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재 장로(박사)소설 콩트 에세이

닫힌 문과 열린 문

성령충만땅에천국 2016. 3. 28. 10:32

닫힌 문과 열린 문|성경 말씀 묵상

은혜 | 조회 6 |추천 0 |2016.03.27. 15:28 http://cafe.daum.net/seungjaeoh/J75F/167 

3월의 말씀 산책

 

    친구가 나에게 자문을 구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는 오래 다니던 교회를 그만 두고 새 교회로 옮겼는데 그곳은 드물게 볼 수 있는 젊은 목사가 개척한 교회여서 신앙성장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또 다른 친구의 권고로 옮긴 곳이라고 했다. 그런데 옮긴 지 얼마 안 되어 교회를 가다가 교통신호와 속도위반을 했다고 범칙금 납부통지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빨리 달리다가 노란 신호가 와서 급정거 할 수 없어 지나친 것인데 범칙금 통지를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 뒤로는 특히 그 지점에서는 신호 위반을 안 하려고 노력해 왔는데 일 년 째 되는, 얼마 전 그 지점을 지나려는데 황색 신호가 켜졌다. 그래서 급정거 했는데 이제는 뒤 따르던 차가 후면을 받아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가 나에게 묻고 싶었던 말은 교회 출석하러 가는 길에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생기는데 이것은 그 교회에 나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우연도 중복 되면 필연이라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새 교회에 나가고 있으니 그것을 막으려고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문이 닫혔는데 그 문을 뚫고 나가려는 것은 잘못 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옛 교회는 새롭게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 만만한 패기 있는 젊은 목사를 모셨는데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교인을 깨워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용사를 만들어 삼천 명 교인으로 부흥시키겠다는 비전을 보여주는 목사였다. 그래서 교회성장보다는 현재 교인을 하나 되게 하여 행복한 교회를 만들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보수적인 내 친구가 부담을 느끼고 그곳을 빠져 나온 것은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의 교통사고로 새 교회도 문이 닫혔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문이 닫히면 또 한 편으로 문이 열린다는 닫힌 문과 열린 문의 원리가 있기는 하다. 그에게 열린 문은 무엇인가? 옛 교회로 돌아가는 것? 아니면 또 교회를 옮기는 것? 그것은 변덕이지 닫힌 문, 열린 문의 원리가 아니다.


    메리 베튠(Mary M. Bethune)187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 한 노예 가정에서 열일곱 자매 중 열다섯 번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흑인과 백인의 차이는 글을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고 확신하고 공부를 해서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가서 그곳 흑인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간난신고 끝에 흑인 학교를 다니고 또 장로교에서 운영하는 중등학교에 8km 거리를 도보로 다니며 공부 했는데 그곳 교사 엠마 윌슨이 그를 좋게 보아 그를 도와 신학교에 장학금으로 다니게 했다. 그녀는 무디신학교도 다녔다. 드디어 졸업하고 아프리카의 선교사 지원을 했는데 흑인이라고 거절을 당했다. 결국 문이 닫힌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편한 삶을 택하지 않았다. 그녀가 태어난 마을에서 교사 경력을 쌓고 결혼을 하자 플로리다로 옮겨서 흑인들을 가르치는 새로운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학교를 세웠다. 플로리다의 데이토나(Daytona)에서 1904년 쓰레기 처리장 근처에 있는 집을 $11.00에 세를 내고 의자와 책상은 나무상자로 만들고 잉크는 나무 열매(elderberry)를 짜서 쓰고 연필을 탄 나무로 하고 흑인 여학생 6명과 자기 아들을 데리고 여학교를 시작했다. 감자파이, 아이스크림, 생선 튀김들로 학비를 벌게 하며 사회 각층의 자선 단체와 교회 등에서 도움을 받고 성장하자 옷 만들기, 여성용 모자 만들기, 요리 및 각종 공예품 제작을 가르쳐 흑인 여성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했다. 1931년에는 감리교회에서 같은 종류의 흑인 남자학교 쿡맨(Cookman)과 통합을 주선하여 흑인 남녀를 가르치는 베튠-쿡멘 초급대학이 되고 1941년에는 대학으로 승급되었다. 베튠은 이 학교의 총장으로 1923년부터 1942년까지 있었는데 미국 최초의 흑인 총장이었으며 그녀는 흑인 기본권 보장을 위한 민권 운동가, 루스벨트(Roosevelt) 대통령의 흑인 고문으로 일하는 정치인 등으로 큰 활약을 했다. 지금도 그녀가 학교를 세운 데이토나의 집은 역사적 명소로, 워싱턴 DC의 살던 집은 역사적 장소로 또 워싱턴의 린컨공원에는 그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진정 닫힌 문 뒤에 오는 열린 문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겠다.’는 변함없는 목표를 두고 미래를 조망하며, 고난을 이기고 보는 새로운 문이라고 생각한다.