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목사/나아만 장군의 믿음 (왕하 5:1-14)
1. 엘리사 시대에 아람, 즉 시리아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다가 고침 받았다. 눅 4: 27절을 보면 예수님 역시 이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기 때문에 꽤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본문 말씀을 읽어보면 굉장히 재미가 있다.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극적인 효과가 뛰어나다. 여기 등장인물들을 보면 아람 나라의 왕 다음으로 권세를 부리던 나아만 장군과 아람 왕, 이스라엘 왕, 그리고 이스라엘 최고의 선지자 엘리사와 같이 '크고 존귀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하녀'나 '부하들'과 같이 '작고 비천한 사람들'이다.
2. 이스라엘이 아람, 즉 시리아에 의해 압제를 당하던 시대였다. 일찍이 아람이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큰 고통을 준 적도 있거니와 지금 이 사건이 벌어지고 있던 당시에도 힘의 균형이 깨져서 이스라엘은 아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강대국 아람의 최고 실세인 나아만 장군에게 문제가 생겼다.
① 1절: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어느 나라이든지 군부를 무시할 수 없다. 육참 총장 혹은 국방 장관은 권력의 실세인 것이다. 그래서 나아만 역시 그의 주인, 즉 아람 나라의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다. 왕이 진실로 아끼는 큰 인물이었고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그에게 문제가 있다.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큰 용사이면 무엇 하나, 나병 환자인데! 대통령인데 나병환자더라, 큰 부자인데 나병환자더라, 인기배우인데 나병환자더라…. 하지만 한 가지 그 부족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바로 그 절망적인 상황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
② 아람이 이스라엘에 침략했을 때 포로로 잡아온 어린 소녀가 있다. 나아만 장군의 아내의 시중을 드는 하녀이다. '크고 존귀한' 나아만 장군과는 비교가 안 되는 낮고 천한 신분의 소녀였다. 그런데 이 하녀가 여주인에게 말한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3절).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도 잡으려고 한다. 나아만 역시 살아야 한다는 각오 때문에 그 보잘것없는 계집종의 말에 희망을 건다.
우리의 영혼도 죽을 병에 걸렸으면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나의 권세나 부귀, 명예, 세상적인 자랑거리를 다 내려놓고 겸손해져야 한다. 나아만이 그랬던 것처럼 포로로 잡혀온 하녀 이야기라도 들을 수 있는 겸손이 있어야 한다.
③ 이렇게 해서 한 가닥 희망을 걸고 나아만 장군은 아람 나라 왕에게 친서를 부탁한다. 강대국인 아람 나라 왕이 약소국인 이스라엘 왕에게 친서 한 통을 보내면 엘리사 정도의 선지자 하나를 움직이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친서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가 이 편지와 함께 나의 신하 나아만을 귀하에게 보냅니다. 부디 그의 나병을 고쳐주시기 바랍니다"(6절). 나아만은 임금의 친서와 함께 엘리사에 줄 예물까지 준비한다.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옷 열 벌"을 장만했다(5절).
참으로 당당하게 그러면서도 정성을 다해 준비한 끝에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간다.
3. 이제 장면이 아람, 즉 시리아에서 이스라엘로 바뀐다. 문제는 이스라엘 왕이 깜짝 놀란다. 항상 아람 왕의 눈치나 살살 보며 도무지 기를 못 펴던 이스라엘 왕에게 친서가 와서 읽어보니 어이없는 부탁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7절). 아람 왕이 구실을 붙여 전쟁을 일으킬 속셈으로 오해한다. 그리하여 옷을 찢을 정도로 충격을 받고 극한 슬픔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4. 자기 나라 왕이 아람 왕의 친서를 받고 두려워한다는 소문을 들은 엘리사가 왕에게 사람을 보낸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8절). 엘리사의 기개가 드높다. 자기가 상대해서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음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5. 드디어 나아만 장군이 말들과 병거들을 잔뜩 거느린 채 엘리사의 집 문에 선다. 그런데 엘리사는 문밖에 나오지도 않은 채 사환을 시켜서 나아만에게 처방을 준다.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주문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발길을 돌린다. 그러면서 불평을 쏟아 붓는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12절).
