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돌 준비는 네가, 글씨는 내가. (출 34;1-9)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3. 20. 18:12

돌 준비는 네가, 글씨는 내가.

 

                                                                                            출 34;1-9.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법은 십계명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기초적인 법은 십계명입니다.

지금 법궤를 찾으면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두 돌판이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법궤를 찾았다고 보도까지 하였습니다. 솔로몬 동굴내에 50m 되는 바위가 있습니다.600 톤입니다. 그 뒤에 법궤 모형이 동굴엑스레이 촬영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첫 돌판은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돌판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글도 하나님께서 친히 써주셨습니다.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 오는데 증거의 두 판이 그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편 저편에 글자가 있으니 그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출 32:15-16)

 

십계명 돌판을 친히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글자도 하나님이 돌위에 새겨 주셨습니다.

모세는 두 돌판을 들고 시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40일 만에 하산이었습니다. 내려와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가운데 놓고 축하 파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두 돌판을 금송아지를 향하여 던졌습니다. 금송아지도 깨지고 두 돌판도 깨졌습니다. 두 돌판이 없어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침 전에 예비하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와 산꼭대기에서 내게 보이되 아무도 너와 함께 오르지 말며 온 산에 인적을 금하고 양과 소도 산 앞에서 먹지 못하게 하라”(출 34;1-3)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주셨던 돌판과 같은 돌판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돌판은 모세가 만들고 십계명은 하나님이 친히 써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전에 두 돌판을 만들고 아침에 시내산 위로 다시 올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같이 오지 말고 혼자 오라고 하셨습니다.

왜 처음에 십계명을 주실 때에는 하나님이 돌판도 만드시고 글씨도 하나님께서 친히 써주셨는 데 두 번째 십계명은 돌판은 모세에게 만들라고 하시고 글씨만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는 것일가요?

 

1. 동일하신 하나님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두 돌판을 모세가 금송아지에 던져 깨뜨리자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처음 것과 같게..”

 

사람들은 성장하고 성숙합니다. 미숙에서 온전으로, 불완전에서 완전으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온전하신 분이시기에 성장과 성숙이 필요하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항상 같으신 분으시기에 모세에게 처음 것과 같게 두 돌판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지금도 못 할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때 앉은뱅이가 일어났으면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납니다.

그 때 귀머거리가 듣게 되었으면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머거리가 듣게 됩니다.

그 때 소경이 눈을 떴으면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경이 눈을 뜹니다.

그 때 홍해가 갈라졌으면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홍해가 갈라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요 14;12)

 

우리는 성경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처음 것과 같게 두 돌판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커도 안 되고 작아도 안 됩니다. 두꺼워도 안 되고 얇아도 안 됩니다. 무거워도 안 되고 가벼워도 안 됩니다. 같게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2. 회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주신 두 돌판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만드셨습니다. 회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결론은 회복입니다. 모세는 깨뜨렸지만 하나님은 동일한 두 돌판을 다시 똑같이 만드셨습니다.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성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두 돌판만 회복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들도 같습니다.

모세를 40세에 부르셨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미디안으로 도망갔습니다. 80세에 다시 부르셨습니다. 결국은 모세에게 주신 사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부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쳤습니다. 풍랑을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바다로 던져져 고래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고래는 요나를 안전하게 느니웨까지 데리고 가서 토해 놓았습니다. 다시 사명을 회복하고 니느웨를 복음화시켰습니다. 결국은 회복이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렇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가 고기 잡을 때 한 마릳 잡지 못 하던 아침에 부르셨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3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실망하였습니다. 죽도록 고생한 3년이 헛 세월같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시 고기잡이하는 베드로는 찾아 가셨습니다. 다시 사명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결론은 회복입니다.

성경 전체를 요약하면 맨 앞 성경창세기입니다. 창세기를 요약하면 창세기 1장입니다. 창세기 1장을 요약하면 창세기 1장 1절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재창조로 정리하여 나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돌판을 다시 만들게 하셨습니다. 결국 깨진 두 돌판이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따먹고 이그러진 하나님의 형상 인간을 다시 천국에서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격은 회복입니다.

 

우리는 미구 16대 대통령 링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링컨에게는 에드윈 스탠턴이라는 라이벌이 있었습니다. 정치에는 언제나 상대방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주 성질이 고약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링턴이 변호사 시절부터 반대자였습니다. 그는 링컨을 향하여 항상 독설을 품어 댔습니다. 링컨이 변호수사 지절에는 시골뜨기라고 비난하였습니다. 촌놈이라고 비하하였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국가적인 재앙이라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대통령이 된 후에 그를 국방부 장관으로 불렀습니다. 그는 감동을 받아 충성을 다 하였습니다. 링컨이 저격당하여 죽었습니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격자가 누워 있다.”

