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살맛나는 세상에서 (대상 11;15-19)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2. 14. 10:08

살맛나는 세상에서


                                                                                      대상 11;15-19

 

남편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주방에서 부친개를 부치고 있었습니다. 고소한 냄새가 흘러 들어 왔습니다. 아버지가 옆에서 병 시중을 들고 있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딸아! 엄마가 부친개를 부치고 있는 데 한 조각 먹고 싶다.”

딸은 빨리 어머니에게 달려 갔습니다. 빈 손을 오더니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장례식에 사용할 음식이라고 거냥 죽으래요.”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살맛나지 않는 세상 빨리 죽자.”

그리고 죽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살맛나는 일보다 마음을 찡그리게 하는 이들이 더 많은 세상입니다. 살맛나는 세상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 가요? 어떤 세상이 살맛나는 이야기가 많은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나는 살맛 나는 이야기를 들려 드림으로 오늘 말씀을 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 뭉클한 살맛나는 세상 이야기를 대하는 것을 느낍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블레셋은 강대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막지대입니다. 우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우물 물을 마시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강대국 블레셋이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군사들과 함께 베들레헴 근처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블레셋과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너를 죽이면 내가 살고, 내가 죽으면 네가 사는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 땅을 빼앗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혼자 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

 

사실은 물을 마시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어느 장군, 어느 군사가 저 땅으로 쳐들어 저 땅을 빼앗아 줄가 하는 의미였습니다. 다윗은 그 땅을 빼앗고 말겠다는 꿈을 불태우면서 베들레헴을 바라보며 전략을 짜던 중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세 사람은 목숨을 걸었습니다.

“우리가 모시고 있는 왕이 저 땅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어 하시니 목숨을 걸고 가서 떠다 드리자.”

그리고 물을 길러 가려고 적진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물을 떠 왔습니다. 몰래 들어가서 몰래 떠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18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이 블레셋 사람의 군대를 충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

 

목숨을 건 싸움이 있었습니다. 다윗에게 돌아 와서 세 사람이 말했습니다.

“왕이시여! 베들레헴 우물 물을 마시고 싶다고 하셔서 물을 길어 왔습니다. 드시지요.”

다윗은 그 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그렇게 사랑하고 자기에게 그렇게 충성하는 신하를 보았습니다. 감격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물을 들고 말했습니다.

 

“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고.......”

다윗은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드렸습니다. 하나님께 그 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단을 쌓고 그 위에 부었다는 말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입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베들레헴을 빼앗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후에 다윗은 베들레헴 땅을 블레셋으로부터 도로 빼앗아 이스라엘 땅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서로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누구 얼굴 하나 찡그림이 없는 오아시스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일가요?

반대라면 살맛나는 세상일가요?

왕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면 어떨가요?

“이 놈들아! 저 앞에 베들레헴을 보아라. 내 고향이다.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문턱이 베들레헴이라 전략상 너무나 중요하다. 앞장서라. 그리고 생명 걸고 싸워라. 내가 어려서 자라면서 마시던 물을 한 컵 떠 오거라. 그렇지 않으면 충살이다.”

신하들은 벌벌 떨면서 무기를 칼과 활을 들고 앞으로 나가면서 말할 지도 모릅니다.

“지랄하네. 자기가 앞장 서 보지.”

이런 분위기라면 볼 장 다 본 엉망의 군대일 것입니다.

살맛나는 아름다운 세상은 어떤 세상일가요?

 

1. 서로 살맛나게 하는 사람이 있는 세상이 살맛 나는 세상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나라를 통일시키고 싶어 하였습니다. 자기의 고향 베들레헴을 찾고 싶었습니다. 아름다운 생각입니다. 자기가 자라면서 마시던 물을 마시고 싶었습니다. 물을 마시고 싶다고 중얼거렸습니다. 물을 마시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땅을 찾고 싶다는 의미였습니다. 세 사람은 다윗왕의 심정을 알아 주었습니다.

