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第一敎會 (초기 작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2. 2. 10:52

 

제일 교회는 K시에서 제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이 교회는 K시에서 제일 교회라는 이름을 갖기에 합당한 여러 가지 요인들을 가지고 있었다. 건물의 크기로 봐서 K시에서 제일 컸고 따라서 교인이 제일 많았고 권력과 지식들을 제 나름대로 가진 분들, 또 신앙 좋은 평안도 분들과 구변 좋은 부인들이 제일 많은 교회였다.

교회 가까이는 극장이 있었는데 일요일 아침부터 이미자의 노래로 행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그러나 술집과 깡패를 배경으로 흐느끼는 한 여인이 그려진 커다란 간판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극장 입구는 한산했다. 그 동굴 같은 극장을 찾아들어 눈물을 짜고 앉아 있기엔 너무 화창한 가을 날씨인 듯했다. 빨강 모자에 오린지 색 륙색, 검정색 해군 작업복을 입은 아가씨들 셋은 같은 등산복 차림인 남학생들과 어울려 거들먹거리며 극장 옆을 지나쳤다.

“어이구 말만 한 것들을 저렇게 내돌리다니……”

제일 교회의 송 집사는 성경과 찬송이 든 큰 핸드백을 들고 교회를 향해 종종걸음을 치며 연방 혀를 찼다. 그녀는 이 한 달 동안 안내 집사였기 때문에 남보다 교회를 빨리 나가야 했던 것이다.

교회 문을 들어서며 빗자루 자국이 남아 있는 뜰을 쭉 한번 훑어 봤다. 극장 간판과 등산복 차림의 여학생들을 쳐다보는 것보다 모든 것이 정돈되고 산뜻한 기분이었다. 송 집사는 일주일 중 가장 즐거운 날이 주일이었다. 평일에도 교회 일이 걱정되어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그녀는 최선을 다 하고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송 집사는 교회가 없었다면 살 재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녀가 권사가 되지 못한 것은 손으로 번 것을 입으로 까먹어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래층에서 성가 연습을 하고 있는 성가대를 흘낏 한번 쳐다보고 성큼성큼 이층으로 올라갔다. 이층 입구 앞 테이블에는 전도사와 아직은 단신인 부목사가 벌써 나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전도사의 두 손을 잡고 먼저 호들갑을 한번 떨고 예배당 안을 넘겨다보았다. 강대상에 잘 가꾸어진 국화가 길게 앞으로 가지를 내뻗고 있었다.

“아이구 저 국화 누가 가져왔소?”

“말해 뭘 해요. 회장댁에서 가져왔죠.”

회장이란 여전도회장을 말하는 것이었다.

“정말 우리 회장 같으신 분도 안 계세요. 전자 오르간 바쳤지요. 커튼 해 다셨지요. 또 뭐 바칠 게 없나 늘 살피고 계시니 말이야요.”

송 집사는 생각난 듯 큰 핸드백을 내려놓고 잠깐 앉아 기도를 드린 후 주보를 들고 안내를 하려고 계단 난간 곁에 섰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오던 교인들이 예배 시간이 박두해 오자 차츰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송 집사의 호들갑은 줄지 않았다. 양품점을 하는 아주머니가 올라오자 곧 손을 맞잡았다.

“얼마 전에 어떤 부인 안 찾아 왔습데까?”

“누군데요.”

아주머니는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아이구 참, 살이 두툼하게 찌고 좀 거만해 보이는 부인 말이야요.”

“그런데요.”

그녀는 눈을 흘기며 등을 쳤다.

그 부인이 제일 기업 사장 부인이야요. 돈을 물 쓰듯 하는데 내 댁에서 물건 좀 갈아 달라고 했시오.”

“네에. 그랬군요.”

아주머니는 그제야 알아듣고 미소했다. 맞은편에 남자 안내 집사는 분주하게 인사를 하며 교회를 찾아 드는 남녀에게 주보를 돌려주었다. 여전도회장이 이층 계단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송 집사는 재빠르게 계단을 뛰어 내려가 회장 손을 한 손으로 붙들고 한 손은 공중을 내저었다.

“아이구 어찌 좋은 국회를 갖다 놓았는지, 오늘은 아주 강대상이 훤 하외다.”

“말 마오. 시내를 죄 뒤졌수다. 어디 마음에 드는 게 있어야디.”

회장은 허리를 한 번 쭉 펴고 말했다.

“아 그만하믄 됐디요.”

“아주 강대상 단장을 위해서 집에서 사람을 사서 온상을 하야 되갔시오.”

“그리 되믄야 두 말할 나위가 있가시오?”

회장을 돌려보낸 뒤 계단을 내려다 본 송 집사는 이번엔 질겁했다.

“아구머니나 웬 거지가 이층까지 올라오지?”

헌 누더기를 걸치고 왼팔이 없는 거지 하나가 정말 올라오고 있었다. 더부룩한 머리에다 등에는 누더기 봇짐을 걸머진 채였다.

“여보시오. 어딜 올라오는 기요?”

