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 (막 5:21-24, 35-43)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 25. 18:32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 (막 5:21-24, 35-43)

 

  세상은 급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급변하고 있습니다. 크게 네 가지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세계화시대'입니다. 이제는 이 세계화가 얼마나 실감이 있느냐 하면 우리 스스로는 이제는 식생활도 안됩니다.
  우리 식탁에 들어와 있는 이 세계의 농산물, 축산물, 우리가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 이 모든 환경이 이제는 세계의 것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것도 세계로 다 나갑니다. 이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세계가 한 가족이 되어 있습니다. 세계화에 아무도 역행을 할 수가 없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고령화시대'입니다. 지금 고령화시대를 우려하고 염려하던 때가 20년 전입니다. 20년 전의 미래학자들이 고령화시대를 많이 예언을 했는데 이제 도래했습니다. 사회가 고령화되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활기가 없어집니다.
  이제는 노인병원이 필요하고 노인을 위한 온갖 프로그램이 따라와야 되고 교회도 노인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고령화가 점점 가까이 우리 사회에 큰 이슈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전문화시대'입니다. 이제는 전문화가 안 되면 살지를 못합니다. 전문화가 안 된 사람들은 이제는 다 밀려납니다. 방법이 없고, 길이 없습니다. 이제는 쓰레기를 치워도 전문성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아무렇게나 해 가지고는 일이 안됩니다.
  이런 상황으로 지금 세 가지 경쟁을 하고 있고, 이 지구촌이 이 세 가지 때문에 지금 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굴러가고 있습니다.
  네 번째는 '정보화시대'입니다. 국가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개인도 그렇고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급정보를 얻는 것이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되었습니다. /할/
  그런데 이런 급변하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힘(力)이 있어야 합니다. 힘은 능력(Power)입니다. 힘이 있어야 어려움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힘에 부치면 아무 일도 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힘을 기르고, 할 수 있는 대로 큰 힘을 소유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에게 필요한 힘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여러 가지 중에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첫째로, 돈의 힘, 재력(財力)이 있습니다. 돈의 힘이 얼마나 큰지 두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권력(權力)이 있습니다. 이것도 대단합니다. 사람들이 그 앞에서 굽실거립니다. 그래서 한번 권력의 맛을 보면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그 외에 지식의 힘 지력(知力)과 육체의 힘 체력(體力)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힘이 있습니다. 마음의 힘입니다. 심력(心力)입니다. 흔히 '정신력'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영국의 심리학자 'J. 하드필드'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 스스로 '난 틀렸어. 이제 끝났어!' 라고 생각하며 자괴감에 빠지면 실제 능력의 30%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자신감이 있으면 500%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이며 세계 제일의 부자 '빌 게이츠'에게 어느 기자가 찾아가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이토록 크게 성공한 비결이 뭡니까?' 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매일 나 자신에게 최면을 겁니다. '오늘은 분명히 행운이 있을 거야'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바로 이 두 가지이죠.' 심력,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할/
  하지만 심력을 포함해서 모든 종류의 인간적 힘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말 어렵고 힘든 상황이 닥치면 포기하고 무너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보다 더 강력한 힘이 필요합니다. 평소에는 물론이고 극한 상황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런 힘이 있겠습니까?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영력'(靈力)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힘'입니다. 인간의 힘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믿음의 힘입니다. /아멘!/
  ▶믿음의 사람 '록펠러의 지팡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미국의 대부호 록펠러는 수십 개의 대학을 세우고 4,928개의 교회, 그리고 UN 본부 빌딩을 신축하여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도서관도 세워 기증을 했습니다.
  하루는 한 기자가 록펠러에게 '선생께서는 35년 동안 세계제일의 부를 누리는 원인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록펠러는 '나는 어머님으로부터 두드리면 돈이 나오는 요술 방망이 4개를 물러 받았습니다.'라고 말하고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첫째 방망이는 '십일조'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 십일조를 배웠고 그것을 지켰습니다.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다 보니 어느새 세계최고의 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 방망이는 '교회가면 맨 앞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어머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저는 언제나 앞자리를 고수했습니다. 나는 앞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예배시간 한 시간 전 늦어도 40분전에 예배당에 도착했습니다.
  세 번째 방망이는 '교회에서 시키는 일이면 무슨 일이던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는 내 마음과 상관없이 무조건 복종하고 순종했습니다.
  네 번째 방망이는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를 괴롭게 해서 이로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
  록펠러는 92세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머니가 지키라고 한 것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이런 믿음이 그를 세계적인 재벌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믿/아멘!/    
  성경은 우리 인생들에게 믿음의 힘인 영력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 수많은 케이스를 통해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제목 소개!▶

