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종수*이동원 목사+목사님들설교

[스크랩] 죽음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눅16장20-25) / 김명혁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1. 27. 04:57

죽음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눅16장20-25)

 

성경본문|누가복음16 : 20~25 ; 행7:54-60,행9:36-42,딤후4:6-8,계14:13

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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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7:54-60

54. 저희가 이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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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36-42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38.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39.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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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후서 4 : 6-8,

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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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4:13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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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처| 김명혁목사

 

 

무거운 내용의 설교를 하기 전에 소박한 이야기 몇 가지를 하겠습니다.

뜨겁게 기도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은혜로운 설교를 듣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뜨겁게 찬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만, 소박한 착한 삶을 사는 것이 아주 아주 중요합니다.

 

제 이야기를 너무 자주해서 죄송하지만 제 이야기를 또 합니다.

어제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수지 풍덕천 근처에서 차가 밀렸습니다.

오른쪽 옆 식당에서 차 하나가 막 나와서 끼어 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차가 모두 멈추어서 끼어들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제 차를 조금 후진을 해서 그 차가 끼어들게 했습니다.

그 차에는 젊은 부부가 타고 있었는데 담배를 입에 문 젊은 사람이 창문을 열고 저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큰 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가면서 깜빡깜빡 불을 켜며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저도 기분이 좋았고 그 사람도 기분이 좋았을 것입니다.

 

지난 수요일 아침 시청 근처 코리아나 호텔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택시를 타고 갔다 왔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은퇴를 하고 소일할 겸 용돈을 벌 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사람이 금융계를 은퇴한 후 택시 기사의 생활을 하며 “즐거운 택시 인생”이란 책을 썼는데 멋진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를 격려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게 하듯이 택시 비를 2천원 더 주었습니다.

그 분은 너무너무 고마워했습니다.

 

올 때도 나이 지긋한 분이 택시 운전을 했는데 그분에게도 비슷하게 했습니다. 친절한 말 한 마디와 조그만 팁이 두 사람을 모두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집 사람과 함께 수지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6천 원짜리 음식이었습니다.

 

바로 앞 상에 젊은 부부가 두 어린 아이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고 나가서 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여자 아이에게 제가 스티커를 하나 주었다니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너무 좋아하면서 엄마 옆에 얌전하게 앉아있었습니다.

 

남자 아이가 놀이방에서 뛰어와서 동생에게 스티커 어디서 났냐고 물었습니다.

동생이 손으로 저를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 아이에게도 스티커를 하나 주었습니다.

자기는 멋진 남자 스티커를 받았고 동생은 예쁜 여자 스티커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젊은 부부는 미안해 하면서도 너무너무 고마워했습니다.

 

이야기 하나만 더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저의 집사람과 두 처제를 데리고 서해안 외목 마을에 가서 거기 있는 산에 올라갔다 내려왔습니다.

 

제가 언제나 그렇게 하는데 산에서 내려오면서 쓰레기를 비닐 봉지에 담아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면 바닷가 근처에 파출소가 있는데 파출소에 가서 쓰레기를 어디에 버리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경찰이 파출소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말하면서 ‘인적 사항’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알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계속해서 ‘인적 사항’을 알아야 하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저 ‘목사’라고만 하고 떠났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그만 하고 설교를 하겠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고난’을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무겁고 부담이 되는 내용의 설교였지만 여러분들이 열린 마음으로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말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용기를 가지고 오늘은 좀 더 무겁고 좀 더 부담이 되는 주제인 ‘죽음’을 주제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사순절 기간 중 다섯 번째 주일을 맞기 때문에 ‘죽음’을 주제로 설교를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죽음이 어떻게 기쁨이고 죽음이 어떻게 축복이냐고 반문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대신 몇몇 사람들의 행복한 죽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 이야기들을 들은 다음 여러분들이 이 질문에 스스로 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조춘국씨의 죽음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강변교회가 시작하려고 할 때 성경공부 시간에 조춘국이란 사람이 나왔습니다.

