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한성진목사/기독교인의 사회생활 (출 23:1-9)

성령충만땅에천국 2013. 12. 24. 09:19

한성진목사/기독교인의 사회생활 (출 23:1-9)


(요약)

 성도의 사회생활은 자신의 앞날과 가정의 행복은 물론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 전도에도 깊은 관계가 있다. 성경은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다수를 따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불공평 말고 그렇다고 편벽되이 두호해서도 안 되고 원수가 어려움 당할 때 도와주며 뇌물을 받지 말라고 교훈한다. 즉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위해서 진실한 언어와 행실의 선함과 공평함 그리고 사랑을 소유해야 한다. 바로 사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임을 보여주는 교훈인 것이다.

 

(설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빛이라”(마5:13-14) 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회생활을 잘 말씀해 줍니다. 이 교훈이 얼마나 중요하느냐? 잘못하면 맛 잃은 소금이 되어 사람들에게 밟히든지 아니면 세상의 빛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한 것처럼 사람은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사회적 성공이 가정과 교회와 기타 삶의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증명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인 면이 많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이 점이 우리 한국교회의 가장 취약점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야 할까요?

오늘 분문이 그것을 잘 말씀해 줍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인 구약 이스라엘들의 사회생활을 위한 교훈입니다. 혹시 이 시간에 무슨 율법을 전하는가 할지 모르겠지만 사도 바울도 그의 서신 초반에는 복음을 소개하다가 후반에는 반드시 삶을 가르쳤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이러한 삶을 살 수 있고 그렇게 살아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요 내용은 공정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공정한 것을 기뻐하십니다. 반대로 공정치 않는 것은 싫어하실 정도가 아니라 미워하십니다(잠6:16-19).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함에 대해서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에서는 CIA정보원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잘못 보고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전쟁의 책임이 CIA에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정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부시 대통령이 전쟁을 일으키려고 그 정보를 악용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음이 입증되어 둘 다 옳지 않음이 밝혀졌지만 여기서 잘못된 정보와 잘못된 판단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깨닫게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 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 출애굽기에는 우리에게 이런 삶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잘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럼, 기독교인의 사회생활은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로, 본문 1절에 “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근거 없는 소리를 돌아다니며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한때 ‘카더라’ 방송이 유행했습니다. 경상도 말로 ‘하더라’를 ‘카더라’라고 합니다. 독재로 인해 대중 매체가 공정한 소식을 전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이 카더라 방송만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카더라 방송은 사실일 때도 있지만 풍설일 때도 많았습니다. 요즘 동네마다 찜질방이나 노인정이나 모여지내는 것이 많아서 항상 말조심해야 합니다. 무수한 사건이 이 풍설로 생겨납니다. 듣기는 속히 해도 말하기는 더디하세요. 확인도 안 된 소리 퍼뜨리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실수합니다. 사회는 물론 교회 안에서 이렇게 되면 그것은 파탄입니다. 우리는 짐작으로 말해서는 안 되고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둘째로, 1절 하반부에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요즘 교통사고가 많은데 사람들이 서로 짜고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런데 더욱 가해자요 살인자로 억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큰 약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 국민이 일본 사람들을 가장 싫어하지만 우리나라에 2000년 한 해 동안 위증으로 기소된 사람이 인구수로 보면 671배가 된다고 나왔습니다. 위증이 얼마나 악합니까? 그래서 죄 있는 사람은 용서받고 죄 없는 사람이 벌을 받도록 하는 위증죄야 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입니다. 근거 없이 죄를 씌우는 무고죄의 경우도 일본을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무려 1,480배, 인구수로 보면 4,151배가 더 많습니다.

