인간을 노예화하는 악한 조건이 돼버린다고 생각했다. 불교는 필연적으로 오염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나 다 석가모니가 되지 못한다. 석가모니가 성령(聖靈)을 받기 위해서는 아니 견성(見性)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건 수도(修道)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석가모니 당신도 "나는 부처(진리를 깨달은 자)이지 미륵(메시아)는 아니다."고 유언했다고 한다. 나 자신은 구원받았지만 남을 구원해줄 능력은 없다. 내가 깨달은 지식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겠지만 제자들은 부처가 되기 위해서 나와 똑같은 수도를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앞으로 언젠가 미륵이 오실 것이고 미륵이 오시면 세상사람들을 누구나 견성해줄 것이라고 마치 성경의 이사야처럼 메시아 예언을 남기셨다. 메시아의 은혜가 없이는 인간은 모두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것이다. 석가모니도 예언했던 메시아(미륵)가 바로 예수이고 이사야가 예언했던 메시아가 예수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기독교를 접수하지 않으면 불교도 유태교도 오히려 역사에 해독을 끼치는 종교로만 남을 것이다. 진리를 모르던 죄인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겠습니다."는 한 마디 약속으로 성령(견성)을 받아 죄사함 받고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게되는 것이다. 예수는 부처(깨달음을 얻은 분)가 아니라 미륵(구원하시는 분)이신 분이다. 그 증거가 바로 나 자신인 것이다. 

출처 : 주님 오시리 구름타고 오시리
글쓴이 : 주님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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