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스크랩] 아시아祭(초기 작품)

성령충만땅에천국 2014. 12. 2. 10:52

 

하와이에 있는 EWC(동서문화센터)는 연례행사의 하나로 각국의 민속예술을 소개하는 예술제를 갖고 있었다. 그해에도 유월 중에 아시아祭를 갖기로 했는데 이를 준비하기 위해 한국학생들이 모인 것은 사월 초순이었다. 동서문화센터는 아시아-태평양지구에 있는 여러 나라 학생들과 이와 동수인 미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여 하와이 대학에서 함께 생활하고 연구 활동을 하게 하므로 다양한 문화를 서로 이해하여 국가간 긴밀한 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해 1960년부터 설립된 기구이다. 한국에서는 한미교육위원단이 장학생을 선발하여 보냈는데 아마 1966년이 최대 인원을 선발해서 보냈던 해가 아닌가 한다. 왕복 여비, 학비, 생활비, 교재대금, 학생들끼리 교제하는 문화비까지 주는 풍성한 장학금이었다.

「나 오늘 마누라헌테 편지를 받았는디 요것이 집에서는 글 안틈마는 어찌 사랑스런 말만 써놨는지 내가 지금까지 정조를 지켜왔다는 것이 얼마나 대견스러운지 모르겄다이」

金가가 아래층 편지함에서 이제 곧 받았는지 그 편지를 든 채 이층 제퍼슨 홀 회의장에 들어와 의자에 걸터앉더니 큰 소리를 쳤다.

「사삭 떨지 마라.」

옆에 앉았던 高가가 편지를 낚아채 일어서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이 방정맞은 자식이.」

金가가 高가의 이마를 손뼉으로 딱 치며 편지를 빼앗아 갔다.

「어, 래이디즈 앤 제늘멘」

高가가 미국 애들 제스처를 하며 큰 소리를 치고 나서 安영감 나왔느냐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安영감은 팔을 위로 들어 허공을 마구 내젓고 高가는 허리를 쥐어 잡고 큰 입을 찢어지게 벌리고 웃어댔다.

「오늘 안영감이 편지를 받았는데 말이다. 허허허 하고 혼자 웃는단 말이다.」

「넥기 이사람」

安영감이 더 크게 손을 내저었다.

「영감님, 와 그러십니꺼 하고 졸랐더니 편지를 안 보여주나」

高가는 성우같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미국은 배울 것도 많지유우. 아따 공부만 배우지 말고 거그서도 집에서 자기 마누라 잘 때리는가 안 때리는가 그것두 배워오세유.〉

모두 와 웃어댔다.

〈늙었다고 맘 놓지 말라등만 참말 바람일랑 피우지 마세유우.〉

「와 이 경상도 문딩이가 사람 망신을 시키노.」

金가가 경상도 사투리를 흉내 내며 일어섰다.

「들어보이소. 내 이마한테 온 편지 소개할 테니. 지난 크리스마스에 카드가 왔는디 말이여」

이번에는 高가가 허공에 손을 저으며 金가에게 달려들고 金가는 도망쳐 다니며 소리 질렀다.

「약혼한 처녀가 있거든. 그런디 아니 딴 처녀가 말이여, 지가 카드를 만들고 글씨를 써서 머리카락을 잘라 그것으로 묶어 보냈드랑게. 그게 무슨 뜻이여.」

야 하고 함성이 올랐다.

「그 머리털 잘 조사해봐라.」

또 웃음이 터졌다.

「새끼들 왜 이리 안 나타나. 여덟시라 했잖아. 그런데 이게 뭐야 아홉시가 다 됐는데.」

웃음이 시들해지니까 한 학생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관둬라. 지금 기숙사 놈들 설거지 하느라고 난리일 게다.」

「그런데 말야. 지난주 뉴스레터에도 났는데 이건 정말 국제적인 체면문제도 있고 하니까 좀 조심해야겠어.」

「체면 좋아하네. 괜찮아. 괜찮아 중국 놈은 더 하는걸.」

「사실 돈 아끼는 것도 좋지만 기숙사만 들어가면 밥하는 냄새, 된장국 냄새, 김치 냄새, 거기다 수채도 없는데 먹다 남은 찌꺼기를 마구 변소에 버리니까 구멍이 막혀 야만인이란 말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느냐 말야.」

장학금을 넉넉하게 주는 것은 식당에서 매식을 하며 타국 학생들과 교제하고 지내라고 그러는 것이네 동양인들은 돈 아끼느라고 불법으로 방에서 밥을 해먹고 있었다. 그래서 동양인들이 모여 사는 기숙사 층을 게토(ghetto; 유태인촌)라고 부르고 있었다.

회장이 아홉시 넘어서야 대여섯 명 학생을 더 데리고 나타났다. 여태 안 나온 사람은 어쩔 수 없고 이 인원이라도 시간이 넘었으니 회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회장이 말했다. 이번 아시아제는 일본, 중국, 필리핀, 한국이 위주가 되는데 작년엔 한국이 제일 잘 했다는 평을 받았기 때문에 금년에도 그 명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뒤 회장은 이번 아시아제에서 맡은 역할은 크게 네 부선데 필리핀은 사회, 중국은 프로그램, 일본은 매표, 한국은 안내를 맡게 되었다고 경위 설명을 했다.

「회장, 그런데 왜 우리는 가장 더러운 일만 맡았소?」

늦게 회장과 같이 들어온 許가가 말했다. (EWC에서 金가, 許가, 高가는 망나니 패로 통하였다.)

「결국은 우리는 사회할만한 능력자가 없으며, 프로그램을 짤 만치 치밀한 계획성이 없으며, 표도 마음대로 못하고 오는 손님들에게 고개나 숙이라는 말 아뇨?」

회의는 이 문제 때문에 더 진행되지 못하고 옥신각신 했다. 이럴 바엔 우리는 아예 아시아제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 옷이 매력적이라고 이 지방 인사들에게서 찬사가 많았기 때문에 안내를 맡았고 또 사회는 늘 오락회를 리드 하던 필리핀 계집애가 있어 그 쪽으로 결정하고 매표는 일본이 맡았지만 다 정해진 매수가 있어 마음대로 나누어 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회장이 설명했다. 필리핀 그 계집애가 사회를 하면 아시아제를 망친다고 개인의 비행을 들어 욕하고 또 옷은 일본 옷이 더 매력적이니 적어도 매표와 안내를 바꾸도록 하고 이것은 회장이 책임지라고 일단락지우고 출연할 종목을 결정하기로 했다. 출연종목보다도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을 어디서 염출해 내느냐 하는 문제를 먼저 토의하자고 다시 許가가 의견을 냈다. 연습할 때 필요한 비용이라든가 의상이라든가 해서 작년에는 오백 불을 들였다니까 금년은 적어도 칠, 팔백불은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민속예술을 소개하는 것이니까 의당 영사관에서 삼사백 불은 내야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영남부인회에서 이삼백 불, 기타 하와이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교수들에게서 백여 불, 지방 유지들에게서 나머지, 그리고도 부족하면, 학생들 호주머니를 털자고 했다. 종내 영사관은 누가 맡고 부인회는 누가 맡고 하는 식으로 진행되었으나 말이 많아 결론을 못 얻고 있었다. 작년에 왔던 한 학생이 일어섰다.

