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침몰은 국가적 대형 참사이다. 정부 각 부처와 유관기관들이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인명 구조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할 수 있도록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구축해 대처해야 할 사건이다. 안전을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내세우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2월 관련 법률까지 개정하며 재난대응 체계를 정비했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할 경우 안전행정부가 즉각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해 범정부 차원의 지휘통제 기능을 맡는다는 내용이었다. 기존에 각 부처로 흩어진 재난관리 체계를 일원화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 뒤 정부의 지휘통제 기능은 사실상 실종된 것이나 다름없다. 중대본은 각 기관이 보고하는 숫자를 모으는 구실밖에 하지 못했다. 그마저도 집계 착오 등으로 불신과 분노만 키웠다. 정부가 발표한 탑승자와 구조자 집계는 사고 발생 나흘 동안 발표와 수정을 되풀이했다. 탑승자 수는 5번, 구조자 수가 바뀐 건 8번째인데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 실종자와 구조자 명단이 뒤바뀌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졌다.
사고 현장에서의 대응도 허둥대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장 지휘체계의 혼선은, 선박 침몰 직후 승객들의 생사를 가르는 초기의 ‘골든타임’을 허비하게 만든 결정적 요인이었다. 현장에서 상황 설명도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등으로 다원화되어 있는데다 서로 소관 타령이나 하면서 책임 있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외국 언론들은 멀쩡한 배가 가라앉은 후진국형 참사 못지않게 재난대응 체계와 위기관리 능력의 후진성을 전세계에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현장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니 피해자 가족들의 원성은 자연 청와대로 몰리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정부 발표와 더딘 구조·수색 활동에 격분한 까닭이다. 그런데 정부는 사복경찰을 보내 가족들 동향을 감시하는가 하면 채증활동까지 벌이고 있다고 한다. 피해 가족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있다는 비난을 자초하는 우행이 아닌가. 정부의 위기 대처 능력이 이런 데서만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 선장은 가장 먼저 도망가 버리고, 승객은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충실히 따르다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여기까지가 세월호 침몰 사건의 전말이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이어지는 구조 활동과 사고 수습 과정에선 국가 재난대응 체계의 총체적 부실에 따른 ‘또 다른 참사’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호’에 탄 국민의 마음은 세월호 사고의 피해자 가족만큼이나 비통하고 우울하다. 자연재해든 인재든 국가적 위기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위기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적 역량이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지금까지 드러난 재난대응 체계와 위기관리 실태를 보면, 정부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엉망진창의 모습이다. 그래서 거듭 묻는다. 이게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