 

  본문은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두 편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이 소개되었고, 또 하나는 12년 된 혈루증 여인의 믿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야이로의 믿음이 그의 죽은 외동딸을 살렸고, 12년 된 혈루증의 여인도 그의 믿음으로 그 병을 깨끗하게 치료받았습니다. /할/
  주님의 능력은 이런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일어납니다. 기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아멘!/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세 사람의 죽은 자를 살리신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눅7장에 나오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장례식 하는 도중에 관속에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큰 사건은 요11장에 죽어 이미 장사된 나사로를 무덤으로부터 불러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시니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가 제 발로 무덤을 걸어나왔습니다. 
  이 세 사건을 비교하면 아주 재미있는 점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병상에서, 한 사람은 관속에서, 한 사람은 무덤에서 각각 살려내셨습니다. 시간적으로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창조적인 사건입니다. /아멘!/
  본문은 공관복음에서 다 취급하고 있습니다. 마8:18절 이하에서, 또 눅8:40절 이하에서도 취급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하게 상고하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①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시매' 1-20절의 사건 뒤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 있는 동네 거라사인의 지방을 지나가실 때였습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귀신이 들여 힘이 셉니다. 그 어느 누구도 쇠사슬로 맬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랑과 쇠사슬로 매어도 다 끊어 버리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무도 그 귀신 들린 사람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가 멀리에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 와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그리고 귀신이 예수님에게 애원하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소소서'
  그때 마침 그 옆에 돼지 떼가 산 곁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다시 간구하기를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예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돼지 2천 마리가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리고 귀신 들렸던 사람은 회복되어 정신이 들어서 얌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군대마귀든 자를 깨끗케 치유해 주셨습니다. /할/ 이 때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예수님에게 와서 '우리 지역을 떠나 주십시오' 그래서 배를 타고 저편으로 오신 것입니다. /할/
  그런데 저편으로 건네 오신 예수님곁으로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의 주인공 야이로가 있었습니다. 오늘 야이로에 신앙을 잘 배워서 큰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②야이로가 누구인가?(22-23)
  그 당시 화당장이었고,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딸이 죽게 되었다'는 고백을 보면, 아마도 큰 병에 걸리지 않았나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12살 난 외동딸이라고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의 상황은 절대 절망, 절대 위기에 있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그의 신분을 보면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⑴그는 회당장입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이 쳐들어 올 때 하나님의 성전이 다 무너져 버렸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때부터 이곳, 저곳으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성전 중심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작은 회당을 지어놓고 거기서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마태복음에 의하면 관리라고 합니다. 관료의 원어 적인 뜻은 '지배자'라는 말입니다. 회당장이면 당시 사회의 지도층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고, 지방에는 다 회당이 있었습니다. 회당은 8명의 장로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한 명을 회당장으로 추대합니다. 우리 식으로 말해 당시 회당장이라고 하면 지방자치단체장입니다.
  회당은 성전의 기능과 교육기관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회당장은 백성의 종교지도자요 교육가요 그 지방의 원로였습니다. 그러니 그 명예나 권위, 지위에 있어 회당장은 그 사회의 지배계급에 속했습니다.
  특히 회당장은 장로 중에서도 유대교에 철저하고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 회당장이 되었기에 대개는 바리새파에 속한 사람이거나 서기관이 추대되었습니다. 야이로가 바로 이런 회당장이었습니다.