「금년에 오신 분들이 하시는 일이 되어서 전 사실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만 혹 참고가 되실까 해서 몇 마디 하겠습니다.」

작년에 오백 불을 썼다는 말이 있으나 실제 그렇게 쓴 것 같지 않으며 또 그때는 삼십여 벌의 한복을 만들었기 때문에 경비가 그렇게 많이 들었지만 금년에는 그 의상이 할라함 무용연구소에 있으니 빌려 쓸 수 있을 것이고 또 이것은 공부하는 학생들이 하는 소인극이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주가 무엇인가를 찾아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경비만 드리려고 애쓸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을 말하고 비록 학생회라는 명칭을 걸더라도 고국에서처럼 이곳저곳 기관에서 돈을 뜯어내려 하면 오히려 욕을 먹어서 모르긴 하나 도저히, 칠, 팔백 불 걷힐 것 같지 않다. 따라서 최소의 경비를 학생들 호주머니에서 거출하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것일 것 같다는 말이었다.

제길, 우리 호주머니 털 바에야 오래 회의할 필요가 뭣이냐고 한 학생이 말했다. 결국 작년 학생들이 거출한 정도의 돈도 못 걷는다면 금년 학생만 무능하다는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회의는 또 헛바퀴를 돌았다.

「젠장맞을 것 오늘 회의하는 목적이 뭣이여 응? 돈 걷자는 것이여?」

金가가 짜증 섞인 소리로 외쳤다.

「치와 뿌리고 이번에 내보낼 종목과 그 책임자만 정하고 폐회하자.」

한 학생은 일어서 시계를 보며 걸어 나갔다.

「야, 너 가버리면 난 어떻게 가니?」

「재지 말고 좀 태우고 가라우.」

「아니 나 어포인트먼트가 있다니까.」

「야야 간지럽다. 니가 언제부터 양놈 됐냐?」

그러나 서너 명 학생이 일어섰다. 아파아트까지 머니까 그 녀석 차로 좀 보내달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해에는 기숙사가 부족해서 시내 아파트에서 사는 학생들도 있었다.

「아 새끼 차 있다고 더럽게 재재?」

「난 더러버서 아 새끼 차 안 탈난다. 차 속에다 저금 상자를 넣고 다닌단 말이다. 휘발유 값 부주하라고 말이다.」

장내는 이젠 차분히 가라앉질 않았다. 모두 갈 생각뿐이었다. 회의는 흥미가 없는 듯이 날치기로 진행되었다. 종목은 농악, 강강술래, 합창, 사중창, 도라지 춤, 북춤으로 하기로 하고 책임자는 金가와 高가와 許가와 나로 결정지어버렸다. 金가는 농대출신이기 때문에 농악과 강강술래, 高가는 할라함 무용연구소의 총애를 받는다는 이유에서 도라지 춤과 북춤 지원을 책임지고, 許가와 나는 이곳 호놀룰루 두 교회의 성가대원이기 때문에 합창으로 두 교회의 성가대를 동원하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이렇게 되었지만 사실 모두들 이 귀찮은 일을 누구에게든 떠맡기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중요한 회의인데 콩가루 가정처럼 다 한 마디씩 지껄이고 가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선출된 네 위원들은 흩어지지 않고 더 구체적인 것을 협의하자는 許가의 의견을 좇아 그의 아파아트로 모였다. 맥주를 한 박스 사다놓자 우리는 기분이 흐뭇해서 잡담부터 늘어놓았었다.

「김가야, 니는 양놈이 냉장고에서 김치냄새 난다고 지랄 안 하나?」

「고걸 그냥 둬? 난 며칠 전에 말야, 웃옷을 벗어젖히고 고추장에 밥을 비벼 신나게 먹고 있는디, 이 새끼 코를 쥐고 들어오더란 말이야. 그래 이거야말로 한국 밥이라고 살살 달래서 그것도 고추장을 듬뿍 더 쳐 입에 몰아넣어 주었더니 펄쩍펄쩍 뛰고 소방수를 부르고 양치질을 하고 야단을 떨었지.」

「데이비드란 자식 말이지?」

「EWC에서는 서로 딴 나라 습관과 문화를 이해하라고 이렇게 같이 살게 하고 있는디, 니가 한국을 이해하려면 이 꼬치까리 정신부터 이해해야 한다 했더니 꼬치까리를 몇 번 외워보더니 살인적 정신이라고 놀래더라.」

우리는 맹물에 된장을 풀어 끓여가지고 그걸 훌훌 마셨다.

「이 맛 최고제, 여기다 막걸리만 있으만 더할 끼 뭐 있겠노?」

막걸리 대신 맥주 깡을 하나씩 터뜨려 들고 한순간 모두 고향을 생각하는지 얼굴이 기쁨에 환했다.

「한국학생이 최고지? 잘 생겼겠다. 똑똑하겠다. 공부 잘 하겠다. 사실 못 하는 게 뭐있나 연앨 못하나?」

「잘 하제.」

高가가 큰 입을 벌렁거리며 웃어댔다.

「지금 이 새끼는 아리랑(술집)을 못 가서 쇡이 쇡이 아닐 것이여.」

「와 또. 나가 우이했단 말이고?」

술이 어지간히 들어가도 학생들을 바래주러 간 회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화투를 꺼내어 차분히 ‘섯다’를 시작했다. 판이 한창 무르익었다. 성냥개비가 한 무더기 쌓였다.

「요것 좋다. 이것 다 내것인 게 속 돌려 잉.」

金가가 삥자(송학) 하나를 내보이며 성냥개비 다섯 개를 집어 질렀다(베팅). 高가가 망설이다가 화투짝을 던졌다.

「구삥 잡고 좋게 물러나준다.」

許가가 화투짝을 확인해보고 말없이 다섯 개비를 더 베팅했다.

「졌으면 고이 들어갈 일이지.」

金가가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자기 앞에 있는 성냥개비를 전부 들어 합해놓았다.

「몇 갠데?」

「열두 개」

하고 눈치를 살피다가 許가가 중앙의 성냥개비더미를 손으로 집으려 하자 金가는 날쌔게 합하려하던 성냥개비를 뽑아왔다.

「좋았어, 다준다, 주어」

그는 화투짝을 내던졌다. 여섯 끗으로 버티었던 것이다.

「아 새끼 환장하제 그래 기껏 여섯 끗이란 말이가?」

高가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했다.

許가는 성냥개비를 쓸어 모은 뒤 화투장을 던졌다.

「장땡이다.」

그러나 許가의 끗수는 공산과 매조껍질인 망통이었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몸을 흔든 뒤 시조를 읊었다.

<대붕을 손으로 잡아 번갯불에 구어 먹고 곤륜산 옆에 끼고 황해를 건너뛰니 태산이 발길에 채여 외각대각 하더라.>

회장이 그때야 나타났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협의고 뭐고 이젠 안중에 없었다. 맥주와 ‘섯다’로 하룻밤을 새우고 다음날은 강의를 빠지고 쓰러져 잤었다.

