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호 목사 설교

[스크랩] 인생을 뒤집은 사람(2) 오네시모/ 몬 1;10-20.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1. 7. 11:50

인생을 뒤집은 사람(2) 오네시모/ 몬 1;10-20.

 

                                                                                                        

 

우리 나라에 와 있는 대사중에 비중있는 대사는 역시 미국 대사입니다.

감리교 목사님이 대사로 와서 활동하던 분이 레이니입니다. 그래서 우리 감리교 목사님들에게는 대단히 친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우리나라에 온 미국 대사가 심 은경이라고 발표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한국 사람중에 미국 대사가 나온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심 은경은 미국 사람입니다. 한국을 너무 좋아 하여 한국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30여년 전에 20살에 우리나라에 평화 봉사단으로 와서 영어 교사로 활동하던 분이었습니다. 그가 부임하자 예산 중고등학교에서 그 때 교적부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인가?”

확인하니 그 사람이었습니다. 교사가 대사로 성장하여 온 모습이 대견스러웠습니다. 인생을 뒤집은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 저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지금 그대로이고 싶습니까?”

지금보다 못 한 존재로 전락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지금 보다 나은 변화를 원하십니까?”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입니다.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게 변하는 사람이 있고 안 좋게 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이 변하는 사람이 있고 조금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오네시모라는 노예요 절도범이 놀라운 복음의 사람으로 전혀 딴 사람이 되는 모습을 잘 알려 주고 있습니다.

빌레몬은 소아시아 골로새에 살고 있는 부유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재산을 훔쳐 가지고 로마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오네시모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마침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붙잡혀 갇힌 감옥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날마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찾아 다니며 전도하는 바울에게 집어 옆에 있는 오네시모는 전도의 특별한 대상이었습니다. 바울은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늘 전도가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사랑을 위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나이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9)

 

바울은 감옥이라는 악조건의 자리에서도 언제나 전도였습니다.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10)

 

감옥에서 오네시모는 인생은 뒤집었습니다. 전혀 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세상은 넓고도 좁았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잘 알고 있는 동역자 빌레몬(1;1)의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에게 편지를 쓴 것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바울은 너무 좋아서 친필로 썼습니다(19)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인생을 뒤집었습니다. 절도범이 복음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빌레몬의 집에서 값진 물건을 훔쳐 가지고 도망왔던 이가 도로 그 집으로 가서 영원한 종이 되어 다시 빌레몬을 섬기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심복이 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이를 인하여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니”(15)

 

노예생활이 지긋지긋하여 탈출한 이가 이제는 노예보다 더한 심복이 되겠다고 말했습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인생을 뒤집었습니다. 그러면 오네시모를 이렇게 변화시킨 요소는 무엇일까요? 사람은 어떤 때에 변화가 일어 나는 것일가요?

변화되고 싶습니까? 인생을 뒤집고 싶습니까? 다음과 같이 하면 인생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1. 만남을 통하여 변화됩니다.

오네시모는 주인을 배반한 배반자였습니다. 주인의 물건을 훔친 절도범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같이 있으면서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한달 끊임없이 붙어 있으면서 오메시모는 변화되었습니다. 만남은 변화입니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누구와 같이 있느냐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이냐도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말세가 되면 목사를 잘 만나야 돼.”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좋은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곤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목사들은 이렇게 말 할 수 있습니다.

말세에는 장로님을 잘 만나야 해.”

말세는 권사를, 집사를, 성도를 잘 만나야 해.”

좋은 목사를 만나고 싶은 성도들의 심정처럼 목사들은 좋은 성도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 서로 잘 만났다는 소리가 나오게 서로 잘 하기를 바랍니다.

 

만남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갈보리에서 서로 좋은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정 채봉이 쓴 에세이집에 <만남>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4가지 만남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이 있습니다.

생선같은 만남입니다. 만날 수록 비릿내 나는 만남입니다. 만날 수록 냄새가 나서 만나기 싫은 만남입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이 있습니다.

꽃송이같은 만남입니다. 피어있을 때는 화려하고 좋지만 시들면 보기 싫은 것이 꽃입니다. 좋을 때만 좋고 안 좋을 때에는 안 좋은 만남입니다.

