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다리를 절으며 걸을 때 해가 돋았다. (창 32;24-3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 4. 07:14

다리를 절으며 걸을 때 해가 돋았다.

 

                                                                                         창 32;24-32.

 

한 선교사가 1997년 미시간 주 어느 교회에서 선교 보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면서 그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약품을 전달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쟝글을 통과하여야 했습니다. 어느 날 쟝글을 가는 데 군인 두 명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 군인이 심하게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그 군인을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하고 돌아 왔습니다. 며칠 후 그 군인이 선교사를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사실은 우리 두 군인은 당신들이 약품과 돈을 가진 것을 알았기에 쟝글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당신을 죽이고 약품과 돈을 빼앗으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을 호위병 26명이 경호하고 있어서 덤비지 못 하였지요.”

선교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경호원이 없는 데요.”

“아니요. 우리만 본 것이 아니라 우리 일행 5명이 다같이 보았습니다. 같이 세어 보았더니 분명히 26명이었습니다.”

그 때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그 때가 어느 때쯤 되나요?”

선교사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날자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 날 그 때 나는 골프를 치러 가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 때 성령님이 나를 기도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골프를 그만 두고 교회로 가서 몇 명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였지요.”

선교사님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 때 같이 기도하였던 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보세요.”

세어 보니 모두 26명이었습니다.

천사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야곱은 에서와 쌍둥이였습니다. 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빼앗

았습니다. 배고픈 형을 약점을 이용하여 빼앗은 장자권이었습니다.

그 후 예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작정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멀리 외삼촌 집으로 보냈습니다. 형의 노가 풀어질 때가 가서 살다 돌아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형과 헤어져서 20년을 살았습니다. 20년만에 돌아오는 야곱의 심정은 매우 착찹하였을 것입니다. 갈 때에는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갔지만 돌아 올 때에는 아내 4명, 아들 12명, 딸 1명 그리고 재산은 성경 3대 거부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돌아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에서는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이런 소식이 야곱의 귀에 들려 왔습니다. 야곱은 겁이 났습니다. 20년 전에 악감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일단 모든 식구들과 모든 재산을 얍복강을 건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홀로 남아 얍복강 나루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곱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기 때문입니다.

 

“홀로 남았더니”

 

오늘 본문중에 눈에 띄이는 말씀입니다.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 중요한 시간입니다. 거룩은 장소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단 둘이 홀로 만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모세도 홀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윗도 8형제중에 홀로 있다가 왕이 되었습니다.

바울도 여러 명이 같이 다메섹으로 예수님믿는 사람을 잡으러 올라갔습니다.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홀로 아라비아로 들어가서 3년을 지내면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복음 전파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만나려고 할 때에는 늘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에는 제자 9명은 산 밑에 두셨습니다. 3명 베드로 요한 야고보만 데리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홀로 떨어져서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도 마찬가지입니다. 9명의 제자들을 떨어 뜨려 놓으셨습니다. 베드로, 요한 그리고 야고보만 옆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가셔서 홀로 기도하시면서 십자가 지실 능력을 받으셨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이 가장 거룩한 시간입니다.

 

야곱이 홀로 얍복강가에서 기도할 때 야곱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야곱은 이 사람과 밤새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야곱을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얼마나 세게 쳤던지 환도뼈가 위골되고 말았습니다. 야곱과 그 사람은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그리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후 일생을 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야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일어나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브니엘이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가는 데 해가 돋았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다리를 절면서 걸을 때 아침 해가 브니엘에서 돋았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에 첫 해가 비취었습니다.

야곱은 평생 처음으로 다리를 절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햇살을 받으며 에서를 만나러 갔습니다. 형 에서와 화해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정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밤새도록 걱정하였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브니엘의 해가 오늘 새 해에 우리 성도들에게도 떠 오르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브니엘의 해가 떠오르고 야곱은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어떻게 달라졌는가요?

 

1. 새 이름으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제까지 이름은 야곱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이라는 이름의 뜻은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다는 데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았다는 데에서 야곱이라는 이름이 생겼습니다. ‘속이는 자’라고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욕심적인 이름입니다.

그러나 야곱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이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 응답받고 사는 삶으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고백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운다 할지라도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에 비추어진 하나님의 해는 이제부터 하나님이 은총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가 20년 전에 원한을 품고 죽이려고 할 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직 기도밖에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사면 초가에 처해 있었습니다.