 

아시아제는 유월 첫 주일로 결정이 되었다. 따라서 오월 말이 되자 각 나라 학생들이 밤이면 나와 연습하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제퍼슨 홀 앞, 라나이(베란다)에서는 일본 애들의 봉오도리(북춤), 중국 애들의 용춤, 잠자리 날개처럼 비치고 어깨 위가 치켜 올라간 옷을 입은 필리핀 아가씨들의 춤들이 식사 후에 보면 한창이었다. 나는 홀의 휴게소에 앉아서 창 너머로 일본학생들이 사중창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의자를 하나 가져다 오른발을 괴 올리고 한 학생이 타는 기타를 따라 노래하고 있었다. 가로등과 이층 홀의 처마에 걸린 전등들이 코코넛 나무 밑에 모인 그들의 모습을 매혹적인 영화의 장면처럼 부각시키고 있었다. 회장이 슬리퍼를 끌고 오더니 옆에 앉자 파이프를 꺼내어 물었다.

「당신이 지휘해보지 그래」

그는 나더러 말했다.

「글쎄 난 안된다니까」

정말 나는 답답하고 따분하였다. 난 지휘 같은 것은 못하는 위인이었다. 許가는 한국인 교회의 지휘자였다. 그러나 그는 지휘를 않겠다고 잡아뗐다. 반대쪽 교회의 지휘자 曺가 지휘를 맡겠다고 했으니 그가 끝까지 맡아서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曺는 자기교회 찬양대가 출연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지휘를 맡겠다고 했지만 이제 EWC 학생만으로 합창을 하게 되었으니 개인 유학생으로 온 자기는 지휘할 자격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나 따지고 보면 양 교회 성가대를 합해서 출연해보고 싶다는 것은 꿈이었고 실제 그들은 개인 일에 얽매어 함께 모여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따라서 許가도 曺가도 오합지졸인 학생들을 모아놓고 체면을 잃는 지휘자 노릇은 않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래 이제 와서 그만둔단 말요?」

「그만 두든지 아니면 합창이 아니고 제창을 해야지요.」

「여보시오, 그래 대한민국 학생들이 기껏 초등학생처럼 제창을 하고 내려온단 말요?」

지하실 스낵바에서 高가와 金가가 아이스크림을 각각 하나씩 들고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회장이 손짓해서 앞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탁구시합을 한듯했다. 高가가 이긴 듯 의기양양하고 金가는 좀 코가 빠져있었다.

「그래 강강술래는 어떡하려구 그래?」

「사람을 모아 줘야지」

「누가?」

「그럼 나보고 데리고 오라고? 누구는 안 바쁜 사람인가? 기숙사 학생은 공부한다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제, 밖에서 사는 놈은 차가 없다고 앉아 있제,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여」

회장은 담배를 싹싹 비벼 끄고 벌떡 일어났다.

「나 회장 그만두겠어.」

「와 이러십니꺼. 지금 그만두면 우리나라 체면은 우이 되는기요?」

「그럼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요. 나 혼자 어떻게 하란 말여?」

그는 걸어 나가 버렸다. 행사는 가까워지는데 아무도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심산인 것 같았다.

「일통 잘 된다이.」

한참 두 사람이 얼굴이 벌겋게 되어 이렇거니 저렇거니 하더니 나는 할일 다 했다면서 高가가 안락의자에 팔베개를 하고 몸을 눕혔다.

「나도 책임 없어」

이번에는 金가가 몸을 눕혔다.

얼마동안 침묵이 흘렀다.

「야 고가야, 아까 고 이야기나 해봐라. 그래 그날 밤 태극기를 꽂았냐 못 꽂았냐?」

金가가 몸을 고쳐 앉으며 호기심에 찬 눈으로 말했다. 高가는 큰 입을 벌리며 금시 웃어댔다.

「이마는 나를 야만인으로 아나?」

「그럼 그것이 목적이제 뭣이 또 있간디?」

高가는 웃다가 정색을 했다.

「나 이러다 병나지 싶다.」

그는 자다가 갑자기 고향이 그리워지고 친구가 보고 싶어지면 눈을 뜨는데 견딜 수 없어진다는 것이다. 살갗 속으로 두드러기가 생긴 것처럼 온몸이 근질대고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해져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 키고 웃옷을 벗어젖히지만 그것도 안 되면 밖을 마구 뛰어다니거나 한없이 걸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에서 하숙을 하며 학교 다닐 때도 가끔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면 됐으나 이곳에서는 그 짓도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앞이 캄캄해진다는 것이었다.

「그건 향수병이다. 그런데 이건 호강에 초친 병이다. 사내새끼가 무슨 집 생각이 그렇게 나냐?」

「한국을 떠날 때부터 그렇지 않나 싶어 걱정이 되더니」

「야야 쓸데없는 병 만들지 말라 잉」

金가는 태연한 채했으나 걱정이 되는 듯 겉 용기를 냈다. 마치 그런 병이 자기에게도 옮아올 것 같아 미리 부정하려드는 것처럼.

「너 총각이라 그 경험 없지?」

高가는 너털웃음을 웃었다.

「야가 나를 얼라로 아나?」

「그럼 그런 병 곧 나을 수 있다 잉, 꽂아버려 태극기를.」

「우리가 삼십육 년간 얼마나 고생 했간디. 여그서 멋있게 원수를 갚아버려 미스터 허의 말 안 들어봤어? 서울서부터 똥이 매려운 것을 참았다가 일본 땅에 왔을 때 싸부렀단 말 말이여. 아 만세 불러 버리랑게. 병 낫고 저 좋고」

高가는 어젯밤 그 발작으로 술집 아리랑까지 걸어가고 거기서 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 일본계집의 호의로 같은 차를 타고 기숙사까지 온 모양이었다.

「그 좋은 것을」

金가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딱 치고 침을 삼켜가며 설명하고 高가는 「차랴」를 연발하고 있었다.

다음날 한국학생들의 편지함에는 임시총회의 광고가 들어있었다. 안건은 회장 사표수리 및 아시아제 대비책 강구였는데 장소는 저녁 후 뉴먼 센터라고 캠퍼스 안에 있는 천주교의 청장년 집회 장소였다. 끝나고 맥주파티 및 댄스파티를 할 테니 부인이나 파트너를 데려와도 좋다는 말이 첨부돼있었다. 시간엄수라 했는데도 모이는 시간이 너무 달라 먼저 온 사람은 기다리다 못해 전축을 틀고 맥주를 따고 마시기 시작했다. 따라서 모두 모였다고 생각될 무렵은 잔치무드였고 또 각 나라 여자파트너들이 와서 회의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회장은 외국사람은 우리나라 말을 이해 못하니까 잠깐 한쪽에 있어 달라 하고 회의를 시작하자고 말하였다. 회장이 전축을 껐다. 한참 미국애하고 탱고를 추고 있던 許가는 왜 끄느냐고 고함을 쳤다. 회장은 손뼉을 땅땅 쳤다.