안내하는 남 집사가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로 올라 왔다.

“내려가서 기달려요.”

남 집사가 그를 떠밀었다. 그는 휘청거리며 한 계단 밑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더 이상 떠밀리지 않고 똑바로 고개를 들었다. 눈자위가 우묵하고 핼쑥한 얼굴을 하고 있어 폐병 환자 같은 인상이었다.

“나 예배 보러 왔소.”

어울리지 않은 굵은 목소리에 놀란 것은 남자 집사보다 송 집사였다. 퀴퀴한 냄새에 코를 쥐고 외면하고 있던 송 집사는 예배를 드리겠다고 버티는 거지에 기가 질렸다. 거지는 태연히 송 집사 옆을 지나쳐 입구로 다가갔다. 남 집사가 다시 거지의 한 팔을 붙들었다.

“여보시오. 이런 꼴로 예배를 보러 가면 안 돼지요.”

거지는 아니꼬운 듯이 남 집사의 아래위를 훑어보았다.

“나 보고 넥타이 매고 양복 입고 오란 말이요?”

송 집사가 백 원짜리 하나를 손에 들려주었다.

“자 그러지 말구 나가 보우.”

거지는 돈을 팽개치며 송 집사를 노려보았다.

“여보시오. 날 거지로 취급하는 거요?”

부목사가 다가왔다.

“예배를 드리려 오셨습니까?”

“그렇소.”

“어디서 오셨지요?”

“예배 보는데 어디서 온 게 무슨 상관이요?”

부목사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오신 분에게는 묻는 게 버릇이 되어서……”

“나 집 없는 줄 뻔히 알지 않소?”

“그럼 성함은?”

“김부자요.”

“혹 누구 소개로?”

“길거리에서 예수 믿으라는 소리 듣고 왔소.”

“감사합니다. 그럼 짐이라도 이 곳에 내려놓으시고 들어가시지요.”

김부자는 약간 노여움이 풀리는지 짐을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목사가 그를 안내하여 의자에 앉혔다.

밖으로 나온 부목사를 붙들고 송 집사가 말했다.

“아이구 부목사님도. 그래 어쩔라고 그러시는 거야요?”

“예배를 드리러 왔다는데 예배를 드리고 가야지 어쩌겠소.”

부목사는 태연하게 말했다.

“말 마오. 헌금이라도 훔쳐 가려고 왔는지 아우. 거참 큰일이구먼, 자리는 좁은데 누가 옆에 앉을라 하갓시오? 아이 기가 막히누만. 거지가 글쎄 거지가 아니라니 말이야요.”

“그만 두고 송 집사님 안내나 맡으세요.”

예배가 끝난 뒤 장로들이 입구에 한 줄로 서고 목사는 맨 끝 입구에 서서 교인들에게 일일이 악수하였다. 그러나 김부자를 본 장로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교인들도 눈살을 찌푸리며 비좁은 통로에서도 그에게 길을 양보했다. 김부자가 부목사 가까이까지 왔을 때 부목사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부목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정말이요?”

“정말이고 말구요.”

“그럼 다음 일요일에는 더 많은 친구들을 데려 오겠소.”

그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교인들이 다 떠난 뒤 원목사는 부목사를 불렀다.

“어찌된 거여?”

원 목사는 언제나 반말이었다. 부 목사는 어떤 역할이 분명히 잇는 것이 아니고 원목사의 심부름꾼이었다.

“예배를 드리려 왔댑니다.”

“그럼 적당히 해서 내 보낼 일이지.”

원목사는 아주 언짢은 표정을 하였다.

“그렇지만 예배를 드리겠다는 걸……”

“그래, 집사들에게 적당히 맡겨 놓을 일이지 그걸.”

원목사는 더욱 언짢은 표정을 하고 걸어가 버렸다.

 

문제는 다음 주일 더 복잡하여졌다. 어른 거지들뿐 아니라 깡통을 찬 아이 거지들까지 십여 명이 예배하겠다고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안내 집사는 어른 거지는 당해 내지 못하고 아이 거지들만 붙들고 호통이었다.

“야 이놈들아 여기가 거지 소굴인 줄 아니? 너희 놈들 앉아서 놀라고 꾸며 놓은 교횐 줄 알아?”

그러나 아이 거지들은 닳아진 돌멩이처럼 이쪽으로 몰면 저리 빠지고 저쪽으로 몰면 이리 빠져서 깡통 소리만 요란했다. 부목사는 의자에 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여보시오. 목사님.”

굵은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지난 일요일에 목사님은 분명히 고맙다고 했지요? 그래서 오늘은 친구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볼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른 거지들은 재미있다는 듯 교회 안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으스대며 안내 집사를 노려보기도 했다. 부목사는 다시 양손으로 이마를 짚고 침묵을 지켰다.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이 몇 나왔다.

“여보시오. 왜 교회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요, 나가시오 나가.”

거지 몇 사람은 계단으로 밀려갔다.

“여보시오.”