  ⑵그 당시 야이로가 주님 앞에 나왔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이때는 주님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을 때였습니다. 주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 쪽 손이 불구가 된 사람을 고쳐준 사건 때문에 유대인으로부터 미움을 사고, 유대인들은 주님을 해치기 위해 모의하던 때입니다.
  막3:6절에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종교지도자들이 정치 지도자들과 만나 주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고 수작하던 그런 때였습니다. 그런 분위기인데 회당장인 야이로가 공개적으로 주님께 나왔을 뿐만 아니라, 주님 발 앞에 엎드려 간곡히 구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엎드려 절했다고 합니다.
  유대인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은 단순한 예의를 넘어서서 예배와 경배를 뜻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백성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회당장 야이로가 주님 앞에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손가락질을 했겠습니까?
  과격한 사람들은 돌까지 던졌을지 모릅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라는 지위도, 남의 이목도, 체면도 다 접고 주님 앞에 나와 엎드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앙이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할/


  ⑶그의 가정에 절망의 문제가 닥쳤습니다.
  야이로는 학설에 의하면 나이가 많았는데 늦게 딸 하나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딸이 갑자기 병이 들어 죽어갑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늦게 둔 외동딸, 그 딸은 야이로의 기쁨이요, 소망이요, 인생살이의 행복의 전부였을 것입니다. 이런 귀한 딸이 갑자기 죽음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부모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동분서주 사방팔방으로 유명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가 보고 좋다는 약은 다 써 봤을 것입니다.
  그러나 딸은 점점 죽어만 갑니다. 죽음이란 참으로 무상한 것입니다. 죽음은 남녀의 구별이 없습니다. 노소의 순서도 없습니다. 빈부귀천 차별도 없습니다.
  히9:27절을 보세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렇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언제부터 인생이 죽음이 왔습니까? 아담이 죄를 범한 후부터입니다. 창3: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 죽음 앞에 사람은 누구든지 숙연해지고 진실해 집니다.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권세도, 어떤 세상의 명예나 지위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유대의 고급 관리요, 종교 지도자요, 회당장 야이로도 열두 살 된 사랑하는 외동딸의 죽음 앞에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8장에는 자기 딸이 '방장 죽었다.'고 했는데, 이는 죽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숨이 막 끊어지려는 순간'입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포기를 합니다. 그러나 숨이 끊어지려고 할 때는 부모의 마음이 제일 아플 때입니다. 이 아이를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예수님께 뛰어온 것입니다. 믿음은 어떤 절망적인 사건 앞에 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떠나던가? 주님께 가까이 하던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야이로는 두 번째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길이 문제 해결의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아멘!/ 그래서 야이로가 예수님의 무릎 앞에 꿇어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사실 당시 회당장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최고의 사건입니다. 유대관리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비판적인 상대로 보았습니다. 유대교를 무너뜨리는 자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비판을 했고, 틈만 있으면 죽이려고 기회만 보고 있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야이로가 '절을 했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겸손과 존경을 다 드렸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 은혜를 입기를 원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주님께 최대의 존경과 겸손을 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겸손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아멘!/

