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물은 길이 없다고 멈추지 않는다. (막 10;46-52)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2. 1. 16:21

물은 길이 없다고 멈추지 않는다.

 

                                                                                                   막 10;46-52

 

이런 시(時)가 있습니다.

 

물처럼 살자

 

물처럼 살자

물을 보라

물은 밟히지 않는다.

 

낮아지고 낮아지고

내려가고 내려간다.

 

물은 소리 없이

인생법칙을 가르쳐 준다.

 

물처럼 살면

선한 사람들이 따른다.

 

물처럼 내려가면

기분 나쁜 일 없다.

 

무슨 말을 해도

물은 성질 날 일 없다.

 

물처럼 살자

차라리 물이 되라

 

물은 길이 없어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처럼 사는 사람은 길이 없어도 멈추지 않고 전진 또 전진하면서 마침내 일을 이루어냅니다.

 

나포레옹은 말했습니다.

“나는 길이 없어도 간다. 길을 만들면 되기 때문입니다.”

소자는 눈이 녹기를 기다리고 대인은 눈을 치우며 갑니다. 오늘 나는 바디매오 이야기를 통하여 그가 길이 없어서 끝까지 길을 만들어가며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한 이야기를 드리려고 합니다.

 

역사에는 두 가지 흐름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성을 발달시켜 과학과 철학을 발달시킨 헬라 사상의 줄기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영성을 발달시켜 신앙을 부흥시킨 히브리사상이 있습니다. 온 인류를 지배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여리고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가 살고 있었습니다.

디매오란 소경이라는 뜻이고 바는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디매오는 소경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디매오도 소경이요 그의 아버지도 소경이었습니다. 대대로 소경의 가정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경에 거지였습니다.

귀머거리와 소경과 벙어리중에 가장 불쌍한 것은 누구입니까? 그 대답은 소경입니다. 가장 참기 힘든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귀머거리와 소경과 벙어리 셋 중에 하나만 면하기를 바란다면 소경이라고 하였습니다. 보지 못 하는 고통은 듣지 못 하는 고통이나 말하지 못 하는 고통보다 훨씬 더 하다는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소경은 소경입니다. 고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 예수님 당시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소경은 눈을 뜰 의술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길이 없지만 길을 만들었습니다.

물은 길이 없어서 갑니다.

바디매오도 길이 없어도 앞으로 나가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47)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더욱 소리질렀습니다. 바디매오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가 두번째 소리지르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49)

바디매오는 너무나 좋아서 겉옷을 버리고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은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바디매오가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곧 보게 되어 예수를 좇아 갔습니다.

바디매오는 5가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여코 응답을 받아낸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1) 대를 이은 소경

(2) 대를 이은 가난

(3) 일터는 길거리인 불행

(4) 그의 항상 사용하는 언어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지나가는 사람에게마다 외치는 찌든 구걸소리.

(5) 언제나 사람들이 주는 멸시

어디를 가나 희망적이고 밝은 면이 없는 소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인가 불행한 환경을 극복하고 말겠다는 의지가 주님을 만나게 하였습니다. 길이 없어도 만든 사람이 바디매오입니다.

물은 길이 없어도 흐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길이 없어도 해답을 찾아내고 맙니다. 바디매오는 눈을 뜰 길이 도저히 없는 대대로의 맹인입니다. 당시 소경은 아예 눈을 뜰 생각을 못 하고 평생 운명으로 알고 살아야 할 때 바디매오는 눈을 떴습니다.

전혀 없는 길을 기어코 개척하였습니다.

물을 길이 없어도 흐릅니다. 물과 바디매오를 비교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큰 은혜를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1. 물은 스며들며 무시하며 갑니다.

물은 길이 없어도 전진합니다. 수많은 물들이 땅으로 스며 듭니다. 그 위로 물은 흐릅니다. 계속 땅속으로 스며들며 그 위로 물은 계속 흐릅니다.

전쟁 노래가 있습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물은 스며드는 물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전쟁에서 전진하는 군사는 죽은 시체에 매달리지 않고 전진합니다. 바디매오가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바디매오가 소리질러 이르되....”

사람들이 많으니까 예수님이 듣지 못 할 것같으니까 있는 힘을 다 하여 소리를 질러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47)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치고 나서 그 다음 말씀이 의미심장합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지라.”

