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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노래! (사 12:1-6)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그 당시 유다는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70년을 억압당하다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으로 풀려나게 될 때 드리는 감사와 찬양 시입니다. 그래서 제목도 ◀감사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 날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 어떤 날인가?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잊지 못할 그 날들이 있습니다. 출생한 그 날, 결혼한 그 날, 또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날, 성공한 그 날, 참패했던 그 날, 그래서 국가적으로도 기념이 될 만한 그 날들은 국경일로 지정하여 그 날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 날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쁜 날로 기억될 그 날이요, 다른 하나는 슬픈 날로 기억될 그 날입니다. 성경에는 대개 구원받은 날 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을 그 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날이 그 날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날이 그 날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날이 그 날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그 날(마24:36)입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자들에게 기념될 만한 그 날은 무엇일까요? 바로 내가 예수를 영접 한날이요(요1:12), 예수를 믿은 날이며(요3:16), 죄 사함 받은 날(벧전1:18)입니다. /할/ 오늘 본문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70년 포로 생활 후 하나님께서 해방시키셔서 고국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구원받은 감격에 그 날을 기념하며 감사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그 날은 '여호와의 구원의 날'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2절에서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1.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가?
①우리를 선택해 주셨기 때문에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엡1:4절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성경 전편에 유유히 흐르는 사상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선택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우리 각 사람을 개별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감사해야 합니다. /아멘!/ ②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행2:21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구원은 죽어서 천당 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존재가 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존재입니다. 이런 존재는 그 어떤 곳에서도 건짐을 받습니다. 실패에서도, 낙심과 좌절에서도, 질병에서도, 파멸에서도 건짐을 받고 회복의 축복을 누리기 됩니다. /아멘!/ ③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징표가 요3: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롬5:8절에서 이렇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할/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멘!/ 롬8: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신 사랑입니다.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변함 없는 사랑입니다.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치 않습니다. ㈂늘 풍성한 사랑입니다. 마지못해 주는 감질내는 사랑이 아닙니다. ㈃자상한 사랑입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큰 것에서, 작은 것까지, 앉고 일어서는 것까지 돌보고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들의 머리칼까지 세시는 분이십니다. 얼마나 세심한 사랑입니까? /할/ ④저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주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요14:1-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세상 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무너지고 변질되고 없어질 것들입니다.
▶왜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까? ⑴이 세상의 것은 잠깐이기 때문입니다. 행복도, 기쁨도, 평안도, 이 세상 것은 잠깐으로 끝나고 맙니다. 우리의 생명도 길지 않습니다. 천년, 만년 살지 못합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 /할/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시간적으로, 찰나와 영원은 비교가 안 됩니다. ⑵그곳은 정말 살기 좋은 곳입니다. 그곳은 죄도, 질병도, 경제위기도 미움도, 싸움도, 교통난도, 걱정거리도 없습니다. 인간이 수천 년 동안 꿈꾸어 오던 파라다이스의 꿈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믿/ ⑶주님이 그곳에 계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찬송 작가 '헌팅턴'은 찬222장에서 <우리를 구하신 주님도 거룩한 그 집에 계시니 우리도 이 세상 떠날 때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주님과 영원히 살겠네>라고 노래를 했습니다. 남녀가 백년가약을 맺고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결혼식장을 떠나 삶을 시작하지만 그러나 결혼해서 백년을 함께 사는 부부는 거의 없습니다.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아내를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감사한 것입니다. /아멘!/
