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천 목사 설교

[스크랩] 바른 봉헌생활이 넘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고후 9:6-1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2. 9. 13:31

바른 봉헌생활이 넘치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고후 9:6-12)

 

  신앙생활은 섬김이고 드림입니다. 성경에 가장 첫 번째 예물을 드린 사람은 창4장의 아벨과 가인입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는 농부이기에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치는 자이기에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기록 중에 '첫' 자가 중요합니다. 아벨은 하나님께 처음 소산의 '첫' 새끼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무엇입니까? 가장 소중한 것이요 구별된 것입니다. 그 예물을 드림에 있어 구별이 있고, 마음 중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물과 그런 예물을 드린 사람을 기뻐 받으십니다. /할/
  ▶사업을 하시는 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일주일 수입 중에 매주일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리는데,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서 매일 소득 중 십분의 일을 따로 떼어놓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장사가 다 끝나는 토요일에 떼어놓은 십일조 몫의 현금을 은행으로 가지고 가서 새 돈으로 바꿉니다. 은행에 새 돈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든지 미처 은행에 갈 시간이 없는 때에는 집에서 다리미로 돈을 정성스럽게 다린 다음 봉투에 잘 준비하여서 주일날 제단에 바칩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장로님의 행동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를 했습니다. '장로님, 새 돈이나 헌 돈이나 어차피 은행으로 들어가면 마찬가지인데 왜 그렇게 하세요?' 장로님은 대답하기를 '나는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기 때문에 가장 깨끗한 것으로 가장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드리기를 원합니다.' /아멘!/ 우리가 예물을 드리는 것은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떠한 마음과 준비로 헌금을 드리느냐에 따라 믿음의 있고 없음이 나타납니다. /할/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지역은 풍요롭고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모든 물자가 풍족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도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심한 기근이 들어서 먹을 양식도 없는데, 로마 황제의 통치 아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세금도 내야 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고린도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주기로 결정했습니다.
  바울은 8장에 이어서 9장에서도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한 연보를 드림에 대하여 말씀을 계속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심은 '받는 일', '생기는 일'이지 '주는 일'이나 '드리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이 지루하고 싫증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장장 두 장에 걸쳐서 '주는 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는 일', '드리는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받는 축복', '생기는 축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하나님은 반드시 심는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남을 도와줄 줄 알고, 남에게 은총을 베풀 줄 아는 사람,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사람은 반드시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심고 거두는 법칙, 즉 '부요의 법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심고자 하는 사람,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자 하는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여기서 심는 것도, 드리는 것도 봉헌생활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봉헌생활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주님께 드리는 생활이 봉헌생활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소중한 것들을 다 주셨습니다. 주시되 남김없이 다 주셨습니다. 자존심도 버리셨고 체면도 버리셨고 생명도 포기하셨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창조주가 되시는 그분이 피조물들로부터 죽임을 당해서 땅에 묻히는 수모도 당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제물 되어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심는 생활, 드림의 생활, 즉 봉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 주셨기 때문에 이번에는 우리들 차례입니다. 몸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재물을 드리고, 소중한 것들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봉헌생활이고 신앙생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드리고 봉헌하는 생활을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 인은 이 봉헌생활에서 기쁨을 얻어야 하고 즐겁고 행복함을 얻어야 합니다. /아멘!/
 
  ①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고 봉헌할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
  ㉠내 몸을 드리는 봉헌이 있어야 합니다.
  ⑴우리가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리는 이 순간이 몸을 드리는 봉헌입니다. 롬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여기 '거룩하다'는 뜻은 '성결되다, 구분되다, 깨끗하다'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약의 제사는 흠 없는 짐승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흠 없는 짐승 대신 성도의 자신의 심령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바꿔졌습니다.
  '너희 몸을 제사로 드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전에 나와 자신을 드리는 예배요, 둘째는 살아 움직이는 내 자신의 삶 그 자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예배가 되라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만 하나님께 나 자신을 바치는 거룩한 시간을 가질 것이 아니라 생활 전부를 하나님의 것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예배 시간만 예배가 아니라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 밖에 나가는 순간부터 또 하나의 새로운 예배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업가는 사업 그 자체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그 일 자체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활 그 자체가 하나님께 바쳐지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믿/
  ⑵선교사님들이 몸바쳐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는 130년 전에 선교사들이 이 땅에 들어옴으로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들어올 그 당시 우리나라 형편은 참으로 암울했던 때입니다. 어둡고 미개하고 가난하고 지극히 전근대적이고 우상과 악습과 우매함이 극에 달해 있을 때입니다.
