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고집스럽게 살리라 (행 20;17-25, 36-38)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 25. 18:40

고집스럽게 살리라

 

                                                                                  행 20;17-25, 36-38.

역사에 업적을 남긴 사람들을 보면 남다른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고집이 있는 사람이 큰 일을 하였습니다. 남이 보기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데 그것만은 포기하지 않고 고집을 부렸던 이들이었습니다.

 

세 사람 예를 들어 봅니다.

이스라엘 국회는 세계적인 석학 아인슈타인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정중하게 사양하였습니다.

“대통령을 할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물리학을 가르칠 학자는 그리 많지 않아요. 이것이 내가 대통령을 맡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는 끝내 그 고집을 꺽지 않았습니다.

 

나는 요즈금 수도원과 수도사들에 대한 책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수도사 암모니우스는 사막에서 수도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많은 사람들이 알렉산드리아 대주교를 찾아 가서 말했습니다.

“암모니우스를 우리들의 감독으로 임명하여 주십시오.”

대주교는 사막에서 수도하고 있는 그를 불러 오면 감독으로 임명하여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세상을 나와 감독이 되어 주십시오.” 그러나 암모니이우스는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도 포기하지 않고 매달렸습니다. 암모니이우스는 가위를 가지고 오더니 자기 왼쪽 귀를 잘라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1장 17절에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음식을 드리려고 가까지 오지 못 할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은 사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주교가 말했습니다.

“그 율법은 유대인들이나 지키라고 하는 율법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코없는 사람을 데리고 와도 나는 인격만 되면 그를 감독으로 임명하겠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다시 사막에서 수도하고 있는 암모니이우스에게 갔습니다. 암모니이우스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자꾸만 요구하면 나는 내 혀를 잘라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살면서 평생 수도하였습니다. 정욕이 몸에서 올라오면 불인두로 자기 몸을 지졌습니다. 온 몸이 곪아서 고름이 흘렀습니다. 그는 죽기까지 불로 요리한 음식은 빵외에는 먹지 않고 지냈습니다. 후에 사람들은 암모니이우스에게 대하여 말했습니다.

“우리는 정욕으로부터 암모니이우스만큼 자유로운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 무덤을 남겼습니다. 그의 무덤에 병자들이 가서 기도하면 병이 나았습니다.

그는 정말 고집스럽게 자기를 지키며 살았습니다.

 

한 가지 이야기 더 드리고 싶습니다.

몇 년전에 나는 일본 동경 집회를 하다가 그 옆 동네 오차노미아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하여 간 것입니다. 유명한 집이라는 곳에 오뎅집입니다. 일본 전역에서 오뎅을 먹으로 온다는 집입니다. 오뎅국물 맛이 그렇게 좋다는 것입니다. 비결이 있었습니다.

3대를 내려오면서 오뎅집을 경영하는 집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동안에 오뎅 국물 만드는 불을 한번도 꺼뜨린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오뎅국물을 끓입니다. 한 사람이 서서 기름을 걷어 냅니다. 그리고 정성을 드려서 자리를 뜨지 않고 보골보골 끓여 놓고 새벽에 퇴근합니다. 그러면 그 국물로 하루 종일 오뎅을 만들어 팝니다.

그것이 100여년 쉬지 않고 있습니다. 끊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 위해 산다.”

“하나에 전문가가 된다.”

하나를 고집스럽게 미련한 듯이 붙들고 있는 사람은 무엇인가 이루어내고 맙니다.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인생관이 고집스러운 삶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였습니다. 기도중에 예루살렘의 상황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바울이 올라 오기만 하면 잡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이를 알고도 바울은 비장한 마음으로 에베소 교인들에게 고별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줄 아노라."

 

바울은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나 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하나님이 주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전하는 일에는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라고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가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 할 것이다"라고 말할 때는 울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도 울었습니다.

탁 명환 이단 연구소 소장이 죽기 며칠 전에 나와 만나 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그는 식사하면서 말했습니다.

“난 언제 통일교도들의 칼에 맞아 죽을 지 몰라.”

