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설교}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마 24:45-5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젠 완전한 가을입니다. 아침저녁으로는 두터운 옷이 입고 싶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19일 개막한 아시안게임을 하는 중이지요. 우리 모두 우리 나라에 들어온 외국선수단들이 한국이라는 아름다운 나라를 기억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봉사하고,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 선수들의 선전도 기원하시구요. 오늘의 주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라는 제목으로 저와 여러분들이 이 한 시간 은 혜를 사모하고 받으시기를 소망하면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속한 24장을 전체적으로 읽어 내려가면 종말과 예수님 재림의 징조에 관하여 엄밀하고도 준엄한 심판주의 음성을 듣다가 돌연 이와 내용을 달리하는 다른 말씀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다소 의외라는 느낌을 갖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선 여러 징조즐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경고의 말씀이라면 본문의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종말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되는 것을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본문에서부터 시작해서 25장 전체는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한 사람을 택함받고 그 기준에 미달되는사람은 영원히 버림받는 다는 주제로 일관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시해야 할 것은 마태보음의 전체 줄거리가 예수님 고난 이전까지는 바로 마 24:45 / 25:26을 정점으로 하여 계속 상승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수난도 결국은 택함을 받은 자와 버림받은 자를 더욱 분명히 하고 있음을 볼때 이 예언이 사실상 마태복음의 정점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것입니다.
앞에서도 본문의 예언은 그리스도인들이 종말을 준비하여 모두 하나님의 택하심안에 들어야 될 것인데 그 준비의 자세와 기준이 어떻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믿는 자의 올바른 삶과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1.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종을 원하십니다.
성경에서 종의 개념은 모두 똑같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종은 주인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며 복종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되며, 그 댓가로 주인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종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지는데 하나는 자발적인 종을 말하며 다른 하나는 비 자발적인 종, 즉 노예와 같이 자신의 삶이 주인에게 얽매여서 자기 자신도 마음대로 주장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앞서 말한 자발적인 종이라 함은 남을 섬기는 자유로운 봉사자 혹은 고용하인이나 품꾼을 말하며 이들은 주인이 맡기는 일을 거절하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는 종이란 말을 두가지 경우에 사용했는데 하나는 예수님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놓고 부를 때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빌 1:1 에서 바울 자신이 예수님의 종으로 표현했듯이 예수님과 사도, 혹은 성도의 관계를 나타낼때 사용했습니다.
물론 본문에서의 종도 후자의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여기서 후자, 즉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에서의 '종' 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둘로스)라고 합니다. 이는 원래 (데오)에서 파생된 말인데 '묵다. 동이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이 (데오)는 (데이)라는 말과 뿌리가 같은 것으로 보여지는데 "반드시 ~ 해야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우리는 하나님께 묶여 있고 그와 함께 동여 있으며 그 분이 오늘 내게 지시하시고 명력하신 일을 나의 의지로 거부할 것이 아니고 반드시 순종으로 실천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주인을 향한 종의 충성이 바로 종의 본문이며 의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히브리어로나 헬라어로나 이 충성이라는 단어가 믿음이라는 말과 일치한다는 사실입니다.
충성이 히브리어로 '아만' 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세우다, 지탱하다' 라는 기본 의미외에 '신뢰하다, 진실하다, 믿다' 라는 뜻을 아울러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헬라어로는 '피스토스' 라고 하는데 이는 실제로 믿음으로 번역되기도 하며 (페이도) 라는 기본 어근에서 유래 됐습니다. 이 또한 '확신하다, 동의하다, 의존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한자로도 '忠誠' 이란 마음 중심의 말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의 우리는 마음 중심의 성령의 음성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의뢰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성을 결코 자신의 전 재산을 다 바친다든지, 목숨을 내 놓는다는지, 자기 인생을 포기하는 데서 찾을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와 같이 해야 될 때로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작은 곳에서부터의 충성을 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그리고 그분이 하신 말씀을 우리가 '믿고, 신뢰하고, 따르는' 기본적인 발걸음에서 충성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충성은 직분에, 헌금 액수에, 어떤 봉상의 정도에 따라 그 정도가 평가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도 "몸을 불사르게 내여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고 사도 바울은 말했던 것입니다.
노만 맥크라우드 박사는 그가 시무했던 교회에서 잊을 수 없는 충성된 성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간증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내가 시무했던 교회에 마부로 일을 하던 '톰 베어드'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무척이나 고결하고도 훌륭한 사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되며 충성스러운 분이었습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일화를 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어느 날 그에게 교회의 안내일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기 무척이나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던 까닭에 내가 청한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톰, 만약에 자네가 이 일을 하고 싶지 않다면, 다시 말해서 이일을 수치스럽게 여간다면..."이라고 말을 거내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갑자기 나를 돌아와 보면서 "수치스럽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그의 옷을 벗기우기까지 수치를 당하셨는데 내가 이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리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나는 이일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는 참으로 선량하고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6펜스의 보수도 받지 않은채, 그리고 교회의 회중들이 난의 권면에 따라 그에게 은시계를 선사했음에도 그것을 받지 않고 일곱해 동안이나 교회의 안내일을 하였습니다.