  그때는 우리민족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세상 넓은 줄을 모르고 이 좁은 땅 안에 갇혀 살아갈 때입니다. 그때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와서 오늘 우리민족이 비로소 눈이 뜨이고 머리가 깨이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넓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는 존재로구나 하는 점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겠습니까? 선교사들의 사역은 처음에는 미약하지만 나중에는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미개한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복음을 전했던 그 때의 선교사들은 모두 몸으로 봉헌하고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처음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은 돈이 없어서 가재도구를 다 팔아서 그 돈을 가지고 여비 삼아 들어왔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순전히 몸으로 때운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몸의 헌신입니다. 몸으로 드린 봉헌생활입니다. 
  ▶오늘 아프리카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 리빙스턴입니다. 리빙스턴이 어려서 부흥회에 참석합니다. 그 부흥회를 참석했을 때 마침 아프리카를 위해서 헌금하고 있었습니다. 조상들이 아프리카 사람들을 많이 억압하고 괴롭혔는데 이제 오늘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 해서 모두 헌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리빙스턴은 돈이 없었습니다. 헌금바구니는 돌아오는데 돈은 없고 그래서 두발을 헌금 통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때 교회 전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가 하는 짓이 신기하기도 해서 모두 웃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그는 엄숙한 마음으로 '주님 나를 드립니다.'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후에 그 어린 아이가 성장해서 아프리카로 건너가 선교사가 됩니다. 그리고 사역을 다 마친 후 마지막 운명 직전에 유언하기를 '내가 죽으면 내 심장을 이 아프리카 땅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심장은 그 땅에 묻고 나머지 시신은 영국으로 돌아와 웨스트민스터 사원 가장 높은 계단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프리카에서는 리빙스턴하면 전설 같은 존재로 모두 존경합니다. 이것이 몸으로 드리는 헌신입니다. 이 헌신이 우리들에게도 요구하고 계십니다. 올 한해도 몸바쳐 충성하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시간을 드리는 봉헌이 있어야 합니다. 
  봉헌생활에는 몸을 드리는 봉헌이 있고 시간을 드리는 봉헌이 있습니다. 헌신의 삶을 살아가려면 우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시간이 없어서 봉사를 못하겠다는 분이 있습니다. 시간을 드리는 것도 소중한 봉헌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현대인들은 놀고 즐기고 유흥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는 인색합니다.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께 봉헌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시간을 적절하게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께 시간 드려 헌신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러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게으른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할 일 다 하고 남은 시간가지고 하는 일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내 할 일도 다해야 하고 헌신의 삶도 살아야 합니다. 그러자면 누구보다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여러분, 앞으로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오리라던 그 종말을 생각하며 신앙을 가꾸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봉헌하는 시간입니다. 기회 있을 때 잘 하십시오! 기회가 다 지나가 버리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할/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봉헌도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는 모두 좋은 은사 한가지씩을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가르치기를 잘 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찬양을 잘하는 분, 악기를 잘 다루는 분, 음식솜씨가 좋은 분, 물질에 여유가 있는 분 등 모두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이고 달란트입니다.
  가르치기를 잘 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재능입니까? 그것 아무나 못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재능이고 달란트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나에게 논리적인 언어를 주시고 가르치는 요령을 주신 은사입니다. '내가 누구를 가르친다.' 얼마나 소중합니까?
  또 찬양하는 일, 이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능이고 달란트입니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내게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내가 음을 알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그리고 내가 악기를 잘 다루는 능력이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달란트 중의 달란트입니다. 재능입니다.
  또 물질로 봉사하는 일도 봉헌의 생활입니다. 물질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이 물질을 모읍니다. 그런 귀한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이 봉헌생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께서 이 물질의 봉헌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할/

 

  ②봉헌생활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심고 거두는 법칙'을 사용하셨습니다.
