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조한우목사/십자가의 도! (고전 1:18-31)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 20. 10:27

조한우목사/십자가의 도! (고전 1:18-31)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항상 남을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물론 자기 나름대로 지식도 있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고, 세상 물정도 잘 알아서 처신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기가 어리석다는 것을 알고 늘 조심하며 겸손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상석에 앉는 것 보다 말석에 가서 앉습니다.

자신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열심히 배우기를 좋아합니다.

남의 가르침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잘 받아들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물론 제가 말씀을 드린 이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지혜가 있고 없고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이에요.

날마다 가슴을 치며 통회자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는 이만하면 됐다.’고 하면서 자만하고 게을러서 열심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실상 스스로는 지혜가 있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쓰여진 말씀입니다마는 그때도 지금처럼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쓴 편지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18절)

우리들이 쓰는 말 중에는 한자어(漢字語)가 많기 때문에 잘 이해가 되지 것들이 많은데요, 십자가(十字架)의 도(道)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타고다니다 보면 가끔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고 그러죠?

“도를 아십니까?”

누구죠? - 대순진리교라는 신흥종교 사람들입니다.

덕산에서 중산리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무슨 절도 아니고 엄청나게 크게 지어 놓은 건물이 있는데, 거기도 대순진리교라고 들었습니다.

옛날에 이순자씨가 대순진리교 교인이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아마 맞을 거예요.

대순진리교에 재산이 엄청나답니다.

동산 부동산 할 것 없이 다 갖다가 바치거든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전도할 때 첫 마디가 그거래요.

“도(道)를 아십니까?

그러면서 ‘재주가 있어 보이십니다. 신수가 훤하십니다. 얼굴을 보니까 앞으로 큰 일을 하실 분 같습니다.’ 그러면서 접근을 한다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말하는 도(道)라는 것, 또 불교에서 말하는 도(道)!

‘도(道)를 닦는다. 도(道) 통했다.’

한국 사람들은 이 도(道) 사상에 대해서 관심이 꽤 많습니다.

아마 신선(神仙)사상의 영향인지도 모르겠어요?

 

한자어(漢字語)에서 말하는 도(道)라는 것은 진리를 말하는 겁니다.

우리 기독교의 진리, 저 사람들이 말하는 도(道)가 뭐예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十字架)의 도(道)’인 거예요.

기독교의 진리, 십자가의 진리를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게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겁니다.

적어도 교회에 나온지 몇 년이 지났다고 한다면 우리 기독교dmjl 진리에 대해서 도(道)가 통해야 되지 않겠어요?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독교의 진리, 십자가의 진리를 우리들이 배울 건데요.

우리 기독교의 진리는 역설입니다.

어려운 말로 패러독스(paradox)라고 하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누가 너에게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기꺼이 십리를 가 주어라!

누가 너에게 겉옷을 달라고 하거든 속 옷까지 벗어 주어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도 돌려 대라는 겁니다.

남들은 다 넓은 문으로 들어갈 지라도 너희들은 어디로 들어가라고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남들은 다 일요일날 놀러 가고 학원에 가고 그러지만, 너희들은 이 날이 주의 날인 줄 알고 어떻게 하라고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라는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동네에서 놀러 가면 꼭 언제 가나요? - 꼭 주일날 놀러 간단 말예요.

직장 다니다가 모처럼 만에 늦잠도 자고 여가도 즐기고 싶은데, 그럴 수 있어요? 그럴 수 없어요? - 그럴 수 없단 말예요.

세상 사람들은 한 달 벌어서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고들 난리들인데, 우리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요?

먼저 십분의 일을 떼어서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그리고 나머지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주일 헌금 드리죠? 감사예물 드리죠? 구제하고 선교하고 먼저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인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때에는 자기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인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받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을 하던 그 당시에 고린도 교회에서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유대인들이었고요, 두 번째는 로마 사람들, 다시 말해서 헬레니즘 문화에 길들여진 헬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원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잖아요?

저 사람은 왜 저 모양이냐고 하지 마세요!

‘난 저 사람이 하는 거 정말 맘에 안 들어.’ 그렇게 말하지도 마세요!

교회는 원래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모여 있어야 그게 정말 교회인 것이지 다 나하고 똑같은 사람들만 갖다 놓으면 그게 교회예요? 계 모임이지?

그러니까 교회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무지개와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빨주노초파남보, 일곱색깔 무지개가 얼마나 아름다워요.

교회는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겁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랬어요.

유대인들은 유대인들 나름대로 열심히 믿는다고 믿었고, 또 헬라인들은 헬라인들대로 열심히 믿는다고 믿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다 믿는 게 아니잖아요?

지난 주 수요일이었나요?