그가 천연두에 걸려 죽어가고 있을 때에도 그는 헌신적인 성품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그의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에게 그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내게 알리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만약 목사님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지금 병중에 있는 사모님과 아이들도 제쳐놓고 이리로 달려 오실 것입니다. 그러니 목사님께 이 사실을 알리지 마시오" 라고 대답했답니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나도 늦게 알게 되었던 까닭에 그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충성은 결코 먼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그 마음속에 있는 것이 겉으로 드러나면 그것이 곧 충성된 생활인 것입니다.
2. 마지막 때의 종들은 지혜로와야 합니다.
본문에서 '지혜 있는 종' 이란 말에서 '지혜 있는'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프로니모스' 를 번역한 것인데 '사려 깊은, 슬기로운, 신중한'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영어 번역 본에는 센서블(Sensible)이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이는 '지각 있는' 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따라서 지혜있는 종은 조심성이 있고 분별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지혜롭고 분별력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1) 그는 자기의 할 일을 잘 알고 이를 분멸하는 종입니다.
충성과 지혜로움은 절대로 확실히 구분이 있거나 구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본문은 앞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충성된 종은 늘 깨어 있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될지를 대해 늘 찾아보며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심지어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과 절제해야 할 일에 대한 정화한 분별력을 갖고 생활을 할 때 이를 진정한 충성된 종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충성된 종과 지혜로운 종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영어 속담에 '뜻이 있는 길에 길이 있다' 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충성을 드리고자 하는 사람이 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이고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지 못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동양인이 훌륭한 스승을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히말라야 산 위에 동굴에 아주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이 거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최종 목적지로 정하고 갔습니다. 그는 자기 말에 여러가지 음식을 싣고 험한 여정을 보낸 끝에 수 개월이 지나서야 히말라야 산 기슭의 동굴에 사는 그 현인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동양인은 굴을 향하여 "당신이 바로 이 세상에서 제일 현명하다는 스승입니까?" 하고 외치며 기다리자 동굴 속에 어떤 노인이 나왔습니다. 그 동양인은 그 앞에 무릎꿇고 물었습니다. "스승님, 내가 어찌하면 밝은 빛을 구하겠습니까? 어디에 가면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 때 그 현인은 눈을 들어 애타게 호소하는 그 젊은이의 눈을 바라보며 "자네 말을 어디가면 찾을 수 있겠나?" 라는 말을 남기고 동굴 속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말은 젊은 구도자 옆에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습니다. 내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고 나의 생활 전체를 의뢰하면 나는 이미 예수님의 종이요, 그의 택함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힘든 일, 고통스러운 일을 당하게 될는 지에 대해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생의 물음에 정답은 나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분별해 봅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라고 말한대로 참다운 주님의 종된이들이 자신을 위한 삶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 말을 잊지 맙시다. 이것이 지혜로운 종인 것입니다.
2) 지혜로운 종은 주인이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이솝 우화에 '미련한 당나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주인이 당나귀에 소금을 지우고 매일 똑같은 길을 반복하여 소금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주인은 여느 때와 같이 그 나귀에게 소금을 지우고 길을 떠났습니다. 가는 도중에 냇가를 건너게 되었는데 당나귀가 그만 미끄러져 물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황급히 일어서 보니 등에 있는 소금의 무게가 현저히 줄어들게 된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재미들린 당나귀는 그곳에 이르면 거의 반복적으로 냇가에 넘어지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이에 화가난 주인은 어느 날 당나귀의 꾀를 알아차리고 그 당나귀의 등에 솜을 실었습니다. 그 당나귀는 이것을 모르는 채 다시 냇가에 이르러 넘어졌다가 일어 나는데 당나귀는 그만 허리가 무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등에 있는 솜에 물이 스며들어 그만 무가게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미련하기 짝이 없습니다. 자신이 운명의 시간이 가까와 오는 줄도 모르고 육신의 쾌락을 탐닉하고 영의 눈을 닫아버리는 영적으로 우둔하고 영적 소경이 되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그런데 예수님은 다음 구절에 이와 받대되는 듯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여기서 "쉬게 하는 것과 멍에를 메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은가?" 하고 사탄은 우리 귀에 속삭입니다. 그럴때 단순히 명령하여야 합니다. "사탄아 내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마 16:23)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위임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마28:18~20의 전도 사명을 '대위 임령(Great Commitment)'이라고 합니다.
만일 지혜로운 종이 되어 분별 할 수 있는 자는 심판의 날이 조금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일을 성실히 행했으므로 오히려 주인이 계산하는 날이 즐겁고 기쁠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올 때 그 종의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마 24:46,47) 이러한 태도로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는 풍성한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천국을 기업으로 소유하며 그 크신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약한 종은 시대의 징표에 눈이 어둡고 결국 무엇이든지 매일로 미루는 자입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서의 악한 종은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대적한 적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편안함을 위하여 주의 임무에 게으르고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은 자 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은 결국.
1) 자신의 육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고 술 친구들도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2) 그러나 주인의 계산은 부지 불식간에 들어 닥칩니다.
3) 종내에는 심판에 이른 것입니다.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 대하여 함께 은혜를 받았습니다. 과연 충성된 종은 어떤 종입니까? 또한 지혜 있는 종은 어떤 종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말씀속에서 말하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있는지 잘 생각하고 뒤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지는 계절로 바뀝니다. 우리 인생도 그만큼 바뀌어 가는 것을 뜻합니다. 언제인가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가기 전에 하나님께 충성되는 종이 됩시다. 그리하여 심판 때에 우리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변론하여 주실 수 있는 그러한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주후 2014년 9월 20일의 오전시간에
박종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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