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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상호유희(相互遊戱)1(결혼의 목적)2(차원 높은 행복)3(자발적 수고)

성령충만땅에천국 2015. 4. 13. 11:35

결혼은 상호유희(相互遊戱)1(결혼의 목적)

이병준 대표(파란 Re-born)

안녕하십니까? 부부Fun더하기 이병준입니다.
결혼 20년차를 넘기고 보니 친인척의 결혼식과 지인들의 결혼식을 자주 가게 됩니다.
신랑 신부가 그저 예뻐 보이기만 하는 것은 그에 적당한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도대체 결혼은 왜 할까요?
이 질문에 선뜻 대답이 나오나요? 아니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냥 하는 것이지, 종족보존을 하려면, 뭔가 덜 떨어진 인간 취급 받기 싫거나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결혼 아니면 죽을 것 같아서.. 같은 대답을 하실 것인가요?
만약, 결혼하는 이들이 결혼의 참 목적을 제대로 알고 누린다면 지금과 같은 높은 이혼율이나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 같은 것이 생겨났을까요?

처음부터 서로 다른 남자와 여자   
세계 각국의 건국 설화나 민담, 전설 같은 것을 보면 항상 남녀가 쌍으로 등장하는데 대부분은 남자가 먼저 나오고 여자가 뒤에 나옵니다.
우리나라 단군 신화도 남자인 환웅이 먼저에 웅녀가 뒤에 등장하고, 구약성경 창세기에도 남자인 아담이 첫 번째, 여자인 이브가 두 번째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제가 앞에 신화를 예로 든 것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첫 부부의 배경을 좀 살펴보자는 데 있습니다.
왜 창조주는 첫 부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으로 부르셨을까?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을까? 그들이 처음 결혼할 때 생물학적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
창조순서를 따지자면 사람을 먼저 만들고 나머지를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모든 것을 완료한 뒤에 맨 마지막에 사람을, 그것도 완벽한 성인이며 부부관계로 창조하셨을까?
결혼이란 것이 인간의 의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면 진짜 결혼은 무엇일까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습니다.

결혼의 목적은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현실치료를 창시한 심리학자 윌리엄 글라써(W.Glasser)는 사람은 5가지의 욕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정해진 5단계라고까지는 강조하진 않았지만 그 순서를 보면 단계별 욕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존의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힘의 욕구, 자유의 욕구, 즐거움의 욕구입니다.
그 중에서 즐거움의 욕구가 가장 뒤에 나옵니다. 사람은 즐겁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는 것이죠.
이 정도면 대략 눈치를 채신 분들이 있겠죠? 맞습니다. 결혼의 목적은 잘 노는 것입니다.
창조주의 의도 역시 처음 창조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름을 즐기는 것, 그것이 바로 결혼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 인정하지 못할 때 불행은 시작됩니다.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행복은 시작됩니다.
상담 때마다 ‘남자’와 ‘여자’는 엄연히 다른 존재라고 강조합니다.
강조에 강조를 더하다 보면 ‘남자’를 넘어 ‘수컷’ 이라고 하고 ‘여자’를 넘어 ‘암컷’ 이라고까지 설명할 때가 있습니다.
보다 고상한 차이를 설명하기 전에 가장 원초적이고 생물학적인 차이부터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인정의 차원을 넘어 다름을 즐기는 차원으로까지 가면 비로소 누림의 행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즐거움을 창조하는 인간의 행복        
만약 결혼생활에 해야 할 의무만 있고 쾌락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까요?
이렇게 결혼의 목적이 즐기는 것이라고 하면 가장 경계하는 쪽은 종교일 겁니다. 즐거움과 신앙적 경건은 그다지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것 같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과 절친 이었고 우리에게는 <나니아 연대기>로 잘 알려진 C.S루이스는 결혼생활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쾌락은 하나님의 발명품이지 악마의 것이 아니다. 즐거움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할 때, 영광의 한 줄기 광선이 된다. 그것을 경배의 통로로 만들라. 부부의 즐거움을 거룩한 경배의 통로로 바꿔라.’라고 말합니다.

