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한성진목사/갑절의 능력을 받읍시다! (왕하 2:8-1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 4. 07:50

한성진목사/갑절의 능력을 받읍시다! (왕하 2:8-10)

 

(요약)

갑절의 능력이란 양적으로는 2배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참된 본질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그러므로 갑절의 능력이란 단순한 이적적인 능력을 넘어 영적으로 새 사람되게 하는 능력이다. 곧 갑절의 능력이란 구주를 믿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능력이다. 또 이웃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물리적 상황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은 온전케 하시는 능력을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외적인 능력이 전부가 아니다. 이제 내적으로 변화되는 갑절의 참 능력을 받도록 하자

 

설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런 당부를 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1:4), 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능력 받지 않고는 세상을 살아갈 수도 신앙생활도 사명감당도 그 무엇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스승의 능력을 갑절로 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입니다. 엘리야는 참 어려운 일을 구한다고 했지만 엘리사는 갑절의 능력을 구하는데 성공하여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 아주 귀하게 쓰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해 이 시간 첫 주일을 맞이하여 “갑절의 능력을 받읍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릴 때 함께 능력을 사모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갑절의 능력이 무엇일까요?

 


갑절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아야 갑절의 능력과 영감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성경에서 갑절이란 양적으로는 두 배이지만 그러나 성경에서 신령한 의미에서 사용될 때는 본질적 온전함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예표적으로 엘리야와 엘리사는 장차 오실 예수님과 그 사역을 이어 진행하실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구했다는 것은 장차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역의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본질적으로는 한 분 하나님의 사역이지만 구분하자면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기사와 이적이라는 외적인 표적과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예수가 메시야임을 알리셨다면 이제 성령께서는 그들 심령 속에 찾아오셔서 그들은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하셔서 온전케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갑절의 능력이란 우리 심령의 온전한 변화를 가리킵니다. 이 사역은 한 분 하나님의 사역으로서 상호연계성이 있음과 아울러 점진적 발전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시간 내가 변화되고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변화를 입는 더욱 큰 능력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체적으로 갑절의 능력이란?

 


1. 예수를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고전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이것은 이적 중의 이적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것 쉽게 보지 마세요.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해방되듯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 아무나 믿는 것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 믿지만 또한 성령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사와 이적이 아무리 좋아도 거기 머물러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나 주님을 사랑하는 줄 아세요? 우리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죄악에서 방황하십니까? 마음의 평안이 없습니까? 천국의 소망이 없습니까? 갑절의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을 보지 못했으나 믿고 또 말할 수 없는 영광으로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2. 갑절의 능력이란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고전12:31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했습니다.

이 은사가 바로 그 다음 장에 나오는 사랑의 은사입니다. 믿음 소망도 좋지만 그 중에 제 일이 사랑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에 사랑의 은사가 풍성한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분이 어느 날 식당에 갔는데 분위기가 썰렁하고 서비스가 엉망이었습니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던지듯이 놓고 가더니 식사도 아무렇게나 툭툭 놓고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팁을 주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이는데 성령께서 이상한 감동을 주셔서 3배나 많은 팁을 놓고 문을 나섰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따라 나오면서 "손님! 왜 돈 놓고 가시나요." 그래서 그 목사님이 "팁이에요. 받으세요." 그러니까 그녀가 "왜 팁을 이렇게 많이 주나요?" 그래서 목사님은 "왠지 오늘 당신의 얼굴이 어두운 것 같아서 한번 유쾌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가 자신의 불친절을 사과하면서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알고 보니까 바로 전 날 남편과 이혼했던 여자였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목사님은 그분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위로해주었다고 합니다.

 


이게 싸늘한 사람을 눈물의 사랑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진짜 큰 능력이에요. 사람의 마음 안수기도해서 고치는 것 아닙니다. 온갖 지혜로운 말을 다 동원해도 되지 않아요. 그러나 사랑이면 사자도 순해지고 문제아도 마음을 바꾸고 원수도 그 앞에 엎드립니다. 사랑만큼 놀라운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고전13:1-3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말 잘한다고 예수님 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고(요13:34),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5) 하셨듯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배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사랑은 영적 최고 봉우리입니다. 웬만큼 은혜 받아 가지고는 사랑 못합니다. 아직도 미움이 존재한다면 이 사랑의 갑절의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갑절의 능력이란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막4:37-39에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했습니다.

 


그 험한 폭풍 속에서도 아버지를 믿고 주무시는 예수님의 이 모습, 그리고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신 이 바로 모습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것이 능력 받은 모습입니다. 바울도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두 주간이나 폭풍 속에서 고난 받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평안했습니다. 베드로도 오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물 위를 걸었습니다. 이렇게 환경을 초월하는 말씀의 믿음이 바로 갑절의 능력입니다.

 


아브라함 보세요. 롬4:18-22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하였습니다.

 


다윗은 어떻고요. 시131:1-2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안케 하기를 젖 떼인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떼인 아이와 같도다.” 그리고 시27:1,3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환경에 압도되고 질식당해 염려하고 근심하고 낙심한다면 믿는 능력부터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믿고 환경을 꾸짖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는 예배 시간에 교인들이 독사를 주물럭거리면서 예배를 드리는 사진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은 - 뱀을 집는다(막16:17-18).”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보여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는 안 할지라도 온전히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요20:29) 하셨습니다.

 


기사와 이적만이 능력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좌절에 빠져 낙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호렙산으로 불러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있은 후 조용한 가운데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보이는 것 느끼는 것 체험이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함께하시고 변함없이 역사하신다는 흔들리지 않는 말씀신앙을 심어주셨습니다.

 


이처럼 나에게 아무런 표적이 없고 느낌이 없어도 그 말씀 믿고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갑절의 더 큰 능력입니다. 그래서 저도 기도도 하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기도하는 대상에게서 변화가 옵니다. 나는 능력 없어 안 돼 하지 마시고 말씀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사가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을 원했던 것처럼 성령의 갑절의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보지 않고도 믿고 순종하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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