  엊그제 입춘이 지나갔습니다. 아직은 봄은 이릅니다. 그러나 봄은 곧 오고 말 것입니다. 봄에는 주로 씨를 많이 뿌리고 나무도 심고 정원도 새로 단장합니다. 왜냐면 봄에 심어야 가을에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심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심는 종교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심어서 그의 당대에 거두고 자손만대에 거두었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열심히 지었고, 그 결과 온 가족이 구원받았습니다.
  성경은 모두 심는 이야기입니다. 심어서 열매를 거둡니다. 심을 때는 모두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나 단을 거둘 때는 그 기쁨이 형언 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할/
  '조지 스위튼'은 말하기를 '내 생이 끝나는 마지막 날, 내가 얼마나 벌었는가? 이것은 하나도 중요한 질문이 안될 것이다. 그때 중요한 질문이 있다면 '나는 얼마나 주었는가? 가치 있는 사역과 놀라운 목적이 있는 그것들을 위해서 얼마나 나는 드릴 수가 있었는가?'하는 물음일 것이다.'
  ▶옛날 어느 마을에 개똥이라는 바보와 쇠똥이라는 바보가 살았습니다. 개똥 이는 열심히 일을 하여 큰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집에 돈을 놔두는 것이 여간 불안했습니다. '어떡하지? 그래, 산에 묻어 두자. 하지만 누가 파내 가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 개똥 이는 산으로 올라가 돈을 묻었답니다. 그리고 머리를 써서 팻말을 세웠습니다. '나는 이 곳에 돈을 묻어 두지 않았다. -개똥이'
  마음이 가벼워진 개똥이는 '아, 이젠 안심이다.' 하고는 손을 털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같은 마을에 사는 쇠똥이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이상한 팻말을 보게 되었습니다.
  '뭐, 그렇다면 여기에 돈이 묻혀 있나, 안 묻혀 있나 파 봐야지' 하고는 쇠똥이가 땅을 얼마쯤 파보니 돈이 나왔습니다. '바보 같은 개똥이 녀석! 돈을 묻어 놓고는 안 묻어 두었다고 써 놨구나!' 쇠똥이는 돈을 들고 산을 내려오려다, 혹시 의심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팻말을 꽂아 두었습니다. '나는 이 곳에 묻혀 있던 돈을 진짜 가져가지 않았다. -쇠똥이'
  다음 날, 개똥이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흙이 파헤쳐져 있어서 얼른 파 보니 묻어 둔 돈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똥이는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울다가 보니, 쇠똥이가 꽂아둔 팻말이 보였습니다.
  '뭐? 쇠똥이는 돈을 가져가지 않았다고? 옳아, 이제야 알겠군' 그 즉시 개똥이는 부랴부랴 마을로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답니다. '야! 내 돈 훔쳐 간 이 나쁜 도둑놈들아! 쇠똥이만 빼놓고 몽땅 다 나와! 니네들 오늘 다 죽었어!'
  돈은 그렇게 돌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6:20절에서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할/

 

  ㉠봉헌생활도 자연의 법칙과 같습니다.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둡니다.'(6)
  여기에 자연의 법칙이 나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이는 하나님이 세우신 자연의 법칙입니다. 따라서 이는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에, 우리가 따로 설명하거나 증명해야 할 필요가 전연 없습니다.
  자연은 속이지 않습니다. 먼저 심어야, 뒤에 거둡니다. 역으로 나중에 거두려면, 먼저 심어야 합니다. 또한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둡니다. 역으로 많이 거두려면, 많이 심어야 합니다. 바로 이 자연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 농부는 부지런히 씨를 뿌립니다.
  본문 바로 앞 절인 5절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 곧 헌금에 대한 권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이 억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참 헌금이 되기 때문입니다. /할/
  그런 뒤에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연의 법칙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오늘 본문은 이런 뜻입니다. '너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는 이것을 기억하라.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사실이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을 자연의 법칙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심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예물입니다. 또한 여기서 거두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축복입니다.