「잠깐 조용히 하십시오. 이제부터 한국학생 임시총회를 할 테니 외국학생은 잠깐만 한곳에서 쉬시면...」

장내가 소란해졌다.

「회장, 모처럼 좋은 우리의 기분을 망치지 맙시다. 그리고 회장이 이제야 사표를 낸다지만 사표 낸 것으로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여러분, 나는 회장의 사표를 받지 않기로 동의합니다.」

「제청이요」

누군가 저쪽 구석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외쳤다. 옳소! 하고 모두들 박수를 했다. 외국여자들이 어리둥절해 눈을 굴리고 있었다. 지금 개회를 하지도 않았고 이 문제를 이렇게 소홀히 넘겨버릴 수 없는 일이라고 회장이 말했다. 아시아제만 하더라도 지금 프로그램 인쇄를 하겠다고 출연종목의 명칭과 그 해설을 써달라는데 아무도 해보려는 기색이 없지 않으냐? 이것은회장이 무능하다고 밖에 볼 수 없으니 유능한 회장을 뽑아 늦기 전에(이미 늦었으나) 일을 해야지 이러다가 한국은 똥이 되고 말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 학생이 일어섰다.

결국 우리더러 회장 말 잘 듣고 연습하러 잘 나오란 말인데 연습 못한 것만큼 더 여러 번 하면 되지 않느냐? 따라서 이번 회의는 없는 것으로 치고 파티로 그치자고 말했다. 그러자 모두 박수를 치고 환성을 울렸다. 결국 회의는 흐지부지되고 무슨 일이 있던 빠지지 말고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식사 후는 전원 제퍼슨 홀의 라나이에 모여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매듭을 지었다.

할라함 한국무용연구소에서 징, 꽹과리, 소북 또 「농자천하지대본」이라 쓴 큰 기치를 빌려오고 연구소에서 농악지휘를 하는 한국인 이세의 여대생을 초청해 와서 연습을 시작했다. 한국의 꽹과리와 징소리는 일본의 다이꼬(대북) 따윈 대지도 못할 만큼 컸다. 한순간 다른 나라들은 연습을 못하고 멍청히 우리의 연습하는 몰골만 보고 있었다. 음악은 許가가 지휘하는 것은 거절했으나 연습은 끝까지 보살펴주겠다고 「고향의 봄」을 합창으로 「농부가」는 한 사람이 메기고 나머지가 받아 부르는 식으로 하기로 했다. 무용연구소에서는 전문적인 학생이 나와 북춤과 도라지 춤을 구성지게 춰줄 것이고 농악 강강술래가 멋있겠다. 합창도 잘 되어가고, 이만하면 한국이 으뜸이 될 수 있다고들 으쓱거렸다. 그러나 이 연습은 두 주일도 가기 전에 차츰 시들해지고 문제가 생겼다. 강강술래는 한국여학생이 부족하여 외국여학생을 파트너로 받아들여 연습했는데 한번은 연습하고 다음날은 빠지고 해서 외국 파트너들은 와서 오랜 시간 무료하게 기다리며 보고 섰다가 들어가곤 했다. 농악지도교사는 세 번 계속 나오고는 거절해 버렸다. 시간을 잘 지켜주지 않으니까 자기의 TV공연에도 지장이 있고 또 연습할 때는 흥을 내는 것은 좋으나 한 바퀴 돌라면 두 바퀴 돌고, 소리 내지 말라면 소리 내고, 자기 멋대로 흥을 내니 해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단체 농악에선 전체적인 조화의 미가 있는 것이니까 개인이 너무 흥을 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진짜 한국농악을 보지 못해서 그런다고 우기고 농악이란 약간 어긋나고 또 간간이 괴성을 지르는 게 있어야 참 한국적인 맛을 내는 것이라고 오히려 가르치러들었다.

합창은 더더구나 말할 나위가 없었다. 너무 참석하는 사람에 변화가 심해 파트별 연습이 불가능했다. 이렇게 서로 잘났다고 떠드는 사이에 아시아제 리허설 기간은 닥쳐오고 막이 열리며 한국 학생들의 차례가 다가왔다.

필리핀 계집애가 안내장에 나와 있는 합창을 설명하는 내용을 읽었다.

<고향은 떨어져 있을수록 그리운 곳입니다. 한국은 오래도록 외국의 지배를 받아 왔습니다. 그 당시 옛날과는 다르게 변모해가고 거칠어진 고향을 보고 한국 사람들은 이 고향의 봄노래를 즐겨 불렀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남자만으로 된 합창 대원이 한복바지에 조끼를 입고 걸어 나갔다. 모두들 박수를 했다. 그런데 이 지휘자 없는 합창은 화음이 처음부터 맞지 않아서 관중석에서는 킬킬 웃는 소리가 새에 나왔다. 대월들은 끝이 나자 쥐구멍을 찾듯 도망쳐 나와 극장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으로 모였다. 바로 앞에 있었던 일본사람의 사중창과 비교해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이만저만 창피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와 소리 좀 크게 내지 병신새끼들같이 그기 뭐노?」

「화음이 안 되는데 소리까지 크게 내면 뭐가 되게.」

「화음이고 뭐고 첫째 씩씩해야 되는 기라.」

「이거 완전히 똥 됐어 똥 돼.」

許가가 다시 한번 연습해 보자고 첫 음을 맞추고 시작했다. 그러나 합창이 기분만으로 쉽게 맞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 집어치고 ‘빨간 마후라’라는 그거 하면 어떨까? 주먹을 쥐고 막 흔들면서 큰 소리로 불러버리면 시언하것는디 나 이놈의 합창 답답해서 못 허것어.」

「맞았어. 그기야 바로. 한국의 고춧가루 정신이라 카는 건 씩씩한 데 있는 기지 곱고 예쁜 기집애 같은 데 있는 기 아니란 말이다」

이 기발한 생각에 선뜩 응하지는 않았으나 아무도 합창에는 자신이 없었다.

「아따, 딴 생각 하지 말고 이것으로 통일해. 여기서는 멋있고 재미있게 하는 것이 장땡잉게」

결국 무대에 걸어 들어갈 때와 나올 때는 ‘빨간 마후라’를 씩씩하게 부르고 무대에서는 농부가 하나만 부르기로 하여 삼십 여분 드나드는 연습을 하였다.

「훨씬 안 났다고. 진작 이렇게 할 일이제. 그리고 말이여. 내일은 준비실에 종이로 싸서 양주를 한 병 넣어 놓아. 한국 사람은 말이야, 술을 좀 마셔야 멋이든지 잘 한게.」

「그렇지만 국제적인 예술제에 딴 나라 사람도 있는데 어떻게 술을.」

「잔소리 말고 내 말만 들어. 내일 한국이 히트할 텐게. 우리는 했다면 하는 나란게.」

그날 밤 EWC의 망나니그룹들은 내일 낮과 밤 몇 번의 공연을 앞두고 술집 아리랑으로 몰려들었다. 이제 연습이 다 되었다고 치부한 것이다. 희미한 붉은 불빛에도 徐아주머니는 우리를 잘 알아보았다.

「헤이 마이 보이스. 캄온, 캄온」

그녀는 마구 손을 흔들었다.

