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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총연합회, 돌팔매 맞고 철저히 죽어야 부활 / 이동원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21. 20:17

"한기총, 돌팔매 맞고 철저히 죽어야 부활"

 

‘배신자’ 자처한 이동원 지구촌교회 목사
 대형교회 부패, 안에서 얘기하면 병신만 돼
   교회만 나가면 천당간다는 것은 성경 왜곡
 
 
a1.jpg 지난 1일 서울 명동 청어람에선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해체 토론회’가 열렸다. 여러 강사 중 단연 눈에 띈 이가 있었다.
 분당과 수지 두 대형교회를 이끄는 지구촌교회 이동원(65) 목사였다. 국내 대표적인 대형교회 목사 중 한 명인 그가 보수교회 진영의 총본산인 한기총 해체를 역설하고 나선 때문이었다. 그가 ‘손발을 자르고 가자’며 한기총 해체에 발벗고 나서자 한기총 쪽은 ‘배신자’라며 바르르 떨고 있다. 
 하지만 배신의 싹은 진작부터 자라고 있었다. 다른 교회라면 아마 ‘성도 10만여 명’이라고 부풀려 자랑할 일이지만, 그는 출석수를 정확히 세서 ‘2만5천 명’이라고 했다. 대다수 목사들이 신자들을 어떻게 하면 교회에 묶어둘까를 고민하는 동안 그는 신자들에게 교회에 오래 머물지 말라고 강조했다. 가정과 직장생활에 충실한 것이 신앙 생활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목사가 수없이 후임이나 신자들과 갈등을 빚는 대형교회 실상과 달리 그는 신자들과 단 한 번 싸웠을 뿐이다. 자기 월급을 올리지 말라면서. 그는 정년 70살을 5년 앞서 지난 연말 은퇴를 단행했고, 후임 진재혁(45) 목사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3년 시한으로 ‘멘토링 목회’를 하고 있다. 대형교회 목사가 은퇴하면서 마지막으로 챙길 수 있는 비장의 카드인 ‘거금의 퇴직 사례비’와 ‘주택’을 받지 않기로 했다. 안 받아도 충분히 살 만하다면서.
  
 신자들과 딱 한 번 싸웠다, 자기 월급 올리지 말라고
 
 인터넷엔 그에 대한 화제의 글이 떠다니고 있다. 한 진보파 신자가 아내의 강권에 못 이겨 마지 못해 지구촌교회를 다니면서 더 이상 안 다닐 핑계거리를 찾기 위해 그의 설교를 3년 동안 ‘감청’했지만 철저한 균형감각을 유지한 그의 설교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내용이다.
 이 목사는 지난해 말 은퇴하면서 참회문을 발표했다. ‘조국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민족 역사의 한복판에서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방관자로 살아온 일, 그리고 지도하던 젊은이들을 깨어있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역사의 마당에 서도록 인도하지 못한 점’을 참회했다. 또 교회 내 부유한 기득권층들이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적 설교를 제대로 못한 것도 참회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주었던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의 권유를 받고 은퇴 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이사장을 맡았다.
 한기총의 부패와 여의도순복음교회, 소망교회 등 대형교회들의 스캔들로 어느 때보다 우울해진 부활절을 앞두고, 지난 18일 분당 지구촌교회로 가 ‘이상한 목사’를 만났다.
 