  감사의 예물에도 자연의 법칙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감사를 적게 심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적게 거둡니다. 반대로 예물을 많이 심으면,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거둡니다. 이렇듯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축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사르밧의 과부가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공궤를 했습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자기가 가진 것 전부를 바쳤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을 심은 셈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 여인의 집에 있는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병의 기름도 떨어지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셨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사르밧의 과부는 정성을 심어서 그런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아멘!/
  잠3:9-10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성경은 첫 열매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첫 자식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첫 새끼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나 첫 열매는 소중합니다. 자식도 첫 자식이 소중합니다. 열매도 첫 열매가 소중합니다. 월급도 첫 번 받은 월급이 귀합니다. 사랑도 첫사랑이 오래 기억됩니다. 친구도 첫 친구가 오래갑니다. 믿음도 첫 믿음이 오래 기억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첫 열매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봉헌의 정신입니다. /할/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7).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물론 사랑하지 않아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지 않으면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면 주게 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즐겨 감사도 드리고, 물질도 드리고, 몸도 드리고, 시간도 드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즐겨 은혜도 주시고, 평강도 주시고, 형통함도 주시고, 복도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즐겨 드리는 것은 어떻게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까? 오늘 본문은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⑴'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아무런 준비가 없이 교회에 와서 부리나케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그제야 봉투에 약속하는 금액을 적어서 빈 봉투를 하나님께 드리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여기 '각각'이라는 말은 '각자가'라는 뜻입니다. 헌금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금액을 정해서 일률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감사의 예물은 각자가 그 마음에 미리 준비하며 정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에 정성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울러 그래야 드리는 자의 마음에 진정 어린 감사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⑵'인색함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는 인색함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색하게 드리면서, 어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도록 받기를 바라겠습니까?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헌금은 축복을 거두기 위해서, 그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색한 마음으로 적게 심지말고, 많이 심어서 많은 축복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는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의 옥합을 아낌없이 깨뜨렸습니다. 성경은 마리아의 헌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옥합 안에 들어있는 향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비싼 향유였습니다. 그 향유의 종류는 '나드'향이었습니다. 멀리 히말라야에서 수입해 들어온 진귀한 향유였습니다. 그것도 '순전한 나드'이였습니다. 양도 한 근이나 되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양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감사를 드리며 최고의 사랑을 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헌신을 인정하시며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다니의 마리아가 행한 일은 그의 이름과 함께 지금까지 아름답게 기념되고 있습니다. /할/ 반면에 가룟 유다는 그것이 예수님께 드려지는 것에 대하여 인색한 마음을 가지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릴 때는 인색함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감사의 예물을 많이 심어서, 많은 은혜와 축복을 거두기 바랍니다. 
  ⑶'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색함이 마음의 문제라면, 억지로 함은 태도의 문제입니다. 주변에서 보는 눈이 있으니까, 마지못해 드리는 것은 억지로 함입니다. 이만큼 드리면 체면치레는 되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도 역시 억지로 함입니다.
  바나바가 자기 밭을 팔아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는 즐겨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그들의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들은 억지로 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마음을 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즐겨 하나님께 드린 바나바를 사랑하시고 그를 귀하게 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억지로 하나님께 드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벌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즐겨 내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면, 하나님은 과부가 드린 두 렙돈도 기쁘게 받으십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로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라고 주신 은혜입니다(8).
  '모든 은혜를' '모든 일에' '모든 것이' '모든 착한 일을', 여기 '모든'이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항상'이라는 단어도 한 번 사용되었습니다. '항상'은 '모든' 때입니다. 결국 한 절 말씀에 '모든'이라는 단어가 무려 다섯 번이나 사용된 셈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그만큼 넘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능히 자신의 말씀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전능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즐겨 내는 자에게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 즐겨 감사의 예물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풍성하게 하시고 열매를 더하게 하십니다(10).
  우리에게 씨도 주시고, 양식도 주시고, 열매도 맺게 하시는 분은 누구 시라고 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심는 자에게 주십니다. 심는 자가 열매를 맺지, 심지 않는 자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또한 여기서 '풍성하다'는 것은 '몇 배가 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농사가 몇 배로 남습니다. 땀 흘려 수고한 것도 몇 배로 결실을 맺고,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심는 자에게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의(義)의 열매도 많이 맺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놀고 먹고 빈둥거리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열매를 주시지 않습니다. 심는 자에게, 일하는 자에게, 수고하는 자에게, 땀 흘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놀고 먹는 종교가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종교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고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통해서 보람과 기쁨도 느끼고, 축복도 받게 됩니다.