극단적인 정적이었던 둘 사이가 최고의 사이로 회복되었음을 보여 주는 언어였습니다.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회복의 원칙이 있습니다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공짜로 가만히 앉아서 회복을 기대하면 안 됩니다. 깨뜨린 본인이 돌판을 깍아 만들어야 합니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모세는 석공이 아닙니다. 기술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모세가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도 밤 사이에 만들어야 합니다. 긴급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똑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깨뜨린 당사자가 만들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면 안 됩니다.

꼭 보응을 받을 사람이 만들어야 합니다. 일을 저지른 사람이 벌을 받아야 합니다. 모세는 밤을 지새우며 두 돌판을 깍았을 것입니다. 회복하려면 회복의 댓가를 치루어야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모세에게 처음 돌판과 같은 돌판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중에서도 이 땅에서 짧은 100년 내외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고려시대에는 노인이 늙으면 일부러 파묻어 죽이는 고려장 제도가 있었습니다. 고려장이 사라지고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풍습으로 회복된 데에는 유명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려위에는 명 나라가 있었습니다.

명나라는 고려를 자기 속국으로 만들고 싶어서 침공할 명분을 찾고 있었습니다. 사신을 궁중으로 보내어 두 가지 문제를 냈습니다. 이 문제를 풀면 안 쳐들어 오고 못 풀면 쳐들어 오겠다는 통보였습니다.

첫째 문제는 위아래가 똑같은 나무를 가지고 와서 어디가 뿌리 부분이고 어디가 욋 부분인지를 알아 맞추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똑같은 말 두 필을 가지고 와서 어느 말이 새끼 말이고 어느 말이 어미 말인지 구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람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기한은 한 달이었습니다. 기한이 차가고 있었습니다. 조정은 모두 불안해 하였습니다. 풀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정 대신 중에 하위직 관료 한 사람이 아버지를 고려장 지내지 않고 몰래 숨겨 놓고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유있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간단하다. 큰 그릇에 소금을 30% 정도 타거라. 그리고 그 나무를 담가라. 가라앉는 쪽이 뿌리쪽이다.

그리고 두 말을 구별하는 법도 간단하다. 3일 굶기거라. 그리고 먹을 것을 한 통만 주어 가운데 놓거라. 그릇을 밀어 상대방에 주는 쪽이 어미이고, 정신없이 먹는 쪽이 새끼 말이다.”

한 달만에 명나라 사신이 거드럼을 피면서 왔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풀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풀었습니다. 명나라 사신은 감탄을 하였습니다. 고려왕은 대신에게 그런 지혜가 어디에서 나왔는 지 물었습니다. 대신은 국법을 어기고 아버지를 고려장 지내지 않고 살려 두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노인에게서 생활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고려장 제도를 없앴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이 회복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고 넘어졌어도 하나님께 고백하기만 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도말하시고 제하시고 십자가에 못박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면 용서받지만, 사람에게 죄를 고백하면 없신여김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합동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사람이 할 일이 있고 하나님이 하여 주실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 혼자 모든 것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그랬습니다. 천지 창조를 하시면서 동물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동물들 이름을 모두 아담에게 지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만드셨습니다. 돌판을 만드는 것은 모세가 할 일이고 그 위에 십계명을 새겨 넣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걸작품이 탄생되었습니다. 걸작품은 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이 프랑스에 있습니다.

판데욘(Pantheon)이라는 그림입니다. 제1차 세계 대잔에 참석하였던 전쟁의 영웅 6,000명 얼굴을 일일이 다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 전쟁에 참전하였던 나라 대통령 초상화 16명도 그려 넣은 대작입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그림은 혼자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103명 화가가 동원되었습니다. 4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릴레이로 그렸습니다. 대단한 작품입니다.

걸작품은 같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위대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만들어진 걸작품 인생입니다. 바울은 아론과 함께 만들어진 하나님의 위인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챨스 웨슬레와 함께 만들어진 감리교 거인입니다. 루터는 멜란크톤과 함께 만들어진 종교개혁자입니다.

걸작품은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이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콜럼비아 보고타에 성전을 크게 지었습니다. 해발 10,000 피트위에 세워진 웅장한 성전입니다. 벽돌로 잘 지었는 데 이 교회를 지은 이야기는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지어져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국에 신문광고를 냈습니다. 광고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산 꼭대기에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고 합니다. 누구든지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벽돌 두 장씩을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벽돌로 교회를 지을 것입니다.”