지우개같은 만남이 있습니다.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입니다. 금방 만나고 만남을 잊어 버리는 만남입니다. 시간낭비 만남입니다.

만남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 있습니다. 손수건같은 만남입니다.

힘들 때에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에는 눈물을 닦아 주는 만남입니다. 만남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합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남으로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서로 변화를 주는 아름다운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솔로몬은 말했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27;17)

 

나 때문에 네가, 너 때문에 내가, 아내 때문에 남편이, 남편 때문에 아내가, 목사 때문에 여러분이, 여러분 때문에 목사가, 친구 때문에 친구가, 철 때문에 철이 빛나야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바울 때문에 오네시모가, 오메시모 때문에 바울이 빛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만남을 통하여 변화됩니다.

 

2. 복음을 통하여 변화됩니다.

누구를 만났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 지도 중요합니다.

오네시모는 바울과 같이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으로 먹었습니다. 바울은 복음만 말했고 오네시모는 복음만 들었습니다. 억지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억지로 바울과 같이 있게 되었습니다. 자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로부터 매일 아침 저녁, 월화수목금토일, 123월 매달 복음의 양식을 먹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능력있는 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복음, 그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하게 된다는 이 복음은 가장 큰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을 들으면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네시모가 그랬습니다. 복음을 먹으니 복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만남에서 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와 무엇을 들었느냐는 중요한 것입니다.

 

대구 순복음 교회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교도소 선교팀이 있었습니다. 대구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형수와 장기수만 20명을 영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사형수 한 명이 전도를 받았습니다. 언제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질지 몰라 안절부절하는 삶이 이어졌습니다.

죄수 XXXX !”

이렇게 자기를 부르는 날이면 마지막 날입니다. 그런 중에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죄를 사하여 준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깨달은 날부터 그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전도사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죄수들은 그를 목사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형무소 생활이 그렇게 달라질 수 없었습니다. 몸은 죽어도 영혼이 살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기뻤습니다. 교도소가 자기 일터같이 느껴졌습니다. 오늘 당장 죽어도 하나님품에 갈 수 있다는 기쁨이 넘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항상 떠나지 않았습니다. 늘 천국이 보였습니다. 고 건일 목사님을 모셔다 부흥회도 하였습니다. 그에게 기적이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적이었습니다. 대통령 특사때 그는 무기로 감형되었습니다.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는 지금도 죄사함의 확신속에서 기쁨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누구에게나 복음이 필요합니다.

천국이 필요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죽음후에는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 시절, 철학에 매혹을 느낀 학생이 공부를 마치고 철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동안 철학 교수로 많은 철학도 제자들을 길러 냈습니다.

석사논문도, 박사논문도 많이 지도하였습니다. 정년이 되어 은퇴하였습니다. 명예교수로 가끔 학교에 가서 후학을 길러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눈이 쌓인 언덕길을 올라가다 한 노파가 미끌어져 넘어졌습니다. 빨리 가서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 노파가 말했습니다.

고맙소.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예수 믿는 사람인가보우.”

아니요, 나는 예수를 믿지 않는데요?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뭐라구? 당신만한 나이가 되어 아직도 예수 믿는 진리를 깨닫지 못했단 말이요! 당신이 철학을 가르치는 교수까지 되어서 아직까지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단 말이요?”

노 교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파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잘난 체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는 데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도 하나 해결하지 못하다니···”

그는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교회를 찾았습니다. 목사는 찾아온 사람이 철학 교수라는 말을 듣고 복음을 철학적인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노 교수는 설교를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 목사님! 철학 이야기야 내가 더 잘 압니다. 부디 그 노파가 말한 것처럼 놀라운 이야기, 죽음후의 이야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십시오.”

 

그렇습니다.

죽음이후의 세계,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기에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지막 때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자꾸만 들려 옵니다.

 

젊은 철학자 에머슨이 대사상가인 칼라일을 방문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호숫가를 오랫동안 산책하면서도 말이 없었습니다. 해질 무렵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지긋이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겼습니다. 두 사람은 단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머슨이 저녁에 기쁜 표정으로 이런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오늘 선생님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칼라일은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에머슨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도 자네에게 한 수 배웠네. 자네는 매우 훌륭한 철학자가 될 것일세.”