 중학생 때 집안 파산…선교사들에게 영어성경 배우다 신학 빠져
 
 -나이가 들면 보수화된다고 하고, 대부분이 자기가 속한 곳의 이해를 대변하기 마련인데, 왜 천당 옆에 분당이라는 부자동네 대형교회 목사가 기득권의 대변을 자처한 한기총 해체를 주장하고 나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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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기총이란 좁은 렌즈보다는 큰 틀에 제 인생 말을 드리고 싶다. 나는 너무 가난하게 자랐다.  중학교 합격하던 날 사업이 파산해 아버지가 감옥에 갔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가정교사를 했다. 고등학교 때는 시간교사 한 타임 하고 입주 가정교사를 했다. 장남이고 동생이 여섯이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하고 빚지고 한동안 행방불명이 됐다. 가정교사 하면서 동생들 도와야 하는 형편이었다. 제 한 사람 인생 챙기기도 어려운데 동생까지 챙겨야 하니 최악이었다. 경복고 다녔는데, 가정교사 하니 대학입시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 내 공부를 하면서 가정교사 하던 집의 할아버지에게 야단 맞은 추억이 있다. 자기 손자 아이는 안 가르치고 네 공부를 하느냐고 혼났다.
 고등학교 때 제일 친했던 친구가 국회의원 한 문희상인데 함께 서울대 법대를 봐 같이 떨어졌다. 문희상은 의정부에서 아버지가 책방해서 잘살았지만 나는 가난에 대한 한이 많았다. 일 년 재수하는 동안에 예수를 믿게 되었다. 기독교 집안도 아니고, 기독교적인 가정의 배경이 전혀 없었다.  재수하는 동안 영어 가르치는 선교사들에게 영어를 좀 배워야겠다며 영어로 성경을 공부했다. 처음엔 영어만 배울 속셈이었는데, 성경이 이상하게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예수를 믿게 되면서 갑자기 신학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게 밀려들었다. 회심의 체험이었다. 선교사 도우면서 선교부에서 일을 하고, 신학을 했다.  동생들을 돌보고 어머니도 도와 드려야해서 공부를 제대로 할 형편도 아니어서. 신학을 기웃거렸지만 국내에선 만족이 안됐다.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미국에 갔다. 그때만 해도 목사 된다는 생각은 없고, 대학생들, 젊은이들과 학생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역사 힘들었을 때 함께 못한 것이 마음 속에 죄책감
 
 미국 가기 전에 젊은이들 전도하는 분들을 만났다. 하용조 목사와 홍정길 목사였다. 그 당시 성덕교회 대학부를 지도하는 옥한흠 목사를 만났다. 그때 우리는 젊은 사람으로서 복음주의 운동권에 몸담고 있으면서 마음이 통하는 경험을 했다. 우리는 친구가 됐다. 옥 목사님이 큰형님처럼 잘 챙겨주었다. 그래서 4인방이란 별명이 붙었다. 처음엔 우리도 교회 안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 교회 밖에 복음주의권에 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마음이 통하고 생각이 비슷했다. 우리는 늦게 신학을 했다. 그러면서도 우정과 교류가 계속 됐다.
 그런 배경에서 자라 가난을 잊어본 적이 없다. 그 당시 보면 제가 첫 신앙의 영향을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진 분들로부터 받았다. 그때 그 당시 가지고 있던 생각은 신앙을 잘 전하면 사회는 저절로 좋아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복음주의권 사람들은 다 고민했을 것이다. 우리가 방관만 해도 되나.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면 세상은 좋아질 것이라 여겼다. 우리는 직접 운동권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내면의 갈등이 있었다. 누구나 신앙의 전이가 있다. 근본주의 신학의 협소함을 알고 그 알을 깨는 과정이 있다. 복음만 전하면서 세상이 좋아지는 게 아니구나. 책임을 져야 하는데, 기회를 놓친 것이다.
 언페이드 빌. 지불 하지 못한 빚이란 말이 있다. 미국 복음주의권도 똑같은 표현을 쓰더라. 하지만 정치행동을 통해 부조리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도 있지만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사회복지운동을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성경에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해서, 선전하지 않아서 그렇지 지구촌교회도 사회복지기관을 9개를 운영한다. 선교복지에 교회 재정의 40%를 지출한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본다.
 나 자신도 교회가 성장하면 힘과 자본이 생기니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내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았다. 그 중에 손봉호 교수가 있다. 미국에 있을 때 유학생 전도하는 기관 코스타를 이끌었다. 12개 나라에서 30개 모임에 해마다 2만 명 이상이 참여한다. 초창기부터 홍정길목사와 둘이서 주도적으로 끌어왔다. 초창기부터 우리를 끌어온 분이 손봉호교수와 이만열 교수다. 복음주의권 안에서 사회에 대해 열린 분들이다. 좋은 영향을 그분들에게 받았다. 그러나 정치구조에 뛰어들어 우리 역사가 힘들었을 때 함께하지 못한 것이 마음 속에 죄책감처럼 괴롭혀온 의식 가운데 하나였다.
 