 

“고향 땅을 얼마나 가고 싶으실가?”

“예루살렘을 빼앗으려면 베들레헴은 길목이니 얼마나 점령하고 싶어 하실가?”

“블레셋은 이스라엘에 가장 큰 원수 나라이니 얼마나 물리치고 싶어 하실가?”

 

세 사람은 다윗의 마음을 알아 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마음을 달려 드리려고 목숨을 걸고 가서 우물물을 떠왔습니다. 이 때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신하들 마음을 알아 주었습니다.

 

“신하들아! 나는 너희들 마음을 알았습니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알았다. 내가 얼마나 충성하는 지 알았다. 우리 나라가 베들레헴 땅 점령이 필수라는 사실을 너희가 알고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 물이 어찌 물이니? 너희들의 피가 아니니? 목숨을 걸고 떠온 귀중한 물을 어떻게 내가 마시겠니? 너희들 심정을 내가 안다.”

서로 알아주는 세상 정말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세상이 되면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서로 마음을 알아주고 사랑하는 세상은 좋은 세상입니다. 다윗과 세 신하 이야기는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크로닌 의사가 쓴 책을 나는 많이 읽었습니다. 그가 쓴 책 중에 <천국의 열쇠>라는 명저가 있습니다. 그 책에 나오는 한 토막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자기 밑에 있는 간호원이 자기가 지시한 대로 하지 않아서 환자 한 명을 죽게 하였습니다. 크로닌은 병원장에게 탄원서를 썼습니다.

“이 간호원은 자격 미달이니 파면하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간호원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탄원서가 올라가려고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크로닌 의사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선생님!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한번만 용서하여 주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크로닌은 이 말이 곧 자기가 예수님 앞에 가서 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렇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죽은 후에는 심판이 있다. 나도 주님 앞에 가서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한번만 용서하여 주세요.

사람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냐? 저 간호원을 누가 정죄할 수 있냐?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지 않냐? 어느 간호원이 일부러 사람을 죽이겠느냐? 정말 실수요, 정말 모르고 한 것이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면서 크로닌을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탄원서를 들고 간호원 앞에서 찢어 버렸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간호원은 영국에서 가장 큰 병원에 간호과장이 되었습니다. 가장 유능한 간호원이 되었습니다.

서로 알아주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서로 이해하여 주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서로 아껴주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다윗과 세 사람이 사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이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누구나 알아주는 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몰라 주어도 예수님 만은 모든 것을 다 알아 주시는 분이기에 예수님에게는 항상 군중이 따랐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7 귀신이 들려 있었습니다. 창녀에 귀신들린 여자를 좋아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여자가 성녀가 되리라고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가족들도 버렸습니다. 친구들도 냉대하였습니다. 모두가 무관심하고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알아 주셨습니다. 정상적인 여자가 되기만 하면 가장 놀라운 여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보아 주셨습니다.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창녀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실 때 제자들도 다 도망갔지만 끝까지 십자가를 붙들고 울었습니다.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아 갔습니다. 로마 군사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예수님을 무덤을 새벽에 찾아 갔습니다. 남자도 없는 뱃장을 가졌습니다. 제자들도 잃어버린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 합니다.

삭개오도 마찬가지입니다.

삭개오는 여리고의 세리장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바쳤습니다. 많이 거두어서 자기가 일부를 착복하였습니다. 모두가 싫어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속에는 고독이 들어 있고 그 많은 돈을 여리고 사람을 위하여 쓰고 싶어하는 심정을 알아 주셨습니다. 그 깊은 마음을 헤아려 보셨습니다. 그리고 삭개오 집에 들어 가셨습니다. 드디어 삭개오는 말했습니다.

“예수님! 내 재산을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세금을 더 거둔 것이 있으면 4배씩 갚겠습니다.”

놀라운 결단이었습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예수님앞에서 삭개오는 전적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서로 알아주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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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존여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남자가 존재하기에 여자가 비참하다.”

그러나 요즈음은 달라졌습니다.