  ⑷야이로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가 응답입니다. /할/ 어떤 사람이 기도합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이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두려움도 이깁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 두려움이 있습니까? 두려움을 이기려면 기도를 많이 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요나가 풍랑 만나 바다에 던져져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이 때 한 일은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잡히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기독교 전문잡지인 '가이드 포스트'지에 실린 '알렉산더 풀루무어'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그는 65세가 되도록 한 번도 아파 본 일이 없었는데 어느 날 병원에서 전립선암이라는 선고를 받습니다. 그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아버지도 바로 자기 나이에 전립선암을 선고받고 두 달만에 돌아가셨고, 삼촌도 두 사람이나 그 병으로 죽었고, 사촌도 몇 사람이 그 병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 이제는 내 차례가 왔구나!' 하는 순간 맥이 풀리고 아무 의욕도 없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낙심하여 운동도 사업도 다 정리하고 사람조차 만나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았습니다. 깊은 우울증과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어떤 누구의 위로도 희망적인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는 못하고 대신 '하나님, 사람이 한번은 가겠지만 지금 제 마음이 너무나 두렵습니다. 이 두려움을 없이 해주세요. 이 무서운 두려움 자체를 가져가세요'
  그는 오직 이 하나의 제목으로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죽어도 주님과 만난다는 소망이 생겨나면서 두려움의 공포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죽음조차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 참 거 이상하다.'고 하면서 모든 삶이 정상으로 돌아와 어느 사이에 잃어버렸던 체중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 하는 말이 '이건 기적이요. 다 나았으니 다시 병원에 오지 마시오' 했다는 간증입니다. /할/ 하나님께 부르짖고 기도하여 두려움을 이기고 나니 주님이 주신 그 평안히 그 불치의 병까지도 다 이겼던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시32:6절에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라고 했고, 시34:4절에서도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절망가운데 있다할지라도 기도하십시오! 오늘 회당장 야이로의 기도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그는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것도 많이 간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간구하는 기도가 무슨 기도입니까? 간절히 구하는 기도입니다. /할/
  ▶서울 약수동에 엉터리 권사 한 분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교회에 나가지 않았는데 돈을 잘 버는 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장의 부인이 권사가 된 것은 믿음이 좋고 봉사를 잘해서가 아니라 돈이 많은지라 헌금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했더니 권사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자기 남편의 덕을 본 것입니다.
  권사가 된 후에도 주일 낮 예배 한 시간 드리는 것이 전부였고, 저녁 시간에는 예배드리러 나오는 법이 없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파티에 참석해서 화려한 모습을 뽐내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분명히 자신이 생각해 봐도 엉터리 권사였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머니의 믿음이 엉터리인 것을 알게 된 고등학생 아들이 교회 생활을 중단합니다. 어머니의 가짜 믿음을 이어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못된 친구들과 어울리고 경찰서 유치장을 제 집 드나들 듯 합니다. 이제는 아주 집을 나가 버립니다.
  그 아들 때문에 속을 태우게 되면서 비로소 그 어머니 권사는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 아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한 것입니다. 자기로 인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라고 생각을 깊이 하면서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목사님의 설교에서 가슴 뜨거운 은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형식적인 믿음, 의식적인 믿음을 내려 노라'는 말씀에 그만 엎드려 한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예배시간마다 참석하여 아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생활이 달라지고 가정생활이 달라졌습니다.
  아들이 집에 들어 왔다고 하면 돈을 훔치러 들어오곤 했는데, 어머니가 달라졌고 집안이 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되자, 그 아들의 마음도 녹아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마음을 잡고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할/ 이제 그 권사는 기도하는 권사로 별명이 붙었고, 자녀의 문제가 있는 가정만을 맡아 심방하는 권사가 되었답니다. 기도가 축복의 통로입니다. /아멘!/