2. 구원을 주신 하나님 앞에 바른 예배의 삶이 감사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여기 모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받은 최대의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영광입니다. 천하만물 중에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유일한 존재이며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성도 중에 가끔 주일 예배에 빠지므로 전화를 드리면 그 이유가 너무 바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일 바쁜 것이 예배드리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믿/ 오늘 아침 우리들이 모든 바쁜 일을 제쳐놓고 예배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인간승리이고 축복입니다. 최고의 은혜입니다. 바르게 사는 삶의 자세입니다. /할/ 기독교는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종교입니다. 모든 종교가 예배 행위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기독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의 종교입니다. 구약의 경우는 예배가 제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며 경배입니다. 신약의 경우는 제사를 통한 예배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산 제물이 되어 구약의 제사를 완성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시50:23절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 감사가 없는 제사나 예배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예배는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구분됩니다. 그것은 드리는 예배와 받는 축복입니다. 찬송, 기도, 헌금 등은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나 설교, 축복은 예배를 통해 받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드리는 것이 없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일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가리켜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그런 축복의 대명사가 된 것은 그의 예배생활을 통해서 얻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창12:7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에 단을 쌓았다.'고 했고, 8절을 보면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 창13:18절에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또한 창15:9-10절을 보면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그리고 일이 있을 때마다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때마다 주님의 임재를 체험했고, 복을 받았습니다. /할/
▶우리는 아브라함의 제사 신앙을 통해 배워야 할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⑴예배의 대상이 분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제사의 대상과 예배의 대상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⑵가는 곳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⑶빈손으로 드리지 아니하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29:13절을 보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민족을 책망할 때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고 했습니다. 스티븐 케트락은 '마음이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며 그것은 하나의 연극무대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예배드리는 시간과 예배 횟수를 줄이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참 행복한 성도 여러분, ⑴모든 예배에 우리 모두 참석해야 합니다. 대예배는 물론 저녁 예배, 수요, 금요철야까지 새벽기도회 열심히 참석해야 합니다. ⑵시간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7월 21-25일까지 송경근 형제가 리더로 있는 공명 팀이 '2010년 콘서트'를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합니다. 기도해 주시고, 시간이 있는 분들은 많이 오셔서 격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제가 왜 이런 공연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그럽니다. 전에 공명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할 때 제가 시간이 조금 늦었는데 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어떤 공연이라도 시작 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는다는 것입니다. 도우미 아가씨의 말을 빌리면 어떤 공연이라도 늦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래이 예배는 늦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이 문제입니다. 예배 시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시간입니다. 사람과의 약속시간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하물며 세상우주만물의 주인이 되신 하나님과의 약속시간을 늦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이 좋은 장로님이 외국에 출장가면서 아들에게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다음 주일은 제발 늦지 말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려라' 그러자 아들이 '예, 염려 마세요' 그 아버지가 월요일 아침에 아들에게 국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래 어제 교회에 갔었니?' '예!' '대표기도는 어느 분이 하시더냐?' '조금 늦게 가서 모르겠는데요!' '설교는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깜박 조느라고 잘 못 들었는데요!' '축도는 어떤 목사님이 하시더냐?' '조금 미리 나와서 잘 모르겠는데요!' 기가 막힐 일입니다.
어느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늦는 사람이 너무 많아 위 아래층 게시판에 예배가 시작되자 마자 '오늘도 늦으셨군요!' 라고 써 붙였습니다. 그런데 예배가 다 끝난 뒤 게시판을 보았더니 '늦게라도 와 준걸 고맙게 생각하시오' 여러분, 예배시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아멘!/ ⑶예배는 정성으로 준비하고 정성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몸가짐, 마음가짐은 물론 헌금도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다음주일은 맥추감사절 예배를 드립니다. 2010년도의 상반기 감사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믿음으로 감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시간이요, 하늘에 신령한 복을 받는 시간입니다. 요4:23절을 보세요!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할/
3. 본문에서 더 깊은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겠습니다.
