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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14-29)

성령충만땅에천국 2011. 4. 22. 10:24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14-29)

 

현대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믿지 못하고, 자식이 부모를 믿지 못하며,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의심하며, 친구끼리도 서로 믿지 못하는 풍조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까지 믿지 못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되면, 결국 그 불신앙으로 인하여 큰 좌절과 실패가 따를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함은 물론이고, 남편이 아내를 믿고, 아내가 남편을 믿고,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믿고, 더 나가서 우리의 이웃과 사회를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신앙의 장애물이 있다면,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를 믿고 신뢰하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전도하시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변화산상 사건 이후에 있었던 치유 사건으로, 어릴 때부터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서 내려오셔서, 나머지 아홉 명의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오셨습니다. 그곳에서는 서기관들과 제자들이 많은 무리에 싸여 변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버지가 벙어리 귀신들린 자기 아이를 데리고 와서, 제자들에게 고쳐주기를 간청했지만, 제자들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서기관들과 논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고,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그 자리에서 귀신을 꾸짖어 나가게 하고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자신들은 왜 귀신을 쫒아내지 못하였는지를 질문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어떻게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믿음의 부재로 인해 벙어리 귀신을 쫓는데 실패한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14-1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아멘.

 

예수님께서 열 두 명의 제자 중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나 예수님과 더불어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읍시다”라고 말했지만, 그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몹시 무서워하고 있었음으로 인하여,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변화산에서의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일생일대, 그런 영적인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드문 일입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누구에게나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하고서 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내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다른 제자들에게는 말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산 밑에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산 위에서 영적인 황홀한 경험을 하고 내려왔는데, 산 밑에서는 문제 가운데 둘러싸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형편이었습니다. 영적인 황홀한 경험이 세상 염려와 문제와 걱정과 근심으로 인하여 산산조각 깨어져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 왔을 때, 산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홉 명의 제자들은 큰 무리에 둘러싸여 서기관들과 변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온 무리가 예수님을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우물쭈물 말을 못하고 있자, 어떤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제자들에게 보이며 귀신을 쫓아달라고 했지만. 제자들이 쫓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태는 이 아이의 병이 ‘간질병’이라고 했습니다. 간질병은 발작을 일으키는 예측 불허의 병입니다. 갑자기 거꾸러져 소리를 지르며 몸에 심한 경련을 일으켜 뒤틀어지고, 입 안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가 한참 후에야 의식을 회복하는 발작성 질병입니다.

이 아이는 반복되는 이러한 고통으로 몸이 파리해 간다고 했습니다. 풀이 시들어 말라 죽어가듯이 발작 증세로 인하여 아이가 점점 쇠약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 없음을 꾸짖으시고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믿음이 있습니까? 어떤 믿음이 있습니까? 산을 움직일만한 믿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죽은 믿음입니까?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십니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마음의 소원들이 다 이루어질 수 있는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14:22-33절을 보면, 물위를 걷다가 의심하여 물에 빠진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자신은 기도하러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탄 배가 심한 풍랑으로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 오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자,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 허락을 받은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오셨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거센 풍랑을 바라보고, 그만 무서운 생각이 들어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소리 질러 살려달라고 외쳤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함께 배에 오르시니 신기하게도 풍랑과 바람이 그쳤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아 의심과 불신은 좌절로 가는 지름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불행해지고 자신의 일에 실패하는 이유는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거나 불신하지는 않았는지요? 믿음이 없는 행동으로 믿지 않는 자에게 덕이 되지 못한 것은 없는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아니하시고, 보살펴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고 열심있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음의 푯대를 향하여 날마다 힘차게 달려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20-2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아멘.

 

예수님은 제자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신 후,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귀신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내쫓을 것을 알고, 예수님을 보자마자 아이에게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아이는 거꾸러져 몸을 떨고, 근육이 수축되어 격렬하게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땅바닥에 넘어져 이리저리 뒹굴면서 거품을 흘렸습니다.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고통을 겪었고, 불과 물에도 자주 넘어졌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애끓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아이는 그의 외아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사람은 더욱 간절히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간구했습니다. 비록 믿음은 부족했지만, 예수님께서 고쳐 주시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주님의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아이의 아버지는 간절한 바램으로, 주님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야고보서 1:5절을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 55:6절에서는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고백하여야 합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사업에 실패했으면 실패한 모습 그대로, 문제가 있으면 문제 있는 그대로, 아픔이 있으면 아픈 마음 그대로, 질병이 있으면 질병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간절히 간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하려면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도 가능케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간구하십시오.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반드시 얻게 되고, 찾게 되고, 문이 열리는 역사가 나타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5:1-9절을 보면, 베데스다에서 못에 가셨을 때, 그 행각에 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습니다. 천사가 그 못에 가끔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 다 나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 그곳에 38년된 병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이미 오랫동안 고생한 것을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병자는 물이 동할 때마다 자신을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자기가 가고자 하면 다른 사람이 먼저 간다고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38년된 병자가 고침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갔습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우리는 어느 누구를 탓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의 믿음 때문에, 지금의 나의 모습이 결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의 믿음 때문에 내 모습이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믿음으로 인하여 나의 삶의 모습이 달라질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때에, 실패하여 낙담할 때에 주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은 한이 없으십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축복하여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하심으로 여러분을 아름다운 동산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언제나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여러분! 이 아이의 아버지처럼, 믿음이 없으면 없는 대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내게 믿음 없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믿음 없으면 없는 대로 내 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믿음의 능력을 강조하시는 예수님과 믿음에 대한 아버지의 결단을 볼 수 있습니다.

