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염려하지 말라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7. 4. 17:39

6월의 묵상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마6:33-

 

   위 말씀은 ‘염려하지 말라(6:25, 34)’는 말 사이에 끼어 있는 가르침입니다.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또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염려는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것이지만 한 번 마음에 들어오면 눈덩이처럼 커지며 마귀처럼 우리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감기가 왜 낫지 않을까, 큰 병이 걸인 게 아닐까? 이러다 죽으면 어떻게 되지…’ 끝없이 염려는 커져 갑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상으로 추방된 이래 평생 수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염려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염려는 염려함으로 염려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내일 일까지 염려를 당겨서 오늘을 망치는 염려까지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한결같은 분이십니다.

 

   저는 미국에서 조교로 학위과정을 하고 있을 때 한국에는 대학에 다니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저는 아내와 딸과 막내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도움으로 고학을 하면서 한국의 두 아들들에게 생활비를 보내며 그곳 식구들과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저에게는 해야 한다면 염려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의료보험도 없는데 아내와 나 둘 중 하나라도 아프면 어떻게 될까? 또 중고차를 가지고 있었는데 고장이 나면 어떻게 될까? 학위논문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고향에 두고 온 애들이 아프거나 돌보고 계시는 부모님께 무슨 탈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저는 그까지 저를 인도하시고 안보해 주신 하나님을 굳게 믿는다고 매 순간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때 구체적으로 부딪쳐 오는 이런 염려를 했다면 한 순간도 자신을 지탱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기적적으로 그런 염려를 하지 않고 공중의 새가 벌레를 물어 나르듯 매일 매일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만 열중해서 살았습니다. 오히려 이웃 교우들이 제 딱한 가정을 위해 기도했다면서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약5:13).”,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빌4:6).” 이런 말씀을 따라 염려가 생길 때마다 기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회복하고 평안을 얻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특별히 신앙이 좋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고 사는 것 외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염려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이런 일이 아닐까요?

 

기도:

하나님, 염려로 하나님을 떠나려 할 때 바로 기도로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해 주십시오. 아멘.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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