이 말할 때 비장한 각오가 보였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설마...” 하였는 데 정말 그가 칼에 맞아 죽고 났을 때 나는 그 때 그가 얼마나 비장한 말을 하였는 지를 알았습니다.

안 가도 되는 데....

조금 늦추어 가도 되는 데.....

알기에 피할 수도 있는 데.....

고집스럽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붙잡혀 로마로 끌려가서 로마 감옥에서 사형당하였습니다. 사명이기에 고집스럽게 살았던 바울이었습니다.

고집스럽게 한 가지 일을 밀고 나가는 이들을 보면 그 이유가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1.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기에

그렇게 고집스럽게 사는 것이 사람들이 보기에는 팔자같고 무얼 그렇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본인에게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 편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불편하고 힘든 것같아도 본인에게는 그렇게 하여야 편합니다. 그래서 고집스럽게 그렇게 합니다. 20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고 가르치고.....”

이 말이 목회자들에게 얼마나 어려운 말인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유익하다고 거리낌없이 전할 수 있는 목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거리낌없다는 말은 헬라어로 휘페스테일라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비위를 건드릴가 두려워서 억제하거나 움츠리거나 말하기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꼭 말해야 하는 데 비위를 건드릴가봐 하지 못 할 때가 얼마나 많은 지 목회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입만 열었다하면 가시돋힌 말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밖에 말해줄 사람이 없으니 조심시켜 달라고 요청이 수없이 들어 왔습니다. 나는 정말 조심스럽게 문자를 넣었습니다. 아름답게 말하자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 주부터 그는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익하다면 거리낌없이 말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익된다면 거리낌없이 고집스럽게 말했습니다.

지난 번 뉴욕에 갔다가 부흥회를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선교 회장이 부자입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약간 인색한 편이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에게 와서 부탁하였습니다.

“목사님! 집집마다 못 쓰는 폐품이 많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안 쓰는 가전제품이나 가구들이 많습니다. 다 교회로 가지고 오게 광고해주세요. 모두 모아 아나바다로 싸게 팔아서 기금을 마련하여 하나님의 일 하나 크게 하고 싶습니다. 목사님! 부탁입니다. 진하게 광고하여 주세요.”

다음 주일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이렇게 광고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선교 회장님이 진하게 광고하라고 하여서 진하게 광고하니 진하게 들어 주십시오. 집에 있는 폐품 그리고 안 쓰는 가구, 안 쓰는 가전 제품들을 모두 다음 주일 가지고 오시기 바랍니다. 바자회를 통하여 팔아서 돈을 모으겠습니다. 그리고 여선교회장 생활비로 보태쓰도록 드릴 것입니다.”

예배를 마쳤습니다.

여선교 회장이 씩씩 거리며 목사님 사무실로 찾아 와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광고하세요. 잘 나가다가 왜 끝에 가서 그렇게 광고하세요. 언제 제가 생활비로 쓰겠다고 바자회 하겠다고 하였나요? 내가 얼마나 부자인데 내게 생활비를 보태 주겠다는 것인가요? 수많은 성도들 앞에서 나를 망신시켰으니 다음 주일 정정하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세요.”

이 말을 듣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회장님이 부자라고요? 아무리 부자면 하나님보다 더 부자요?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폐품, 안 쓰는 가전제품 팔아서 하나님의 일을 해요? 회장님! 회장님 지갑부터 열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다가 돈이 모자라면 바자회를 하세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고 계세요.”

이 말을 들은 회장님은 화내지 않았습니다. 오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자기 지갑을 열어 하나님의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훌륭한 여선교 회장님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서 멋진 목사이고 진실로 훌륭한 여선교 회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울은 유익한 말을 거리낌없이 고집스럽게 말한 사도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말하는 것이 편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고집스럽게 그렇게 한 것입니다.

 

바울은 결박과 환란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결심한 것은 그렇게 결단하는 것이 자신에게는 편하고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로마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데 생명이 두렵다고 에베소에 숨어 있는 것은 오히려 더 큰 고역이었습니다. 차라리 위험과 죽음이 기다리는 곳이지만 그 곳을 가는 것이 바울에게는 즐거움이요, 기쁨이요, 신나는 것이었습니다.