 이동원 목사가 갑자기 왜 그러냐는데 내 자신에 대한 비판
 
 -그래서 은퇴하면서 참회한 것인가.
 =살다보면 보람스런 일도 있고, 후회도 있다. 그래서 정직하게 둘 다 얘기하는 게 옳겠다고 생각해 다섯 가지 참회와 다섯 가지 감사를 했다. 하지만 잘못한 것을 후회로 끝나면 안 되고, 남은 인생을 잘 섬기느냐 하는 게 중요하다. 그 무렵 손봉호 교수가 만나자고 해 점심 하면서 기윤실을 섬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마음은 있지만 사회운동의 경험이 없었다. 사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기윤실이란 책임을 맡았다. 맡자마자 한기총 사태가 터졌다. 한기총 관련된 분들 다 아는 분들이어서 이들이 하는 일을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픔이고 고통이다. 한국교회가 권력지향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방향으로 한기총이 부각돼 기독교가 부끄러움을 당하니 침묵만이 능사가 아니고, 내 입장이 어려워도 큰 틀에서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대형교회 목사가 그러니 뭐라 하는가.
 =지금도 어렵다. 이동원 목사가 갑자기 왜 그러냐고 한다. 그러나 더 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할 때다. 한기총에 몸담은 그분들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을 비판하고 내 자신에 대한 결단이고 회개다. 그 부패에서 나만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다. 나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수술하는 마음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왜 5년 앞서 은퇴하고, 청빙위원회에 관여하지도 않은 채 신자들이 후임 담임목사를 청빙하도록 맡기고, 은퇴사례비와 주택마저 거부했나.
 =한 순간의 결단은 아니었다. 93년에 개척한 지구촌교회가 7년이 지나면서 비전위원회를 만들었다. 21세기 진입하면서 우리 교회 방향이 뭐냐. 교회 각계각층을 대변하는 비전스터디 위원회를 했다. 미국에 있었으면 편안하게 있다가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일생에 조국에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기여하고 싶다고 왔는데 7년 만에 1만 명이 모였다.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뭔지 평신도들과 토론하고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모임을 1년 동안 가졌다.
 그 중에 웃으면서 한 분이 조크처럼 애기했다. ‘우리 교회도 이러다 이동원 목사의 왕국이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웃고 지나갔는데 잊을 수 없더라. 헌금도 모이고 사람도 모이니 힘으로 의식될  가능성이 있더라. 교회가 세 가지 결단을 했다. 첫째는 6개월간 몸살을 앓듯 기도하면서 부분 부분의 건강을 위한 셀교회운동이었다. 12명씩이 셀교회다.  평신도들도 목사와 같은 의식과 비전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중앙집권이 아니라 교회가 분산적으로 평신도들이 셀을 운영해 하나하나 건강하면 전체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
 지금에서 보면 그것 안 했으면 큰일 났겠다 싶다. 셀운동 모르는 분은 다단계 아니냐고 비판한다. 교회 성장을 위해 한 것은 아니고, 교회 본질의 회복을 위해서 했다.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들과 모인 것처럼. 커지면 군중처럼 모였다 흩어진다. 12명이 모이면 별 이야기를 다한다. 직장과 가정에서 어려움도 이야기하며 울고 기도하고 서로 붙들어준다. 일종의 공동체운동이다. 예수가 12제자와 함께 했던 교회 본질로 돌아가는 운동이다.
 
 행정간섭이 아니라 목회철학과 비전 계승되도록 멘토링
 
 왜 이동원 목사 왕국이란 소리 나오냐. 그렇게 되면 목사만 좋은 일 시킨다, 언젠가는 떠나야하는데. 꼭 70살까지 해야 할 필요 있느냐. 65세 은퇴를 그때 결정했다. 2001년에도 그 소리했고, 2002년에도 전교인 앞에서 했다. 2010년 마지막 주일 예배 드리고 은퇴하겠다고 했다. 은퇴만이 중요시되고, 은퇴 때 한몫 챙기고 떠나지 않느냐. 은퇴비, 주택 두 가지만 포기하면 되겠더라. 은퇴비와 주택 안 받고 그것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더라. 평소 목회하면서 돈에 관해선 얘기해본 적이 있다. 월급 올리지말라고 싸워는 보았다. 교회 돈을 두려워했다. 의식적으로나 자신을 위해서 조심하는 일을 해왔다. 누릴 수 있다면 마지막에 챙겨가지고 가는 건데, 그때 교회 앞에 선포했고, 작년 말에 약속을 지킨 것에 불과했다. 저로서는 약속을 지키는 당연할 일에 불과했다.
 -신도들의 자부심이나 만족도 크겠는다.
 =그만두고 더 잘되더라. 좋은 소문이 나서.
 -은퇴식 이후 곧 교회를 떠나지 않고 3년 동안 멘토링 목회를 하는 것인가.
 =은퇴엔 두 가지 모델이 있다. 은퇴한 그날로 뒤도 안 돌아보고 단절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에선 이것을 깨끗한 은퇴라고 생각해왔다. 하나는 은퇴하고서도 리모트 컨트롤로 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은퇴목사와 담임이 갈등하며 아픔을 낳는 경우다.
  비전연구회 두 번 만들어져 그분들과 의논해. 다른 모델은 없느냐. 이런 갈등은 한 목회자가 교인들과 목회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오랫동안 해 비전에 하루 아침에 바뀔 때 그 혼란을 감당하지 못한다. 후임 선정하는데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는 참여했다. 실제 선정하는 데는 참여 안 했다. 가이드라인만 합당하면 누구라도 좋다. 목회 비전과 철학에 맞는 사람이면 된다. 결과론적으로 보니까. 예상했던 4명이 남았다. 4명 중 누가 되어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급격하게 전환했을 때 훈련이나 연속성이 없을 때 혼란이 오므로 행정간섭이 아니라 목회철학과 비전이 계승되도록 멘토링은 필요하다. 3년 하면 그분이 완전히 홀로서기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현재까지 교인들은 너무 좋아한다.
  