「렐로우 미스터 허. 헬로우 미스터 고……」

그녀는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잘도 외워서 부르며 어깨를 두들겼다. 지난해 남편과 이혼해서 혼자 살며 이 영업을 한다는 그녀는 한국 학생들에게 너무 친절했기 때문에 徐아주머니로 통하고 학생들은 한국에서의 다방처럼 그곳을 드나들었다. 그녀는 말하는 것이 재미있을 뿐 아니라 한국인 사회에서 일어난 일, 또 학생간의 연락을 잘 도맡아 해주었다. 이 술집은 이름이 아리랑이지 종업원은 미인, 한인, 일인들이 섞여있고 한국적인 냄새는 특별히 풍기지 않는 곳이었다. 다만 한국적인 것이 있다면 한국의 술집처럼 맥주안주를 내주되 불고기, 사시미, 된장으로 된 조갯국, 닭튀김 같은 것을 푸짐히 내주는 게 특색이었다. 또 술집 아가씨들은 한국에서처럼 남자 옆에 착 안겨서 마시었다. 미국 놈들도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녀석들은 곧잘 단골로 드나들었다. 맥주를 오불 혹은 십 불 어치 마시고 팁은 오십 불, 백 불씩 내놓고 가는 놈팡이들이 있다고 했다.

미시즈 徐는 우리를 잘 웃기었다. 아니 우리가 사소한 일에도 그녀가 말하면 잘 웃었다. 그녀는 종업원들에게 한턱 쓰고 싶으면 모두 불러놓고 어느 민족이 세계에서 으뜸가느냐고 묻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모두 알아 치리고 한국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 우쭐해져서 한턱 쓴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그녀가 자기 집 여종업원 하나가 몇 달 전 남편과 함께 가와이 섬에 휴가로 놀러갔다 왔는데 이제 알아보니 그때 어린애를 배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 그녀더러 무슨 짓이냐고 걱정스럽게 말했더니 섬에 가니까 할일이 없더라고 대답했다 해서 모두 또 웃었다. 또 요 며칠 전에 들어온 미국 녀석 바텐더가 살빠지라고 한국의 인삼정을 사서 먹는다 해서 웃었다.

「인삼은 살 빼는 약이 아니구 정력제예요.」

許가가 말했으나 정력제란 말이 영어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남자가 장가를 간 뒤 마누라 집엘 가면 마누라의 어머니가 인삼을 넣어서 닭을 고아주는데 이것은 힘을 얻어 애를 잘 낳으라는 뜻이고 이때의 힘을 정력이라고 한다고 金가가 말하자 웃어댔다. 내일 아시아제에 나오라고 했더니 그렇잖아도 나가려고 한복을 진작부터 다려놓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늘 한국 사람에 대한 기사 안 읽었느냐고 말했다. 모두들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 시한폭탄이 터진 사고 말입니까?」

許가가 기사내용을 말했다. 노름에 돈을 잃어 원한을 품은 사람이 호텔 앞에 세워놓은 한인 차에 폭탄을 장치해서 한인이 죽었다는 것이다. TV뉴스 시간에 노름꾼이던 한국인이 죽었다고 해서 미시즈 徐는 전 자기 남편 아닌가 하고 사정없이 가슴이 뛰었다고 말하고, 그 이야기를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자기도 직장에서 근무하다 이 뉴스를 듣고 자기 남편이 아니었나 하고 놀랬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고 했다. 이번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내 앞 세 번째 건너편에 허줄한 옷을 걸친 미국 녀석이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일불짜리를 내서 종업원에게 뭘 사오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좀 있자 그녀가 코크 한잔을 들고 와서 그 옆에 앉았었다. 나는 그녀가 아까도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십여 분 있다 그녀가 일어나려하자 그 녀석은 그녀를 주저앉히고 얼굴 옆에 바싹 자기얼굴을 갖다대고 소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여인이 벌떡 일어서며 한국말로 지껄여댔다.

「x할 새끼, 칠뜨기 같은 새끼가 지랄하네.」

모두들 영문을 모르고 큰 눈을 떴다.

「무슨 일이야」

한국학생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그 녀석을 쳐다보자 그는 어슬렁어슬렁 일어나 걸어 나갔다. 코크를 사오라고 두 번 시키더니 나중엔 한번 사올 때마다 돈이 얼마나 남느냐고 물어보고 한번 사와서는 십분 씩만 앉아있었으니 이젠 그런 걸 살 필요 없이 십 분에 남는 돈 만큼 지불해 줄 테니 한 시간 진득이 앉아있겠느냐고 흥정을 걸었다는 것이다.

주크박스에서 일본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야, 웬 왜놈 노래야. 한 오불 집어넣어. 한국 노래만 나오게」

金가가 기염을 토했다.

맥주가 몇 라운드 돌아가는 사이 번번이 화장실을 다니던 高가가 동전을 넣은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새 그 일본 계집애 미기꼬를 붙들고 저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 나를 보고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うぶな 名前が 可愛いいと

いつた あなたは 憎い人

いつそ 散りたい 夜の花

夢は夜ひらく

 

(숫된 네가 귀엽다고

일러준 당신은 얄미운 분

차라리 밟히고픈 밤에 핀 꽃

꿈은 밤길을 여네)

 

高가는 이 노래만 나오면 쪽을 못 쓴다. 미끼꼬가 가르쳐주었단다. 시답잖은 유행가가 왜 그렇게 견딜 수 없게 해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행가면 어떠냐? 일본게집이면 어떠냐? 술집계집이면 어떠냐? 자기는 무엇이냐고 高가는 말했다. 대한민국의 유학생? 고생한 편모 밑에 자란 외아들? 약혼한 여성을 두고 온 성실한 남성? 이 모든 것을 팽개쳐버리고 밑바닥까지 흘러내려가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치와 뿌리고 흘러가는 기야. 나는 이래가 닿는 곳이 정말 인간의 고향이지 싶다. 내일은 필요 없는 기라. 이 값진 순간을 무얼로 보상할 끼고.」

高가는 지금 신이 나있다. 양손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미끼꼬는 간간히 몸을 흔들며 웃어댄다. 나가 귀국해서 대통령이 되면 말이다. 너를 불러다가 한국의 최고로 맛있는 시라기국을 한 사발 줄 끼다. 너 알제? 시라기국. 하거나 어때 이만 하믄 남자 잘 생겼제. 이런 남편감이 어디 있노 말이다. 아니면, 나가 이래 뵈두 말이다, 호놀루루에서 헨델의 메시아 공연에 솔로를 했데이. 그 할렐루야카는 것 있지 않나뵈, 이때 모아나 호텔의 청중이 다 기립했단 말이다. 그래 그 곡이 끝날 때 한번 쉬어가 힘을 모았다 힘찬 「할렐루야」로 끝나는 긴데 그 쉴 때 나가 흥이 나서 마 할렐루야 카다가 「할」하고 그 엄숙한 순간에 솔로를 안했나?

이런 식의 대화일 것이다. 그는 결코 남의 앞에서는 외롭지 않다. 그러나 혼자가 되면 끝없이 외로운 것 같다. 열두시 삼십분 전에 전등이 반 꺼졌다. 문을 닫을 모양이다.