두 석학은 침묵속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대화보다 명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침묵의 시간을 깨뜨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은밀한 침묵속에서 두 석학은 깊은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마음을 읽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침착한 고양이는 피아노 건반위를 다니면서도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놀라거나 흥분된 상태에서는 소리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흥분하거나 놀라면 지혜를 잃어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노크 소리는 조용할 때 더 크게 들리는 법입니다.”

말하는 사람은 씨를 뿌리고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거두어 들입니다.”

조용한 개가 무는 데 으뜸이다.”

침묵은 영원처럼 깊고 말은 시간처럼 얕다.”

하나님은 한 마디 말씀하시지 않으며 거대한 우주를 관리하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 분의 말없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다.”

네가 마지막 때를 연구하고 정리하면서 놓친 것 하나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때 징조 연구가 요즈음 나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징조를 아직까지 보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5)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2:28-32)

 

마지막 때에는 영적 전쟁이 극심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셔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부어준다는 말은 철철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더 철저히 성령과 함께 사역하라고 엄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 밤 브라질에서 성령 사역을 성실히 하시는 원 준상 목사를 초청하여 같이 하룻밤을 잤습니다. 브라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놀랍게 이야기하여 주었습니다.

지금 브라질에서 일년에 사라지는 사람이 800만이라는 것입니다. 그 중에 15%는 행방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85%는 찾지 못 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사탄교회가 인육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나도 동영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여자를 발가벗겨 눕혀 가운데 두고 예식을 시작합니다. 끝나면 제사장이 공개 성행위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사람을 한 명 죽입니다. 그 피를 받아 나누어 마십니다. 그리고 인육을 나누어 먹고 예식이 끝납니다.

원 목사님이 한 청년을 끌어냈습니다. 복음을 받았습니다. 복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나서 그는 긴 한숨을 내쉬면 말했습니다.

! 시원합니다. 2년만에 처음 마신 물입니다.”

목사님이 놀라서 어떻게 물을 2년 동안 마시지 않고 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이 대답하였습니다.

피만 마셨습니다.”

물론 사람피입니다. 이런 사실을 공개하는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100만권 팔렸습니다. 10,000원이라면 100억 팔렸다는 말입니다. 그 책을 한국말로 번역하고 싶어서 그 분을 만나려고 하는 데 만날 수가 없어서 번역을 못 하고 있답니다. 그 사람을 죽이려고 따라 다녀서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영어로 쓴 책을 한 권 보내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브라질 지도자 중에 90%가 프리메이슨이기에 어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브라질은 40%가 기독교인인 데 베리칩을 모두 거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이 치열하여지기에 성령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생명걸고 전하여야 합니다. 사람은 만남을 통하여 변화되고 복음을 들음을 변화됩니다.

 

 

3. 부모의 기도로 변화됩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 바울의 심복이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동역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심부름꾼이 된 것도 아닙니다. 심복이 되었습니다. 심복은 원어로 <스플랑크나>라고 되어 있는 데 이는 내장이나 간장을 의미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장이 없다면 살 수가 없습니다. 간장이 없다면 당장 죽을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당시 바울은 최고의 동역자를 오네시모로 여기고 있음이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인정받는 사람일 가요?

나는 너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다.”

너는 내 심복이다.”

그런데 이렇게 복음으로 변화된 오네시모를 바울은 끔찍히 사랑하였습니다. 눈시울이 적셔 질 정도로 사랑하였습니다.

 

11절 저는 내게 유익하다.

12절 저는 내 심복이라.

13절 저를 내게 머믈러 두어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7절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 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절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게로 회계하라.

 

오네시모는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가장 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바울의 편지로 인하여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 드렸을 것입니다.

빌레몬의 뜻은 <사랑을 간직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이였기에 어쩌면 바울의 편지를 받고 오네시모를 노예에서 해방시켰을 지도 모릅니다. 오네시모는 잡혀 죽을가 두려워하던 암흑의 생활에서 깨어나 이제는 떳떳하게 광명속에서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사랑과 빌레몬의 용서는 오네시모를 전적으로 변화된 사람이 되게 하였을 것입니다.