조춘국씨는 유방암과 척추암이라는 극심한 고통과 고난을 당하고 있었는데 성경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죄 사함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고 전도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찬송을 부르며 담임 목사의 기도를 받은 후 고요히 천국으로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조춘국씨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겠습니다.

 

“조춘국씨는 50평생 남 부러울 것 없는 유복한 환경에서 살아온 불교 신자였습니다. 단정하고 빈틈없는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녀가 갑자기 견디기 어려운 가정의 불행을 겪으면서 미움과 저주에 사무쳐 눈물과 한숨으로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유방암에 걸려 유방을 제거하는 수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인 한도정씨의 소개로 성경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강변교회가 시작하기 바로 전이었습니다. 그녀는 성경 공부를 하면서 신앙의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수 개월이 지나면서 그녀의 사고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미움의 감정이 사라지고 용서와 사랑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잠 못 이루던 밤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이고 싶던 불행의 장본인을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났습니다.

 

그런데 자기도 모르게 그의 두 손을 붙잡고 이제는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토해낼 수가 있었습니다.

자기도 놀랐고 주위에 둘러섰던 친구들도 놀랐습니다.

 

그러나 수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암이 재발했습니다.

이번에는 척추암이었습니다.

뼈를 깎는듯한 아픔이 척추에 쏟아지곤 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소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조춘국씨는 어린 아이처럼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주님께 맡겼

습니다. 중환자 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때도 있었습니다. 온 교회가 함께 기도했습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그녀는 고요히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날 밤 그녀의 몸 속에서 돌 같이 굳는 검은 것들이 26개나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기쁨에 못 이겨 여기 저기 뛰어다니면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회장 보살이었던 박달안씨가 예수 믿고 죄 사함과 구원을 얻은 다음 여기 저기 뛰어다니면서 전도한 것처럼 조춘국씨는 여기 저기 뛰어 다니면서 전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동안 뛰어 다니면서 자기 친구들 20여명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습니다.

 

암에 걸려 고통하던 보사부 차관을 지낸 분도 그녀와 나의 전도로 주님을 영접했고 평안을 누렸고 후에는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물론 그녀는 척추암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때문에 때로 자리에 드러눕곤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녀를 방문하고 그녀를 위하여 기도하면 그렇게도 극심하게 그녀를 괴롭히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목사님이 기도해 주시면 아픈 것이 다 없어져요.’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걸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그저 신기하다고만 했습니다.

조축국씨는 구원의 기쁨을 체험하고 그리고 3년 동안 마음껏 전도의 사명을 다한 후 가족들과 몇몇 성도들이 찬송을 부르는 가운데 주님 품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녀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 준 담임 목사가 그녀를 위해서 기도한 후 그녀의 눈을 감겨 주었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장면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저의 책 「영몰라 통 몰라」에 기술한 내용입니다.

 

자,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조축국씨의 죽음이 슬프고 불행한 죽음이었습니까?

기쁘고 행복한 죽음이었습니까?

 

저는 조축국 집사님의 죽음이 기쁘고 아름답고 축복된 죽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 기쁨과 축복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 슬픔과 저주가 됩니다. 저의 장인이 의사였고 남대문 교회의 장로님이셨는데 혀를 길게 내 밀고 죽지 않겠다고 발버둥 치며 불행하게 죽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교회의 장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 기쁨과 축복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 슬픔과 저주가 됩니다.

 

 

둘째로 성경에 나오는 나사로와 스데반과 도르가의 죽음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사도도 아니었고 목사도 아니었고 장로도 아니었고 권사도 아니었습니다. 거지였고 집사였고 평신도였습니다. 그런데 세 사람의 죽음은 모두 기쁨과 축복의 죽음이었습니다.

