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증+믿음의 글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라 / 김진홍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2. 26. 10:26

 

김진홍 목사의 아침묵상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라 2014-2-24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누가복음 12장 49절)

 

나는 해마다 2월 23일이면 빠짐없이 치르는 나 혼자만의 의식이 있다. 하루를 금식하며 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스스로 점검하는 의식이다. 오늘이 마침 올해의 2월 23일이면서 주일이기에 예배를 인도하면서도 금식하고 있다. 1974년부터 시작되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치러오다 올해로 40년째를 맞는다. 이 땅에서의 내 남은 삶이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되풀이 될 것이다.

 

1974년 2월 23일 나는 유신헌법을 반대하였던 죄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었다. 그해 겨울은 눈이 많았고 유별나게 추운 겨울이었다. 2월 23일에는 2월 달 늦추위가 와서 추위가 혹심하였다. 내가 수감되어 있던 서대문 구치소의 정치범 방은 햇볕이 들지 않는 방이었다. 방이래야 불과 0.7평짜리 좁은 방이었다. 추위가 너무 심하여지니 다리뼈를 바늘로 후벼 파는 듯이 통증이 왔다. 온 몸이 떨리고 머리에까지 통증이 왔다.

 

나는 추위를 이겨보려고 온 방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성경에서 "불"자를 찾으며 추위를 이겨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성경을 펴고 구약에서부터 천천히 “불”자를 찾아 내려갔다. 신약에 이르러 찾은 첫 번째 “불”자는 마태복음 3장 11절에서였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한 내용이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

 

나는 그때부터 정성들여 기도드리기 시작하였다.

"성령과 불로 세례 주러 오신 예수님 저가 지금 너무너무 춥습니다. ‘불세례’ 좀 주시옵소서!"

 

그 다음 찾은 말씀이 나의 눈을 확 뜨이게 하였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누가복음 12장 49절)

 

예수님께서 세상에 왜 오셨는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 예수님이 던진 불이 이미 붙었으니 더 원하는 것이 없으시다는 것이다. 이에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간절히 기도 드렸다.

 

“이 세상에 불 던지러 오신 예수님 지금 나에게 불을 던져 주셔서 이 추위를 이기게 도와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드리며 다음 말씀 사도행전 2장 첫 부분의 오순절 성령의 불이 임하여 교회가 시작되었던 말씀을 읽을 때에 내 몸에 큰 변화가 임하였다. 추위가 가시고 온 몸에 훈훈한 기운이 감돌더니 기쁨과 감격이 임하였다. 그 후로 나에게 임하였던 감동과 은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총의 세계였다. 그 날의 감격을 잊지 않기 위하여 나는 해마다 2월 23일에는 하루를 금식하며 보낸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2014-2-25

 

어제 글에 이어 계속하겠다. 1974년 2월 23일 서대문 구치소에서 성령의 불을 체험한 나는 감격에 넘쳐 밤을 새우다시피 하였다. 그리고 또한 나를 더욱 감격케 한 것이 있었다. 조사 받으러 남산 중앙정보부 조사실로 가고 오는 중에 눈을 밟고 다녔기에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와 동상에 걸렸다. 남산지하실에서는 밤새 잠을 재우지 않기에 새벽녘에 구치소 방으로 돌아올 때는 졸면서 걷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로 눈길을 걸으니 신발 속에 눈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방에 들어가서 양말을 벗고 발을 말리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워낙 잠이 쏟아지니 그냥 쓰러져 잠이 드니 발에 동상이 걸리게 되었다. 동상은 추울 때는 오히려 아픔이 덜하다. 난로 앞에서 발이 녹거나 이부자리에 들어가 따듯하여지면 가렵기 시작한다. 나는 밤마다 잠이 들기 전에 발가락을 긁다가 잠이 들곤 하여 열 발가락이 부어 있었다. 그런데 2월 23일 성령의 불 체험을 한 그날 밤은 발이 가렵지가 않았다. 이상히 여겨 일어나 발을 살폈더니 동상이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나는 벅차오르는 감격을 진정하느라 찬송가를 힘차게 불렀다. Amazing Grace, 놀라운 은혜란 찬송이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천국에 인도해 주시리/

 

밤중에 찬송을 소리 높여 부르니 교도관이 득달같이 와서 조용하라고 하였다. 내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성령님이 불로 나에게 오셔서 지금 찬송을 부르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 죽을 것만 같습니다. 내가 심장 터져 죽는 것 보다는 찬송 부르는 것이 났지요.”