에디슨은 죽기 3일 전까지 하루에 18시간을 일하였습니다. 기도는 잘 해야 합니다. 에디슨은 늘 기도하기를 “하나님! 죽기 3일전까지 일하다가 죽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기도대로 되었습니다. 그는 온 일생을 연구하고 발명하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그래서 300여 가지 기발한 것들을 발명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그만 쉬라고 말하면 늘 말하곤 하였습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 데....”

그렇게 사는 것이 본인에게는 편하고 즐거움이기에 고집스럽게 사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는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록펠러였습니다. 그런데 록펠러 손자가 맨하타 한 구석 빈민촌에서 구멍가게를 하였습니다. 신문기자들이 그에게 다가가서 왜 세계 제일의 부자가 이렇게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고 즐거움이기에 그렇게 고집스럽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 훗날 천국에 가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아 장군은 전쟁터에 나가서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에 아내를 다윗왕에게 빼앗기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다윗이 궁중을 한가하게 거닐다가 밧세바가 발가벗고 목욕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밧세바를 왕권을 동원시켜 데려다가 간음하였습니다. 간음이 반복되다 보니 임신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와의 임신을 숨기기 위하여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데려다가 아내와 하룻밤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아 장군은 내 신하들이 전쟁터에서 고생하는 데 아내와 편안하게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없다면서 아내와 잠자기를 거절하였습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아 장군은 왕궁 문밖 땅바닥에서 잤습니다. 아무리 집에 가서 아내와 같이 자라고 하여도 거절하였습니다.며칠을 그렇게 궁중 땅바닥에서 잤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아내와 안방에서 같이 자는 것은 바늘 요에서 자는 것처럼 괴로움이었습니다. 남이 보기에는 우스워 보여도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고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기로 고집스럽게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2. 그렇게 사는 곳에 생명을 건 목표가 있기에

바울에게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 목표였습니다. 생명을 걸고 달성하여야 할 목표는 예루살렘 복음화와 당시 최고 도시인 로마에 복음을 심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고 떠나겠다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 지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행 20;36-38)

 

목을 안고 울고 남자끼리 입을 맞추고 펑펑 울었습니다. 안 가도 되는 데 가야 하는 것은 그 곳을 복음화시켜야 하기때문이었습니다. 목표가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바울은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로마로 끌려가서 그 곳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래서 역사가 토인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을 실고 로마로 가는 배는 유럽을 실고 가는 배였다.”

이스라엘 수상 벤구리온도 어느 날 갑자기 수상직을 사임하였습니다. 기자들이 몰려 들어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기부츠 농장에서 일할 일군이 부족합니다. 수상은 아무나 할 수 있으나 땅콩농사는 아무나 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부강한 나라가 된 것은 제 갈 길을 가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고집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기에 벤구리온의 목표가 있었기에 수상으로 가던 길을 거절하고 기부츠 농장으로 간 벤구리온을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 공항 이름을 벤구리온 공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로마의 국제 공항을 레오나르드 다빈치 공항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뉴욕 공항을 케네디 공항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는 수도사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수도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 아토스산에는 수도원이 30여개나 있습니다. 산과 바다가 어울러져 있기에 수도하기에 좋은 환경이라 그런 것일 것입니다.

도로테오스 수도사는 고집스럽게 수도원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몸이 몹시 허약한 수도사가 찾아 왔습니다. 늙은이였습니다. 그러나 허약한 그에게 영양가 있는 음식을 대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바다쪽으로 난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고 고집스럽게 긴 시간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허약한 수도사를 대접할 음식이 없습니다. 이 손위에 물고기를 주십시오." 고집스럽게 웃기는 기도를 하는 그의 손위에 바다에서 큰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나와 얹어졌습니다. 그는 기도 응답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 물고기로 늙은 연약한 수도사를 대접하였습니다. 도로테오스 수도사는 주님의 거룩을 이루는 목표를 가지고 살았기에 고집스럽게 수도원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기적을 주셨습니다.