오네시모라는 뜻은 유익한 사람”“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오네시모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이름을 지어 주었나요? 부모입니다. 부모의 자녀를 위한 소망이 이름에 들어 있습니다. 부모의 기도가 자녀 이름속에 들어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하여 늘 그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 부모는 오네모를 낳고 유익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종이 되었습니다. 강도가 도었습니다. 도피자가 되었습니다. 수배자가 되었습니다. 지명수배자가 되었습니다. 외국으로 망명자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대도 부모는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유익한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렇게 되었습니다. 눈물의 자식은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외도하여도 정상으로 돌아 옵니다. 삐뚜로 나가다가도 부모의 기도 때문에 돌아 옵니다. 오네시모가 그렇습니다.

 

삭개오도 그런 사람입니다.

삭개오의 뜻은 순결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세리로 토색하고 자기만 아는 욕심꾸러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부모는 삭개오가 순결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뽕나무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순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에게 토색한 것은 4배씩 모두 갚아 주었습니다. 드디어 순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아니지만 외경중에 도마복음이 있습니다. 도마복음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회개란 무엇이냐? 그것은 동쪽이 서쪽이 되고, 동쪽이 서쪽이 되는 것이며, 남쪽이 북쪽이 되고 북쪽이 남쪽이 되는 것이다.”

 

오네시모는 회개하고 전적으로 변화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심복이 되기로 결심하고 나서 전적으로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구의 심복이 되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심복이 되면 예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예수님의 심복이 되기로 결심하면 그 순간부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바울을 만나기 전에 오네시모는 돈의 심복이었습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쾌락의 심복이었습니다. 밤낮 쉬지 않고 생각한 것은 주인의 돈이었습니다. 매일 훔쳐갈 귀중품이 어디에 있는 지 알아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빌레몬 주인의 값진 물건을 훔쳐가지고 로마로 가서 멋지게 즐기면 살고 픈 꿈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로마에서 많은 돈을 가지고 즐기는 것은 생각만 하여도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궁리하고 연구하다가, 엿보고 넘보다가 드디어 어느 날 기회를 잡았습니다.

빌레몬 주인의 물건과 돈을 할 수 있는 만큼 훔쳐가지고 로마로 달아 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바울과 같이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참으로 넓고도 좁았습니다. 같은 감옥에 있는 바울은 자기가 섬기던 주인 빌레몬과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을 적극적으로 돕는 이였습니다. 어쩌면 바울에게 선교헌금으로 주어야 할 물질을 오네시모가 훔쳐 갔는 지도 모릅니다. 오네시모는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으로 변화된 후 그의 기도 제목은 전혀 달라졌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종노릇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서 피해를 주고 도망간 오네시모를 회개시켜서 다시 빌레몬에게 돌려 보내게 되었습니다.

 

네게 저를 돌려 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12)

 

오네시모가 가겠다고 하니까 돌려 보낸다고 한 것입니다. 복음적인 사람은 이렇게 변화됩니다. 그 당시 기록을 보니까 그 지역에는 6 천만명의 노예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예에 대한 법이 엄격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노예를 부리기 좋게 하기 위하여 영혼이 없는 동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살아있는 도구 취급을 하였습니다. 두 발 가진 편리한 동물이라고 여겼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사유재산이기에 주인 마음대로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도망간 노예가 잡히면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사지를 잘라서 죽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운이 좋은 노예는 라틴어로 Fugitivus 즉 도망자라는 머릿글자인 F 자를 이마에 찍어 일생 핍박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오네시모는 그래도 회개하고 자기 주인에게로 돌아가 다시 섬기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돈의 심복이 복음의 심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만남과 복음과 결심은 종 오네시모, 죄수 오네시모를 복음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변화되고 싶습니까? 인생의 삶의 질을 엎그레이드 시키고 싶으십니가?

1. 만남이 중요합니다.

2. 복음이 중요합니다.

3. 부모의 기도가 중요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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