본문 1절에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여기 감사는 헬라어로 '빼라크'인데 '찬양하다, 송축하다, 예배하다.'라는 말로 '내가 주께 예배하겠나이다.'라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고 송축하고 예배드려야 합니까? 본문 1-6절을 보면 그 이유들을 밝히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조명해 보겠습니다. ▶왜 감사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까? ①하나님의 진노가 그쳤기 때문입니다(1).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오래 전에 어느 방송국에서 장희빈을 반영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장희빈의 끝 장면이 생각납니다. 왕이 장희빈에게 진노하여 사약을 내리는 장면입니다. 두 손과 발목을 잡고 입에다 사약을 부어 넣고 있었습니다. 왕이 말합니다. '한 사발 더 퍼부어라, 한 사발 더 퍼부어라, 여봐라 한 사발 더 퍼부어라' 성난 숙종의 어명으로 드라마는 끝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 때 왕의 진노가 무서웠습니다. 저는 그 순간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누가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왕의 진노도 그처럼 무서운 건데 하나님의 진노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언제 하나님의 노가 멈췄습니까? '그 날에'입니다. 어떤 날입니까?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은 그 날입니다. /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그 날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멈췄습니다. ⑴'그 노가 쉬었다.'는 말은 '속죄함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죄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롬3: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요1서 1:8절을 보면 이 세상에서 죄가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스스로를 속이고 또한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최악의 사기꾼이라고 말했습니다. 죄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허물이 있습니다. 몰라서 범한 죄입니다. 죄인 줄 모르고 행했고, 선인 줄 몰라서 행하지 못했다면 이것이 허물입니다. 어린아이가 다이아반지가 보배인 줄 모르고 들고 나가서 엿을 바꾸어 먹었다면 이것이 모르고 범한 허물입니다. 사람에게는 모르고 범한 허물이 참 많습니다. 둘째, 자범 죄가 잇습니다. 알고도 약하여 범하는 죄입니다. 셋째, 고범죄가 있습니다. 알고도 고의로 범하는 죄입니다. 이 죄가 제일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무섭게 심판하십니다.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죄 속에 있을 때 예수님밖에 있을 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 밖에 있을 때, 우리 모두는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예수님 안에 거한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에서 무거운 짐이 바로 죄의 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의 보혈로 인하여 그 죄가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아멘!/ ⑵'나를 안위하오니' 여기 '안위'는 '위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위로는 누가 하느냐? 성령님이 하십니다. 성령님은 위로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입니다. /믿/ 하나님의 능력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왜 우리가 감사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그쳤고, 하나님의 위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을 진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대신하시고 나에게 안위와 평화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받을 진노와 형벌은 주님이 대신 당하시고 나에게 안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사53: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할/ 우린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일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하고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②하나님이 나의 구원주이시기 때문입니다(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끝에도 '나의 구원이심이라!'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나의 구원'이라는 1인칭 표현입니다. 2절을 자세히 살펴보면 1인칭이 강조됩니다. '나의 구원,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 등 1인칭으로 신앙이 고백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천 번을 물어도 만 번을 물어도 '나의 구원, 나의 하나님, 나의 힘, 나의 노래'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신앙은 1:1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할/ 구원을 받는 비결이 무엇인가? 행16: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또 롬10: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은 건져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디에서 건져냅니까? ⑴죄에서 건져내십니다. 주홍 같은 붉은 죄에서 건져내십니다. ⑵여러 가지 환난에서 건져내십니다. 욥5:19절에서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또한 시50:15절에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아멘!/ ⑶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지십니다. 죄로 허물로 영원히 죽어야 할 우리들을 예수님 안에 불러주시는 영원히 사는 저 천국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함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신앙의 원리는 구원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찬양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부르는 새 노래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신과 충성도 구원받은 자가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구원의 확신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가 입니다. 바울은 빌2:12절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구원에 확신을 갖읍시다. /할/ 이 확신을 가진 자는 하나님께 감사가 나옵니다. ③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두려움이 사라집니다(2).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다윗은 시3:6절에서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할/ 이 신앙이 정말 귀합니다. 주님은 요14:1절에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고, 다윗은 시23:4절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⑴구세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겁과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세상은 온통 무섭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사람이 무섭고, 사건 사고가 무섭고, 그러나 구원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절대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아멘!/ ⑵구세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새 힘을 주십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여기 힘은 능력입니다.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40: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 할/ ⑶구세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감사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나의 노래시며' 노래는 찬송을 뜻합니다. 그 날을 어떻게 노래할까요? 모세가 홍해를 건너던 그 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소고 치고 춤추며 구원을 주신 여호와께 찬양하며 노래했다고 합니다(출15). /할/ 누가 노래를 부릅니까? 몸에 병이 들면 신음소리가 나오지 노래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마음이 근심이 가득하면 한숨이 나오지 찬송이 나오기 힘이 듭니다. 노래가 나온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말씀은 영육간의 강건하다는 뜻이요, 매사에 승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노래를 부릅니까? 승리자입니다. 운동선수들이 경기를 합니다. 한 골을 넣으면 응원가가 절로 나옵니다. 그러나 한 골을 빼앗긴 편에서는 노래 소리가 쑥 들어가 버립니다. 노래는 승리한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찬송은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동반됩니다. 행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증거 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밤중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25) 그때 어떠한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⑴한밤의 찬미는 옥터를 흔들리게 했습니다. 그것은 역경중의 찬송입니다. 믿음의 찬송입니다.