23-2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아멘.

 

아이 아버지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믿음을 강조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믿으면 못 고칠 병이 없으며, 믿으면 해결 못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기적의 비결은 오직 믿음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의 병이 낫고 안 낫고는 오직 예수님께 대한 신뢰와 능력을 믿는 믿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즉시 믿음에 대한 결단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결단하면서도, 자신의 믿음을 진솔하게 고백하고, 예수님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여러분! 믿음 없는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왔지만, 믿음 없는 모습으로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 구했지만, 주님을 만남으로 인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인하여, 믿음을 촉구하는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믿음의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자랑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겸손의 아닙니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많은 말씀을 들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닌 교만인 것입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모든 것을 다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옵소서”라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 믿음 허락하여 주시고, 은혜 주시고, 복 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9:20-22절을 보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 12년 동안 앓던 혈루증을 고침받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계실 때,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모여 들었는데, 그 중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그 동안 병을 고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재산만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자, 그 순간 그녀의 혈루증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내 옷에 손을 댄 자가 누구냐?”고 하시자, 그녀가 떨며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여인에게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르짖으며 다가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분께 믿음을 가지고 가까이 다가갈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왜 기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을 만진 사람과 아무 생각 없이 예수님의 옷을 만진 사람의 차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차이입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믿음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과 믿음이 없이 그냥 나오는 사람의 삶의 모습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 나오실 때,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오늘은 꼭 주님을 만나야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오십시오. 오늘은 꼭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오십시오. 오늘은 꼭 주님의 약속을 받아내야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집에 나아오십시오. 그런 사모하는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교회에 나올 때,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주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학자인 폴 틸리히는 “크리스천에게도 계속하여 의심이 생긴다. 그런데 의심에 대한 해결은 고민하거나 분석하고 연구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용기로서 의심을 물리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가능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의심보다 먼저 용기를 가지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자에게, 반드시 은혜와 축복과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나의 믿음을 뒤돌아보고, 결단함으로써 주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는 성도들, 모든 일들이 주 안에서 풍성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 권위있는 말씀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25-2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아멘.

 

예수님께서는 아이를 붙잡고 있던 질병의 귀신을 내쫓아주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마귀를 위하여 일한 악한 영들’입니다. 인간보다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도덕적으로 사악한 존재입니다. 이 귀신은 하나님의 뜻을 훼방하고, 사람들을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귀신이 들렸다’는 것은 귀신이 사람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통제하고 다스려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귀신들린 자는 헛소리를 하기도 하고, 미쳐 날뛰기도 하며, 각종 병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귀신은 예수의 이름으로만,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만 힘을 잃고 쫓겨 갑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귀신은 쫓겨나기 직전 최후의 발악을 하며, 다시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쫓겨 가는 귀신의 발악으로 지친 아이는 죽은 사람같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떠나갔음을 의미합니다. 아이의 병이 완전히 치료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아이는 정상이 되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간질병 귀신을 아이에게서 몰아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휘니 박사의 간증입니다. 그는 일찍 감치 29세에 변호사가 된 수재로 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많은 장서중 성경이 없으면 상식에 벗어남으로 그는 남에게 보이기 위하여 큼직한 성경 한 권을 꽂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일에 쫓겨 성경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석에 누워있게 되었는데, 매우 외로워서 오랜만에 성경을 책장에서 꺼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읽으면 읽을수록 성경의 진리 속에 묻혀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학 공부를 하였습니다. 결국 생애의 대전환을 일으켜 법관이나 정치가로서 대성할 꿈을 버리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뉴욕의 유명한 브로드웨이 태버나클 교회를 창립했고, 오벌린 대학의 제2대 총장으로 종교교육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 말씀보다 세상적인 욕망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만이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게 하고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섯째, 기도의 능력을 강조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28-2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아멘.

 

예수님께서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주시자, 이것을 지켜 본 제자들은 매우 놀랐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무능력함과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조용히 예수님께 와서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에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기도만이 이와 같은 귀신의 역사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의 기도없이 주님의 일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기도’란,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아뢰며 구하는 것입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고,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5:15절을 보면,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생명입니다.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기도를 사랑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병을 고치는 약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함으로써 어려운 문제를 해결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제자들은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단 번에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시고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힘이었고,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기도는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여호와의 보물 창고는 기도로써 열리며, 믿음으로만 그 열쇠를 돌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철저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함으로써 늘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승리의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에게 큰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고, 큰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둥근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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