  시126:5-6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할/
  뿌리는 자에게 기쁨의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씨를 뿌리지 않으면 기쁨도 없습니다.
  '나는 인생에 기쁨이 없습니다. 보람도 없습니다. 살맛도 나지 않습니다.'라고 불평하는 사람들은 대개 씨를 안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놀고 먹는 사람들은 크게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씨를 뿌리는 사람, 아침 일찍 일어나 씨를 뿌리는 사람, 수고하고 땀 흘리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 공부도 열심히, 사업도 열심히, 자기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보람과 기쁨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열매도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할/
  십일조도 하나님 나라에 축복의 씨앗을 드리는 것입니다. 말3:10-11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면 쌓을 곳이 없도록 넘치게, 풍족하게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빌4: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아멘!/
  ▶어느 처녀가 미용실을 경영하다가 시집을 갔습니다. 결혼하고 임신을 하니까 이제 미용실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권리금 한 천만 원에 미용실을 팔려고 내놨는데 팔리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미용실 좀 빨리 나가게 하옵소서'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해도 그냥 기도만 할 뿐, 마음속에 믿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나님, 나에게 믿음을 주십시오.'하고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 앞에 먼저 물질을 드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백만 원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그 가게가 나갔습니다. 그것도 천만 원밖에 안 나가는 가게가 이천 만 원에 팔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과 영광을 돌렸습니다. /할/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총을 베푸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이 절대로 손해 보지 않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 좋으신 하나님을 잘 믿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모든 일에 넉넉하게 연보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부유하게 하십니다(11).
  부유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부유케 만들어 주십니다. 어떠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부유케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인정받은 사람, 하나님 앞에 기름 부음 받은 사람,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사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모든 일에 다 부유케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롬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
  그러므로 부유한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 축복으로 인해서 먼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또한 그 축복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베풀고 나누어주므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부유케 하시는 하나님, 참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감사와 찬송을 돌리는 행복한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신8:18-19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인생이 '멸망하느냐? 성공하느냐? 축복을 받느냐? 저주 속에 들어가느냐?'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고 이루어집니다. 재물 얻을 능력, 부자 되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셔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혜도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능력도, 힘도 그 분이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윗 왕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고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주께 돌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봉헌을 하면서도 감격하고 있습니다.
  대상29:12-14절에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할 때 이스라엘 온 백성은 다 힘을 합해서 풍족하게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에서 많이 나오는 단어가 '주'라는 말입니다. 주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축복의 주체도 하나님이십니다. 도우심의 주체도 하나님이십니다. 은혜의 주체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후8:9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유케 하다'라는 말은 '부자가 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부자가 되는 종교입니다. /믿/아멘!/
  하나님은 누구를 부자로 만드십니까?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자를 복을 주십니다.
  신28:1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면서 3-10절에서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네 대적들이 일어나 너를 치려하면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니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할/
  또 겸손한 자를 축복하십니다. 잠22: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조선 후기 실학자 중에 박제가(朴濟家)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대저 재물은 우물과 같다. 퍼 쓸수록 자꾸 가득 차고, 이용하지 않으면 말라 버린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물도 자꾸 퍼내서 써야 새로운 물이 나오지 그냥 내버려두면 썩고 말라버린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도 하나님 앞에서 자꾸 올바른 곳에 써야 합니다.