 

3.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이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분명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기의 사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 중근이 이등박문을 죽이려고 심양으로 갔습니다. 여의치 않았습니다. 할빈역까지 따라가서 도시락에 든 폭탄을 던져 살해하였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즉각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습니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등박문을 죽이는 순간에 잡혀 사형당할 것을 뻔히 알고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고집스럽게 한 것이었습니다.

 

침례 교회 오 관석 목사님 아들 오 영택 목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신 현균 목사님이 부흥회하실 때 선교사로 서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에 병이 생겼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몸이 점점 쇠약하여졌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다가 옴을 느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선교사로 서원한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렇게 하다가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지키지 못 하고 죽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사우디 아라비아로 선교사로 떠나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조금이라도 정신이 있을 때 선교사로 떠나서 그 곳에서 죽어야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이룰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에 그는 사우디로 떠났습니다. 5년 동안 생명과 투쟁하면서 선교하였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비행기에 올랐는 데 날이 갈수록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셨습니다.

드디어 5년만에 그는 완벽한 건강을 얻었습니다. 영육이 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 오 관석 목사님이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장로님들은 다른 이를 후계자로 부르는 것보다 아들 오 영택 목사를 후계자로 삼자고 제언하였습니다. 그래서 3000명이 모이는 교회에 후계자가 되어 지금 일을 잘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에 고집스럽게 우기며 그렇게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그 뜻을 이루려고 가장 고집스럽게 산 사람을 한 명 들라고 하면 말할 것도 없이 모세입니다. 모세는 자기만 생각하면 미디안 광야에서 가족들과 함께 오붓하게 사는 것이 편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시떨기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애급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까지 인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가 다 늙은 나이인 80세였습니다. 모세는 순종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약 200만명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200만명중에 단 두명인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으로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모세만 “그렇다.애급으로 돌아가자”라고 마음만 먹었다면 모두가 애급으로 돌아갈 상황이었습니다. 지도자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만 그렇게 결정하였다면 200만명은 다시 애급으로 돌아와 다시 노예생활을 시작하며 민족의 역사가 바뀌게 되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지도자의 한번의 결정은 온 민족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이었기에 고집을 결코 꺽지 않고 가나안으로 전진하였습니다. 드디어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었기에 고집스럽게 밀고 나간 모세의 영도력을 새삼 발견하고 고개를 숙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기에 모세는 고집스럽게 살았습니다.

 

나타니엘이라 수도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수도실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37년 동안 단 한번도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7명이 수도원에 와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떠나는 날인 데도 수도실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보좌관들이 책망하며 말했습니다.

“이런 분들을 안에서 인사하며 배웅하는 것은 실례입니다. 오만한 행동입니다. 이 때 나타니엘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위가 높은 분들이나 세상에 대하여는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히 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왜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지 아십니다.”

그는 죽기까지 그 수도실에서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여긴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고집스럽게 사는 사람이 큰 일을 이루게 됩니다.

 

다른 수도사 이야기 하나 더 드리려고 합니다. 마카리우스 수도사 이야기입니다.

마카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입니다. 그는 식욕을 이기려고 먹는 것을 절제하였습니다. 잠욕을 이기려고 집안에 들어가서 편안히 자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수도실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기 한 마리가 와서 발에 앉아 피를 빨아 먹고 있었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손바닥으로 모기를 쳐서 죽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혈기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기가 많은 늪 지대에 가서 살면서 옷을 벗고 살았습니다. 모기가 수없이 달려 들어 그의 온 몸을 상처투성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살았습니다. 마카리우스가 늪 지대에서 나오니 사람들은 온 몸이 퉁퉁 부은 그의 몸을 보면서 누구인지 알아 보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집스럽게 자기를 그렇게 금욕하면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고집스럽게 산 사람은 무엇인가를 이루어 냅니다.

 

그렇습니다.

남이 보기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도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서 고생하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이유가 분명하였습니다.

1. 거기에 그렇게 살아야 본인은 편하기 때문입니다.

2. 거기에 생명을 건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3. 거기에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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