  ⑸야이로는 구원의 확신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내 딸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 딸이 살겠나이다.' 이런 믿음이 귀한 믿음이요,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아멘!/
  야이로는 예수님은 죽은 자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믿었습니다. 실로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면 무엇이든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믿/
  인간은 인간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하루살이의 생명도 한번 죽은 것은 다시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인간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도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교에 사두개파 교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막12:24절에서 부활이 없다고 우기는 사두개인들에게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고 꾸짖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분은 세상 우주 만물을 지으신 분이요, 사람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고장이 나면, 그러니까 병난 것도 죽은 것도 고칠 수 있고, 살릴 수가 있습니다. /믿/
  마19:26절에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아멘!/
  ▶어떤 사람이 등산을 갔는데 바위에서 미끄러졌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떨어지다 나뭇가지를 붙잡았습니다. 이제 살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홀로는 도저히 벼랑위로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고함을 질렀습니다. '누구 없소?' '살려 주세요' 그 때 놀라운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당신이 누구요?' '네가 믿는 하나님이야' '아이고, 하나님 여기 계셨습니까? 날 좀 살려주세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 확인 할 것이 있다. 너 정말 나를 믿니?'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 있게 '믿고 말고요' '증거가 무엇이냐?' '저는 매주일 교회에 나갈 뿐만 아니라 새벽기도회도 나갑니다. 또 성경도 매일 읽고 매일 기도도 하고, 십일조도 꼬박 꼬박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봉사도 합니다.' '그런 것말고 너 정말 내 말대로 다 믿겠니?' '무슨 말씀이든지 다 믿습니다.' '그럼 나뭇가지 잡고 있는 손을 놔 봐라' '손을 놓으라고요?' 이 사람은 잠시 생각하다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습니다. '위에 다른 사람 없소!' /할/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이 잠언처럼 여기는 철학은 이주 단순합니다. '앞이 막혔느냐? 그러면 뒤를 봐라. 뒤가 막혔느냐? 그러면 옆을 봐라. 옆도 막혔느냐? 그러면 위를 봐라'
  사방이 다 막혀 있어도 하늘은 뚫려 있으므로 위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방이 가로막혔어도 위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아멘!/


  ⑹회당장 야이로는 중도에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인내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24).
  야이로는 이제 주님을 모시고 가고 있습니다. 24절에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이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습니다. 야이로는 주님이 함께 가신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한껏 고무되었습니다. 내 딸이 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이때 또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 받는 한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 옷자락만 만져도 낮겠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더니 12년 동안 고통 받았던 그 혈루 근원이 깨끗이 마르고 치료받았다는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은 묘하게도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낫게 하신 사건의 중간에 끼어 있습니다.
  ▶세상에는 종종 뜻하지 않는 중에 놀라운 발견을 하고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수가 있습니다. 사울이라는 청년이 자기의 아버지 나귀새끼를 찾으러 다니다가 뜻밖에 사무엘이라는 선지자를 만나 '네가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또 '콜롬부스'가 인도를 찾다가 뜻밖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습니다.
  본문의 이 여인도 이런 감을 줍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청을 받아 그 집에 가는 도중에 뜻 밖에 초청을 받지도 않은 이 여인이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 뒤에서 그 옷을 만져서 열두 해나 앓고 있던 혈루증이 낳게 되고 구원을 받았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25-34).
  물론 이 기적 자체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정작 속이 탄 사람은 야이로입니다. 지금 자기 딸은 분초를 다투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앞으로 나가시지 않고 혈루증 여인에게 매달리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는 길에 여러 변수가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주님과 나 사이에 끼여들어 주님과의 동행을 훼방하고 지체시키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늘 하루만 동창회에 오라고 합니다. 오늘 하루만 나하고 산에도 가고 물에도 가자고 유혹을 합니다. 우리는 단호히 뿌리치고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아멘!/

 

  ③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길에도 인생의 문제는 끈임 없이 일어납니다.
  ⑴결국은 야이로가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 실제 벌어졌습니다(35).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주님이 혈루증 앓던 여인을 잡고 지체하는 동안 집에서 기별이 오기를 '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하늘이 무너졌을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가장 무서운 공포가 죽음의 공포입니다. '나폴레온 힐'은 현대인에게 7가지 불안이나 공포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난에 대한 공포, 실패에 대한 불안, 질병에 대한 공포, 사랑을 잃어버릴까에 대한 공포, 노후에 대한 불안, 자유 상실에 대한 불안,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가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지금 야이로에게 그 마지막의 딸의 죽음의 공포가 임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림에 대한 공포도 밀려왔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중간에서 이런 소식이 왔습니다. 이 말은 '이제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도 늦었습니다. 이제는 소용이 없습니다.'란 말과 같습니다. '기도한들 무엇합니까? 열심히 신앙 생활한들 무엇합니까?' 이런 소리와 같습니다.
  성도들에게 제일 먼저 다가오는 시험을 이런 부정적인 음성입니다. '너는 이제 망했어, 너는 이제 틀렸어' 이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듣습니다. '믿은들 뭐하며, 기도한들 뭐해' 이런 때 대부분이 실망합니다. /gkf/


