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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말씀을 우리의 한 가운데로(대상 13:1-8) / 유관지 목사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3. 9. 09:04

말씀을 우리의 한 가운데로/대상 13:1-8

 

 

                                                                                                      출 처| 유관지목사

 

 

사울이 죽고 다윗이 군사들과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앞의 12장 3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군사가 전열을 갖추고 다 성심으로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자하고 또 이스라엘의 남은 자도 다 한 마음으로 다윗을 왕으로 삼고자 하여"

 

다윗이 이렇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되었습니다.

12장 39절과 40절은 사흘 동안 축하 파티를 하는 내용입니다.

 

이제 왕의 자리에 오른 다윗, 어떤 일을 제일 먼저 했을까요?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엘리 제사장 때 블레셋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궤를 빼앗깁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하나님의 궤는 이스라엘로 돌아와 벧세메스를 거쳐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에 이십 년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40리쯤 떨어진 곳입니다. 그것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 안에는 율법의 기초가 되는 십계명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치의 핵으로 삼으려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역대하 13장, 다윗이 왕이 되자 제일 먼저 말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한 일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첫째,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의 원인이 말씀을 중심으로 하지 않은데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이 말은 '사울 때 있었던 모든 문제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일을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는 뜻입니다.

 

사울 때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사울과 사무엘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울과 다윗 사이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끝내 길보아 산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패해 죽습니다.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건국 초기니까 그렇지' 할 수도 있습니다.

사울의 정신상태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울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다윗을 사랑해서 사위로 삼았다가 어떤 때는 악령에게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려고 단창을 던집니다. 변덕이 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문제의 원인을 그런 데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궤 앞에서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궤 안에 들어있는 십계명을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 하나의 문제에 대해 '이런 경우 어떻게 할까요?' 하면서 말씀의 원리에 비추어서 답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뜻입니다.

 

사실 사울은 말씀을 소홀하게 여겼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궤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자기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그것을 가까운 곳으로 옮겨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하 14장을 보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불러모아 자기편을 만드는 일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선지자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러 나가는데 사무엘이 좀 늦게 오니까 자기가 직접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급하다고 말씀이 정한 규례를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한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말렉과 싸우러 나가는데 하나님이 사무엘을 통해서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남김 없이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대적한 일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도 살려주었고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기름진 것을 남겼습니다.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죽였습니다.

 

사무엘이 이것을 꾸짖자 사울은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대해 사무엘은 무엇이라고 하지요? 사무엘상 15절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하 15:22b)라고 합니다.

 

이어서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그 다음 잘 들으세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그대로 되었지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버린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다윗은 이런 일들을 요약해서 "사울 때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블레셋에게 패전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랜 내전을 겪었다'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3장 1절을 보면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북한이 매우 가난합니다. 국가의 기본적 임무인 백성이 먹는 문제 하나 제대로 해결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민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목숨을 걸고 계속해서 북한을 탈출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말썽꾼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많은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비효율성, 일인독재, 과중한 군사비 지출, 그러나 문제의 뿌리는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없으니까 그 앞에서 물을 수도 없습니다. 그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습니까? 그 문제의 원인을 말씀에 묻지 않은 데서 찾으셔야 합니다.

 

여기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다시 3절의 뒷부분을 보세요.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다윗은 '사울 때에는 사울이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사울의 시대를 함께 산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훌륭한 점 가운데 하입니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다윗의 이런 점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 그런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도 과거에는 여당이었으므로 그 문제의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함께 그 문제를 극복해 봅시다' 그러면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신뢰하고 존경할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님이 이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장로님들이 이렇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 않고 '우리에게 부족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도우십니다.

문제의 근원을 말씀 앞에서 묻지 않은 데서 찾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말씀을 중심에 두어야합니다.

다윗은 왕이 되자 서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철저하게 가지고 있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이다.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이다. 지성소의 중심은 하나님의 궤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말씀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다윗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말씀부터 생각했습니다.