결혼한 후에 죽지 못해 산다는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납니다.
상담사라는 직업상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친구들을 만나거나 다른 분들을 만날 때도 많은 사람들은 죽지 못해 살아가는 범주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의 진짜 목적을 안다면, 그래서 결혼의 목적인 죽지 못해 사는 것도, 고난의 바다도 아니라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요 그 자체로 충분히 살맛나는 일이라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뒷 시간을 통해서 차원에 따른 행복과 결혼을 위한 수고를 다루겠지만 오늘은 결혼이란 즐거움을 창조하기 위해 하는 것이란 사실 한 가지만 우선 기억해도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결혼은 상호유희(相互遊戱)2(차원 높은 행복)

안녕하십니까? 부부Fun더하기 이병준입니다.
혹시 여러분, 초등학교 때 어려워 풀지 못했던 수학문제나 이해하지 못했던 교과목의 내용들을 고등학생이나 어른이 되니 자동으로 풀었던 경험 있습니까?
그것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수준의 상승이 가져온 긍정적인 결과일 것입니다.
결혼도 마찬가지인데 신혼 때에 피차 풀지 못했던 관계의 난제들을 나이가 드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풀어졌거나 푸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저 묵묵히 참고 견뎌온 것이 잘한 일이 되기도 합니다.

 
기초 차원의 즐거움
가장 기초 차원의 즐거움이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알아서 다 채워줄 때의 즐거움입니다. 마치 엄마처럼 말이죠.
그래서 모든 사람은 결혼할 때 거는 무의식 기대가 배우자가 엄마처럼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지적한 ‘모태 회귀본능’에 근거합니다.
가장 행복한 공간이었던 엄마의 뱃속으로 돌아가 그것을 재 경험하려는 욕구입니다.
특히 남자들은 이 욕구가 강해서 남자들이 여자를 향해서 ‘착하다’라는 개념을 쓸 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알아서’ 채워주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가장 생물학적인 기본 욕구인 의식주에 관계된 것들에 관해선 더더욱 그렇습니다.
배우자가 나의 필요를 채워줄 때의 감동은 행복을 만들어내는 것 맞습니다.
, 그것이 늘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나 할까요?
또 그런 단계보다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 차원의 행복을 누려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방법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쿠버 하기 전 초보자들은 가장 기본적인 훈련을 받은 후에 물속에 들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섹스도 정서적 교감이 있어야 즐겁다        
앞 시간에 결혼은 상호유희, 즐 결혼의 목적은 즐기기 우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결혼은 즐기기 위한 것... 결혼과 즐긴다는 말을 생각하면 ‘첫 날밤’을 단번에 떠 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맞습니다. 그 즐거움은 단연코 첫날밤과 연관되는 성, 즉 섹스입니다.
섹스는 종족보존을 위한 기능도 있지만 그보다 부부간의 즐거움을 위한 장치입니다.
부부간의 성이 정말 즐거우려면 정서적 연결까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말에 ‘속궁합이 잘 맞는다’는 개념은 생물학적으로 변강쇠에 옹녀라는 의미가 아니라 정서적 교감까지 잘 되는 부부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통하지 않을 때 남자든 여자든 섹스는 그렇게 의미 있는 행위는 아니니까요.
그런 면에서 가끔 70이 넘은 부부들을 상담해 보면 배우자가 죽었을 때 자기는 절대 눈물 흘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분들이 만납니다. 여성들이 절대다수겠죠?
그 이유는 차원적 즐거움을 제공받지 못한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서 생기는 것입니다.

추상적 사고 차원의 행복     
나아가 가장 높은 차원의 행복은 추상적 사고에서 옵니다.
그것은 직관과 지혜에서 오는 행복을 말합니다.
이익을 계산하는 탁월한 논리와 똑똑함 앞에서도 단연코 빛을 발하는 것이 직관과 지혜입니다.
중고생에서 “너희 엄마와 할머니 중에 누가 더 똑똑하냐?” 라고 물으면 아이들은 엄마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엄마와 할머니 중에 누가 더 지혜롭나?” 라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할머니라고 대답합니다.
학교, 공부, 현대인의 과학, 이성, 지식을 넘어선 삶의 지혜는 세상을 오래 살아오신 분들에게서 발견되는 무형의 자산입니다.
이것은 논리적 사고의 틀을 넘어 선 추상적 사고의 틀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 우정, 봉사, 이타심..등등의 추상적 사고의 행복, 그것은 줌으로써 도리어 넉넉해지는 역설의 세계라는 점이죠.
그런 점에도 결혼의 행복은 받기만 하는 행복, 주고받는 행복, 주고도 더 행복한 행복의 차원으로 점점 더 올라가는 것이겠죠?
다큐멘터리 영화로 500만 가까운 관객을 감동시켰던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속에 등장하는 노부부의 모습을 보면 정서적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게 됩니다.
서로를 향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분들이죠.
서로를 위하면서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관계의 역설을 아시는 분입니다.