‘우리가 뭘 믿느냐? 어떻게 믿느냐?’ 이것이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표적을 중요하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뭔가 표적을 보면 내가 믿겠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셨던 주님, 이 시간에 우리들에게도 표적을 보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예수님께 뭐라고 그랬어요?

“아버지를 보여 주시옶소서. 그러면 우리가 믿겠나이다.”

하나님을 보여달라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 주님이 얼마나 답답하셨겠어요?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누구를 본 거예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

 

여러분, 아직도 하나님을 못 보신 분들 계세요?

제가 지금 9년째 칠정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십니까?

물론 저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를 보고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집에 가서 믿지 않는 남편이 믿지 않는 시동생들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면 내가 믿겠다.’고 하거든 그러세요?

‘아직도 하나님을 못 봤수? 나를 봤으면 하나님을 본 거지, 어디 하나님을 더 보여달라고 그래?’라고 자신있게 마을 하세요.

그리고 정말 하나님의 자녀답게 열심히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여러분들의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사람들은 자꾸만 뭘 보여 달라는 거예요. - 그러면 믿겠다고.

그런데 여려분, 그 사람들이 못 봐서 안 믿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못 보는 거죠.(아멘?)

 

22절 말씀을 보니까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했다고 그랬고요, 헬라인들은 뭘 구했다고 그랬어요?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았답니다.

헬라 사람들이 올마나 똑똑한 사람들인지 모릅니다.

아주 지적(知的)인 사람들이었거든요.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맞지 않으면 못 믿는 사람들이었어요.

헬레니즘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철학입니다. - 변증법(辨證法)

요즘 대학에 가려면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야 되지만, 요즘에는 논술이라는 걸 봐요.

어떻게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잘 펴느냐? -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헬라 사람들은 논리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변적(思辨的)이었고요, 쓸데 없는 농담으로 시간 보내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튼 머리 구조가 그랬어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개발된 것이 있는데, 사영리(四靈理)라는 거예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냥 믿음이 팍팍 오잖아요?

감동을 쉽게 받고 말씀만 들어도 ‘아버지!’ 그러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리는데, 똑똑한 사람들은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에요.

꼼꼼히 따져 보고 믿겠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개발 된 것이 바로 사영리(四靈理)라는 것인데, 인간의 영적인 원리를 설명해 주는 겁니다.

자연 우주 만물에는 다 원리가 있고 원칙이 있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의 영혼에도 원리와 원칙이 있다는 겁니다.

 

첫 번째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고 계시며,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리고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읽어주는 거예요.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 다들 아시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람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그러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뭘까요?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두 번째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사랑하시고 인간들을 위한 아름다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데, 인간들은 그만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서 죄에 빠져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게 되었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도 다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겁니다.

왜 그래요?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러데 세 번째 원리가 중요해요.

우리 예수님만이 인간들의 죄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고,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깨닫게 되고 또 그 사랑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

그러면 우리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해 드릴 수가 있을까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 8,9)

 

우리 예수님께서도 우리 안에 들어오시기를 원하실까요? 안 원하실까요?

우리 주님도 우리 안에 들어오시길 간절히 원하고 계신단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에 뭐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할렐루야!)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네번째 원리를 설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 마음의 중심에 앉아서 주인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고 영접을 해서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 내 영혼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 당신은 어떠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대분이 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싶다고 말을 합니다.

안 그렇겠어요?

지금까지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살아와 봤지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생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단 말입니다.

그런데 4영리 설명을 듣고 보니까 이해가 되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는 거예요?’

‘예, 당신은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기도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당신의 중심에 들어오시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나는 기도 할 줄 모르는데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입으로 하는 말보다는 우리 중심의 태도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저를 따라서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그리고 영접 기도를 시키는 거예요.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죗값을 담당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 어떠세요? 이 기도가 마음에 드세요? 이제 예수님께서 당신의 마음에 들어오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러면 아무리 완악한 사람이라도 다 주님을 영접해서 믿게 되어 있어요.

 

설명이 좀 길어졌는데요, 아무튼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표적을 봐야 믿겠다고 하고 지식적으로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설명이 되어야 믿겠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도 바울의 입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 처럼 보이지만, 구원을 받는 너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느니라!”(믿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표적을 구하고 지혜를 찾지만, 우리들이 표적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지혜로운 말로 설명할 자신이 있어요?

없습니다. 그런 능력이 우리들에게는 없단 말예요.

그럼 우리들이 전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전할 것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전하면 유대인들은 듣기 싫다고 귀를 막아 버렸습니다. 자기들이 예수님을 죽였거든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전하면 헬라인들은 어리석은 걸 전한다고 비웃었습니다.

자기들의 철학이나 자기들의 이성과 지식, 그리고 자기들의 상식으로 보니까 정말 미련해 보였거든요.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25절)

그러므로 사랑하는 칠정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들이 자랑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으니라.”(31절)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