⑵한밤의 찬미는 철통같이 닫혀진 옥문이 열리게 했습니다.
⑶그리고 죄수를 지키던 간수 장이 오히려 자기를 살려 달라고 죄수 앞에 무릎 끊는 기적이 일어났고 그들이 구원받는 축복이 임했으며, 빌립보 교회가 부흥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⑷찬양이 있는 곳에 변화가 있습니다. 찬양은 능력을 동반합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아멘!/
④왜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까? 구원의 우물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3).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우리나라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얼마나 물이 맑고 깨끗합니까? 냉수를 그냥 먹는 나라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사실 수돗물이 콸콸 쏟아지는 우리네 입장에선 우물물의 의미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중동지방의 경우는 생사와 관계됩니다. 사막을 여행하다가 오아시스를 만나지 못하면 꼼짝없이 죽게 됩니다. 창26:12절 이하를 보면 이삭과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물 때문에 시비가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랄 지방 사람들과 이삭의 목자들이 우물물 때문에 싸운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중동지방은 물싸움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금은 중동지방은 석유 값보다 물 값이 더 비싸다고 합니다. 한 예언가는 앞으로 세계는 석유 전쟁이 아닌 물 전쟁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물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생수 판매가 본격화되고 생수시장을 놓고 세계 각국이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외국 생수가 수입된 지가 오랩니다. 이북생수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산 좋고, 물 좋고 골짜기마다 생수 공장이 들어서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기오염, 중금속오염, 지질오염 등으로 생수가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4장에 보면 사마리아 땅 수가라는 동네에 살고 있는 여인이 대낮에 우물가에 나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수로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주님의 말씀에 여인이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 날 수가성의 여인은 우물물을 길러 나왔다가 영원한 생수인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본문의 '구원의 우물에서 길게 된 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사55:1절에 보면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생수는 돈주고 사먹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우물물은 공짜로 주신 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생수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렘2:13절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여러분, 구원의 우물가에서 생수를 길어 냅시다. 목회자가 성경을 봅니다. 어제보고 오늘 또 봅니다. 이것은 구원의 우물에서 생수를 자꾸 길러내기 위해서입니다. 기도를 어제하고 오늘 또 하는 것은 구원의 우물에서 생수를 길어내기 위함입니다. 구원의 우물에서 생수를 계속 길어내려고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우물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 함께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요7:37-3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권사님! 집사님들이 구원의 우물에서 생수를 긷는 운동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고, 기도하고, 찬양하다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런 성도가 세상은 이기고 죄악도 이기고 원수마귀도 때려잡을 수가 있습니다. /믿/ 여러분, 예수님은 생명의 물입니다. 값없이 구원의 생수를 마시고 구원받게 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수이신 주님을 만나고 내 영혼의 갈증이 풀린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할/
⑤하나님께 '감사를 서로 권면하라'고 하셨습니다(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십시다. 무엇을 권면해야 합니까? ⑴우리 서로 순종하며 살자고 권면하십시다. 우리가 순종할 것은 많습니다. 그러나 우선 죄와 짝하지 마십시다. 하나님 앞에 불 신앙이 큰 죄입니다. 교만도 큰 죄입니다. ⑵믿음을 굳게 지키며 살자고 권면하십시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까 신앙의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신앙의 절개는 뭐니뭐니해도 바른 예배생활을 통해서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가 성전중심, 예배중심으로 사십시다. ⑶선을 행하며 살자고 권면하십시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자식의 선입니다. 아랫사람을 돌보아 주는 것이 윗사람의 선입니다. 죽은 사람은 살리는 것이 성도들의 선입니다. 우리 모두 전도하십시다. /할/ 또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⑥하나님의 행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4-5).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그리고 5절에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⑴'그 날에 이름을...만국 중에 선포하라'고 했습니다. 이곳에 나오는 그 이름은 '이새의 아들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를 만민에게 전파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요4장에는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퍼 마시는 수가성의 여인은 땅에서 나오는 우물물을 오랫동안 마셨지만, 항상 목마름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영원한 말씀의 샘물을 마시고 너무 기뻤습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내버려두고 사마리아 동네로 뛰어갔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 했습니다. 