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로 오신 성탄절! (사 9:1-7)
연말이 되어서 음주단속이 새벽에도 이루어졌는데 적발된 수가 상당하다고 발표했습니다. 죄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순경에게 걸렸답니다. "과속입니다" 운전하던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술 한 잔 했더니 정신이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통순경은 "음주운전을 추가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아내가 자기도 모르게 "무면허라 맨 정신에는 겁이 나서 운전을 못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교통 순경은 "무면허 운전을 추가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뒤에 앉아 있던 장모가 자기도 모르게 말하기를 "그것 봐라. 자동차를 훔쳐 타더니 오래 못 간다고 안 하던가?" 이 말을 들은 교통순경이 "자동차를 훔친 죄로 체포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붙잡아 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숨길수가 없습니다.
즐거운 성탄절이 이번 주 토요일입니다.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츄리가 장식되고 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탄절은 온 세계가 지키는 명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 당시 서기관들처럼 지식으로만 아는 성탄절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처럼 메시야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지켜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시민들처럼 무관심 속에서 성탄절을 지켜도 안될 것이고, 우리는 동방박사들처럼 성탄절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동방박사들은 어떻게 성탄절을 지켰습니까?
①성경말씀대로 믿고 지켰습니다.
저들은 이상한 별을 보았을 때 그별이 메시야 탄생을 가리키는 성경의 예언(민24:17)의 성취라고 믿고 성탄을 지켰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가 되심을 믿고 성탄을 지켜야 합니다.
②깨달은 대로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탄생한 줄을 깨닫고 그 메시야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먼길을 떠나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③귀한 예물을 바쳤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귀한 예물을 기꺼이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마2:11절하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황금은 예수님이 이 땅을 통치하시는 '왕'이심을 상징한 것이고, '유향'은 제사 때 쓰는 것으로 예수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이심을 상징한 것이고, '몰약'은 시체 보존을 위해 쓰는 것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가시관 쓰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시고, 죽으실 것을 벌써 알고 몰약을 드렸습니다.
④아기 예수를 만난 후에도 천사의 지시에 순종했습니다.
천사가 그들에게 지시하기를 '헤롯왕을 만나지 말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가라'고 지시를 할 때에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성탄 전 4주간은 '대강절'로 우리의 죄를 참회하면서 주님 오심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 때에 교회가 사용하는 색깔도 사순절에 사용하는 색인 '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은 '준비와 참회'의 색입니다.
오늘은 대강절 마지막 주일로 ◀한 아이로 오신 성탄절▶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시대의 여러 선지자들 가운데서 이사야는 특별히 '복음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또 그가 기록한 이사야서를 일명 '제5복음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사야와 복음을 이렇게 서로 관련지어서 생각하는 까닭은 그만큼 이사야서 안에는 오실 메시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많이 들어있고, 뚜렷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몇 구절만 찾아 읽겠습니다.
①사7:14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의 동정녀의 탄생에 대해서 이사야는 6,7백년 전에 벌써 예언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십자가상에서 이루어 주실 것도 미리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②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53:5∼6의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에 대해서 생생하게 묘사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③ 본문은 한 아이로 오신 아기 예수를 예언하고 계십니다. 6절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시되 장성한 몸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고, 아기의 몸으로 오실 예수의 탄생을 우리에게 예언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의 말씀은 흑암의 땅에 큰 빛으로 오실 메시야,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실 메시야에 대해서 우리에게 잘 전해 주고 있습니다.
▶뜻깊은 대강절을 맞이하여 본문의 말씀을 한 절씩 보시면서 성탄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절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이 말씀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 성탄의 메시지가 이 말씀 속에 다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고통을 당하셨든지, 예컨대 육체의 질고를 당하셨든지, 마음의 고통을 당하셨든지, 혹은 경제적인 고통을 당하셨든지, 또 여러분이 어떠한 흑암에 처하셨든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여러분 모두가 그 모든 고통과 흑암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과거에 지나간 일들로 기억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이 고통과 흑암 가운데 머물러 있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구원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것을 이루고야 마십니다. 뜻깊은 성탄주일을 맞이해서 이 놀라운 역사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저들이 범죄한 연고로 하나님은 저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가운데 두 지파입니다. 지리적으로 저들은 갈릴리 지방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갈릴리 지방이 어디입니까? 왼쪽에는 지중해를 따라서 해변의 길이 나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요단강과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갈릴리 지방입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두 지파는 갈릴리 지방에 정착했습니다. 다른 지파에 비해서 북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지파는 전쟁이 일어나면 항상 이방인들의 침입을 제일 먼저 받는 곳이었습니다.
또 이사야 선지자가 본문의 말씀을 기록할 당시에는 이미 북방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했을 때입니다. 앗수르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가고, 그 대신 자기들이 갈릴리 지방에 와서 정착해 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끝 부분에 보면 갈릴리를 가리켜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방의 갈릴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갈릴리 지방은 지금까지 이방인에 의해서 짓밟혀 왔습니다. 멸시를 당해 왔습니다. 고통을 당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그 멸시받던 갈릴리가 어떻게 되었다고 했습니까?