많은 사람이 꾸짖었습니다. 두 단어가 다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한 두 명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모욕을 주었습니다. 꾸짖었습니다. 자존심 상하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많이 깊이 그리고 아프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물은 길이 없어도 스미며 흐릅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바디매오가 두번째 소리지르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자존심상하는 것에 개의치 않고 하려고 하는 일을 묵묵히 할 수 있다는 것이 물의 성격입니다.

물은 전진하는 앞에 바위가 가로막혀 있다고 신경질부리지 않습니다. 아무 말없이 돌아갑니다. 높은 벽이 막혀 있으면 물이 찰 때까지 흘러 넘어 갑니다.

생기는 문제에 스트레스 받지 않습니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갑니다.

폭풍우 몰아 쳐도 달은 뜹니다.

맹수가 쫓아 오면 독수리는 하늘로 치솟아 오르면 그만입니다.

물은 길이 없어도 흐릅니다.

바디매오는 길이 없어도, 길이 막혀도, 길이 험해도 앞으로 할 일만 하였습니다. 기어코 목적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아 눈을 떴습니다. 생각지도 못 하였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최고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물은 길이 없어도 스며들며, 무시하고 앞으로 갑니다.

 

물은 버릴 것을 버리고 전진합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오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버리고 예수님에게 달려가서 문제 해결을 받았습니다. 겉옷은 바디매오에게 중요한 옷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겉옷은 필요한 옷입니다. 겉옷을 벗으면 팬티 하나밖에 없는 옷이 유대인의 옷입니다.

과감하게 버릴 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 물입니다. 바디매오입니다.

성경에 75세의 나이로 다시 시작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장 1절)

전진하려면 먼저 버려야 합니다. 버리지 못하면 전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75세 된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리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게 하였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바울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 12;1)

 

코닥, 후지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필름이 아그파 필름입니다. 아그파 필름은 1936년 세계 최초로 컬러 필름을 개발한 독일 회사입니다. 작곡가 멘델스죤의 아들인 폴 멘델스죤이 세운 회사입니다. 그 회사는 2001년 최대 흑자를 기록하였다가 2005년에 파산하였습니다. 최대 실적에서 파산까지 불과 4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파산한 이유는 간단하였습니다. 전통적인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시대에 전통을 버리지 못하고 필름에 매달렸기 때문입니다.

물은 길이 없어도 흐릅니다. 버릴 것은 버리기 때문입니다.

바디매오는 겉옷을 버렸습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전진하면 길이 없어도 나갈 수 있습니다.


 2. 물은 길이 없어도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물은 길이 없어도 흐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낮은 곳으로만 흐르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높으면 땅속으로 스미면 됩니다. 지구상 어느 곳이나 낮은 곳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길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시를 읽어 드렸습니다.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물처럼 살자

물을 보라

물은 밟히지 않는다.

낮아지고 낮아지고

내려가고 내려간다.

 

바디매오가 그랬습니다. 눈 뜬 사람이 자존심상하게 하여도 참았습니다. 그리고 할 일만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욱박질러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한번만이 아니라 계속 꾸짖어도 계속 참았습니다.

많이 참았고, 다 견디고, 오래 버티고, 모두를 이겼습니다.

낮아지고 더 낮아지고 또 낮아지며 오직 예수님만 불렀습니다. 7번 넘어지면 8번 일어날 생각을 하였습니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물처럼 흘렀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만 낮은 곳으로 흐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부르짖는 것도 낮은 곳으로 흐르며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겸손한 흐름이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는 것이 주님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예수님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49절이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옆에 있는 사람이 바디매오에게 말했습니다.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바디매오는 너무나 좋아서 겉옷을 버리고 달려갔습니다. 예수님은 물으셨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는 곧 보게 되었습니다.

물은 길이 없어도 흐릅니다. 낮은 곳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낮은 곳으롼 가려고 하는 사람은 길이 없어도 갈 수 있습니다.

 

이 설교 준비를 하는 데 이상하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습니다.

말 은퇴식을 하는 장면입니다. 그것도 승마장에서 꼴찌만하던 말 차밍걸 암말 은퇴식입니다. <위대한 꼴찌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8살입니다. 14마리 말이 경주를 하는 데 12등을 한 것임 마지막 경기였습니다. 한국 말 중에 최다 연패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101번 뛰어서 101번 패하였습니다. <똥 말>이라고 불리우기도 하였습니다. 은퇴식에서 개근상이 주어졌습니다. 한번도 경주에 결석한 적이 없습니다. 한번도 우승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실히 참가하여 다른 말을 우승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밑으로만 흐르는 물은 길이 없어도 묵묵히 갑니다.