젊은이들은 굵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기침을 하였다. 비가 몇 번 내리고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졌기 때문에 감기 들기 알맞은 옷차림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침은 힘이 없고 기분이 나빴다. 곧 피가 섞여 나올 것 같은 폐병 환자의 기침 같은 것이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그들 앞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예배 보러 왔소. 여기 앉아서라도 예배 보게 해 주시오. 예수 믿어야 천당 간다면서요?”

그는 예배당 앞 출입구 시멘트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자 밀려났던 거지들도 그 옆으로 다가 앉았다. 통로가 막히자 교인들은 가득 밀려와 구경하고 있었다.

한 젊은이가 이 광경을 둘러보고 있다가 성큼 나섰다.

“여보세요 이건 예배를 방해하는 행위요. 알겠소? 좋게 말할 때 물러나시오.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해서 잡아가게 하겠소. 자 나가겠소, 안 나가겠소?”

그들은 꿈쩍하지 않았다.

“예배를 방해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고 당신들이요.”

계속 기침을 하던 김부자는 쭈그려 앉은 채 말했다.

부목사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배를 드려야지요. 자 모두들 들어오시오.”

그는 문을 활짝 열고 거지들을 안내했다.

거지들은 거보란 듯 의기양양하게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어린 거지들까지 깡통을 밖에 두고 의자에 앉아서 아름다운 국화며 값진 커튼이며 멋있는 가운들을 입은 찬양대원들을 바라보며 잔칫집에 온 양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 날은 십일월 첫 주로 제직회가 있는 날이었다. 이 백여 명이 넘는 제직들이 이 거지 문제를 취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교회에 거지 떼가 몰려든다는 것은 결코 상서로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교회가 좁아서 교인들이 다 앉지 못하는 터인데 거지들이 넓은 좌석을 차지하고 또 냄새가 나서 가까이는 아무도 가지 못하니 이 문제는 시급히 해결이 되지 않으면 많은 교인을 잃게 됩니다.”

“글쎄 해결책을 말해 보시오.”

사회를 하고 있는 원목사는 따분한 모양이었다. 한 젊은 집사가 일어났다.

“다음 주에는 교회의 젊은 청년들을 동원해서 정문 앞에 세우고 아예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다른 집사가 일어났다.

“물질이 없어서 거지지 정신까지 거집니까? 교회가 예배를 드리겠다는 것을 왜 막습니까?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은 성경에 있는 말씀입니다. 천국은 선택된 자만이 갈 수 있는 좁은 문이지만 교회는 누구에게나 넓은 문을 열고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환영해야 합니다. 교회가 예배하러 오는 사람을 막는 것은 부당한 일입니다.”

얼마 동안 침묵이 흘렀다.

“교회 구제부에서 헌옷을 좀 걷고 돈을 약간 내서 목욕을 시켜 가지고 악취를 내지 않도록 해서 같이 예배를 드리면 어떨까요?”

송 집사가 벌떡 일어났다.

“걸핏하면 구제부, 구제부 해서 일을 떠맡기갔다구 하지만 우리는 그런 짓 못 하갔수. 또 옷을 입히고 목욕까지 시켜 보우. 이 고장의 거지들은 다 모이고 조금 있으면 대한민국 거지는 다 모여서 우리 교회는 거지 교회가 될 거야요.”

“그렇게 되면 더 좋지요. 우리가 일인 일 전도 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일년에 한 사람도 전도 못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그 많은 교인을 얻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고 집사가 비꼬듯이 말하자 송 집사는 지지 않고 대답했다.

“그건 억지요. 억지. 그래 대한민국 거지 다 모야 놓고 고 집사 혼자 남아서 이 큰 교회를 운영해 보시우. 고 집사님 헌금으로 이 교회가 이렇게 잘 되는 줄 아시는 모양이지요?”

원목사는 거칠어지는 발언을 가로막았다.

여전도회 회장의 남편인 방 장로가 일어섰다.

“내가 보니 김부자라는 거지는 보통 거지가 아니오. 교육도 좀 받았고 교회에 대해서도 분명히 알고 있는 거지요. 그래서 교회에 분쟁을 일으키려고 일부러 그런 일을 하고 있단 말이오. 결국 우리를 시험하는 사탄이나 마찬가지요. 보시오 우리는 공의로운 하나님을 믿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지금까지 하늘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하나님을 빼앗아 가거나 부활의 소망을 말살하거나 교회를 빼앗아 가면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소. 그러나 그들을 보시오. 교회가 망해도 하나님이 없어도 눈 하나 까딱 않을 사람들이오. 그뿐 아니라 그 김부자라는 거지는 폐병환자 같지 않아요? 그렇다면 더구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그런 사람을 넣어 줄 수 없지 않겠소?”

그의 말은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어떻게 하라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방 장로의 발언은 언제나 가장 무게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요.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장로는 부친대로부터 지금까지, 또 이 교회의 초창기로부터 현재까지 그 가정과 교회가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그의 위치는 무게가 있었고 또 물심양면으로도 가장 크게 헌신하고 있는 장로였다.