  ⑵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한번 따라합시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야이로가 충격을 받고 쓰러지지 못하도록 주님이 단속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죽으면 그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이 손을 써도 아직 살아있을 때이지 죽은 다음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야이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그런 상식과 판단을 부정하십니다. 딸이 죽었다는데도 절망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무너지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아멘!/
  이게 중요합니다. 분명 주님과 함께 가고 있는데도 겪을 것 다 겪습니다. 주님과 함께 간다고 모든 불행이 피해가지 않습니다. 아니 때로는 주님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구원을 극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감격을 배로 느끼게 하시기 위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병든 딸을 고쳐주시는 것보다 죽은 딸을 살리는 게 더 극적입니다. 나사로의 경우를 보십시오. 나사로가 병이 들자, 마르다와 마리아가 주님께 기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특별한 이유 없이 계시던 곳에 더 머무르셨습니다. 이틀을 더 지체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죽자 비로소 우리의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깨우러 가자고 하시며 베다니로 오셨습니다.
  이미 죽은 지 나흘이 지나 시신이 썩어 냄새나는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시며 그를 불러내십니다. 여러분, 이런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할/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불행 앞에서 무너지면 안 됩니다. 최악이라고 쉽게 포기하면 어리석습니다. 주님이 여전히 내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여전히 나와 함께 가고 계십니다. 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더라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귀를 열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야이로를 보십시오. 주님의 말씀에 혼미해진 정신을 수습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아멘!/


  ⑶사복음서에 보면 '믿으라'는 말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믿으라는 말씀을 강조할 때 두 가지 믿음의 장애물을 극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두려워 말고' 믿으라고 하셨고, 두 번째는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두려움과 의심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두려워하면 의심에 이릅니다. 의심에 이르면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장애물은 두려움과 의심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수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아라' 풍랑 이는 바다에서 제자들이 두려워하면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칠 때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의심하느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지 않느냐? 왜 의심하느냐?' 이렇게 주님은 두려움과 의심을 극복하면서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믿기 어려울 때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견디기 어려운 그 순간에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은 위기가 없을 때 믿음이 아니라 위기가 있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11:40절에서 주님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할/


  ⑷주님은 누구와 동행하십니까? 믿음의 사람들과 동행하십니다.(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치 아니하시고'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야이로'와 동행하셨습니다. 열두 제자들이 다 같이 현장에 가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믿음의 사람들을 쓰시고 축복하십니다. /할/


  ⑸야이로의 딸이 죽어 헌화하고 있습니다(38).
  ▶당시 유대의 전통에 따르면 사람이 죽었을 때 세 가지 의식을 합니다.
  ㈀슬픔을 표시하기 위하여 옷을 찢습니다.
  ㈁통곡을 합니다. 당시는 대신 울어주는 사람들 돈을 주고 샀다고 합니다.
  ㈂피리를 불면서 애도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분명히 그 딸이 죽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딸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선언하십니다.

 

  ④예수님의 선언이 무엇입니까?
  ⑴'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십니다(39).
  이 소리를 들던 군중들은 비웃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 않습니다. 자는 것입니다. 잠자는 자는 깨울 수가 있습니다. 성도는 부활의 찬란한 영광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멘!/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가시면서 요11:11절에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고전15:20-21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할/