결혼은 상호유희(相互遊戱)3(자발적 수고)

안녕하십니까? 부부Fun더하기 이병준입니다.
저는 부부상담 시 제 아내와 함께 내담자 부부를 맞이합니다.
상담을 전공했다는 것도 이유지만 그보다 부부상담이니 부부가 같이 하는 게 좋을 것이고, 남자인 내가 보지 못하는 영역을 여자인 아내의 눈에 보이는 것도 있을 테고 내담자 부부 쪽에서도 성()이 다른 상담자에게 미처 말하지 못할 부분도 부부 상담자에게는 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마누라 좀 바꿔 주세요.   
오십대 중반의 남자가 메일로 상담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 메일 상엔 세 딸 중 둘째 아이를 감당할 수 없으니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는데 막상 대면하니 둘째 딸과 싸우는 마누라 좀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아내를 다음 회기에 데려오라고 했는데, 그 아내분이 흔쾌히 오셨습니다.
“남편께서 상담을 의뢰하셨고 아내분과 딸아이가 하도 싸워서 마누라 좀 바꿔달라고 요청하셨는데요, 제가 어떻게 할까요?” 라고 묻자 아내는 콧방귀를 뀌며
“치! 내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더 문제지”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소연을 시작합니다.
남편이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가사 일은 나 몰라라, 집에선 TV만 보고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관심과 애정도 없어 놀아주거나 살갑게 무등을 태워준 적도 없고, 가족끼리 어디 갈 때도 모든 운전은 아내 몫이고 남편은 조수석에서 코를 골며 잔답니다.
막힐 때 장시간 운전은 피곤하기도 하고 졸음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니 운전 좀 배워서 졸릴 때만이라도 도와달라고 부탁해도 들은 채 만체 라고 합니다.
아직껏 운전면허도 안 따고 택시 타고 다닌 답니다.
아이들도 어릴 때는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싶다”고 요구하다가 이제는 아예 등돌리며 산다고 합니다.
남편에게 확인했더니 정말이라고 인정합니다.

즐기기 위해선 수고가 필요
연인들이 데이트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사랑의 감정도 있지만 서로를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또 무엇을 하든 다 수고를 감내해야 합니다만 정작 수고한 것은 모릅니다.
자발성이 한 컷 부풀어 오른 상태입니다. 그래서 수고를 수고로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수고를 해 주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미안해합니다.
이때는 배우자가 무엇을 요구하든지 Yes가 됩니다. 흔히 밤하늘의 별을 따 준다는 말도 통하는 것이 되죠.
그러나 결혼은 그렇게 감정적인 부분으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의 단계가 끝난 이후에는 의지를 동원해서 수고해야합니다.
그것을 미국의 스틴 텟 박사는 ‘헌신(commitment)’ 이라고 부릅니다.
행복한 가족을 연구하여 그 특징이 무엇인지를 밝혀진 사람인데요, 그 첫 번째가 헌신이었다는 겁니다.
헌신이란 개념은 (…한다는) 공약, 서약을 말합니다. 말 그대로 혼선서약에서 답했던대로 이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수고를 말합니다

의식수준 
데이비드 호킨스(David Roman Hawkins) 박사의 <의식혁명>이란 책에선 인간의 의식지수를 단계를 설명합니다.
의식지수 200 아래의 인간은 죄의식, 수치심 같은 것으로 가득 차 있어서 “예"가 없고 모든 일에 무조건 'no'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자기 생각의 틀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굴 표정은 물론 몸도 다 굳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의식지수가 200은 ‘용기’ 라고 하는데요, 이 단계로만 올라가도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면서 표정이 밝아진다고 하죠.
그 남편 분에게 운전면허를 따게 하는 것,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고 학원에 다니는 최소한의 용기가 자신의 삶을 바꾸는 첫 출발점이 된다는 일이었습니다.
이행 여부는 따로 상담을 오겠다는 말만 들었기 때문에 결과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대가 없이 사랑을 얻겠다는 것은 씨앗도 뿌리지 않고 가을에 곡식을 거두겠다는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만약 그분이 운전학원에서 운전을 배우고 면허를 따서 가족 나들이 때 운전을 하기로 선택하는 일이 많아지면 온 가족의 행복지수고 덩달아 올라갈 겁니다.
왜냐하면 의식지수 300이 넘어가면 자발성이 증가하니까요. 자발적인 행동은 스스로도 행복하면서 동시에 남도 행복하게 하는 탁월한 방법입니다.
여러분도 자발성의 수준까지 이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