이제 아무도 그의 발언을 거슬러 거지를 돕자는 말을 못 하였다. 제직회의 분위기가 싹 바뀌었다. 이제는 누가 거지를 합리적으로 몰아내느냐의 발언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부목사가 벌떡 일어났다.

“저는 오늘 거지들이 몰려 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얼마동안 망설였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교회가 기독교의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는 사회의 비난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신앙적인 양심에 비추어 그들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단정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환영하고 사랑으로 돌봐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가복음 십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여리고를 지날 때 한 소경 거지 바디메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 예수를 따르던 뭇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소경 거지를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소경을 불러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꾸짖던 사람들이 옳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누가 복음 십 육장에는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한 부자는 음부에 떨어지고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던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다는 비유 말씀이 있습니다. 거지가 주님 품에 오는 것을 방해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거지를 사탄으로 단정하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좀더 따뜻이 그들을 맞아 줄 수 있느냐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만일 김부자가 폐병환자라면 정말 교회는 버림받은 그 생명을 구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방 장로가 안색이 변하여 벌떡 일어났다.

“지금 부목사는 거지를 사탄으로 단정했다고 나를 공박했는데 나는 사탄과 같다고 그랬지 사탄이라고 하지 않았소. 또 폐병환자는 교회가 구제할 의무가 있다고 했지만 나라도 구제 못하는 수백만의 폐병환자를 어떻게 한 교회가 구한다는 말이요. 그리고 부목사는 부자는 으레 음부에 빠지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는 자손은 복 받는다고 시편에도 씌어 있어요. 아무튼 거지 문제는 거지를 지극히 사랑하는 부목사가 맡아서 해결했으면 좋겠소.”

방 장로는 격노하였다. 지금까지 자기 발언에 직접 반박하는 일이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원목사는 당황하였다.

“교회가 거지 문제만 가지고 왈가왈부 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이 문제는 내가 부목사와 상의해서 잘 처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제직회의는 이 정도에서 폐회하면 어떻겠습니까?”

사회하는 원목사는 서둘러 회의를 마쳤다.

원목사는 부목사를 불렀다.

“아니, 부목이 되어 이게 무슨 짓이여. 교회를 망치겠다는 거여?”

“그럼 어떡합니까?”

“점잖게 앉아 있어야지.”

“그럼 거지를 추방하자고 결정지어 버릴 것 아닙니까?”

“글쎄 어떻게 결정짓든 부목사가 나설 자리가 아니잖아? 큰 교회 목사로 길러 보내려고 데려온 것인데 원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환갑이 넘은 원목사는 부목사를 철없는 어린애 꾸짖듯 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 저는 아무래도 이 교회에 적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뭐? 반항하는 거여? 얼마 동안 거지 문제는 상관하지 말고 또 출입구에도 나와 있지 마.”

원목사는 제직회에서 거지 떼는 출입구에서 막아 버리자고 주장했던 집사에게 다음 주엔 거지 떼를 적당히 처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막상 다음 주엔 그 집사는 출석하지도 않고 더 많은 거지 떼가 몰려 왔다. 이번에는 익숙한 길을 거침도 없이 지나 제자리에 모두들 앉았다. 그런데 이 날은 예배하는 동안 계속해서 거지 좌석에서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처음에는 교인들이 몇 번 눈살을 찌푸렸을 뿐이었으나 간드러지게 기침하는 소리가 계속되자 모두 불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설교보다는 그 기침 소리에 더욱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표정들이었다.

헌금 시간이었다. 헌금 상자가 거의 뒤까지 돌아와서 그들을 건너뛰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헌금 상자를 이리 돌리시오.”

모두들 뒤를 돌아봤다. 헌금 집사는 들은 체하지 않고 그들을 건너뛰었다.

“우리는 헌금도 할 수 없소?”

목사가 강대상으로 나와 강대상을 손으로 쳤다.

“예배 시간에 조용히 하시오.”

이 때 얼굴이 핼쑥한 김부자가 벌떡 일어났다.

“우리를 도둑놈으로 인정하는 것이오?”

그러다가 간드러지는 기침을 시작하였다.

갑자기 뒷자리가 소란해지며 예배하던 남녀 몇 사람이 참을 수 없다는 듯 성경과 찬송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갔다.

김부자가 피를 토했던 것이다. 예배는 어수선하고 심란한 가운데 끝났다. 교인들은 수군거리며 도망하듯 흩어져 버렸고 방 장로 내외는 아주 나오지도 않았다. 원목사는 빠져 나가는 송 집사를 붙들었다. 그녀가 소식통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왜 회장님 안 나오신지 아시오?”