「나가 또 이래되면 참을 수 없제.」

高가가 이번 술값을 줄곧 許가가 부담해 온 것을 알고 다음 이차는 자기에게 맡기라고 했다.

「야 돈이나 있어?」

金가가 비꼬듯 말했다.

「이마가 날 어떻게 보는 기지?」

그는 우쭐대면서 미끼꼬는 자기가 책임질 테니 한 사람씩 끌고 나와 춤추러 가자고 했다. 춤이라면 許가의 특허물이었다. 이제 놀이는 끝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라는 듯 사기가 충천했다.

미시즈 徐가 한국 애들을 끌고 나와 함께 스타더스트로 갔다.

「너 이렇게 나와도 괜찮니?」

자리에 앉자 미시즈 徐가 미끼꼬에게 말했다.

「아주머니도 참 구식이셔. 그렇잖아도 십이월부터는 자유가 없을 테니 지금 실컷 놀게 해달라고 말했는걸요 뭐.」

그녀는 애교가 있었다.

아리랑에 있는 미국 애 바텐더와 결혼하기로 했는데 크리스마스 전날로 정하고 그 전엔 실컷 좀 놀 수 있게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제 두시 되면 데리러올 거예요」

밴드가 노래를 시작해서 모두 스테이지로 나갔다. 金가는 춤을 못 추어서 아주머니가 가르쳐주기로 하고 우리는 모두 일어섰다. 나는 춤을 잘 못 춘다고 미스 김에게 말했다. 자기도 정식으로 배워보지 못했노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허리에 손을 돌렸다. 서양의 습관이라고 하나 버릇이 되지 못한 탓인지 가슴이 좀 뭉클해졌다. 내 옆을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어린 여인을 안고 음악에 맞춰 천천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세요?」

술을 마신 탓이었을 게다. 나는 내 심장의 뛰는 소리와 그녀의 말소리와 음악소리를 한꺼번에 듣고 있었다.

「참 좋으시겠네요. 한국에 곧 가시니까. 저도 작년에 잠깐 다녀왔어요. 그러나 고향에는 가지도 않고 그냥 반도호텔에서 한 이주일 지내다 왔지요. 한국은 너무 너무 가난한 사람이 많아요. 저는 그때 동생에게 차고 간 시계도 풀어주고 옷도 벗어줘 버리고 왔어요. 요즘 버릴 것이 있어도 동생 생각나서 못 버려요.」

高가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나를 보며 웃고 지나간다.

「여기서 그렇게 외롭지는 않아요. 어느 바에 가거나 반드시 한국여자들이 몇 사람씩은 있거든요. 그리고 다 처지가 마찬가지니까 위안이 돼요. 결혼해서 건너와 가지고 이혼. 지금도 결혼하자는 미국 놈이 있어요. 그렇지만 이제 질렸어요.」

金가는 스텝이 또 틀렸는지 다시 시작하려고 멈추어 섰다.

「전 건강해 뵈도 병신 다 됐어요. 이혼하기 바로 전에는 어떻게 맞았는지 전화로 영사 댁을 불러놓고 기절했어요. 이제는 생각만 해도 징그러워요. 한 이만 불 벌면 한국 들어가서 살래요.」

許가는 멋있는 스텝을 잘 엮어가며 사람사이를 잘 꿰어 다니고 있다. 데스크로 돌아와서 술이 몇 라운드 더 돌아갔다. 이제는 모두 약간씩 취해있었다. 미끼꼬가 許가와 추고 돌아와서는 許는 직업적인 댄서라고 입술이 마르게 칭찬했다. 미시즈 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정말 이렇게 추어보기는 처음이야. 정신이 아찔했어.」

그녀는 탁자 위의 술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미끼꼬, 나하고 한번 추지」

高각 벌떡 일어섰다.

잠깐만, 저 이분하고 한번만 추구요.」

그녀는 옆에 앉은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우리는 스테이지로 갔다. 그녀가 허리에 두른 내 바른 팔을 겨드랑이 위까지 추켜올렸다. 보드라운 그녀의 유방의 감촉이 왔다.

흑인여인이 길게 줄이 붙은 마이크를 잡고 몸을 꼬며 블루스를 불렀다.

그녀는 상체를 밀착시켜왔다.

「더 꼭 안아주세요. 더 꼭.」

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더욱 눈을 말똥거리며 오히려 나를 리드하듯이 스핀 했다. 나는 처음으로 춤의 즐거움을 느꼈다. 그녀의 덮쳐오는 체중과 몸의 동요가 나에게도 똑 같은 동작을 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돌고 움직이곤 하도록 하고 있었다.

「나는 자유롭고 싶어요. 정말이에요. 그러나 조금 있으면 그분이 나타날 거예요. 나를 데리러 말이에요. 나는 행복해요. 그분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거든요.」

나는 온 몸이 나른해진다는 미스터 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본을 미워하던 내가 전혀 미끼꼬를 미워하지 않고 있음을 느꼈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한없이 좋아서 그녀와 엎치락뒤치락 뒹굴고 있는 기분이었다.

일본도를 들고 담을 뛰어넘어 궁전에 들어가 민비를 끌어내어 치고, 아직도 살았을 왕비를 가마니로 싸 석유를 뿌려 태워버린 왜놈의 후손. 또 동척회사를 두어 우리나라의 식민지화를 서두르고 물건을 팔되 안 사갈 때는 상투를 잡아 때리고 도랑에 우리의 조상을 처넣은 왜놈의 후손과 그 치욕 속에 살아남은 한 조선의 후손이 이렇게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내일은 없고 현재의 이 순간이 몇 천 년의 과거보다 중요한 것일까.

「제 어머니는 제가 미국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싫어해요. 하지만 저는 소심한 일본사람을 싫어해요. 미국사람이면 어때요. 그리고 한국 사람이면 어때요. 제 아버지는 부동산 장사를 하거든요. 그런데 미국사람에게서는 땅은 사지만 미국사람에게는 땅을 안 팔아요. 도둑놈 근성이지 뭐예요. 민족이 어디 있어요. 인간이 있지.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행복해지고 싶어요. 참 행복이 뭔지 모른다고요? 전 느낄 수 있어요. 그분은 저를 행복하게 해줘요.」

I'm out to give you all of my money

And all I'm askin'in return, Honey,

Is to give me my propers when

you get home……

Yeah, baby, whip it to me when

you get home

(나는 왔어 호주머니 다 털어 널 주려고

그 대신 내가 바라는 것은 하니.

집에만 들어서면

내 고것 좀 줘. 응? 하니.

집에만 들어서면 ……)

「하루 종일 술심부름을 하고나서 집에 돌아가 샤워를 하고나면 유일한 희망은 그분이에요. 전 오늘 하루에 만족해야 해요. 오늘 하루의 행복에 포만해서 내일을 잊고 자야 해요.」

나는 갑자기 술이 올라오는 것 같아 그 자리에 서서 얼마동안 몸을 경련했다. 許가가 우리 옆을 지나며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때 얼굴이 붉었을 것이다. 누구나 겪는 외로움이다. 그는 웃으면서 필시 알았을 것이다.