야곱이 한 것은 오직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해가 떠오르고 나서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의 해를 본 후 눈을 들어 보니 형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에게 7번 몸을 굽히고 절을 하였습니다. 에서가 뜻밖에 달려와서 야곱의 목을 안고 울었습니다. 악감정이 아니라 감격의 사랑이었습니다. 기도하고 나서 브니엘의 해가 떠오른 후에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었습니다.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자기가 바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꾸어 주셨습니다. 100%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해가 떠오르면 하나님이 크게 함께 하여 주십니다.

지구상에 나라 가운데 나라 세운 날을 개천절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둘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 와서 나라를 세우며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개천절이란 하늘이 열린 날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도 1948년 5월 31일 첫 국회가 열렸습니다. 그 때 국회 임시 의장으로 선출된 분이 이 승만 박사였습니다. 그가 사회를 보면서 예정에 없는 한 가지를 하였습니다. 당시 감리교 목사로서 종로구에서 당선된 이 윤영 목사에게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려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첫 국회가 열리는 날 첫 번 한 것은 이 윤영 목사님이 단상으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이 우주의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을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고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정시(正視)하신 것으로 저희는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 없을 줄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하옵건대,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여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 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와 인과 용과 모든 덕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 저희들이 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명을 완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우리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여기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

 

이렇게 우리 민족으로 특별한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시작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나님이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야곱은 브니엘의 해를 맞으며 그 때부터 하나님의 은총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금년 새 해 브니엘의 해가 떠올라서 야곱과 같은 은총의 한 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국가 이름이 될 줄은 야곱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나라가운데 사람 이름을 나라 이름으로 지은 나라는 이스라엘 하나뿐입니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온 세계 사람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 되었습니다.

 

새 해에는 브니엘의 해를 맞으면서 우리 모두 이름이 바뀌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믿던 성도들이 환란과 핍박을 견디지 못 하여 안디옥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곳에서 성경대로,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 난 글입니다.

삼미 그룹 부회장에서 웨이터로 변신한 서 상록씨가 자서전적인 에세이 집을 발간하였습니다.

“내 인생 내가 살지.”

이런 흥미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336 페이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역설하고 있습니다.

“새로 일자리를 구하는 분들은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눈높이를 조금만 낮춰 보세요. 남 눈치 보지 않고 내 인생 내가 산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는 사업가로 미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었습니다. 그는 대 그룹에서 부회장까지 올라 큰 회사를 잘 경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IMF로 직장생활이 어려워지자 그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 롯데 프랑스 식당 웨이터로 취직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남보다 2시간 일찍 출근합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객들을 위해 바이올린 연습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웨이터 분야에서 최고 프로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부끄러움이나 과거의 높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를 섬기던 자들을 식당으로 초대하여 대접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보통 사람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뒤집어 놓고 내 인생 내가 산다고 하는 철저한 삶을 살아 가고 있습니다. 부회장님이라고 부르던 그의 이름이 웨이터라고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살면서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름이 바뀌기를 원합니다.

나는 새 해에는 하나님의 얼굴을 비취던 해가 내게도 떠 올라서 갈보리 교회 담임목사라는 이름이 수도원 원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기를 원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2. 새 흔적을 가지고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브니엘의 해가 떠올랐을 때 야곱에게는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그 사람이 야곱의 환도뼈 큰 힘줄을 친 고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환도뼈 큰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창 32;21-32)

 

야곱은 평생 다리를 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다가 불구가 되었습니다.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야곱이 다리를 실제로 절은 것이 아니라 신화일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환상이라고 보는 이도 있습니다. 영적 투쟁 결과로 상상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응답을 받고 영적 싸움에서 이기고, 야곱이라는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바꾸고 다리를 절었습니다. 천사가 환도뼈를 쳐서 다리를 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전승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말하지면 탈무드 전설로 이스라엘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환도뼈란 엉덩이에서 다리로 연결시키는 힘줄이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야곱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을 잡을 때 그 부분은 잘라내어 버립니다. 먹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12 지파의 조상 야곱의 그 부분을 하나님이 취하신 것이니 우리가 건드릴 수 없다는 믿음의 고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환도뼈가 부러진 것이 축복이었습니다. 불구가 된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이 자기 환도뼈를 만진 흔적으로 절름발이가 되는 흔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 흔적 때문에 야곱이 비관한 적은 그 후 한번도 없었습니다.