1절(하)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 자기들의 노력으로 영화롭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통이 사라지고 흑암의 권세가 사라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여러분의 멸시와 천대가 바뀌어서 영화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할/ 이것이 바로 대강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셨습니까?
2-3절의 말씀이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2절 말씀에서는 흑암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볼 수 있고, 3절 말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당하던 고통의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흑암 속에 살았고, 사망의 땅에 거했습니다. 온 천지가 캄캄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사8:17절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낯을 가리워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낯을 가리웠다는 것은 외면했다는 말이요, 무관심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흑암에 행할 수밖에 없었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큰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의의 태양이신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빛이 비춰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히던 모든 흑암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뜻깊은 성탄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 모두에게도 큰 빛, 구원의 빛, 생명의 빛이 강하고 찬란하게 비춰지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여러분의 삶을 어둡게 만드는 그 모든 흑암의 세력이 말끔히 소멸되는 역사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고통 당하던 자기 백성을 어떤 식으로 영화롭게 하셨습니까?
3절의 말씀에 보면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하던 고통의 문제가 깨끗하게 해결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로 다 할 수 없이 쇠약해졌습니다. 이방인들에 의해서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멸시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사 어떻게 하셨습니까?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셨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백성을 강대하게 하셨습니다. 그 백성의 수요를 많게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이 나라 이 민족에게도 2004년 성탄주일을 맞이해서 일어나게 되기를 저는 소원합니다. 이 나라가 창성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창성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의 경제도 창성해서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IMF때보다 더 경제가 곤두박질했습니다. 쇠약해진 경제가 다시금 회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번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일어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3절 말씀을 계속해서 봅니다. "주께서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통 가운데 거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고통이 다 사라지고 즐거움으로 바뀌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즐거움입니까? 이사야 선지자는 그 즐거움을 두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①'추수하는 즐거움'입니다.
여러분 농사짓는 농부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운 때는 언제이겠습니까? 추수할 때입니다.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창고에 곡식이 가득 가득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즙틀에는 새 포도주가 넘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②'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입니다.
군인에게 있어서 가장 즐거울 때는 언제입니까? 탈취물을 나눌 때일 것입니다.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전리품을 나눌 때의 그 기쁨, 그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여러분! 2004년 성탄주일을 맞이해서 추수할 때의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이 바로 여러분의 즐거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절 말씀 끝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즐거움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에 추수의 즐거움을 거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잘 싸웠기 때문에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즐거움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성탄주일을 맞이하는 여러 성도님들에게도 다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고통, 흑암, 멸시는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열심이 우리를 고통 가운데 그대로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구원해 주십니다.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시고,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눈을 열어서 고통 너머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흑암 너머에 있는 큰 빛을 바라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멸시 너머에 있는 영화로움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열심이 반드시 여러분들을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고 말 것입니다.
고전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즐거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4절입니다.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압제자에 손에 의해서 종처럼, 짐승처럼 아주 심한 학대를 받아 왔습니다. 목에는 무거운 멍에를 메어야 했습니다. 어깨에는 채찍이 가해졌습니다. 압제자는 그들의 등을 막대기로 내리쳤습니다. 그들은 짐승 취급을 받았고, 종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모든 학대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들이 멘 멍에를 부수셨고, 압제자의 채찍을 찢으셨습니다.
그리고 막대기도 꺾어 버리셨습니다. 그리고는 학대당하던 자기 백성을 하나님께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거워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되 어느 때와 같이 하셨다고 했습니까?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사사기 7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을 때 미디안인들이 침입해 들어 왔습니다. 13만 5천명이라는 엄청난 대군이었습니다. 그 때 그들과 대항해서 싸우기 위해서 동원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는 3만2천명이였습니다. 미디안 군대에 비하면 적은 숫자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하나님은 많다고 하시면서, 기드온으로 하여금 다 되돌아가게 하시고 불과 삼백 명만 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적은 숫자로 미디안 대군을 물리치고 큰 승리를 거두게 하셨습니다.
전쟁의 승패는 인간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압제자의 멍에와 채찍과 막대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들 자신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누리는 것도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무슨 공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이미 승리하셨기에,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놓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에서 자유함을 얻기 위해 몸부림쳐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자유함을 즐겁게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안에서의 삶입니다. /할/
뜻깊은 성탄주일을 맞이해서 구원의 즐거움이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둘째 이유는 5절입니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군인이 무엇을 입고 싸웁니까? 갑옷을 입습니다. 그리고 적과 어지럽게 싸웁니다. 정신 없이 싸움을 하다 보면 그 복장에 무엇이 묻는다고 했습니까? 피가 묻기 마련입니다. 자기의 상처에서 난 피도 묻을 것이고, 적이 흘린 피도 묻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이 필요 없습니다. 모든 전쟁 장비를 "불의 섶 같이 살라지리니"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더 이상 전쟁이 없고, 평화가 왔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살롬, 곧 하늘의 평화를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셨습니다. 나와 너 사이에 막힌 담도 허물어 드리셨습니다.