“목사님은 그것도 모르시우? 부목사가 있는 동안에는 안 나온답네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부목사가요. 커튼과 전자 오르간을 팔아 가지구설랑 거지 구제했으면 좋갔다구 했대요. 그래 그걸 하나님께 바친 것이지 거지에게 바친 것이야요? 그뿐 아니라요, 대학생들 시켜 가지구설랑 교인들 집 다니면서 헌 옷을 걷고, 또 시장에서 과자 도매상하는 김 집사님 있디 않아요? 그 분에게는 글쎄 부목사가 거지를 점원으로 써 달라고 했다나요? 그래 말이 되갔시오? 착실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는데 신원도 확실하지 않은 거지를 어떻게 쓰느냐 말이야요. 이제 소문이 났어요. 제일 교회를 나가면 성가셔 못 산다구요.”

목사는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점심도 먹지 않고 부리나케 여전도사를 데리고 방 장로 댁을 심방하였다.

집안이 온통 한약 달이는 냄새로 가득했다.

“장로님 어디 아프셨소?”

목사는 들어서며 물었다. 어느새 송 집사가 와 있었고 방 장로 내외가 응접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이구 목사님이 나오셨구먼. 오늘 내가 몸이 좀 불편해서……”

“글쎄 그러신 것 같구먼. 약 달이는 게. 감기입니까?”

“아니오. 소화가 잘 안 돼서.”

“언제부터요? 그런 걸 여태 모르고 있었구먼요.”

목사는 의자에 앉아 잠깐 기도하였다.

“목사님 그 김부자란 거지가 폐병환자라면서요?”

여전도회장이 한 마디 하였다.

“글쎄 그런 모양이요. 참 골칫거리가 생겼습니다.”

“골칫거리는 뭘, 그 신앙 좋은 거지 때문에 많은 거지 신자를 가만히 앉아서 얻었으니 축복받을 일이지요.”

“원 회장님도 그러시지 말고 지혜를 주시고 도와 주셔야겠습니다.”

“소학교밖에 안 나온 제게 무슨 지혜가 있갔시오. 지혜는 신학 대학 일등으로 나온 부목사에게 있갔지.”

“젊은 목사는 과격한 이론뿐이지 목회할 줄 몰라 탈입니다.”

“그러나 젊은 목사가 박력 있고 좋을 때가 있지요.”

방 장로는 부목사가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원목사와 전도사는 그 곳에서 점심 대접을 융숭히 받았다. 부인네는 부인들끼리 그리고 원목사는 방 장로와 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장로님 나 오늘 긴히 상의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원목사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부목사는 강도사 때부터 이 곳에 와서 이만큼 길러 놓았으니 작은 교회 하나쯤 맡아 더욱 경험을 쌓게 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그래 지금 어디서 오라는 교회가 있습니까?”

“그것은 제가 찾아보지요. 그런데 제가 부탁드릴 것은 새로 데려올 좋은 강도사를 한 사람 물색해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무슨…… 목사님 좋으신 대로 해야지요.”

“그래도 첫째 장로님과 회장님 마음에 드셔야지요. 그래서 매주 수요일마다 신학 대학 졸업생 중 우수한 사람들과 신대원을 졸업한 좋은 강도사들을 불러 설교를 시켜 볼까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그거야 목사님 알아서 하세요.”

“그래도 방 장로님이 나와서 점을 찍어 주셔야죠.”

원목사는 방 장로 없이는 교회를 이끌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부목사를 쫓아내고 방 장로 마음에 드는 새 부목사를 영립하겠다고 허락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방 장로의 심방에서 돌아 온 목사는 곧 부목사를 찾았으나 그는 집에 없었다.

해질 무렵에야 부목사는 목사관으로 찾아 왔다.

“목사님, 그 김부자라는 사람은 지금 폐병 삼기랍니다. 그래 지금 입원수속을 해 주고 오는 길입니다.”

부목사는 약간 흥분한 표정이었다.

“입원 수속? 그래 그 비용은 어떻게 할려고?”

“제가 우선 부담했습니다.”

“우선이라니, 그럼 누가 내기라도 한다는 거야?”

“교회가 부담해야지요. 그 사람은 무의무탁한 우리 교회 교인입니다. 그런 사람을 구하는 것은 우리 교인들의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원목사는 아주 언짢은 표정을 하였다.

“허락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야? 입원비는 자네가 내. 그리고 다시는 교회에 그 거지 문제를 꺼내지 말도록 해. 언제까지 이렇게 어린애 같은 짓을 할 거야?”

그러나 부목사는 아직도 흥분 상태였다.

“목사님 하마터먼 하나님을 모르고 죽을 뻔한 그가 자기 발로 우리 교회에 걸어 들어왔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런데 거처도 모른 그가 이번에 돌아가 병이라도 더해 죽는다면 그 영혼은 구할 길이 없지 않습니까? 모든 형식보다도 우선 입원시켜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나는 허락한 일이 없어. 또 교회에서 이 문제를 더 이상 다루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리고 이번 기회에 말해 두지만 대학생들을 시켜 거지들의 구제금품을 교인들에게 강요하다든지 직장 알선을 해 본다든지 하는 짓은 그만 둬. 그러지 않아도 걸핏하면 교회 안 나오겠는 신도들에게 그게 무슨 짓이야.”