 

바디매오의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47)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 점이 놀라운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람들이 예수를 부를 때에는 세 가지 호칭이 사용되었습니다.

(1) 나사렛 예수

(2) 다윗의 자손 예수

(3) 그리스도 예수

어떤 때 이런 호칭이 사용되었습니까?

나사렛 예수라는 말은 <촌놈 예수>라는 말로서 예수를 깔보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말은 <못 할 것이 없으신 능력의 예수>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왕중에 가장 훌륭한 왕으로서 못 할 것이 없어던 능력의 왕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말은 <못 할 것이 없는 주님이시여!>라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라는 말은 죄를 씻어 주실 메시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디매오는 나사렛 예수라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은 지나가는 예수를 별 것 아닌 것으로 깔보았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지나가시는 분이 못 할 것이 없는 분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겸손한 고백이 그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었습니다.

 

3. 물은 길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갑니다.

물이 길이 없어도 가는 비결이 또 하나 있습니다. 계속 가기 때문입니다. 계속 가려고 하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할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할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할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할 수 있는 방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할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을 붙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물은 길이 없어도 갑니다.

갈려고 하기에 길을 만들어 주십니다.

바울은 평생 소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고 있었습니다. 로마가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에 복음의 씨를 떨어 뜨려 놓으면 온 세계롤 복음이 퍼질 것이라고 영감을 받았습니다.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 죽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도 로마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울을 잡아 사형을 시키라고 아우성이었습니다. 당시 사형집행 언도를 내릴 수 있는 재판은 로마에서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형을 시킬 사람들은 모두 로마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로마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바울은 로마로 가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무죄가 되었습니다. 로마에서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 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행 28;18)

바울은 로마에서 세로 집을 얻었습니다.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믈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행 28;30-31)

 

물은 길이 없어도 흐릅니다.

겸손하게 밑으로 가려고만 하려는 데에는 언제나 길이 있습니다. 바울이 죽으러 로마로 가겠다고 하는 것을 바로 물의 성격입니다. 하나님은 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길을 열어 주십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에 있을 때였습니다. 한인 노동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 모습을 곁에서 본 오렌지 밭 농장주인이 도산에게 말했습니다.

“당신 민족을 도웁고 싶다. 무엇을 도와 줄가?”

도산은 현금 2만 달러를 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어디에 사용하려고 하는가?”

“Korean Center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 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집 한 채를 빌려서 밤에 노동자들에게 영어와 조선의 역사를 가르치고 주일에는 예배드리고 성경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오렌지 밭 농장주은 두 말 하지 않고 2만 달러를 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도산은 2만 달러를 한 달 만에 갚았습니다. 도산 선생의 동포사랑, 겨레사랑의 열정에 감동하고 성경을 접하면서 눈이 열린 조선 노동자들이 모두 힘을 모아 돈을 마련하여 갚은 것입니다.

그 후 그 노동자들이계속하여 조선독립운동에 재정적인 지원을 하였습니다. 한 때는 중국에 있는 상해임시정부의 예산 절반 이상을 미국의 노동자들이 담당하였습니다.

아무리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였어도 해외에서 이런 이들이 활동하였기에 한국 독립은 가능하였습니다.

그 농장주는 그 후 도산에게 아예 백지 수표책을 맡기면서 쓰고 싶은 대로 사용하라고 하였습니다. 도산은 곡 필요한 공적인 일에만 그 수표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중국으로 갈 일이 있어 출국할 때에 농장주를 찾아가서 아직 사용하지 않은 수표책을 도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농장주는 계속 사용하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산이 말했습니다.

“내가 먼 나라에 가는 몸이라 혹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사용하기만 하고 갚을 길이 없어집니다. 도로 반납합니다.”

 

우리는 우리들의 선배 도산 선생으로부터 이런 정직함과 경우 바른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나 같은 성직자들은 더 말할 나위 없이 이런 삶을 실천할 수 있어야겠다.

길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길을 열어 주십니다.

물은 길이 없어도 갑니다.

 

그렇습니다.

1. 물은 스며들며 무시하며 갑니다.

2. 물은 길이 없어도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3. 물은 길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갑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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