 

눅16:20-25에 나오는 나사로는 기쁨과 축복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단다. 그런데 그 집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 하나가 헌데 투성이 몸으로 누워서,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단다. 개들까지도 와서, 그의 헌데를 핥았단다. 그러다가,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고, 그 부자도 죽어서 장사되었단다.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눈을 들어서 보니, 멀리 아브라함이 보이고, 그의 품에 나사로가 있었단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기를 '아브라함 조상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나사로를 보내서,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내 혀를 시원하게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나는 이 불 속에서 몹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였단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말하였단다. '얘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나사로는 기쁘고 행복한 죽음을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죽어서 천사들에게 이끌려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었고 그리고 천국에서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은 분명히 기쁘고 축복된 죽음이었습니다.

부자에게는 죽음이 슬픔과 고통과 저주가 되었습니다.

 

두 종류의 죽음이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 기쁨과 축복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이 슬픔과 고통과 저주가 됩니다.

 

행7:54-60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도 기쁨과 축복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돌에 맞아서 죽었지만 그가 죽음에 임했을 때 그에게 성령이 충만이 임했습니다. 그에게 하늘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서 스데반을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축복되고 영광스러운 죽음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는 마지막에 숨을 거두면서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서 이런 기도까지 했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보다 더 기쁘고 축복되고 영광스러운 죽음은 없을 것입니다. 스데반은 기쁨과 축복과 영광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행9:36-42에 나오는 도르가도 기쁨과 축복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는 살았을 때 많은 과부들에게 겉옷과 속옷을 지어준 선행과 구제가 심히 많았던 여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병들어 죽어서 다락에 누어있을 때 욥바에 살던 모든 과부들이 도르가가 죽어서 누어있던 다락에 모여서 슬퍼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과부들이 모여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다면 그는 분명히 기쁘고 축복된 죽음을 죽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와서 도르가를 위해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고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를 다시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살아났을 때 그를 보고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도르가는 가장 축복된 죽음을 죽었습니다.

 

두 종류의 죽음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며 우는 죽음, 사도와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보시는 행복한 죽음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사도와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보시지도 않는 불행한 죽음이 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과 스데반의 죽음과 도르가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귀중하게 보시는 축복된 죽음이었습니다.

 

 

셋째로 어떻게 저주의 죽음이 기쁨과 축복의 죽음이 될 수가 있었는지 그 원인과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죽음은 본래 죄 값으로 온 저주였고 형벌이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그런데 어떻게 저주의 죽음이 기쁨과 축복의 죽음으로 바뀌어질 수가 있었습니까? 어떻게 나사로와 스데반과 도르가와 조춘국씨의 죽음이 저주와 형벌이 아닌 기쁨과 축복과 영광이 될 수가 있었습니까?

 

그 원인과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누군가가 저들이 죽을 때 저들이 받아야 할 저주와 형벌을 대신 받고 저주와 형벌의 독소를 제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그와 같은 숨겨진 비밀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우리 대신 저주와 형벌의 죽음을 대신 죽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53:12).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속하심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어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2:14,15).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1).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27:46).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과 끊어지는 저주와 형벌의 죽음을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을 대신해서 영혼을 버려 지옥에 내려가는 저주와 형벌의 죽음을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의 죽음에서 저주와 형벌의 독소를 제거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저주의 죽음이 기쁨과 축복의 죽음이 될 수 있었던 원인과 배경입니다.

 

그래서 이 숨겨진 비밀을 믿는 자들에게는 저주의 죽음이 기쁨과 축복의 죽음으로 바뀌어집니다.

이 숨겨진 십자가 죽음의 비밀을 머리로 믿는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머리로만 말로만이 아닌 가슴으로 온 몸으로 눈물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무릎을 꿇고 울면서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에게는 저주의 죽음이 없어집니다.

그러면 우리들에게는 죽음은 단지 육체의 세상에서 영의 세상으로 옮겨지는 계단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들에게는 하늘이 열리고 천국이 열리게 됩니다.

 

반대로 십자가 신앙이 희미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닫히고 천국이 닫힙니다.