많은 동네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했습니다. /할/ ▶왜 우리가 영혼 구원을 서둘러야 합니까? ㈀종말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재림이 가까워졌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는 영혼 구원의 기회가 없습니다. 구원의 문이 다 닫힙니다. 전도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날이 갈수록 대형 지진이 많아지고 수 천, 수 만년 얼어붙었던 얼음산이 기후의 변화로 쾅쾅 녹아 내립니다. 이러다간 섬나라들이 물에 잠길지도 모릅니다. 인구의 팽창이나 과학의 발달이나 지하자원의 고갈 등이 종말이 가까웠음을 말해줍니다. 때가 지나기 전에 추수해야 합니다. ㈁개인의 종말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이렇게 건강해서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지만, 언제 하나님이 우리 생명을 불러 가실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항상 믿음의 준비를 하고 깨어 있어야하고 전도의 대상자가 죽기 전에 서둘러 전도해야 합니다. ㈂기회를 놓치면 영영 구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기회가 있습니다. 전도의 기회도 다 때가 있습니다. 구원의 기회를 놓치면 그 영혼은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시급히 서둘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구원에 그 소식 그리고 구원받은 축복된 그 날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내 작은 입으로 선포하고 알려줘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전도는 그가 믿던지 안 믿던지 늘 나의 사명으로 알고 행해야 합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지금 열매가 없다고 낙심치 말고 언제나 항상 선포하고 알리자 반드시 때가 되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아멘!/ ⑵'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아름다운 큰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행하신 아름다운 일들이 어떤 것입니까? 창조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창1장을 보면 엿새동안의 창조사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루하루 창조사역이 끝 날 때마다 '여호와 보시기에 좋았더라'로 끝맺고 있습니다. '좋았다'는 것은 선하다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창조에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누가 저 장엄한 우주를 운행하십니까? 태양계를 중심으로 구성된 은하계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누가 운행하십니까? 하나님이 하십니다. 오늘도 지구는 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1년 365일을 운행하십니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합니다. 누가 운행합니까? 하나님이 운행하십니다. 그뿐입니까? 타락한 인간들이 버리는 쓰레기, 화학폐기물, 중금속, 핵실험 등으로 이미 지구가 썩어서 쓸모 없는 땅이 되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은 때를 따라 비를 내려 씻기시고 바람으로 청소하셔서 지구의 가치를 보호해 주실 뿐만 아니라 산소를 공급해 줌으로 생명체를 살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할/ ⑶그 날의 감사를 소리 높여 부르라고 하십니다(6).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지금 세계 각 국에서 부흥되는 교회들은 생명력 있는 찬양과 노래를 하는 교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생명력 있는 노래를 위해서는 '소리 높여 크게 외치며' 찬양해야 합니다. /할/ 심령이 죽은 자들이 부르는 노래는 그 소리가 꼭 땅으로 꺼져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생명력 있는 심령들은 우렁차고 힘있고 크게 외쳐 부르는데 마귀도 놀라서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혼비백산해도 도망갈 것입니다. /아멘!/ 여러분! 우렁차고 힘있게 외쳐 부릅시다! 그 날의 구원의 노래를, 우리 하나님께 할렐루야!
다시 한 번 감사하십시다. 1절에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날마다 순간마다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그리고 영원히 주님께 감사하십시다.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4절에 '그 이름을 부르며 선포하라' 그 이름은 불러야 합니다. 사람은 세 가지 경우 진실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술 취했을 때, 마취에서 깨어날 때 그리고 죽을 때 진실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술 취해서 하는 말보다, 마취에서 깨어나서 하는 말보다, 그리고 죽으며 하는 말보다 더 진실한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령 받고 믿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할/ 우리가 흔히 '주여'라고 부릅니다만 그 의미는 가지각색입니다. 한숨 대신 주여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넋두리 대신 주여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정대신 주여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주여는 성령 받고 감격한 마음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는 날까지 영원히 불러야 할 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이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온 세계에 알려야 합니다. 5절의 끝 부분입니다. '온 세계에 알게 할 지어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향한 선교명령이기도 합니다. 행1: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선교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알려야 할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시며 인류의 소망이시며 생명이심을 알리십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소망, 생명, 그리고 구원이십니다. /할/아멘!/ (2010년 7월 4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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