“남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자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서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서로의 심정을 알아 주는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혼자 살고 있는 과부집에 강도가 들어 갔습니다. 자고 있는 과부를 깨우며 칼을 들이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꼼짝 말고 두 손 들어!” 과부는 한 손만 들었습니다.

“두 손 들라니까?”

과부가 말했습니다.

“이 쪽 손은 신경통이라 들 수가 없습니다.”

순간 강도는 칼을 놓고 마주 앉아 신경통 이야기에 들어 갔습니다.

“사실은 나도 신경통이요.” 그리고 신경통에 좋은 약, 치료 방법으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침이 되었습니다. 둘은 신경통을 잘 고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서로 이해가 있는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얼마전 미국에 보도된 사진이 있습니다. 화제거리입니다. 30명 가량이 찍은 기념 사진입니다. 모두 머리를 모두 깍았습니다. 가운데 부시 대통령도 머리를 깍고 앉아 있습니다. 손자 손녀들을 하나씩 안고 있는 데 모두 머리를 깍은 것이 일치되어 있습니다. 사연이 있었습니다. 부시 대통령 친구들 모임이 있습니다. 손자가 암 치료로 머리가 빠졌습니다. 챙피하다고 어울리기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모두 손자 손녀들과 더불어 머리를 깍자고 결의하고 머리를 깎았습니다. 그리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함께 하는 사회는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같이 사랑하고, 같이 느껴주고, 같이 있어주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2. 공동으로 달성할 목표가 있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면서 다윗왕과 군사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그 땅을 정복하고 통일왕국을 이루었습니다.

같이 이를 공동 목표가 있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블레셋은 강대국입니다. 무적의 군대입니다. 블레셋이 베들레헴을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나 다윗과 당윗의 군대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공동 목표가 분명하였습니다.

“저 땅을 점령하리라.”

“저 땅을 빼앗고 말리라.”

꿈이 있는 세상, 하여야할 목표가 분명한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누가 무어라고 하여도 나는 이 일을 하고 말리라는 꿈을 가지고 하루 하루 전진하는 세상은 아름다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다윗과 신하들은 하나가 되어 그 목표를 이루고 말았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혼자 가야 합니다.

같이 멀리 가는 공동체는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내가 참 좋아 하는 참새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새 구이 장사들이 참새가 많이 모이는 곳에 먹이를 땅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그물을 쳐 놓았습니다. 멀리에서 끈을 연결시키고 보고 있던 사람이 수 천 마리 참새 떼가 앉그물 밑에서 맛있는 먹이를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재 빨리 끈을 당겼습니다. 수 천마리 참새들이 그물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모두 참새 구이감이 되었습니다. 이 때 참새 한 마리가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살 방법이 있다. 다같이 그물에 매달려 하늘로 오르자. 다같이 하면 된다. 그리고 나무위에 걸쳐 놓고 밑으로 빠져 나오자.”

모두가 그물을 등에 졌습니다. 그리고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수 천마리가 한꺼번에 그렇게 하니까 그물이 들렸습니다. 나무까지 날라가서 걸치고 밑으로 모두 빠져 나왔습니다. 하나가 되었습니다.

모두 살았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하면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힘을 같이 한다는 것은 시너지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승리의 길입니다. 목표를 유하는 것은 힘입니다. <공유의 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2004년 삼성은 11,000건, 소니는 13,000건의 특허를 공유하였습니다. 왜 삼성과 소니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특허를 서로 공유하는 계약을 맺었을까요?

작게는 특허 분쟁으로 인한 소모전을 줄이고, 크게는 사업 기술을 공유해 표준화를 이루어

시계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자는 "윈-윈(Win-Win)" 전략 때문입니다. 너와 내가 함께 하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나만 살고 너는 죽이라는 것은 공유가 아닙니다.

공유는 내가 가진 것을 상대에게 주어서 오히려 상대방이 힘이 생기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의 힘이 내 힘이 되게 하는 것이 공유입니다. 상대방 힘을 먼저 받아서 내 힘을 크게 하여 상대방에게 주는 것도 공유이지만 이는 이기주의입니다.

