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진목사/이드로의 삼 원칙 (출 18:13-27)
(요약)
하나님의 사역에 임한 모세를 충고한 이드로의 교훈에서 하나님 일의 원리를 본다. 일명 이드로의 원리라는 것으로 약 세 가지의 원칙이 있다. 제 일 원칙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혼자 하려 했을 때 피곤함과 한계성이 있다. 제 이 원칙은 분담과 위임의 원칙이다. 각양 직분과 은사를 따라 하되 질서 안에서 해야 한다. 그리고 제 삼 원칙은 은사와 능력 위주이다. 준비된 합당한 자만이 그 일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모세도 우리 주님도 사도들도 이 원칙에 따라서 주의 일을 감당하였다.
(설교)
혹시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쳐서 “하나님, 더 이상 지쳐서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불러 주세요.”라고 한 경우는 없습니까? 물론 지칠 만큼 열심히 일하신 분이 계시다면 상을 주고 싶습니다만, 모세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민11:14-15을 보면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수백만 명이 되는 이스라엘을 혼자 이끌고 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우리들도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하면 모세와 같이 곤고함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일의 속성을 알지 못하면 죽도록 일하고도 남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도 지쳐서 쓰러지게 됩니다. 우리나라를 다스리는데 돕는 공무원이 100만도 더 필요할 텐데 200만이 넘는 백성들을 공무원 한 명 없이 모세 혼자 이끌고 가려고 했으니 얼마나 무모한 일입니까?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일지라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광야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범죄가 발생하고 충돌이 일어나고 다툼이 생겨나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래서 모세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백성들을 재판하느라고 다른 일에는 전혀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본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충고를 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장인이 제안한 제도를 받아 들였는데 그 제도가 바로 부장제도입니다. 백성들에게서 적임자를 선택하여 대신 일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일들은 각 부장에게 맡기고 그래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은 모세가 판결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모세는 탈진을 면하고 하나님께서 세운 일군들과 함께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드로가 제시한 원칙을 가리켜 흔히 '이드로 원칙'(Jethro principle)이라고 부릅니다. 이 원칙은 우리의 하나님의 사역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이드로의 원칙을 가지고 모두가 하나 되어 주의 일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이드로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1. 제 1 원칙은 혼자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14-18절에 이드로는 “그대가 이 백성에게 행하는 이 일이 어찜이뇨 어찌하여 그대는 홀로 앉았고 백성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대의 곁에 섰느뇨 -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그 대와 그 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연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그대에게 너무 중함이라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고 지적했습니다.
개척교회 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피곤하여 지친 분들이 많습니다. 개척교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직된 교회에서 목회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혼자서 모든 부서를 다 감당하고 심지어 운전과 청소까지 합니다. 게다가 집세 떨어지면 심방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돈 구하러 다녀야 합니다. 그래서 돈이 많지 않거나 개척 멤버 없이 혼자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능력의 사자 엘리야도 특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지쳐서 목숨을 불러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을 아끼지 않는 그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셔야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탈진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일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일을 많이 맡고 많이 해야만 큰일을 하는 줄 압니다. 또 다른 이유는 자신에 대한 과도한 신뢰 때문입니다. 나 말고 남이 하는 일을 못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만 완벽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시원치 않아서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그 결과 그 무거운 보따리는 자기가 져야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전문가가 되는 사람 어디 있습니까? 믿고 맡기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 전문가가 되는 것이죠. 무슨 일을 혼자하려고 하지 말고 같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큰 가구점을 하는 프리드만(Freedman)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직원들을 회사 운영 전반에 참여시키는 파격적인 조치를 시켰습니다. 월급도 직원들과 상의하여 정하고 휴가도 회사차를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모든 일을 종업원 전체의 의사를 반영해서 회사를 이끌어 간 것입니다. 그 결과 회사 수익이 엄청나게 올랐고 직원들 100%가 그 회사에 남아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파업이란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고요. 모두 자기 회사와 동일한데 누가 파업하겠습니까? 사장 프리드만 씨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인간이란 믿고 맡기면 책임감이 더 커지고 최고의 능률을 발휘한다." 이처럼 모세는 장인의 충고를 받아 혼자로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겸손히 인정했던 것입니다.