  ⑵주님은 항상 긍정적인 사람을 쓰십니다(40).
  주님은 비웃는 자들과 믿음이 없는 자들을 다 배격하시고 믿음의 사람들만 대리고 가셨습니다. 여기서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야이로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긍정의 사람을 쓰십니다. /할/
  민13장에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의 두령들 12명으로 하여금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오라고 했더니 40일 만에 돌아와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고,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결국 부정적인 사람들 때문에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가나안을 못 들어갔고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부정적인 마음에서는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에는 긍정적인 마음에 있어야 합니다.
  ▶1975년 여름 어느 날, 박정희 대통령이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을 청와대로 급히 불렀습니다. '달러를 벌어들일 좋은 기회가 왔는데 일을 못하겠다는 작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중동에 다녀오십시오. 만약 정사장도 안 된다고 하면 나도 포기하지요.'
  정회장이 물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1973년도 석유파동으로 지금 중동국가들은 달러를 주체하지 못 하는데 그 돈으로 여러 가지 사회 인프라를 건설하고 싶은데, 너무 더운 나라라 선뜻 일하러 가는 나라가 없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 일할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관리들을 보냈더니, 2주만에 돌아와서 하는 얘기가 너무 더워서 낮에는 일을 할 수 없고, 건설공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이 없어 공사를 할 수 없는 나라라는 겁니다.'
  '그래요, 오늘 당장 떠나겠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5일 만에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박 정희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하늘이 우리나라를 돕는 것 같습니다.' '무슨 얘기요?'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공사 하기에 제일 좋은 지역입니다.' '뭐요!'
  '1년 12 달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요' '또 뭐요?' '건설에 필요한 모래, 자갈이 현장에 있으니 자재 조달이 쉽고요' '물은?' '그거야 어디서 실어오면 되고요.' '50도나 되는 더위는?' '천막을 치고 낮에는 자고 밤에 일하면 되고요.'
  박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불렀습니다. '비서실장, 현대건설이 중동에 나가는 데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도와 줘!' 정 회장 말대로 한국 사람들은 낮에는 자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일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세계가 놀랐습니다. 달러가 부족했던 그 시절, 30만 명의 일꾼들이 중동으로 몰려나갔고 보잉 747 특별기 편으로 달러를 싣고 들어왔습니다. /할/


  ⑶기적은 믿음의 현장에서 일어났습니다(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할/ 여기 '달리다굼'이라는 말은 아람어로 '소녀야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주께서 '소녀야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니, 그 말씀대로 죽은 소녀가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은 죽은 자까지도 능히 살려내는 능력이 있는 말씀입니다. /아멘!/
  우리에게도 '달리다굼'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문제 앞에 좌절하고, 절망 때문에 가슴 치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달리다굼'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치료하고, 좌절하고 있는 자에게 소망을 주는 이 주님의 달리다굼의 음성이 꼭 필요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더 필요합니다. 죽은 신앙, 잠자는 신앙, 형식과 의식에 묻힌 신앙인들을 향하여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삶의 자리에서 그 게으름과 나태와 구경꾼의 자리에서 뭉개지 말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헌신의 자리로 충성의 자리로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주님은 우리에게 달리다굼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믿/
  ▶어느 주일날, 큰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 도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앉은뱅이처럼 앉아만 있습니다.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여기저기에서 화답했습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서 걸어야 합니다.'
  이어서 목사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일어나서 걷는 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뛰어가야 합니다.' 교인들은 너도나도 신이 나서 맞장구를 치며 화답했습니다. '맞습니다! 맞고요! 뛰어가야 합니다!'
  목사님은 더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은 너무나도 넓습니다.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그러자 모두가 동시에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는 날아가야 합니다. 날아갑시다!'
  목사님께서 흐뭇한 모습으로 교인들을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시대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이 시간 구체적으로 작정을 해서 하나님께 헌금을 합시다.'
  그러자 조용해졌습니다. 아무도 화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단지 한 사람이 용기를 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로 하여금 예전처럼 다시금 앉아있게 하십시다.'
  여러분! 이것이 행여 우리들의 모습은 아닙니까?


  ⑷살아난 소녀에게 주님이 주신 마지막 말씀이 무엇입니까?(43)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루에 세끼의 양식을 먹어야 육신은 건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의 양식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이 중요하고 하나님의 말씀 받는 시간이 중요합니다. /믿/아멘!/


  ⑸왜 우리 주님께서 이런 기적을 주셨습니까?

  주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일에 대하여 요11:42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도 그 분의 기적을 전하는 사명입니다. 우리 모두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능력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14년 1월 26일 대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