 

그 다음에는 이 믿음을 삶으로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스데반처럼 전도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조춘국 집사처럼 전도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도르가처럼 구제도 힘쓰고 선행도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전도하며 달려가야 하고, 구제하며 달려가야 하고, 선을 행하며 달려가야 하고, 사랑을 베풀면서 달려가야 하고, 봉사하며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전도와 구제와 선행과 사랑과 봉사는 천국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주리고 목 마른 자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하는 것은 천국을 준비하는 일입니다.

긍휼과 자비와 사랑은 심판을 이긴다고 성경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2:13).

 

믿음을 지키고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달려갈 길을 마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죽음을 기대에 차서 바라보았습니다.

죽음 뒤에 있는 의의 면류관을 사모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자기의 죽음을 바라보았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으니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8).

 

자기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대에 차서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입니다.

천국에서 받을 의의 면류관을 기쁨으로 바라보면서 자기의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행복한 사람이고 축복 받은 사람이고 인생을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정익 목사님은 어느 날 죽음이 임박했을 때 목욕을 하고 양복을 곱게 입고 딤후4:7,8을 읽으면서 죽음을 맞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정익 목사님은 오래 살기를 원치는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자기는 85세 되는 해 4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두 시에 목욕을 하고 양복을 곱게 입고 딤후4:7,8을 읽으면서 죽음을 맞기를 원한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주 멋진 인생의 설계요 멋진 인생의 계획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멋진 죽음을, 기쁨과 축복의 죽음을 죽을 수가 있습니까?

 

위에서 말씀 드린 대로

첫째는 나 대신 저주의 죽음을 죽으신 십자가 죽음의 비밀을 온 몸과 마음과 영혼과 눈물로 믿어야 합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분부하신 전도와 구제와 선행과 사랑과 봉사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멋지고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기쁨과 축복의 죽음을 맞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정규만 장로님의 죽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대구 서현교회에 정규만 장로란 분이 있었습니다.

한약방을 하던 분이었습니다. 서현교회가 예배당을 지으려고 하던 때였습니다.

 

서현교회의 윤철주 목사님이 교회당 짓는 것을 망설이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 때 정규만 장로님윤철주 목사님에게 한국에서 제일 좋은 예배당을 짓자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정 장로님은 기도하면서 매일매일 한약방에서 들어오는 수입을 세어보지도 않고 몽땅 목사님에게 가지고 가서 건축 헌금으로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약방에서 사가는 약을 먹으면 낫지 않는 병이 없다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매일매일 엄청난 액수의 수입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정 장로님은 들어오는 수입을 세어보지도 않고 몽땅 건축 헌금으로 계속해서 바쳤습니다.

결국 서현교회는 그 당시 한국에서 제일 크고 제일 좋은 교회당을 하나님께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정장로님의 기쁨과 감사는 한이 없었을 것입니다.

 

정규만 장로님은 한 평생을 기쁨과 감사로 살다가 자녀들과 성도들의 찬송을 들으면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운명하기 바로 전에 정 장로님은 “지금 천사가 나를 데리러 왔다”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정규만 장로님은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틀림 없이 큰 상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조춘국 집사님도 천국 문에 이르렀을 때 틀림 없이 큰 상급을 받았을 것입니다.

 

내가 받을 저주와 형벌을 대신 받으며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 죽음의 비밀을 굳게 믿고 뜨겁게 사랑하다가 그리고 주님께서 분부하신 전도와 구제와 선행과 사랑과 봉사의 일을 힘쓰며 살다가 죽는 죽음은 기쁨의 죽음이고 축복의 죽음입니다.

 

이제 계14:13 말씀을 읽고 설교를 마칩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부탁하신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해서 수고하며 힘쓰다가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믿음과 전도와 선행의 삶을 힘쓰면서 살다가 기쁨과 축복의 죽음을 죽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도르가와 같은 죽음, 스데반 집사와 같은 죽음, 조춘국 집사와 같은 죽음, 정규만 장로와 같은 죽음,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죽음을 저와 여러분들도 죽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메모 :

 김명혁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