일본이 왜곡된 교과서 문제로 불량하다 하는데 이런 일본보다 더 거짓말이 많다니 한국인이란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사람이 사는 나라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해요. 지금 우리는 매일 이것이 진짜입니까? 가짜입니까? 어느 것 하나 마음 놓지 못하며 분별해야 하는 거짓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파벌이 생겨나면 이 무고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는 것 근절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2절에 “다수를 따라 행하지 말며” 그랬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다수보다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도저히 객관적 사실을 알 수 없을 때 다수를 따라 결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다수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산헤드린 공회에서는 만장일치는 무효로 보았다고 합니다. 아무 영향 없이 만장일치면 영광스럽지만 억지라면 불명예입니다. 성경퀴즈인 출발동서남북처럼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다가 답을 모를 때는 많은 사람에게 붙어보지만 틀린 답일 때가 있잖아요? 그리스도인은 이것이 사실이냐, 공정하냐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6절에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약자보다 강자의 편을 들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누가 옳으냐를 따져야지 자기 편리와 강자의 비위 맞추려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면 알량한 기회주의자입니다. 가장 비겁한 사람은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들에게 약한 자들입니다. 이것은 9절에 나오는 나그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방 나그네도 약자 아닙니까? 요즘 우리 국민 중에는 중국동포나 무단 입국한 외국인들에게 급료를 주지 않거나 맘에 안든다고 구타하는 등 얼마나 비열합니까? 이런 때에 오늘 말씀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물질적 강자만이 아닙니다. 요즘은 얼굴만 예쁘면 죄를 지어도 용서가 되는 세상이랍니다. 그래서 큰 죄를 지은 죄수도 얼굴만 잘 생기면 사면해줍니다. 또 돈 많으면 용서가 되고 높은 자리에 있으면 용서가 되고 병보석이나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곧 바로 사면하고 감면하여 주는 이 세상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9절의 말씀도 알아야 합니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찌니라” 그렇다고 무조건 모두 옳다고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주 적절한 교훈입니다.

그리고 4, 5절에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 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 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교훈입니다. 가령 저 사람에게서 돈을 받아야 하는데 마침 저 사람의 나귀가 길을 잃고 돌아다닌다고 하더라도 내 것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나를 미워하는 원수가 있는데 그 사람의 나귀가 너무 짐을 많이 져서 주저앉아 버린다 할지라도 바라보고 속으로 고소하게 생각하지 말고 가서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기회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때이기 때문입니다. 사울도 다윗에게 잡혀 죽을 기회가 있었지만 살려 준 것을 깨닫고 물러가지 않습니까? 여러분 특히 십자가 뺏지나 목거리 하고 다니시는 분들 멋이 아니라 주의 영광 나타내는 선한 일 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열심히 선을 행하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도움 받으면서 그 표시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까지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8절에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뇌물은 우리 사회의 큰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만큼 뇌물을 많이 주고받는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뇌물을 받아서 기소된 사람이 일본보다 12배가 많고 뇌물을 주다가 걸린 사람은 일본보다 47배가 더 많다는 통계입니다. 이 비리가 사회만이 아니라 교회정치에서도 극성을 부립니다. 그래 가지고 이 세상을 어떻게 지도해 나가겠습니까?

그래서 제 견해지만 우리 교단에 제비뽑기 방식의 도입 아주 적절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제비뽑기연구소 소장 박광재 목사님 전 교단은 물론 세계에 이르기까지 보급을 위해 수고 많이 하십니다. 제비뽑기는 성경에서 나온 제도인데 성경적이냐 아니냐? 논란 이전에 혼미한 부정부패를 확실히 잠재울 수 있는 좋은 제도입니다. 그 방법은 성경에 나오듯 먼저 몇 사람의 적격자를 추천해야 합니다. 이 일이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이 일을 잘못하고서 제비뽑기해서 당선된 사람이 왜 비리를 저지르느냐? 제비뽑기를 비난하는데 그것은 사람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옳지 않다면 같이 예수 믿는 사람일지라도 같은 지방 사람일지라도 편들어서는 안 됩니다. 나와 경쟁관계가 있거나 나와 사이가 좋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부당하게 악평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지도자는 공정성이 생명입니다. 만일 사장이 불공정해서 자기 후배는 진급시키고 후배 아닌 다른 사원은 아무리 성실히 일해도 진급 안 시키면 후배도 일 안하고 다른 사원도 일 안합니다. 그래서 그 회사는 망합니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에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정의로운 말씀으로 가득합니다. 성도들은 이런 정의로운 말씀을 많이 보고 들어야 합니다.

신16:19, 10:17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뇌물을 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정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철저하십니다. 참으로 공의로우셔서 결국 예수님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절대로 우리를 용서 할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사랑 속에서 실천하고 게시기에 아무 무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잘못할 때도 이스라엘을 공의로 징계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면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질 것을 아시면서도 정의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본받아 공정하려고 노력해야 됩니다. 뇌물도 받지 말고, 쓸데없는 풍문을 듣고 너무 흥분하지도 말고, 가난하다고 해서 특별히 봐 주지도 말고, 권력 있고 명예가 크고, 돈이 있다고 해서 아부하지도 말고, 그리스도인들이 사람들의 신임을 받아야 전도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직해야 되고 공정해야 됩니다. 이 세상복음화도 알고 보면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와 성도들의 삶이 따를 때 세상은 복음화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의 공정하심의 모습을 본받아서 공정한 사람이 되어 이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어 질서를 심고 사람들의 신임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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