 교회가 세상 걱정해야 하는데 거꾸로 된 상황에 엎드려 사죄
 
 -이제 대형교회 부패와 싸움은 희소하지 않아 별 기사가치도 없는데, 너무 많은 제보 전화가 와 업무에 지장이 많다.  어떻게 기독교 안에서 해결 안 되나.
  =저희들 잘못이다. 엎드려 사죄한다. 너무 부끄러운 일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유일한 기대가 있다면 바닥까지 쳐서 다시 일어섰으면 하는 것이다. 처음엔 절망하다가 하나님이 바닥을 치게 하는구나. 그런 마음을 가진다. 개신교의 특이한 구조와도 관련이다. 개신교는 어느 종교보다 열린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를 활용 못하고 있다. 우리 안에서 개선이 되면 외부로 안 간다. 그런데 안 되니 가는 것이다. 자정능력이 우리에게 없다. 어떤 분들은 왜 자정능력이 있는데 외부로 가져가느냐고 하는데, 안에서 얘기하면 병신만 되고 해결이 안 되니 밖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활용을 못한다.
 -요즘 개신교의 문제는 세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요즘은 사회의 일반적인 수준만도 못하다 대형교회가 한국교회의 얼굴로 인식돼, 한국교회 전체가 썩은 것처럼 인식된다. 대형교회들이 왜 그런가.
 =한국 개화기엔 개신교가 앞장서갔다. 개신교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역할을 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이제 세상이 교회를 걱정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대형이기 때문에 넘어지면 넘어지는 소리가 너무 크다. 사이즈가 커서 그렇다. 나도 대형교회를 했던 사람으로서, 몸집도 어떻게 해야 하느냐. 담임으로 있을 때 이런 얘기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은퇴시점에 하는 것은 모순이 있다.
 대형교회 안에도 감사 시스템이 잘 들어오면 괜찮다. 미국서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전도자들의 부패스캔들이 났을 때 그들에게 기부하는 것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면서 재정감시단체가 만들어져 그곳에 가입하면 감사를 해주고, 거기서 감사 받는게 교회나 단체는 명예가 된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그런 곳은 건강하니 기부를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몇몇 목사들과 그 일을 시작했다. 지금 설립연구 단계에 있다. 교회가 자정능력을 갖추려는 노력을 해야하지 않겠느냐. 자기 결단이 필요하다. 지도자 의식의 문제가 크다. 그런 것을 할만한 교회는 안 해도 된다. 심각성을 인지도 못하는 쪽이 문제다. 우리가 하지 못하니 세상과 언론을 통해 교회를 깨우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위선자 등이 교회에 있다는 것만으로 교회 욕해선 안 돼
 