“목사님 그런 교인 천 명 두면 뭘 합니까? 교회 나온다고 다 구원 받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아주 이번 기회에 강하게 제자 훈련을 시키시면 어떻겠습니까?”

부목사는 이제 자기는 원목사의 눈 밖에 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한 것이었다.

“부목사.”

목사는 최대한으로 인내하고 있는 고뇌의 표정이 역역했다.

“교회가 그렇게 원칙만 주장해서 살아남을 것 같아? 물론 부목사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야. 그러나 교회는 여러 종류의 사람을 다루는 곳이야. 교회 오면 잘 산다, 복 받는다, 병 낫는다, 자녀들이 잘 된다,.... 이런 생각으로 열심히 섬기는 사람들을 회개하시오, 당신들은 교회 땅만 밟고 다니는 바리새인이요라고 하면서 꾸중해야 되겠어?”

얼마 동안 침묵이 흘렀다.

“부목사는 도시 교회의 생리를 이해해야 돼. 장소와 분위기와 환경이 자기 생활수준에 맞지 않으면 구원을 설교하기 전에 교인들은 떠나기 마련이야. 우리 교회는 화려한 커튼과 전자 오르간이 사치가 아니야. 그리고 예산이 되면 여름에는 에어콘도 달아야 해. 십자가와 부활과 구원의 도는 그 다음 일이야. 이 모든 것이 역겨우면 부목사가 차라리 이곳을 떠나 야 하겠지.”

이 말이 끝나자 부목사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목사님 저는 이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이 교회가 마땅치 않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필할 수는 없다는 것이 부족한 사람의 철학입니다. 올바르게 고치고 이 곳에 살아야 합니다. 제가 김부자의 치료비를 교회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교회는 하나님의 몸인 것을 알고 이곳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만일 마지막 날 심판대 앞에서 한 가난한 거지의 예배를 거절한 죄를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원목사는 부목사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괴로운 모양이었다. 자기도 지방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지만 가르치는 것과 실제 목회가 다른 것을 어떻게 이해 시켜야 할지 암담한 모양이었다.

“부목사, 내가 여기서 이십 년간이나 교역자 생활을 해 오고 있지만 이런 시험을 당하기는 처음이어. 지금까지는 제직회에서 큰 소리 한 번 없었고 그러는 가운데 교회는 이만큼 컸어. 많은 지도자가 이 교회를 통해 나갔고 D시의 제일 교회, P시의 제일 교회 목사도 다 내 밑에서 큰 사람들이야. 그런데 자네 같은 사람이 없었어. 김부자의 치료비는 내가 부담하지. 그 문제로 제발 더 이상 교회에서 시끄럽게 말아 주게. 더 이상 교인을 잃고 싶지 않아.”

 

목사관을 나온 부목사는 필사적으로 입원을 거부하던 김부자를 회상했다. 목욕을 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그는 팔 하나 없는 소매를 축 늘어뜨리고 그러나 침대에 앉아 씽긋 웃었다.

“목사님은 위대하십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쓰러져 가는 길거리의 거지를 병원에 입원까지 시켰으니 말입니다.”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부자는 더욱 비꼬는 말을 했다.

“내가 전장에서 받은 훈장은 벌써 간 곳이 없지만 목사님의 이 선한 일은 신문에 나고 영원히 기록에 남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초면 인사는 했으니 이 일을 기억하시도록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부 목사는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과 초면 인사를 하면 천국에 간다는 얄팍한 의식을 어떻게 하면 바꾸어 놓을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방언하고, 교회에 헌물을 바치고, 교회 조직에서 분주하게 활동하면 구원을 보장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의하고 죄 많은 인간의 힘으로는 자기 죄를 구속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 아무리 눈물 콧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회개한다 할지라도 사람은 변하지 않고 가치관도 변하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거듭난 모습을 보였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지 않으면 거듭난 성도의 삶이 최후 심판의 날가지 보전되지 않음을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잃고 깨끗이 목욕시켜 놓은 돼지가 다시 시궁창에서 뒹굴며 퍼져 있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 교회에 경건하게 앉아 있어도 구원 받지 못한 영혼이라는 것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 불신자에게 교인들은 교회에 나가 헌금만 하고 있으면 천국 간다고 교만을 부리며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야만 하는 것일까?

그는 김부자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간절히 말했으나 자기 말이 자신에게도 공허하게 울려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나와 버렸던 것을 회상했다.

“목사님, 이제 다시 교회에 나가지 않을 테니 그 걱정은 마시오. 다만 나도 한번 교회에서 하나님께 헌금을 떳떳이 바쳐보고 천당 가는 입장권을 하나 얻고 싶었는데 그것이 아쉽습니다.”

김부자는 그의 등 뒤에서 이렇게 소리쳤던 것이다.

다음 날 부목사가 병원에 찾아가 보았더니 김부자는 이미 그 곳에 있지 않았다. 환자복을 입은 채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없게도 거지 문제는 종말이 왔다. 김부자는 정말 자취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리고 한두 주일은 거지들이 몇 사람 교회에 나타났으나 그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교회는 옛날 모습으로 회복되고 수요일 밤은 신대원 졸업반 학생들의 설교가 계속되었다.