 

서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궁전을 세웠을 때에도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했습니다. 역대상 15장 1절입니다.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궁전 지으면서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다윗이 왜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궤를 잘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역대상 17장 1절입니다. "다윗이 그의 궁전에 거주할 때에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 그래서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그 일을 솔로몬에게 맡기셨지요.

 

말씀 중심의 삶, 말씀 우선의 삶, 다윗의 생애를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에 두어야합니다.

 

작년 11월 3일 「조선일보」에 골프선수 박세리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인터뷰 기사의 제일 끝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골프가방이 몸에서 10m만 떨어져 있어도 불안하다고 했다.

그런 불안을 유쾌하게 인정했다. '그래요 골프가 제 직업이니까요. 아저씨는 기자로서 필이 없으면 불안감을 느끼잖아요.' 이날도 골프가방은 근접거리 안에 있었다

 

정말 함께 실린 박세리 선수의 사진 옆에는 큼직한 골프 가방이 놓여있었습니다.

저는 신문을 읽다가 설교 자료가 될만한 기사는 오려서 주제별로 분류해 놓은 파일에 넣어둡니다. 박세리 인터뷰 기사의 이 부분도 스크랩했는데요 제가 이 기사를 어떤 파일에 넣었을 것 같습니까?

 

참고로 제가 분류해 놓은 설교 자료 파일들 가운데서 이 기사를 넣을만한 파일들의 제목을 말씀 드리면 격언, 긍정적인 삶, 노력, 대중인기, 성실, 인내, 적극적인 사고, 절제, 최선을 다하는 삶, 충성, 이런 것들입니다.

 

좀 엉뚱한 것 같지만 저는 이 기사를 '성경'이라는 파일에 넣었습니다. 그 밑에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떨어져 있으면 불안을 느껴야 한다'고 적어서 성경이라는 파일에 넣었습니다.

 

요즘 골프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골프 선수들 이야기가 신문에 자주 실립니다.

골프 선수들 가운데 좋은 크리스천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은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기도 덕분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선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희 교회에 골프 선수도 있고 프로 농구 선수도 있는데 이 말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자들은 그런 신앙적인 이야기는 잘 실어주지 않지요. 그러면 '그런 이야기를 싣지 않으면 저는 인터뷰하지 않겠습니다' 하는 단호함도 있어야합니다. 예전에 탁구 국가대표인 양영자(梁英子) 선수 같은 분들은 그랬습니다.

 

레저와 스포츠는 요즘 선교의 좋은 방편이 되고 있습니다. 안산에 좋은 감리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는 레저와 스포츠를 통한 선교에 힘쓰면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교회 이름을 아예 안산레포츠감리교회라고 바꾸고 교회 시설과 목회구조를 레포츠 중심으로 바꾸어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박세리 선수가 크리스천이었다면 올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희 교회에 모시고 와서 간증을 들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세리'(世利)라는 이름은 '세상을 이긴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올해 저희 교회 표어가 '믿음으로 이기는 교회'이고 중심 말씀은 요한일서 5장 4절의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가 아닙니까?

 

"세상을 이기는 승리" 이것을 줄이면 세리입니다. 그런데 알아보니까 교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올해 이 말씀을 어디에 두시고 사셨습니까?

교회 벽에 걸어두고 일 주일에 한 번씩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는 않았을 줄로 압니다.

 

삶의 한 가운데 두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기 위해 힘쓰며 사셨을 줄로 압니다. 앞으로 남은 석 주간, 특별히 그렇게 사시고 내년에도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우리 한 가운데 두어야합니다.

성탄절을 준비하는 대림절 둘째 주일이 시작되었는데 성탄절을 성육 사건이라고도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이 성육신의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 다음에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이신 로고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려고 오셨는데 밖으로 밀어내서는 안 됩니다.

변두리에 두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 가운데 있도록 해야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센터'가 되도록 해야합니다.