내 능력과 상대의 능력을 연결하는 것이 공유입니다.

하나님의 힘을 빌리는 것이 기도입니다.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학자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불러 놓고 게임을 하나 제안하였습니다. 저 멀리 나무 밑에 각종 맛있는 과일을 많이 담은 바구니 하나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다 먹어라.”

이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아이들은 모두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바구니를 향하여 달렸습니다. 마치 약속한 듯이 잡았습니다. 같이 바구니 앞으로 달려간 아이들은 다같이 즐겁게 과일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인류학자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물었습니다.

“일등한 사람에게 다 가지라고 하였는 데 같이 갔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UBUNTU"

다른 아이 하나가 얼른 말했습니다.

“한 명만 기분 좋으면 다른 아이들이 다 슬픈 데요. 어떻게 나만 기분 좋을 수가 있지요?

우분툴라는 말은 아프리카 말은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함께 있기에 모두가 있는 행복감이 있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모세가 두 손들고 기도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가서 싸웠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 아말렉에게 대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같이 이룰 공동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룬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세상은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세 사람이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 우물 물을 길어 왔습니다. 다윗은 그 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결론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가장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님께 그 물을 부어 드렸다는 것을 끝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물을 부어 드리면서 다윗은 틀림없이 이렇게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이 물은 베들레헴 우물 물입니다. 하나님께 이 물을 드립니다. 그 땅은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입니다. 그 땅을 돌려 주옵소서. 그 땅을 점령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가 있었을 있었을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후에 그 땅은 이스라엘 땅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그 땅을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그 땅을 주셨습니다.

이 때 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는 성경 말씀이 없습니다.

“왕이시여! 그 물을 우리가 목숨을 걸고 길어 온 물인 데 왜 땅에 부으십니까? 왜 낭비하십니까? 우리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다시 그 물을 떠올 마음이 들겠습니까?”

이렇게 반발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같이 드린 분위기를 성경에서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으로 결론 나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북 사리원에 있는 계동 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계동 교회는 장로님이 모두 7명이었습니다. 그 중에 4명 장로님이 6.25때 공산당들에게 순교를 당한 유명한 교회로 교회사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강 덕기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공산당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없이는 못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못 믿게 하는 공산당과 예수를 믿어야 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항상 생명을 건 싸움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공산당이 그 교회 들어 왔을 때 강 덕기 장로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공산당들은 강 장로를 잡아 교회 기둥에 맸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부인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장로는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두 눈을 후벼냈습니다. 피가 낭자하였습니다. 그래도 부인하지 않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두 분이 있을 때는 하늘 나라가 보이지 않았는 데 두 눈이 빠지고 나니 하늘 나라가 보인다.”

그리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공산당은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배반당하는 것같은 모멸감을 가졌습니다. 총으로 쏘아서 간단하게 죽이지 않고 총 개머리판으로 때려 죽였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국군이 그 마을에 들어 왔습니다. 미처 도망하지 못 한 공산당들이 붙잡혔습니다. 강 장로를 때려 죽였던 공산당도 잡혔습니다. 국군들과 동네 사람들은 그 사람을 강장로를 붙잡아 내어 놓았던 바로 그 기둥에 붙잡아 맸습니다. 그리고 강장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다. 네 마음대로 하여도 좋다. 죽여도 좋다. 네 아버지를 죽인 것처럼 두 눈을 빼고 때려 죽여도 좋다.”

그 때 강 장로님 아들이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의 순교를 헛되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기둥에 묶여 있는 아버지를 죽인 공산당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원수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있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다윗의 결론은 하나님 사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살맛나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살맛나는 가정에서, 살맛나는 직장에서, 살맛나는 교회에서, 살맛나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어떤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까?

오늘 본문과 같은 세상입니다.

1. 서로 알아준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2. 같이 이룰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룬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3. 하나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세상이 살맛나는 세상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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