십이월 둘째 주 수요일이었다. 윤정식이라는 학생이 설교를 나왔다. 이 날도 회장과 송 집사는 교회 가운데 의자에 방석을 갖다 놓고 앉아 여니 때처럼 설교를 듣고 앉아 있었다. 설교를 중간쯤 했을 때 옆에 앉은 송 집사가 하품을 했다. 그리고 회장에게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무슨 말인지 알아 듣갔수?”

“글렀어 글러. 글쎄 젊은 사람이 무슨 설교를 그렇게 힘이 없이 해.”

“그러게 말이야요. 목사 될 사람은 첫째 틀이 근사해야 되지 않갔시오?”

“그것보다도 신령한 데가 있어야지.”

“그렇지요. 아 왜 신령한 목사도 많은데 우리 목사님은 젊은 신학생들만 쓸려고 하는지 모르갔시오?”

“누가 아니래?”

예배가 끝나고 장로들과 인사가 끝나자 윤정식은 부목사를 찾아 왔다.

“신 박사님이 선배 목사님 이야기를 자주 하시더군요.”

그들은 다방에 가 앉았다. 학교 이야기가 끝난 뒤였다. 윤정식이 갑자기 물었다.

“목사님은 신학교 나온 걸 후회하신 적은 없습니까?”

“거 무슨 소리요.”

“실은 신 박사님이 이번은 선보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특별히 설교 준비를 잘 해 가지고 가도록 당부하셨을 때 갑자기 싫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설교란 심사 받기 위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왜 그런데 신경을 씁니까? 오늘 설교는 아주 잘 했습니다.”

“그것보다도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제게는 목사로서의 소명의식이 아직도 없습니다. 돌아가신 선친의 유언이고 홀로 계시는 어머님의 소원으로 제가 신학교를 택했으니까요.”

“차츰 생기게 되겠지요.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공중 기도를 하는 동안에 그 말과 기도에 대한 책임을 느끼게 될 거니까 자연 목사로서 틀을 갖추게 되지 않겠어요?”

부목사는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자기에게 깜짝 놀랐다. 소명의식이 없어도 교인을 속이며 목사 노릇을 할 수 잇다는 말이 아닌가? 말씀 선포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해야 한다는 평소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는 부목사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결국 소명의식이 없는 한 저는 어떤 교회에 고용된 봉급쟁이에 불과하리라는 생각이 강해졌습니다. 목사는 양들을 이끄는 목자지 양젖을 먹고 사는 초동은 아니잖습니까.”

윤정식은 또 계속했다.

“목자가 양들에게 선을 보이다니 말이 됩니까? 저는 가끔 모세를 생각합니다. 애급 궁전에서 사십 년이나 교육을 받고 또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 년을 헤매다 가시떨기 불꽃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 고뇌와 방황 속에서 사십 년을 소모한 이 결단의 순간 없이 모세가 어떻게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겠습니까? 저는 정말 모세를 숭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궁지에 몰려 홍해 앞에서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할 때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르던 모습이 미치도록 마음에 듭니다. 목사님, 예술가가 예술에 미치듯 목사는 하나님에 미쳐야 하지 않을까요? 위대한 음악가를 통해 음률의 신비한 세계가 섬광처럼 내비치듯 위해단 미술가를 통해서 황홀한 미의 세계가 편린을 나타내듯 목사를 통해서는 오묘한 신의 게시가 번득거리고 영의 눈을 뜨게 하는 그런 권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곧 목사로 나올 때의 자기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부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 했다.

“그러나 목사는 결국 평범한 사람이오. 먹고 살고 결혼하고 어린애를 낳고 또 늙어 죽으니까요.”

아주 세속에 찌든 목사 같은 말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하고나서 그런 자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저는 신학 대학을 나온 것을 후회합니다. 음악가는 노래하고 싶은 마음을 대신해 줍니다. 미술가는 그릴 수 없는 안타까운 아름다움을 묘사해 줍니다. 그런데 저는 신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의 섭리의 오묘한 것을 보여 줄 아무 것도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제일 교회는 나이가 좀 들고 성대가 좋으며 틀이 좋은 신학생을 후임으로 내정하고 부목사는 인천의 작은 교회로 떠나도록 권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부목사가 제일 교회에서 마지막 낮 예배하고 나오는 때였다. 한 거지 아이가 부목사의 소매를 끌었다. 깡통을 붙들고 있는 손이 강추위에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우리 아저씨가 목사님 데리고 오라 했어유.”

“네 아저씨가 누군데?”

부목사는 묻는 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김부자의 모습이 번개처럼 스쳤다.

“그래 네 아저씨가 지금 어디 있니?”