평생 절면서 평생 자랑스러운 흔적이라고 느끼면서 살았던 것같습니다.

 

내가 두 번이나 가서 부흥회한 로스엔젤스 그렌데일에서 목회하시던 정 용치 목사님은 눈 한 쪽에 개눈을 박았습니다. 강화도에서 목회할 때에 새벽기도에 일찍 나갔습니다. 추운 겨울 새벽기도하러 멀리서 온 성도들을 뜨듯하게 하려고 늘 그렇게 하였습니다. 석유난로가 있었지만 너무나 비싸서 그런 난로를 때지 못 할 때였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해다 짤라서 난로에 넣었습니다. 그 때 6.25때 누가 쏘았는 지 모르는 총알이 나무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 총알이 불속에서 터지면서 눈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교인들을 사랑하던 흔적입니다.목회 열심히 하던 흔적입니다.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한 눈으로 보려니 너무나 눈이 아파서 한 시간이면 몇 번이나 눈물을 닦아 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름다운 흔적을 지니고 평생을 살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대통령과 악수한 손이라고 일주일 씻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저는 다리는 하나님이 주신 흔적이었습니다.

 

바울도 말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 6;17)

흔적이란 헬라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이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소나 나귀의 등을 자기 소유 표시를 하기 위하여 지졌습니다. 불로 지져서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예에게는 귀에 구멍을 뚫었는 데 이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노예에게는 이마에 노예 표시를 하였는 데 죽어야 없어지는 흔적이었습니다.

나포레옹 군대는 독인 군을 포로로 잡고 나서 마구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으니 팔뚝에 나포레옹을 의미하는 <N>이라는 글자를 불로 지져서 사귀고 나포레옹에게 충성을 맹세하면 살려 주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독일 군인중에 아주 똑똑한 군인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팔뚝에 그런 흔적을 만들고 충성하면 살려 준다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프랑스군은 강제로 팔뚝을 불로 지져서 <N>를 새겼습니다. 그러나 그 병사는 그 팔뚝을 잘라 버리면서 외쳤습니다.

“나는 죽어도 나치 히틀러 군대다.”

 

야곱은 평생 하나님이 주신 흔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살았습니다. 새 해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흔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영광의 상처가 있기를 바랍니다.

 

3. 본질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본질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본질입니다. 본질에 충성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가장 본질에 충성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 땅에 보내신 본질에만 충실하시다가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은 오직 하나 인간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라고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그 십자가 지시고 죽으시는 것 그 본질에만 충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본질은 땅의 약속을 받아 가나안 땅을 지키며 그 곳에서 민족을 이루어 예수님을 이 땅에 탄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흉년으로 애급으로 피란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왔습니다.

아들 이삭도 그렇습니다. 흉년으로 블레셋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 왔습니다. 본질로 돌아 온 것입니다.

손자 야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년 하란으로 피해 있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사상은 땅의 신학입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그 땅에서 벗어나 살았습니다. 에서가 그 땅을 지키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의 신학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야곱은 그 땅을 차지하려고 그 땅으로 온 것입니다. 야곱은 몰랐어도 하나님은 그렇게 섭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땅의 신학이 이스라엘 신학의 핵심입니다.

땅의 신학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성경이 룻기서입니다. 엘리멜렉이 나오미와 살면서 기룐과 말론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흉년이라도 하나님이 약속한 땅에서 견디고 있는 데 나오미 가정만 하나님이 주신 땅을 떠나 모압지방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그 곳에서 두 아들은 이방 여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두 아들이 자녀를 하나도 낳지 않았을 때 인 것을 보면 결혼후 조금 후 하나님은 남자만 세 명을 모두 하늘 날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제 여자만 셋 남은 비극의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 때 나오미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습니다. 약속의 땅을 버리고 온 것이 원인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큰 자부 오르바는 시어머니에게 입을 맞추고 고향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말합니다.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 1;16-17)

 

이같이 땅의 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룻기서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을 생명처럼 생각하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야곱은 이제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오직 예수를 기다리는 본질에 충실한 삶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브니엘의 해가 떠오를 때 그 햇살을 받으면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 새 이름으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2. 새 흔적을 가지고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3. 본질의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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