나아만 장군의 불만은 ① 강대국의 최고 실세를 홀대한다는 불만이다. 약소국의 일개 선지자인 엘리사가 자기를 영접하기 위해 버선발로 뛰어와도 시원찮을 판에 코빼기도 안 내보인다는 불만이다.
② 말만 하는 치유가 아니라 아주 거창한 종교 의식을 통한 치유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주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며" 고쳐주기를 기대했다. 나아만은 '나병의 치유' 그 자체에 관심이 있었을 뿐 '치유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③ 요단 강에 가서 한 번도 아니라 일곱 번씩이나 목욕을 하라는 말에 실망했다. 사실 아람 나라에 흐르는 아바나와 바르발 강은 요단 강에 비하면 훨씬 더 맑고 깨끗한 강이다. 하물며 작고 흙탕물로 가득 찬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씩이나 목욕을 하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주문이었다. 물론 엘리사에게 중요한 것은 강이 아니다. 요단 강이든 아바나 강이든 바르발 강이든, 강물이 사람을 고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강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치유를 받는다.
6. 바로 이 때 나아만 장군의 부하들이 나선다.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일을 행하라 말하였다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13절).
아람에서는 포로로 잡혀온 계집종이 중요한 역할을 하더니만 여기에서는 나아만 장군의 힘없는 부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얼마나 간곡한 부탁을 하는지 나아만 장군을 "내 아버지여"라고 부른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 간청한다. "그 선지자가 이보다 더한 일을 하라고 했더라도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다만 몸이나 씻으시라는데, 그러면 깨끗해진다는데, 그것쯤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 나아만 장군의 부하들은 나아만의 처지를 정확하게 알려준다. 지금 나아만은 강대국 아람의 최고 실세로서 이스라엘에 온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고쳐야만 할 나병환자로 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큰일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지혜로운 부하들이다.
①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온 계집종은 나아만 장군의 나병이 치유 받도록 실마리를 열었다.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하녀 하나가 나병에 걸린 주인을 위해 엘리사를 소개한 것이다. 육신은 포로 되었고 힘없는 작은 자였지만 그녀의 마음은 신앙 안에서 자유로웠고 넉넉하여 주위의 사람을 돌아볼 줄 알았다. 그렇다면 누가 진짜 자유인이며 누가 진짜 포로인가? 누가 진정으로 큰 자이며 누가 진정으로 작은 자인가?
② 또한 나아만이 엘리사의 지시를 듣고 분노하며 아람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나아만의 부하들이 간청하여 나아만을 치유와 회복의 길로 들어서도록 도왔다. 하녀가 하나님의 일을 출발시켰다면 부하들은 하나님의 일이 좌절될 뻔 한 위기의 순간에 그 일이 계속 진행되도록 도왔던 것이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낮고 천한 자들을 들어 쓰셔서 큰 일을 행하신다.
7. 드디어 나아만 장군은 부하들의 충언을 듣는다.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14절).
나아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모든 세상적인 자랑이나 체면치레를 다 벗어던진 채 오직 자신의 치명적인 병 하나를 낫기 위해 순종했던 것이다. 나아만 장군의 치유 이적에서 너무도 중요한 포인트는 '엘리사'라는 제 3자를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기적을 체험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특별한 하나님의 능력을 지닌 엘리사가 이 치유 이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엘리사가 아무리 탁월한 능력을 가졌어도 그 입에서부터 나오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8. 결론
① 나아만 장군에게는 나병이 은혜였다. 나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그냥 군대 장관 한 번 하고 인생은 허무하게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병에 걸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만날 수 있었고 하나님을 통해 영육이 다 구원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문제가 은총과 구원의 시발점이 된다. 문제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모른 채 살다가 사라진다.
② 나아만 장군은 사람들을 잘 만났다.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계집종, 아람 왕, 부하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등등, 나병을 치유받기 위해서 하나님은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부쳐주셨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으로 이끄는 축복의 사람들을 만나자.
③ 모든 세상 자랑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만일 나아만이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더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히 순종했을 때 치유의 이적이 일어났다. 순종이 은혜와 구원과 축복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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