그는 어린 거지를 앞세우고 걸었다. 어제 밤에 내린 눈은 길거리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털 구두를 신고 빨간 외투를 입은 아까시가 젊은 남자의 팔에 매달려 조심스럽게 길을 걷다간 가끔 비명을 울리고 둘이서 웃었다. 부목사는 걷다가 어린 거지가 발에 아무것도 신고 있지 않은 것을 알았다.

“얘, 너 신이 없구나?”

그는 놀라서 물었다.

“여기 있어유.”

거지는 깡통을 들어 보이고 씽긋 웃었다.

“그런데 왜 신지 않니?”

“발이 더 시려서 벗었어유.”

그는 발을 땅에 대지 않으려는 듯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아마 떨어진 신에 물이 들어와 더 발이 시렸던 모양이었다.

“얘 상점에 들러 신을 하나 사 신고 가자.”

부목사는 그의 등에 손을 올렸다.

“아니어유. 빨리 가야 해유.”

부목사는 외투로 그를 감싸고 걸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뿌리치고 앞장 서 걸었다. 김부자가 헌금상자를 돌리라고 큰 소리 치던 광경, 우리를 도둑놈으로 인정하는 것이요 하다가 피를 토하던 광경 등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쳤다. 입원실에서 목사님은 위대하다고 빈정대던 모습도 떠올랐다. 번연히 죽을 줄 알면서 그가 병원을 뛰쳐나간 뒤는 왜 이처럼 까마득하게 잊고 있을 수가 있었던가 하고 자신을 뉘우쳤다.

“얘 네 아저씨 많이 아팠니?”

그러나 이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그는 종종걸음만 쳤다. 드디어 어린 거지는 다리 밑으로 부목사를 인도했다. 가마니로 바람을 막아 놓은 다리 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어린 거지를 돌아보았다. 거지가 턱으로 가마니 쳐놓을 곳을 가리켰다. 부목사는 가마니 쳐놓은 안쪽으로 들어 가 보았다. 그 곳에 희끄무레 한 죽은 시체 같은 몸이 누워 있었다. 그는 몸을 굽히고 들여다보았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누더기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뼈와 가죽뿐이요 우묵 들어간 눈은 감긴 채였다.

“아저씨 목사님 왔시유.”

멀찍이에서 어린 거지가 소리를 꽥 질렀다. 그러자 감긴 눈이 번쩍 뜨였다.

“여보세요.”

부목사는 쭈그리고 앉아 그의 몸을 마구 흔들었다. 그의 입이 움직였다. 그러나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신음 소리에 불과했다. 김부자는 한쪽 팔을 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부목사는 얼른 누더기 사이로 그의 손을 더듬어 잡았다. 그러자 그의 손에 무엇인가 잡혀져 있는 것 같은 촉감을 느꼈다. 부목사는 꼭 쥐고 있는 김부자의 손을 펴 보았다. 그것은 돈이었다. 손때가 묻은 꼬깃꼬깃 구겨진 백 원 지폐였다.

부목사는 백 원 지폐를 보자 전광처럼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자기도 한번 교회에서 하나님께 헌금을 떳떳이 바쳐보고 천당 입장권을 받고 싶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는 눈물로 흐린 눈으로 김부자를 지켜보았다. 그의 입이 가느다랗게 움직였다. 무슨 말인지 들을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부목사는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하나님께 바쳐 달라는 말이었다. 그 때 그 헌금을 바쳤더라면 아마 그는 천국에서 영접을 받으리라고 확신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감성적 확신만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김 부자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르고 그를 좇아낸 교인도 마찬 가지다. 또 그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교인들 앞에서 김부자를 감쌌던 것은 남에게 자기 의를 들어내 보이고 싶었던 위선이 아니었을까? 자기는 분명 신학생 윤정식 앞에서 때 묻은 속물에 불과 했었다.

부목사는 멍청하게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외치던 스테반이 눈 앞에 선하게 나타났다. 스테반은 입에 거품을 물고 외치고 있었다.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숱한 돌멩이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부목사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한 번 김부자를 보았다. 그는 눈을 뜬 채 죽어 있었다.

<현대문학 193호, 71년 1월호 2005년 개작>

작품 평

문학 평론가 김치수 -동아일보, 이달의 소설-1971년 1월

오승재씨의 <제일교회>는 한국 사회에 있어서 기독교에 대해 검토해야 할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이 땅에 전파된 기독교는 6.25 동란을 전후로 급격히 팽창 되었고 거기에 따라서 상당한 모순도 있었을 것이다. 씨는 이 작품에서 거지의 예배 참가를 거부한 형식주의, 배금주의 등과 같은 사회모슨을 안고 있는 교회의 고민의 양상을 드러내 준다, 특히 <부목사>를 통해서 그러한 고민을 극복하려는 교회의 노력을 보여준 이 작품은 너무나 극적인 거지의 죽음에 씨의 지나친 애정이 주어진 결점을 갖고 있지만 '모순'과 '극복'이라는 의미 있는 주제를 비교적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사실 이와 같은 씨의 노력은 기독교의 토착화 문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씨의 관심의 폭이 확대 되고 심화되기를 바라고 싶다.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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