뜻깊은 성탄주일을 맞이해서 여러분 모두의 마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가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주께서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모든 불안함을 다 씻어주시고, 그 대신 하늘의 참 평화로 가득 채워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거워하는 셋째 이유는 6절 '메시야'가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6절에서 그 분의 모습을 세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그 분의 이름을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 분이 어떤 모습으로 오시는지 6절을 보십시다.
①"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입니다.
메시야의 모습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 분은 장성한 모습으로 오시지 않고, 아기의 모습으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참 사람입니다. 사람이라야 죽지, 하나님은 죽으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인성을 말씀해 주는 구절입니다.
②"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 아기는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자기 아들을 세상에 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요3:16).
③"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입니다.
정사라는 말은 곧 정부, 정권이라는 뜻이며, 통치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어깨에 정권을 담당하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통치자요. 만 왕의 왕으로 이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만 왕의 왕이십니다.
이 세 가지가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의 모습입니다. 그는 참 사람이십니다. 참 하나님이십니다. 만 왕의 왕이십니다.
▶곧이어 이사야 선지자는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의 속성과 그의 사역을 설명하기 위해 메시야의 이름을 다섯 가지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메시야의 첫째 이름은 '기묘자'입니다.
기이하고 묘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은 이것을 'Wonderful'이라는 단어로 번역을 해 놓았습니다. 메시야가 이 땅에서 하는 일이 모두 신기하고 놀랍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정녀의 탄생부터 시작해서 그 분의 모든 삶이 다 놀랍습니다. 기사와 이적을 베푸시면서 사역하시는 일도 놀랍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일, 그 어느 하나 놀랍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셔서 그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까? 그 목적은 무엇입니까?
둘째 이름이 설명해 줍니다. '모사'입니다.
여러분, '모사'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영어에서는 'Counsellor'라고 번역했습니다. 상담자라는 뜻입니다. 보혜사라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어떠한 문제라도 예수님 앞에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예수님은 그 모든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고통을 바꾸어서 즐거움이 되게 하십니다. 아무리 흑암 가운데 행했다 할지라도 큰 빛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하던 멸시를 바꾸어서 우리를 영화롭게 해 주시는 분이 바로 메시야입니다.
셋째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그 분의 능력은 무한하십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수 있습니다.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실 수도 있습니다. 바람과 풍랑을 잠잠케 하실 수도 있습니다. 중풍병자도 고치시고, 눈먼 자, 귀가 먼 자도 고치십니다.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넷째 이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라"이십니다.
영원히 살아 계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의 보호자요, 사랑으로 양육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언제나 우리를 감싸주십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실족합니다. 믿노라 하면서도 그 분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를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그 분을 멀리 떠났더라도 탕자가 두 손들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때처럼 우리도 뉘우치는 심정으로 그 분께 돌아오면, 그 분은 무한하신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십니다.
다섯째 이름은 "평강의 왕"입니다.
그 분은 우리의 모든 짐을 대신 져주시고, 우리의 마음속에 평강을 허락하십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참된 평강, 곧 'Shalom'을 우리 마음에 심어주십니다.
여러분!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습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 분은 만 왕의 왕으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기묘자로 오셨습니다. 우리의 모사로 오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로 오셨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지금도 그 분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
우리의 모든 짐을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이번 성탄주일을 맞이해서 저와 여러분을 괴롭히는 고통과 흑암의 권세와 멸시 천대 저주 질병 실패 그 모든 것을 깨끗하게 벗어버리고 마음의 천국을 이루시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절은 그 분의 나라에 대해서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메시야 왕국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그 정사는, 그 분의 다스림은(통치), 그 분의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아울러 평강의 더함도 무궁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분은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우리를 다스리시되 무력으로 다스리지 않으시고, 평강으로 다스리십니다. 그 분의 나라에는 언제나 평화가 넘쳐흐릅니다.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우리 예수님께서 누구의 자손으로 오셨습니까?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약속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다윗의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세상 나라는 쇠약했지만, 그 분의 나라는 영원무궁합니다.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여기서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고 하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각 나라마다 통치 이념이 있기 마련입니다. 건국 이념이 있습니다. 메시야의 나라는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불공평한 일이 많습니다. 이 세상에는 불의한 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는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보존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7절 말씀 끝 부분을 보십시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열심,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집념이 모든 것을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신다는 것입니다. 과연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은 이것을 이루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이 말씀을 기록한지 약 700년 후에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나셨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기의 몸으로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 분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탄의 왕국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죄의 권세에 얽매여 고통 당하던 우리들에게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사탄에 매여서 종노릇하면서 멸시 당하던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영화롭게 만드셨습니다. 천국의 백성으로 영화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합니까? 그 나라의 시민답게 공평과 정의를 이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의로운 삶, 깨끗한 삶, 정직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부족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연약합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반드시 이루고야 마실 것입니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믿음 가운데 주께서 주신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날마다 누리면서, 매일 매일의 삶을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04년 12월 19일 대강절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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