말씀을 가까이에, 가운데에 두시고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말씀을 모시기에 합당한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빼앗아 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궤를 그들이 섬기는 다곤 신전에 두었습니다.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지고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지는 소동이 일어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를 가드라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성읍 사람들이 독한 종기로 고생합니다. 사무엘상 5장 11절에는 온 성읍이 사망의 환난을 당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일곱 달만에 하나님의 궤를 돌려보낸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시고 있기에 부적합한 사람들,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뒷부분에도 웃사라는 사람이 경박하게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댔다가 죽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겨올 때 다윗이 기뻐서 뛰놀며 춤추었습니다. 다윗의 아내 미갈이 이것을 비난했습니다. 왕이 어떻게 그렇게 체면을 돌보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했습니다.

 

말씀이 돌아오는 것을 기뻐한 일을 비난하다가 미갈은 죽는 날까지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모두 말씀을 모시기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들이어서 불행을 겪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왜 아직도 통일을 주시지 않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통일을 누리기에 아직 적합한 존재들이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모시기에 합당한 존재들이 되어야합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이 말씀을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말씀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말씀을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12절을 보세요.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다윗과 같은 성군도 말씀을 두려워했습니다.

 

말씀을 정성스럽게 모시는 사람이 말씀을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15장은 하나님의 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이야기인데 보면 얼마나 정성을 다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있는 것을 감사하며 기뻐하는 사람이 말씀을 모시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16장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기뻐하며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 찬양 가운데 일부입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역대하 13장 13절과 14절에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시기에 적합한 사람이어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이 사람의 집에 둡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14절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말씀을 모시기에 합당한 존재들이 되어서 말씀을 잘 모시는 가운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나라가 여러 가지 어려운 형편 속에서 이렇게 보호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말씀이 그래도 풍성하기 때문인 줄로 압니다. 주보 7쪽에 있는 통계를 보면 성경 반포량이 작년보다 37%가 늘었습니다.

 

여러분, 분주하시지요?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복잡한 형편 가운데 있지요?

어제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어제, 강남에서 성도의 가정 결혼식을 주례하고 급하게 교회로 돌아와서 다시 결혼식 주례를 하고, 그 사이 사이에 주보 교정을 보고, 성도들을 만나고 사무 볼 것을 보고, 다시 강남으로 나가 하늘나라로 가신 노(老) 권사님 추도 예배 드리고 교회로 돌아옵니다.

 

요즘 토요일 저녁에 시내 나갔다가 수지로 돌아오려면 준비작업이 필요합니다.

우선 심호흡을 한 번 해야 합니다. 될 수 있으면 화장실도 다녀와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야합니다. '하나님, 교통이 많이 막힐 것인데, 10분에 10m 정도씩 전진하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짜증내지 말게 내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그렇게 해서 6시 넘어 교회에 도착해서 결재할 것, 다 결재하고 오늘 설교를 위해 성경을 열었습니다.

 

평소에는 설교를 위해 본문을 상고하는 것은 목요일까지는 끝내야 하는데 이번 주간에는 당회와 구역회를 준비하느라고 많이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이번 당회에서는 장로님도 선출하니까 신경이 더 많이 쓰였고 예산을 세분해서 살피는 일을 하느라고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습니다.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초조합니다. 그런 가운데서 성경을 펼치고 오늘의 본문을 읽고 또 읽고 여러 번역을 대조하며 읽는 가운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영감이 떠오르고 대지가 잡혔습니다.

 

그 편안해진 마음을 가지고 설교 원고 작성해 가지고 오늘 단에 섰습니다. 제가 성경 읽는 일부터 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원고 쓰는 일부터 했으면 설교준비가 훨씬 어려웠을 것입니다.

 

다윗, 왕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할 일이 많겠습니까?

그 가운데 제일 먼저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이 다윗이 축복 받는 비결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쁠수록, 여유가 없을수록 말씀을 가까이하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복 되는 일은 없습니다.

다윗은 새 출발을 말씀과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대림절 둘째 주일, 새 주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씀과 함께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새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말씀과 함께 출발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새해를 위해 당회와 구역회를 합니다. 새해 표어는 '새롭게 달려가는 교회'입니다. 말씀과 함께 달려가는 교회가 되어야하겠습니다.

 

나라가 새 대통령을 선출합니다. 말씀부터 가까이 하려 한 다윗 왕의 역사가 이 나라에 있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우리의 한 가운데 옮기는 일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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