그녀는 실례한다고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걸어 나갔다. 그녀의 약혼자가 온 모양이었다. 얼마 동안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아내와 함께 암기했던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그러나 지금 내게 삼킬 자를 찾는 우는 사자와 같은 유혹을 이길 힘이 있는가? 격동하는 악어가 입을 벌릴 때 그를 유순하게 길들일 힘이 내게 있는가?

 

두시가 넘자 이젠 갈 곳이 없었다. 두시 넘어서 여는 나이트클럽이나 바는 없었다.

「야, 내가 운전할 텐게 섬 한바퀴 돌자.」

金가가 말했다.

「좋아. 밤새미 하는 기라.」

「미쳤어.」

미시즈 徐가 金가의 등을 딱 쳤다. 그러나 우리는 미시즈 徐를 꾀어내어 다섯이서 섬을 돌았다. 돌다가 차 세울 곳만 있으면 세워놓고 목이 터져라 한국노래를 했다. 미시즈 徐는

[내 고향 남쪽바다」를 좋아해서 우린 이 노래를 스무 번은 더 불렀다. 그러나 나중엔 목이 쇠고 부를 노래가 없어졌다. 새벽 세시가 넘어선 하이웨이는 한적해서 다니는 차가 없었다.

「야 이차 썩어서 칠팔십 못 놓지?」

핸들을 잡고 있던 金가가 차주인 許가에게 말했다.

「네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이. 구십 백 놓아도 까딱없단 말야.」

許가가 담배를 물고 비스듬히 기대며 말했다. 金가가 갑자기 액셀을 밟자 이 낡은 자동차는 비행기 소리를 내며 공중에 붕 뜨는 것 같았다.

「이것 봐. 벌써 이상 안허다고?」

스피드 미터가 칠십 오, 팔십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조심해. 무서워」

미시즈 徐가 말했다.

「해봐. 운전기술이 달린가 차가 나쁜가.」

許가는 그냥 기대있었다.

「참말이지?」

차가 더 야릇한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하자 차창에 작은 벌레들이 부딪쳐 깨지는 것이 보였다.

이젠 모두들 속으론 겁을 먹고 있었다. 저쪽에서 작은 헤드라이트가 하나 나타났다.

「조심해. 경찰찬지도 모르니까」

「어때, 배짱 있으면 한 번 더 몰아보시지.」

許가가 약을 올렸다.

「그래 알았어, 죽으면 두 번 죽나.」

「챠라, 니 죽는 기는 문제 아니지만 나가 죽으면 장차 대통령이 안 죽나.」

「한국사람 겁 없어.」

미시즈 徐는 여느 때처럼 金의 어깨를 치려하다가 손을 멈추었다.

저쪽에서 나타났던 불빛이 급속도로 다가오더니 살인적인 속도로 엇갈려갔다.

「신난다. 담배 이리 내라.」

金가가 한손으로 핸들을 잡고 옆 사람의 담배를 낚아채 입으로 가져갔다. 순간 자동차가 크게 흔들렸다.

모두 한쪽으로 휙 쓸렸다. 미시즈 徐가 비명을 올렸다. 그제야 金은 속도를 떨어뜨렸다.

「이러다간 자동차가 못 배겨낼 것 같아 그만둔다.」

「병신 육갑하네」

미스터 許는 그냥 담배만 내뿜고 있었다.

네 시가 다 되어 모두 미시즈 徐의 아파아트로 돌아왔다. 거기서 팬케이크을 해먹고 모두들 소파에 기댄 채 잠들었다.

아시아제는 오후 세시와 저녁 일곱 시 반 두 차례였다. 우리는 늦게야 일어나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高가는 할라함 무용연구소에 들려 농악기구 소북 등을 가져오겠다고 나가고 金가는 양주를 한 병 사가겠다고 나가고 許가와 나는 EWC로 직접 나갔다. 회장이 제퍼슨 홀을 바쁘게 지나가면서 진작 와서 맞춰보지 않고 무슨 짓이냐고, 외국학생들은 열심이 아니냐고 힐난하듯 말했다.

「걱정 없쇠다.」

許가는 양팔을 올려 크게 하품을 하고 일간신문을 들고 소파에 기대앉았다. 두시가 되니까 회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공연하는 분들은 지금 준비실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강강술래를 하려고 지원 나온 외국여성들이 웅성거리며 홀을 빠져나가 극장으로 가기 시작했다.

「미스터 허는 뭘 해.」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許를 보고 회장이 신경질이 난다는 듯 말했다.

「왜 이래. 우리 프로는 중간쯤 있으니까 시작해서 들어가도 늦지 않단 말야.」

「그렇지만 준비실에서 한국학생들 안 들어온다고 자꾸 야단 아냐? 그리고 무용연구소에서는 왜 소식이 없어? 좀 전화해주지 그래. 어디 바빠서 혼자 해먹겠어?」

「여보시오, 내가 그런 거 하는 사람이오?」

좀 있으면 다 올 텐데 그 자식 어린애처럼 설친다고 許가는 다시 의자에 앉아 신문을 폈다. 얼마 안 있어 高가가 연구소에서 짐을 한 아름 가져왔기 때문에 우리는 나가 그걸 준비실로 옮겼다. 출연자들이 한복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하곤 하는데 金가는 노란봉지로 싼 술병을 들고 한잔씩 하라고 권하고 다녔다. 어떻든 한국의 세시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합창을 전날 결정한대로 빼버렸다. 프로그램과 대사는 바꿀 수 없었으므로 필리핀 계집애가,

<고향은 떨어져 있을수록 그리운 곳입니다. 한국은 오래도록 외국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당시 옛날과는 다르게 변모해가고 거칠어진 고향을 보고 한국사람들은 이 「고향의 봄」노래를 불렀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했을 때 씩씩하게 두 손을 흔들며 빨간마후라는…… 하고 프로그램의 해설과는 얼토당토않은 노래를 부르고 나갔다. 모두들 아무 뜻도 모르고 이 파격적인 합창의 시작에 놀라며 웃었다. 관중들은 모두 잘 되었다고 끝나고 나서 칭찬이었다.

한국학생들의 사기가 충천했다. 한복 칭찬이 자자했고 외국여성들은 강강술래를 했을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떼 지어 사진을 찍고 다시 파트너와 함께 찍고 야단들이었다. 金가는 자기의 착상이 들어맞은 거라면서 저녁에는 강강술래도 우리 순 한국식으로 모두 소리를 내면서 흥겹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번 선두의 리드는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정말 밤에 있었던 프로그램은 한국의 강강술래가 히트였다. 북춤이나 도라지 춤은 전문적인 연구생이 했기 때문에 그 예술성 때문에 높이 평가되었지만 이 강강술래는 자유분방한 사기와 오락성 때문에 모두 좋아했다. 끝날 때는 한바퀴만 무대를 잘 돌아서 내려오게 됐는데 金가는 자기가 말을 만들어 메기면서 무려 다섯 바퀴를 돌았기 때문에 뛰는 사람은 지쳐서 남녀가 무대를 흩어질 대로 흩어져 어지럽게 되고 외국여인들은 서툴게 신응 버선이 다 벗겨지고 어떤 남학생은 바지 끈이 풀어져 내의가 홀랑 나와 버렸었다. 장내는 웃음바다가 되고 강강술래는 그날 밤의 명물이 되었다. 연극이 끝나자 모두들 뿔뿔이 나가버리고 무용연구소에 돌려줄 농악기구 소복 등만 잔뜩 남았다고 高가가 투덜대며 손을 빌리라고 했다. 결국 망나니 구릅이 다시 이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했다.