 

하였더니 “아니 73번이 정신이 돌았냐?” 하기에 “예 맞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내가 돌아버렸네요. 교도관님도 방으로 들어오세요. 같이 돕시다.” 하였더니 혀를 차면서 아까운 사람 또 한 명 버렸네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변소 통에 부어넣고는 히브리서 10장 마지막 절을 읽고 묵상기도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브리서 12장 29절)

이 말씀을 읊조리며 기도 드렸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 젊은 날의 고뇌와 방황을 소멸하시고, 지난날의 허물과 죄를 소멸하신 하나님, 이 땅의 불의도 소멸하여 주시고 남과 북의 불의한 정권도 소멸하여 주시고, 휴전선도 가난도 소멸하여 주시옵소서”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2014-2-26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장 17절)

 

1974년 1월 17일에 중앙정보부로 잡혀간 우리 일행은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된 후 밤마다 남산기슭에 있는 중앙정보부 조사실에서 두 달여 조사를 받았다. 힘든 조사가 끝날 무렵이었던 2월 23일은 2월 달 늦추위가 와서 몹시 추운 날이었다. 내가 수감되어 있던 독방은 햇볕조차 들지 않는 응달 방이었다. 추위가 심하여지니 마치 바늘이나 칼로 다리뼈를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나는 추위를 이기려고 성경을 펴고 성경 속에서 ‘불’자를 찾으며 시간을 보내고 추위를 이기려 하였다. 구약성경에서부터 ‘불’자를 차례로 찾아 읽어오던 중에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이전에 읽지 못하였던 불에 관한 말씀을 읽게 되었다.

 

“내가 세상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무엇을 더 원하리요”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세상에 왜 오셨느냐? 세상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는 것이다. 그 불로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을 태우고 백성들의 허물과 죄를 불태우고,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고 세상을 병들게 하고 부패하게 하는 모든 것을 태워 없애려 세상에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간절히 기도드리기 시작하였다.

 

“세상에 불을 던지러 오신 예수님 내가 추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 나에게 불을 좀 던져 주시옵소서”

 

드디어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성령의 불이 임하여 교회가 시작되어진 말씀을 읽을 때에 나에게 하늘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불이 임하였다. 추위가 가시고 온 몸과, 방이 훈훈하여지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작된 따듯함이 4시간여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에 발에 동상까지 말끔히 치유된 것을 알게 되었다. 감격에 넘친 나는 찬송을 부르다, 기도를 드리다. 울다 웃다 밤을 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 하루를 금식하며 지냈다. 낮 시간 금식하며 읽은 말씀이 고린도후서 5장 17절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을 읊조리고, 곱씹으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2월 23일 이전의 나는 십자가 밑에서 죽고 새 사람, 새 인격, 새 존재, New Being이 된 것이었다. 그래서 감격의 눈물을 쏟으며 기도 드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전까지 철없이 육으로 살아온 나는 오늘 이 방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나도 같이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님 안에서 새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 것이 되었습니다. 나를 새 일꾼으로 받아 주시옵소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2014-2-27
1974년 2월 23일에 서대문 구치소의 정치범 독방에서 성령의 불 체험을 하게 된 나는 감격에 넘쳐 밤이 새도록 찬송 부르다, 기도하다, 울다 웃다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밤새 잠을 자지 않았음에도 몸은 날아갈듯이 산뜻하고 마음이 맑기가 거울 같았다. 이에 아침밥을 받아 변소 통에 넣고는 히브리서 12장 마지막 절을 읊조리며 아침 금식을 하였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심이라"

점심시간에도 마찬가지로 금식하고 고린도후서 5장 17절을 묵상하며 오후시간을 보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마지막으로 저녁식사를 금식하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읊조리며 저녁시간을 보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기독교 복음은 신비다. 신비주의가 아니라 신비 자체이다. 내가 지금 21세기 한국 땅에 살고 있는데 2천 년 전 유대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을 실 때에 나도 같이 죽었다. 그래서 신비이다. 우리의 신앙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2천 년 전에 예수께서 죽으실 적에 나도 같이 죽었기에 지금 살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살고 계시는 예수님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 살고 있을 따름이다. 이것이 우리들의 신앙고백의 알맹이요, 믿음의 실체이다. 74년 2월 23일을 그렇게 보낸 나는 그 후로 해마다 2월 23일을 맞으면 혼자 세리머니를 가진다. 그날 받은 은혜를 되새기며 그날 읽었던 말씀을 되풀이 읽고 불렀던 찬송을 다시 부른다.

그리고는 자신을 반성하곤 한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렇게나 큰 은혜를 나에게 베푸셨건만 나는 그 은혜를 잊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했던 점이 많구나 하고 반성하곤 한다. 그리고는 새롭게 다짐하곤 한다.

“이제부터라도 정신 차리고 잘 해 보아야지”하며 다짐하곤 한다. 올 해도 2월 23일을 보내며 해마다 치르던 나 혼자만의 의식을 다시 치렀다. 나에게 이렇게 살아 있는 체험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감격하게 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