  ▶'천국 은행'이란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천국에도 은행이 있는데, 천국의 은행장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경의 경제 원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입니다. 우선 순위가 천국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먼저 드리고, 그 다음에 천국의 은행을 통해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거지의 십일조'라는 재미난 간증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경상북도 포항에서 어느 목사님이 목회를 하는데, 그 교회에는 거지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하루에도 열 명 이상씩 거지들이 찾아 와서 음식과 옷, 용돈을 챙겨 갔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거지는 이상하게도 달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일 주일 동안 구걸하여 얻은 돈 중에서 십일조를 바치고 갔습니다. 이색적인 거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목사님이 그 거지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구걸한 것으로 십일조를 드리는 건가요?' '목사님, 제 돈은 돈이 아닙니까? 저를 무시하지 마세요. 저도 어렸을 때는 교회에 착실하게 나갔던 사람입니다. 사고로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일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저도 하나님을 잘 믿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러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도 드리고, 헌금하지 왜 저한테 십일조를 가져옵니까?'하고 다시 묻자 그 거지는 '목사님, 저는 거지입니다. 목욕도 못하고 옷도 못 빨아 입는데 제가 주일 예배 시간에 떡 앉아 있으면 제 몸에서 얼마나 냄새가 나겠습니까? 보이는 것도 지저분한데 냄새까지 나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실례가 되겠습니까? 그래서 토요일마다 오는 것이니, 목사님, 제 십일조를 받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거지의 십일조를 받아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그렇게 한 1년 동안 헌금을 했는데, 갑자기 그 거지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도대체 이 거지가 죽었나, 살았나? 어떻게 된 것은 아닌가?'하고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거지가 양복을 쫙 빼 입고 나타났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했더니 직업을 구두 닦기로 바꾸었다고 했습니다. '구두 닦기를 합니다. 일을 하야죠'
  그 후 목사님은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마침 포항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갔다가 그 거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거지는 외모도 더 신사처럼 변하고 교회 집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라고 물었더니, 구두 닦기 해서 번 돈으로 가게를 하나 샀는데, 축복을 받아서 이제는 큰 구두 대리점의 사장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거지가 사장이 되었습니다. 거지도 십일조를 하니까 사장이 되었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 거지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심은 자에게 축복을 주시고, 축복 받을 만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반드시 그 신앙과 믿음에 보상을 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열심히 주어진 직분에 충성하는 자에게 넘치는 축복을 안겨 주십니다(12).
  우리에게는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늘 말합니다. 가장 큰 사명은 예배이고, 선교입니다. 예배위원으로, 선교헌금을 드리는 자로 우리 모두 직분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봉사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봉사의 직무'가 무엇입니까? 몸이나 시간이나 재물이나 재산이나, 재능, 무엇으로든지, 하나님 앞에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 봉사의 직무를 통해서 사람들을 도와주므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교회에서도 충성하므로 봉사의 직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봉사, 충성,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감사를 드리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왕하4장에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잘 대접하고 섬기다가 죽어간 아들이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몸도 마음도 물질도 시간도 바치고, 충성, 헌신하면, 하나님께서 기적도 주시고 축복하시고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할/
  ▶이 봉사의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대학 시절에 철저한 반미 사상을 가지고 데모를 했던 이연호라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미국이 한국을 착취하고 있다. 우리 한국은 왜 미국에게 당하기만 하느냐?'라고 하면서 미대사관에 가서도 대모를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항하고 한국의 주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미국을 연구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미국으로 가서 미국을 연구하고 관찰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미국 유학 길에서 뜻밖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도저히 미국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 한국은 자원도 국토도, 인구도 적지만, 정신적으로도 미국을 이길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하여 말하기를 '미국은 봉사 정신이 투철한 나라이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미국인들은 봉사 정신이 투철합니다. 대학 갈 때도 얼마큼 봉사했느냐를 봅니다. 사회에서 존경받는 것도, 사회의 지도층이 되는 것도 그 사람이 얼마나 봉사를 많이 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선진국은 국민 전체가 봉사할 줄 알지만 후진국은 봉사할 줄 모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부흥하느냐? 부흥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도 성도들이 얼마큼 봉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도들이 예배만 보고 가는 교회는 부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이 은혜 받고 '내가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봉사할까? 어떻게 봉사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할/
  장로교회의 대부이신 칼빈은 '낮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에 갈 기회가 있느냐? 그러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 왜냐하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봉사를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세하는 것도 봉사를 위해서, 성공하는 것도 봉사를 위해서, 돈버는 것도 봉사를 위해서, 부자 되는 것도 봉사를 위해서,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는 것도 봉사를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하고 구제하며 남을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요, 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심는 자에게 풍성케 하시며, 씨를 주시고 열매를 주시고 풍족하게 넘치게 더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한해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2014년 2월 9일 대예배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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