 -개신교에서 ‘믿기만 하면 천국간다’는 도그마가 책임의식과 도덕성이 결핍되는 쪽으로 기능한 것 아닌가.
 =종교개혁자들이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행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는 아무리 해도 모자란다는 겸손을 강조한 것이다. 최선의 행위를 하고도 겸손해야 한다. 그게 개혁자들의 의도인데, 행함에 상관없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잘못 오해될 때 문제가 생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은 새로운 행위, 변화된 삶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노력이 가진 한계를 깨달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뉘앙스를 좀 바꾸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자기 행위에 책임지지 않고, 아무리 죄를 많이 져도 교회만 나가면 천당간다는 것은 성경의 왜곡이다.
 -교회의 부패를 보면서 신앙이 과연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키느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어떤가.
 =성경에도 악에 익숙한 너희가 변할 수 있다면 구수인이 피부가 변할 수 있으며, 표범의 반점이 없어질 수 있겠느냐고 했다. 변화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 변화가 어렵다면 기독교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어렵지만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복음이다. 목회하면서 두 가지 면에서 변화를 본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면 가치관이나 생활이 변화된다. 회심이다. 그것이 목회의 보람이다. 진지한 회심이 일어나면 변하더라. 회심 이후 진지한 영성훈련과 진지한 제자훈련이 필요하다. 그것을 커리큘럼을 끝내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변한다. 그런 훈련 과정 중에서도 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가치관이 변하기도 한다. 그것 없으면 목회를 못했을 것 같다. 그게 목회의 보람이다. 실존적인 고민도 많이 했는데, 많지 않지만 변화하는 사람들 보면 그게 목회고 보람이다. 그것은 포기하지 않은 희망이다.
 -원래 목사님 같은 분은 심성이 좋은 분이었고, 나쁜 분이 좋게 변했다고 생각되지 않을 수 있지 않느냐. 변했다는 사람들도 언제 사고칠지 모르는 것 아닌가.
 =사실이다. 시에스 루이스가 그런 말을 했다. 신앙권 안에서 케이스 스터디를 해보니, 그나마 신앙을 붙잡아서 그런 정도로 와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도 변화의 정도가 같지는 않다. 병원 안에서 치료 속도가 다른 것처럼. 교회가 병원이다. 교회 안에 환자가 와야 한다. 위선자 등이 교회에 있다는 것만으로 교회를 욕해선 안된다. 그들이 와야할 곳이 교회다. 그러나 그들이 빨리 변했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병원이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 그래도 병원은 존재해야 한다.
 
 비전에 금을 긋지 못하면 욕망…인간 한계 받아들여야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야 한다지만 교회는 환자보다는 건강하고 부유한 사람들을 더 원하는 것 아닌가. 가난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교회의 문턱은 높지 않은가.
 =사실이다. 교회가 다양화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미션을 지향하느냐가 중요하다. 똑같이 사람만 많이 모이는 대형화는 안 좋은 것이지만 어떤 대형교회는 이런 것을 전문으로 하고, 어떤 곳은 특수한 유형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겠느냐. 요즘 새 교회운동, 미쇼날 처치운동, 선교적 교회가 있다. 선교사 보낸다는 의미가 아니고, 교회 공동체 자체가 선교사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이런 사람들을 돕겠다고 전문화되는 것이 좋다. 저희는 분당이나 수지 지역에서 노인 복지를 중심으로 6,7년간 해왔다.
 -어떻게 부활할 수 있는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한다. 지도자들도. 리더가 죽어야 리더쉽이 살아난다. 노우 크로스, 노우 크라운이다. 십자가 없이 왕관 없다. 십자가에서 철저하게 고난받고 죽어야 한다. 옛날에 엠비시가 한국교회 많이 다룰 때 항의하자고 했을 때 그랬다. 항의는 무슨 항의냐. 그 말이 맞는데, 돌팔매질하면 매 맞고 죽자. 그래야 부활이 온다. 지금은 돌팔매질을 맞고, 철저하게 죽어야 할 때다. 그러면 하나님이 부활의 새날을 줄 것이다.
 -요즘 많이 생각하는 성경 구절이 있나.
 =시편 131편을 좋아한다. 세 절밖에 안된다. 제가 젊었을 때 같으면 안 좋아했을 것이다. 일부러 시편 설교를 안 했다. 요즘은 시편을 많이 생각한다. 경계선 긋기다. 인생을 사는 모티브가 비전이다. 같이 와야 할 것이 바운더리다. 거기서 시편 기자가 ‘높은 눈을 갖지 않고 낮추나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고요한 마음의 평화를 선물로 주었나이다’고 했다. 비전에 금을 긋지 못하면 욕망이 된다. 비전은 제 인생의 가장 큰 모티브였다. 인간됨의 특성은 자기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가능은 없다가 아니라 불가능은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니 평화가 뭔지 알겠더라.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출처]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