벽돌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 왔습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죄가 생각날 때마다 두 장씩을 보내 왔습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을 완성하고 나서 성전 이름을 이렇게 지었습니다.

<회개의 산성>

회개로 쌓아 올린 성전이었습니다. 이렇게 물질적인 동역자들이 하나가 되어 걸작품이 완성되었습니다. 걸작품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걸작품은 같이 이루는 것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종이만 준비하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다윗의 손을 잡으시고 성전 설계도를 그려 주셨습니다.

 

“다윗이 가로되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느니라(대상 28:19)

 

솔로몬이 지은 성전도 하나님과 다윗이 합동한 걸작품이었습니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아주 먼 옛날 두 눈을 실명하여 앞을 못 보는 소경이 살고 있었습니다. 평생 소원은, 가장 큰 소원은 <눈 한번 떠보았으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소문을 들은 부엉이가 이 사람을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

“아저씨. 나는 아저씨가 눈 한번 떠 보기를 원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왔어요. 나는 밤에만 돌아 다니고 낮에는 가만히 잠만 자기에 낮에는 눈이 필요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낮에는 내 눈을 빌려 드릴테니 밤이면 눈을 돌려 주세요. 내 눈을 교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드릴께요.”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너무나 고맙다. 밤에는 꼭 돌려 줄 테니 낮에만 빌려 다오. 나도 밤이면 잠만 자면 되니가 필요없지.”

부엉이가 말했습니다.

“약속대로 밤에는 꼭 돌려 주셔야 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너무나 눈부시게 보였습니다. 딴 세상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눈은 낮이면 이 남자가, 밤이면 부엉이가 교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 남자에게 욕심이 들어 왔습니다.

교대로 사용할 필요가 없다. 밤이 되어도 주지 말고 도망가자.“

이 남자는 부엉이 눈을 가지고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밤에도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지날 수록 점점 눈이 흐려지더니 다시 앞을 못 보는 소경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소경이 된 남자는 더듬더듬 부엉이를 찾아 갔습니다. 부엉이가 말했습니다.

“아저씨! 왜 약속을 버리고 도망쳤어요. 난 먹이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아저씨가 내 눈을 가지고 도망갔기 때문이예요. 나는 굶고 있어요. 그러니까 내 눈이 힘을 잃어 버린 것이예요.”

부엉이는 이 말을 하고 기운에 지쳐서 죽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소경은 땅을 치며 회개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부엉이는 먹지 못 하여 죽었고, 이제는 소문이 나서 자기에게 눈을 빌려 줄 부엉이도 없었습니다.

좋은 동역자 부엉이를 잃어 버린 아픔에 그도 울다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깎아 만들라. 네가 깨뜨린바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하나님은 같이 일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모세는 돌판을 준비하여야 하고 하나님은 글씨를 쓰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은 우리에게 돌판만 준비하면 그 곳에 하나님이 일하시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제 결론적인 이야기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계약 파기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인도하시면서 말씀하신 계약이 있었습니다.

“너희가 내 말대로 행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금송아지 사건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금송아지를 의지하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배반이었습니다.

모세가 금송아지에 두 돌판을 던져서 둘 다 깨뜨렸습니다. 금송아지가 깨진 것은 잘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고귀한 두 돌판을 소홀히 여기고 죄를 지은 것이 아니냐는 것에 대하여는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논란이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두 돌판을 던져 깨뜨렸다고 책망하신 말씀이없습니다. 그리고 성경 어디에도 모세가 회개하였다는 말이 없습니다. 책망하지도 않았고 회개하지도 않았기에 이것은 죄가 아니지 않느냐는 조심스러운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왜 그럴가요?

이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바로 예수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서 첫 돌판은 깨져야 할 돌판이라는 당위성때문입니다.

구약은 모두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수건을 벗고 보면 모두 예수님이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십계명 두 돌판도 그리스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두 돌판은 그리스도의 모습입니까?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되신 분이십니다. 돌판이 바로 말씀이 육신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초림의 예수님은 찢기시고 죽으셨습니다. 첫번 십계명은 쪼개지고 없어졌습니다. 재림의 예수님은 고난당하시지 않고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두번째 십계명 두 돌판은 깨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영광을 받으면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두 돌판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은 의미심장하게 하나님의 성격을 드러내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회복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 영원토록 동일하기에 성경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돌판을 준비하면 기적을 주셔서 글씨를 써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할 일을 최선을 다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최선위에 크신 은총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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