「회장 그 새끼 어디 갔어. 이럴 때 자기가 책임져야 할 게 아냐?」

許가가 주위를 둘러보며 소북 꾸러미를 들고 말하는데 저쪽에서 회장이 나타났다.

「회장, 당신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거요?」

「아니 뭘 하고 다니다니. 우릴 위해서 온 손님들 전송 좀 하고 또 공연을 칭찬하는 사람과 응대하다보니 이렇게 안됐소.」

「그래 당신만 무슨 정치요?」

高가가 걸어 나오다 이 꼴을 보고 무슨 짓이냐고 소북 꾸러미의 양귀를 각각 하나씩 들게 했다. 그들은 꾸러미를 들고 옮기면서도 다툼이었다.

「보시오, 한국학생들에게 입장권 백매를 더 회장을 통해 주었다는데 당신은 수고하는 우리에겐 일언반구도 없이 다 누굴 주었소. 혼자서 다 인심 쓰고 다닌 것 아니오? 또 이번 찬조금을 받았으면 계획을 세우고 이렇게 쓰겠다고 무슨 간부회라도 해서 정해야 할 것 아뇨? 당신 혼자 점심 사준다, 술 사준다 하고 기분 내키는 대로 선심 쓰고 다니니 되먹었느냐 말요.」

그들은 다투느라고 차와는 정반대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보소. 어디로 가는 기요. 이리 갖고 오이소」

高가가 소리 질렀다.

그들은 이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래 미스터 허는 왜 회장하라할 때 안 했소? 그렇게 정치도 할 수 있고 돈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회장 말이오.」

「그게 말이라고 하는 거요?」

그러다 걸어오는 미국 계집애 하나를 만났다. 그녀는 회장을 보고 한국 쇼가 참 멋있었다고 칭찬했다.

「강강술래는 가장 훌륭한 쇼 중의 하나였어요.」

「이거 미안합니다.」

許가가 말하는 사이를 가로막았다. 高가도 가까이 왔다.

「이제 곧 뭐라 했지요? 가장 훌륭한 쇼 중의 하나란 무슨 뜻이지요?」

그녀는 어리둥절해 許를 쳐다보았다.

「우린 가장 좋은 쇼 중의 하나가 아니라 가장 좋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를 알고 싶단 말 이예요.」

高가가 영어로 덧붙였다. 회장이 공허한 너털웃음을 웃자 그녀도 따라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金가가 저쪽에서 장구를 치며 나왔다. 그는 더덩실 춤까지 추며 밀양아리랑을 큰 소리로 부르며 나오고 있었다.

 

청천 하늘엔 별도나 많고

우리네 사회엔 말썽도 많네.

 

이것이 극찬을 받은 한국 학생들의 아시아제였다.

(1968年 現代文學 10月號, 2005년 2월 개작)

 

작품 평

문학 평론가 김현 -10월의 문단- 주간조선

아시아제- 사회의 단면 부각 성공

   있는 그대로의 사회의 한 단면을 자르면서 그것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헤치운 작품으로 나는 오승재씨의 <아시아제>를 들고 싶다. 이 작품은 하와이에 유학 온 한 떼의 한국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한 사람의 운명의 기복을 그림으로써 풍속의 전모를 파악하겠다는 재래적인 태도를 작자는 과감하게 버리고 여러명의 학생을 동시에 등장시킴으로써 하와이에 온 한국 학생의 풍속을 그대로 재현시키려 하고 있는데 그 의도는 한국의 상황으로 그것이 완전히 축소될 수 있다는 점에서 퍽 행복한 결론을 얻는다. 사실상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학생들 특히 <망나니패>로 알려진 몇몇과 <나>라는 화자, 바를 경영하는 <미세스 서> 등의 모든 인물들은 작자 자신의 섬세한 배려에 의하여 거의 완전하 동가를 얻고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 한 떼의 학생들이 EWC가 해마다 연례행사로 마련하는 아시아제를 둘러싸고 벌이는 소란이 이 작품의 줄거리를 이루는 것이지만 그것이 역시 주인공의 심적 변모를 유도하자 못한다는 점에서 사건이랄 수도 있다. 주인공 다운 주인공도 없이, 사건더운 사건도 없이 이 작품은 구축되어 있다. 그러나 아곳저곳의 사투리가 기조가 되어 있는 것이 이 일군의 주인공들의 대화와 하찮은 행위들을 뒤따라 가다가, 독자들은 갑자기 미묘한 거북살스러움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러한 비개성적인 인물들이 내뱉는 어휘들과 그 어휘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열등콤플렉스가 바로 그 자신이라는 것에 대한 확인 때문일 것이다.

   열성적으로 달려들다가도 돈 문제만 나오면 금방 빠져 버리는 얍삽한 태도, 너희들이 협조 안하면 나도 모르겠다는 배짱, 그래도 한국인들의 머리는 좋다는 희극적인 자만, 되는대로 해 나가자는 비합리적인 태도, 그러면서도 채면은 차려야겠다는 오기-. 한국인의 정신적인 여러 패턴은 하난도 빠지지 않고 나열 되어 있는 이 작품의 기조는 그렇지만 열등콤플렉스와 고향 상실에서 오는 허탈감이다. 일본 계집을 처치하느냐 못하느냐를 둘러싼 대화, 한국에 한 번 갔다 온 뒤론 물건이 아까와 버릴 수 없다던 미스김, 돈을 벌어야 고향에 가겠다는 미스김,- 그 중에서도 '고'가의 고백은 아주 상징적이다. '그는 자다가 갑자기 고향이 그리워 지고 친구가 보고 싶어지면 눈을 뜨는데 견딜 수 없어진다는 것이다. 살갗 속으로 두드러기가 생긴 것처럼온 몸이 근질대고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해져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웃옷을 벗어젖히지만 그것도 안 되면 밖을 마구 뛰어다니거나 한 없이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무엇이 해결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믿바닥까지 흘러내려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잘 느낀다. 이런 열등콤플렉스와 허탈감 때문에 학생들의 태도는 난폭하고 거칠고 소란스럽다. 작가가 한국 유학생들을 빌어 내보여주고 있는 이런 한국적인 풍속은 자신의 부끄러운 점이 밖에서 밝혀질 때 더욱 부끄러워지듯이 한국 안에서 그것을 읽는 사람들을 더욱 거북스럽게 만드는데, 아마도 작가가 노리고 있는 것 역시 그러한 것일 것이다.

 

출처 : 낮은 문턱
글쓴이 : 은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