2. 이드로의 제 2원칙은 역할 분담의 원칙입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충고했습니다. 21-22절에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무릇 큰일이면 그대에게 베풀 것이고 무릇 작은 일이면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그대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그대에게 쉬우리라” 했습니다. 그 결과 짓눌렀던 과중했던 일들은 덜어졌고 모든 문제들이 아름답게 해결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으신 것도 역시 이드로의 원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시기에 혼자서 다 하실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길러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위임하셨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집사를 세운 것도 이드로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가 규모가 작을 때는 사도들이 목회와 재정을 함께 관리할 수 있었지만 수효가 많아지자 교인들조차 파악치 못해 구제가 빠지는 등 잘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파 과부들과 헬라파 과부들이 다툽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집사들을 세워 구제를 맡기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기로 했습니다(행6:3, 4). 그 결과 행6:7을 보니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해지고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는데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까지 도에 복종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왠만해서는 감동조차 하지 않을 제사장의 무리들이 복종한 것은 왜 그랬을까요? 다른데 신경 쓰지 않고 말씀연구와 기도에 힘썼을 때 놀라운 감화를 끼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쁘게 일한다고 다 잘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역할 분담의 원칙은 교회 안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담임 목회자가 할 일이 따로 있고 제직들이 해야 일이 따로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의 일을 너무 빼앗아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교인들이 목회지침 밖에서 활동해도 안 됩니다. 맡긴 자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라 했듯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해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을 보장하지만 여러분도 제가 하나님이 주신 꿈을 꿈꾸며 소신껏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 질서 안에서 각양 은사를 받은 대로 각기 맡은 일에 충성하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크게 확장될 줄 믿습니다.
3. 이드로의 제 삼원칙은 은사의 원칙입니다.
모세가 역할을 분담했는데 아무에게나 한 것이 아닙니다. 가장 적절한 사람에게 했습니다. 출18:21-22에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합당한 사람을 세웠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인격과 은사와 능력 위주였습니다.
우리 한국 사회가 속히 학력 위주에서 능력 위주로 바꾸어지고 자기 재능과 은사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는 한 크게 발전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서울대학교를 없애자는 주장을 합니다. 그것은 무엇을 전공하느냐가 아니라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한국인의 최고의 목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에서까지 인사 문제를 이력서 위주로 하다가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하나님의 사역은 이력서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인격의 덕목과 신령한 은혜와 은사는 이력서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력이 화려해도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모든 일은 능력 위주, 은사 위주, 재능 위주로 나가라는 것이 이드로의 원리입니다.
민수기에서도 모세가 완악한 백성들 때문에 지쳐서 목숨을 거둬달라고 기도했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이드로의 원리를 지시하셨습니다. 민11:16-17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노인 중 백성의 장로와 유사 되는 줄을 네가 아는 자 칠십 인을 모아 데리고 회막 내 앞에 이르러 거기서 너와 함께 서게 하라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들에게도 동일한 성령을 부어 주셔서 그 일을 나눠지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과 능력을 주셨고, 초대교회 일곱 집사들도 모두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 듣는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요즘 직분이 사회적 신분이 되어 너도나도 직분을 가지려고 하는데 이것은 직분의 타락입니다. 직분의 타락은 곧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요 교회에 대한 모독입니다. 직분은 내 체면을 위해서 받은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일하라고 주신 것이니 자기 직분과 은사에 맞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2:4에서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2:13) 그랬습니다. 그런데 무슨 큰 능력이 넘쳐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기도로서 믿음으로서 일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큰 복입니다. 몸 아끼지 말고 건강할 때 물질이 있을 때 시간이 있을 때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남 눈치 볼 필요 없이 신앙 안에서 하시기 바랍니다. 누구는 어떻고 어느 교회는 어떻고 그런 소리 마세요. 그게 원칙이고 법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보다 더 색다르고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일이 없으면 인간은 늙고 맙니다. 캐나다는 노인 복지가 잘되어 노인들의 천국이지만 노인들이 빨리 죽는답니다. 그 이유는 복지가 너무 잘되어 있어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의 일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드로의 원칙은 우리 주님께서 본을 보여 주셨던 변함없는 하나님 일의 원칙입니다. 이드로의 세 가지 원칙으로 하나님의 일을 잘해봅시다. 우리 모두 이드로의 원칙 가지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직분 따라 은사 따라 위임 분담해서 그리고 믿음으로 기도로 성령으로 그리고 질서 안에서 충성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일군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송수천 목사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한성진목사/유월절 양 예수님(3) (출 12:1-10) (0) | 2013.12.24 |
---|---|
[스크랩] 한성진목사/무교절을 지키라 (출 12:15-20) (0) | 2013.12.24 |
[스크랩] 하나님을 바로 섬기자 (출 8:25-32) (0) | 2013.12.24 |
[스크랩] 한성진목사/여호수아의 믿음 (출 33:9-11) (0) | 2013.12.24 |
[스크랩] 한성진목사/유월절의 신령한 의미 (출 12:1-14) (0) | 2013.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